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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쓰는 기사] 청각 장애인이 뽑아준, 특별하지 않은 커피 한 잔

장애인 고용 늘려가는 스타벅스의 채용 정책에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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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59호 이동근⁄ 2019.11.28 09:36:14

지난 5월, 50개소를 돌파한 스타벅스 리저브 바(Reserve Bar)가 고급 커피 애호가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그리고 스타벅스커피코리아는 국내에서 장애인을 가장 적극적으로 고용하고 있는 회사라는 점도 주목받고 있다. 고급을 지향하면서 장애인 고용에 적극적이라는 두 가지 특징을 동시에 체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스타벅스 더종로R점이다. CNB저널은 스타벅스 홍보 담당자와 함께 더종로R점을 찾았다.

 

스타벅스 더종로R점 입구. 사진 = 이동근 기자

 

기자가 스타벅스 홍보 담당자와 더종로R점을 방문하게 된 것은 일반 스타벅스와는 다른 지점이 있다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서였다. 원래 커피를 많이 즐기기 보다는 기사 작성 목적으로 커피숍을 찾는 본 기자에게 사실 북적북적한 스타벅스는 자주 찾게 되는 곳이 아니었다.

 

2017년 문을 연 더종로R점(리저브 매장은 ‘R’이라는 문자가 지점명에 따라 붙는다)이다. 서울 종각역 인근에 있는 종로타워 1층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더종로R점은 타 매장에 비해 규모가 크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내부도 (손님이 많은 시간대가 아니어서인지) 북적거리는 느낌은 없었다.

리저브 바는 기존에 일부 매장에서 제공하던 리저브 서비스를 특화시킨 매장으로 2016년 처음 국내에 문을 열었다. 2017년까지는 15개 매장이 오픈했으며, 2018년에는 2매가 넘는 29개 매장이 새로 문을 열었고, 2019년 6월에는 50개를 돌파했다. 단일 원산지의 스페셜티 커피로 선별한 리저브 원두 음료 판매량은 누적으로 450만잔 판매를 돌파하며 매년 30% 이상 증가하고 있다.

더종로R점은 실내가 매우 넓은 데다 테이블이 촘촘하지 않아 공간이 매우 여유 있게 느껴지는 편이었다. 게다가 다양한 스타벅스 MD(Merchandise, 상품)들이 전시돼 있어서 커피숍이 아닌 백화점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스타벅스 더종로R점의 리저브 바. 사진 = 이동근 기자


잠시 매장 안을 둘러 본 뒤 스타벅스 홍보 담당자와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앉은 곳이 특이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칵테일바와 같이 앞에 바텐더가 있는 모양새였다. 왜 리저브 ‘바’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여타 스타벅스 매장처럼 삼삼오오 모여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도 있지만, 바 형태의 좌석은 다른 매장에서 보기 어려운 형태였다.

바텐더가 아닌 파트너(스타벅스에서 일하는 매장 직원의 명칭)가 다가와 어떤 커피를 시킬지 고르라며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메뉴판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그냥 어떤 커피를 고르느냐가 아니라 어디 원산지의 커피 원두를, 어떤 방식으로 추출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고를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커피 원두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기자도 쉽게 고를 수 있도록 파트너가 자세히 설명해 주고, 어떤 추출방식으로 커피를 추출할 것인지도 고를 수 있도록 여유를 주었다.

 

스타벅스 리저브바에서는 다양한 커피 원두를 추출방법과 함께 선택할 수 있다. 사진 = 이동근 기자


어느 정도 매장 분위기에 익숙해지면서 커피를 소개해주고 있는 이에 눈이 갔다. 스타벅스 담당자에 따르면 현재 우리를 담당하는 이는 청각 장애인이라고 했다. 장애인이라는 표기가 전혀 없는데다 구화(口話, 입 모양을 보고 말을 알아듣고, 대화하는 방식)를 통해 이야기 해 전혀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다. 명찰에는 엘레나(본명 최예나)라고 적혀 있었다.

스타벅스는 국내에서 장애인을 가장 많이 고용하는 업체 중 하나다. 2007년부터 적극적으로 장애인을 채용, 직원 중 약 390명이 장애인이며, 약 50여명의 장애인이 부점장이나 점장 등 중간관리자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1호 스타벅스 청각장애인 점장인 송파 아이파크점의 권순미 점장(청각장애 2급)이 유명한데, 그는 지난해 장애인고용촉진대회에서 장애인 근로자 유공자로 국무총리 표창까지 받은 바 있다.

스타벅스 측 관계자는 “권순미 점장 이후 엘레나 등 신세대들이 올라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종로R점에서 엘레나 파트너는 부점장직을 맡고 있었다.

 

엘레나 부점장이 푸어오버(드리퍼)로 커피를 추출하고 있다. 사진 = 이동근 기자
엘레나 부점장이 사이폰을 끌이며 커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 이동근 기자
엘레나 부점장이 다 끓인 커피를 따르며 커피 추출법의 장단점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 이동근 기자

이날 스타벅스 담당자와 기자는 아메리카노 커피 2잔을 주문하면서 커피 원두를 고른 뒤 엘레나 부점장의 조언에 따라 기자는 푸어오버, 스타벅스 담당자는 사이폰 방식으로 추출을 요청했다.

엘레나 부점장은 커피가 추출 되는 과정에서 각 추출법의 장단점도 설명해 주었다. 기자가 선택한 푸어오버는 누구나 처음 접하더라도 어렵지 않고 부드럽고 깔끔한 풍미의 커피를 즐질 수 있으며, 사이폰은 부드러우면서도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으며, 보는 재미가 있는 추출 방식이라는 점도 배울 수 있었다. 엘레나 부점장은 사이폰에서 커피가 추출된 뒤 잔여물이 동그란 공 모양을 이루는 것을 보여주면서 커피가 잘 뽑혀 나왔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이같은 설명을 들으면서 커피를 기다리고 있자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장애인에게 실례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 한다는 것도 바보 같아졌다. 순수하게 커피 향을 맡으면서 즐길 수 있게 됐다.

함께 커피를 마시던 스타벅스 담당자는 “혼자서도 많이 온다. 커피 지식이 많은 사람이 일행과 함께 왔다가 나중에 혼자서 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의사소통이 중요한 서비스업은 장애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업종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이날 기자는 의사소통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구화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입을 보고 이야기 했던 정도가 신경 쓰이는 전부였다.

커피 가격은 일반 스타벅스 지점에서 주문했을 때 보다 1000원 정도 비싼 느낌이었는데, 초콜렛이 간식으로 같이 나오는데다, 취향에 따라 추출법까지 결정할 수 있어 그리 비싸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커피에 대해 간단하게 이것저것 물어 볼 수도 있다는 점도 장점이었다.

법에 의하면 기업의 장애인 법적 고용률은 3.1%(2019년 기준)다. 스타벅스는 4.3%(지난 4월 신세계 그룹 공개 기준)를 장애인으로 고용하고 있다. 청각, 지적, 지체 등 360명의 장애인 바리스타가 전국 스타벅스 매장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중증 장애를 2배수로 하는 법적 장애인 근로자수는 651명에 달한다.

 

이날 맛보았던 커피는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맛이었다. 조금 비쌌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고, 청각장애인이 있었지만, 일반인과 다르지 않았다. 사진 = 이동근 기자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장애인을 고용하기 보다는 부담금(의무 고용률을 지키지 않을 경우 내야 하는 금액)을 낸다. 업무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스타벅스의 행보는 당연한 것이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이다. 이날 커피가 특별했지만 특별하지 않은 이유다. 장애인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는 공간인 더종로R점은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가벼운 사치를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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