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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HDC현산, 아시아나 유니폼의 자존심 지켜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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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60호 윤지원⁄ 2019.11.28 08:42:48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가 됐다. (사진 = 연합뉴스)

국내 2위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은 HDC현대산업개발의 품으로 들어가게 됐다. HDC그룹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이라는 두 대기업집단의 커다란 변화이며, 범 현대가에서 처음으로 손을 대는 항공업이라는 점 때문에 재계 전반에서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를 두고 “HDC현산의 호텔, 리조트, 면세점 사업과 시너지를 낼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이 나오기도 하고 “‘포니 정’의 아들이 다시 모빌리티 산업으로 복귀했다”는 낭만적인 비평이 나오기도 했다.

반면, “건설업체와 항공업체 간 시너지는 크지 않을 것”이라며 신중한 전망도 나왔다. 무엇보다 당장 항공업계가 실적 악화에 허덕이는 상황이라고 지적하며 부정적으로 전망하는 이들도 많았다. 항공업계 업황이 안 좋다며, 대대적인 항공업계 구조조정을 전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와 반대로 올해 항공업이 나빴던 만큼 내년에 반등 기회가 잔뜩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여객 부문은 한일 관계 개선 가능성이 있고, 화물 부문은 미중 무역 갈등 완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년엔 도쿄올림픽이라는 글로벌 이벤트가 우리나라 코앞에서 벌어지고, 추석 연휴도 올해보다 길다.

이런 외부적인 것보다, 그룹 내에서의 결속과 조화를 먼저 챙기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아시아나항공의 새로운 심벌과 CI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아시아나항공의 명예 회복을 위한 작업도 매우 중요할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유니폼을 입고 매일같이 전 세계 승객들과 만나는 아시아나항공 구성원들의 실추된 자존심 회복이 필요하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한 장면. (사진 = 영화 화면 캡처)


"옷이 날개" 아니라 "옷이 신용"

‘캐치 미 이프 유 캔’이라는 영화가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하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톰 행크스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이 영화는 미국에서 10대 후반의 나이에 희대의 사기꾼이자 수표 위조범으로 활동했다가 현재는 기발한 사기꾼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의 보안 컨설턴트가 된 프랭크 윌리엄 애버그네일 주니어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청소년인 프랭크가 처음 FBI 수배자 명단에 오르게 된 사기 행각은 팬암 항공사의 수표 위조 및 조종사 행세였다. 아무리 감쪽같은 솜씨로 위조해도 위조 수표는 위조 수표다. 그래도 평범한 사람이 은행에 내미는 평범한 수표보다는 조종사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공항 창구에 내미는 팬암 항공사 수표가 의심받을 가능성이 훨씬 적다.

그밖에도 영화에서는 조종사와 승무원들이 한껏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무리 지어 다니며 공항을 활보할 때, 주변 모든 사람의 호의적인 시선이 그들을 향하는 장면을 종종 보여준다. 조종사 복장을 한 프랭크는 그런 호의를 입고 자신있게 위조 수표를 내놓는다. 한치의 의심도 없이 현금다발이 돌아온다.

영화의 배경이 된 60년대뿐 아니라 지금도 항공사 조종사와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선망의 대상에 가깝다. 외부의 부러운 시선은 유니폼을 향하고, 내부의 자부심 역시 유니폼을 통해 드러난다. 승무원은 공항 출근길에도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는 일부 항공사 복장 규정은 이제 개선되어야 할 대표적인 구습으로 여겨지지만, 이들이 대중의 시선 앞에 고개 들고 어깨 펴고 당당히 걸을 수 있는 것은 유니폼의 힘, 소속 항공사에 대한 프라이드 때문이다.
 

스카이트랙스 홈페이지는 아시아나항공을 세계 10대 5성급 항공사로 소개하고 있다. (사진 = 웹페이지 캡처)


국내 유일 '5성급 항공사'

어느덧 30년 넘는 역사를 간직한 아시아나항공은 강한 프라이드를 가져도 충분한 항공사다.

아시아나항공은 대한민국 항공 시장 2위의 강자다. 지난해 매출 7조 원은, 아시아나를 인수한 HDC그룹의 지난해 전체 매출 6조 5천억 원보다도 많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로 HDC그룹은 재계 30위권에서 10위권으로 껑충 뛰어오르게 됐다.

여기에 더해 아시아나항공은 더욱 특별한 프라이드가 있다. 영국의 컨설팅 회사 ‘스카이트랙스’가 전 세계 항공사 및 공항에 대해 평가하는 서비스 품질 평가에서 최고 등급이나 다름없는 5성급 항공사로 평가받는 유일한 국적 항공사라는 점이다.

스카이트랙스의 항공사 평가는 1년에 걸쳐 약 100여 개국 2천만 명 이상의 승객에게 좌석과 기내식, 라운지 등에 대한 평가부터 승무원의 친절도, 기내 청결도, 기내 엔터테인먼트 등 항공사 이용 경험 전반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다.

스카이트랙스는 항공사 등급을 호텔처럼 1성급부터 6성급으로 구분하는데, ‘최상급’으로 평가받는 6성급은 등급만 존재하고 실제로 이 등급을 받은 항공사는 없다. 따라서 5성급이면 현존하는 가장 좋은 등급의 항공사라는 뜻이다.

국내 시장 점유율이 더 높고 회사 규모도 큰 대한항공은 4성급이다. 퍼스트클래스 서비스 품질은 아시아나항공과 동일 수준으로 평가받지만 비즈니스클래스와 이코노미클래스에서 떨어진다는 평가다.

스카이트랙스가 5성급으로 평가하는 항공사는 전 세계에서 10곳에 불과하다. 아시아나항공은 2007년부터 올해까지 13년 연속으로 여기에 포함됐다.

그런데 그런 아시아나항공이 모그룹의 경영 실패로 팔려다니는 신세가 된 것이다. 자존심에 입은 타격이 얼마나 크겠는가?
 

지난해 거리에서 시위에 나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구성원들. (사진 = 연하


무너진 자존심, 직접 회복할 것 

지난여름 만난 아시아나항공 한 관계자는 회사가 매물로 나오게 된 것에 대해 “차라리 다행”이라고 얘기했다. 당시 유력 인수 후보로 SK, CJ 등 10대 재벌그룹의 이름들이 거론되고 있을 때였는데, 그는 “그런 세계적인 대기업이 새 주인이 되면 많은 부채도 해결하고, 최근 겪었던 여러 가지 굴욕적인 일들을 겪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굴욕’은 분식회계의 굴욕, 그에 따라 고육지책으로 권유받은 무급휴가, 매각되는 신세, 그리고 그보다 앞서 지난해 기내식 대란, 오너의 갑질과 기행 등에 따른 사회적 비난 등을 포괄했다.

지난해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갑질 및 각종 위법행위 문제들이 불거진 데다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 사태까지 이어지면서 양대 국적 대형항공사의 조종사와 승무원들은 주말마다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섰다.

그들은 총수와 경영진을 비난하는 시위에 참석하면서 얼굴이 노출되면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것을 염려해 얼굴에 가면을 썼다. 그런데 복장은 항공사 유니폼을 자발적으로 입었다. 시위 현장의 목소리가 항공사 내부의 목소리임을 분명히 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회사의 실추된 명예를 우리 손으로 회복시킨다는 의지의 발현이기도 했다.

이처럼 항공업은 자부심과 소속감이 남다르게 강한 업종이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건설업과 항공업의 시너지'보다, '범 현대가'라는 브랜드와 '아시아나'라는 브랜드의 시너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클 것이다.

그리고 항공업은 대면 서비스의 비중이 큰 만큼 구성원들의 프라이드는 고객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항공업계가 승무원의 유니폼과 헤어스타일, 몸에 배인 매너 등을 중시하는 이유가 다른 게 아니다.

아무리 터뷸런스가 없고, 5성급 기내식의 재료가 좋다 해도 기장의 목소리와 승무원의 얼굴에 고뇌와 패배감이 묻어난다면 승객의 평가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아시아나의 미소를 되찾아주는 작업이 꼭 필요한 이유다.
 

아시아나항공 객실 승무원들이 중학생들에게 항공사 승무원 체험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 = 아시아나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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