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이성호 기자) ‘유리천장’이란 충분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직장 내 성 차별이나 인종 차별 등의 이유로 고위직을 맡지 못하는 상황을 설명하는 경제학 용어다. ‘유리’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벽’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국내에서는 주로 여성 근로자의 관리직 진급을 어렵게 하는 유무형의 진입장벽을 의미한다.
여성의 고학력화·여권신장 개선 등으로 사회적 진출이 늘어났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별 유리천장지수에서 대한민국은 7년 연속 최하위다. 2019년 유리천장지수는 여성임원 2.3%(OECD 22.9%), 여성관리자 12.5%(OECD 31.9%)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2019년 유리천장지수’에서도 한국은 100점 만점에 간신히 20점 남짓을 받아 OECD 29개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실제로 여성가족부가 2019년 1분기 기준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상장법인 전체(2072개)의 성별 임원 현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여성 임원 비율 4.0%, 여성 사외이사 비율 3.1%로 기업의 의사결정 영역에서의 여성 선임 비율이 매우 저조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2018년을 기준으로 500대 기업의 전체 임원(1만4460명) 중 여성임원 수는 518명으로 3.6%에 불과했다.
이에 정부에서는 공공부문 여성대표성 제고계획(2018~2022년)을 수립, 분야별 목표달성을 추진하고 있고, 2022년까지 여성 고위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원의 비율을 각각 10%와 20%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같은 공공부문의 개선이 민간영역까지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이런 가운데 최근 기업을 대상으로 한 ‘여성 임원 할당제’가 국회에서 다뤄지고 있어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최운열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발의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상장회사를 대상으로 특정 성(性)의 이사가 이사회 정원의 3분의 2를 초과하지 않도록 했다. 더불어 이 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 사업보고서에 그 사유를 기재해 공시토록 명시했다. 2018년 12월 결산 연결 기준 자산총액 2조원 이상 기업은 약 200개사다.
KB금융,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삼성전자, 기업은행, 삼성생명, 한국전력공사, 현대자동차, 한화, 한화생명, SK, 미래에셋대우, BNK금융지주, 삼성화재해상보험, 포스코, DGB금융지주, 한국금융지주, SK하이닉스, NH투자증권, 메리츠금융지주, 기아자동차, DB손해보험, JB금융지주, LG전자, 현대해상, 현대모비스, 삼성물산, SK텔레콤, 한국가스공사, 삼성증권, SK이노베이션, 미래에셋생명, 현대제철, LG디스플레이, 오렌지라이프, 케이티, 동양생명, CJ, 메리츠종금증권, LG화학, 두산, 롯데지주, 롯데쇼핑, 대한항공, 두산중공업, 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지주, 삼성카드, LG, GS, 롯데케미칼, 메리츠화재, CJ제일제당, 삼성SDI, 대신증권,
다우기술, 키움증권, 현대건설, 이마트, 한화손해보험, S-Oil, 한화케미칼, 삼성중공업, 롯데손해보험, LG유플러스, 대림산업, GS건설, 흥국화재, 대우조선해양, 유안타증권, 신세계, 두산인프라코어, 코리안리, LS, 케이티앤지, NAVER, 포스코대우, 한국타이어, 케이씨씨, 대우건설, 현대글로비스, 삼성전기, 아시아나항공, 삼성에스디에스, 카카오, CJ대한통운, SK네트웍스, 한화에어로, 스페이스, 아모레퍼시픽그룹, 한화투자증권, 교보증권, 유진증권, 고려아연, 현대위아, DB금융투자, 현대백화점, 현대차증권, 두산밥캣, 효성, 아주캐피탈, 제주은행, 삼성바이오로직스, LG이노텍, 동국제강 등이 대상이다.
여성할당 ‘3분의 1’→‘최소 1명’으로 축소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달 24일과 이달 21일 이 개정안을 법안심사소위원회 안건으로 올려 다뤘다.
하지만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았다. 정무위에 따르면 여성할당제 도입시 기업경영의 자율성이 훼손될 수 있으며 업종별 차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사직을 할당할 내부 여성인력이 부족한 회사는 외부인사 영입에 따른 업무상 비효율 및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것.
특히 이사회의 구성 등의 사항은 기업의 자율적 의사결정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를 공시규제로 접근하기는 부담이 따른다는 주장이다.
야당 측도 “현재 여성임원 비중이 약 3%인데 그 10배 수준으로 이사회를 구성하라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고개를 저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사업보고서에 이를 준수하지 않았을 경우 그 사유를 기재해 공시토록 하는 것 역시 기업에 대한 비판 등 후폭풍 발생 우려로 인해 치열한 논의가 이어졌고, 결국 법안소위에서는 대폭 수정된 형태로 의결됐다.
수정 가결된 개정안은 이사회에 여성임원을 최소 1명 이상을 두도록 했고 이를 지키지 않았더라도 공시하는 게 아닌 가족친화기업 인증, 녹색경영 정보 등과 같이 자율공시로 하도록 했다.
최운열 의원실 관계자는 CNB에 “원안에서는 이사회의 3분의 1 정도는 여성을 선임토록 했으나 기업 입장을 고려해 상당부분 개정안이 완화됐다. 위반을 하더라도 이사 선임을 무효화시키는 등의 강력한 페널티는 없다”며 “사업보고서에 이사 성별 구성을 준수하지 못했을 경우 설명을 하라는 정도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여성할당이 축소됐고 공시에 통해 외부를 통해 알려지는 효과를 기대했지만 이 또한 자율공시로 후퇴했다”며 “소위에서 논의한 결과 최소 여성 임원을 1명 이상 두는 것으로 시작해 추후에 점진적으로 늘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안소위를 통과한 이번 개정안은 정무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하지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검찰개혁·선거제개혁법안의 본회의 부의 시점(12월 3일 이후)이 임박하면서 여·야의 대치가 격화되는 등 정국이 요동치고 있어 최종 입법화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