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지금은 펭수 시대. 펭수는 EBS가 제작한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의 주인공이다. BTS 같은 스타가 되기 위해 남극에서 헤엄쳐 왔다는 EBS 연습생 펭귄 펭수는 유튜브 론칭 7개월 만에 100만 구독자를 돌파하며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다. 최근 유통업계에 따르면 펭수의 몸값은 2억~5억 원(1년 기준 광고 모델료) 수준으로 치솟은 상황. 그럼에도 유통·패션·뷰티 등 다양한 업계가 펭수에게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인기 캐릭터 짱구와의 협업으로 ‘짱구 파자마’ 대란을 일으켰던 이랜드월드의 스파오는 이번엔 펭수의 손을 잡았다. 지난해 겨울, 오픈 1시간 만에 25만 장의 판매를 기록한 해리포터와의 협업 상품을 선보인 스파오는 ‘캐릭터 컬래버레이션 장인’으로 불렸다.
하지만 올해 ‘토이스토리’, ‘마리몽’, ‘겨울왕국 2’ 등 캐릭터 협업이 유독 잦아지며 다소 식상해졌다는 평도 있었다. 드래곤볼과의 협업 상품이 출시된 가운데 매장 한쪽에서는 디즈니 주토피아, 또 다른 공간엔 카드캡터 체리와의 협업 상품까지 한꺼번에 선보인 경우도 있었고, 해리포터 협업 상품 첫 출시 때만큼 줄을 서는 진풍경이 이어지진 않았다. 짱구 또한 첫 협업 땐 파자마 품절 대란을 이을 정도로 화제가 됐지만, 협업 상품이 연이어 출시되자 이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의 관심 또한 줄어든 추세였다.
이 가운데 스파오는 발 빠르게 펭수와 손을 잡으며 다시금 컬래버레이션 장인 재도약을 바라보는 상황이다. 현재 대세인 펭수지만, 의외로 관련 상품이 많이 출시되지 않은 상황이라 EBS에 “펭수 굿즈(관련 상품)를 만들어달라”는 소비자들의 요청이 쏟아져 왔다.
최근 펭수의 화보가 실린 패션 잡지 나일론코리아 12월호가 대형서점 입고 하루 만에 완판됐고, 카카오톡에서 출시된 펭수 이모티콘은 11월 출시 이후 하루 만에 인기 판매순위 1위에 올랐다. 펭수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다이어리 ‘오늘도 펭수 내일도 펭수’가 11월 28일 사전 예약 판매 3시간 만에 1만 부라는 판매고를 기록한 뒤 3주 연속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것을 봐도 펭수 굿즈에 대한 소비자의 높은 수요를 짐작할 수 있다. 이에 EBS 측은 다양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펭수가 이렇게 빨리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을 줄 몰랐다. 올해 안에 최대한 다양한 펭수 굿즈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행복한 해명을 전하기도 했다.
스파오는 펭수의 모습을 담은 상품 총 11종을 12월 20일 이랜드몰과 무신사에 출시했다. 상품 출시 전 SNS를 통해 고객에게 디자인 선호도 및 협업 유형에 대해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이를 바탕으로 상품을 기획해 내년 1월에도 의류 및 파자마, 잡화류를 포함한 전체 컬렉션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12월 20일 공개된 1차 협업 상품은 발매 3시간 만에 품절됐다. 특히 펭수 수면 바지는 10분 만에 매진됐다. 스파오 관계자는 “펭클럽(펭수 팬클럽)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기존 2D 펭수가 그려진 아이템들과는 다르게 자이언트 펭수의 생김새를 흡사하게 재현한 상품들을 준비했다”며 “많은 고객들이 기대하고 있는 만큼 좋은 스토리와 콘텐츠를 통해 유쾌한 컬래버레이션의 새 모델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펭수와의 협업으로 ‘컬래버레이션 장인’ 도약 노리는 업계
스파오가 펭수와 옷을 만들었다면, 포스코는 EBS 소품실에서 생활하던 펭수에게 집을 지어줬다. 포스코와 고객사가 함께 만드는 건설자재 브랜드 ‘이노빌트’를 적용해 약 한 달간의 제작기간을 거쳐 12월 6일 ‘펭숙소’를 완공한 것. 완성된 집은 ‘자이언트 펭TV’ 채널에 공개됐다. 포스코 측은 “키가 210㎝에 달하는 펭수가 안락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주안점을 뒀다. 녹슬 걱정 없는 특수 철강재인 포스맥(PosMAC)을 C모양으로 가공해 단단하게 골조를 올렸다”고 밝혔다. 펭숙소는 일산에 위치한 EBS 사옥 로비에서 볼 수 있다.
펭수는 KGC인삼공사와 정관장 광고 계약을 체결하며 CF 데뷔도 앞뒀다. 그동안 펭수는 기업 및 공공기관과의 다양한 협업을 진행했지만 CF 출연은 이번이 처음. 12월 6일 EBS본사에서 촬영을 마쳤고, 내년 1월 유튜브를 비롯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CF를 선보일 계획이다. KGC인삼공사 민경성 마케팅실장은 “따뜻한 마음을 전달하는 정관장 브랜드 이미지와 밝고 건강한 펭수의 이미지가 부합된다고 판단해 펭수를 모델로 선정했다”며 “고향이 남극인 펭수가 부모를 그리워하는 스토리를 담아, 설날을 앞두고 가족의 의미를 담긴 CF를 방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LG유플러스는 공덕역 U+5G갤러리에 펭수 콘텐츠를 추가했다. LG유플러스와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을 오가는 시민에게 일상 속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여유를 전하기 위해, 지난 9월부터 작품 88개를 전시하는 U+5G 갤러리를 운영해 왔다. 12월부터는 ‘동서양의 일상이 만나다’ 시리즈 명화작품 4점과 그래피티 작품 1점, 펭수가 퍼포머로 참여한 360도 AR 작품 2점 등 7점을 새롭게 추가했다. 총 95점의 작품들을 내년 2월 29일까지 만날 수 있다.
펭수는 궁중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인 춘앵전(春鶯囀)을 재해석한 신제현 작가의 ‘리슨 투 더 댄스’ 퍼포머로 참여해 익살스러운 몸짓과 추임새로 전통무용을 표현해 냈다. 본인의 주제곡에 맞춘 춤으로 시민들의 일상을 응원하는 작품도 함께 선보였다. 펭수가 참여한 작품 2점은 ‘U+AR 앱’을 사용하면 스마트폰 화면 속 펭수를 자유롭게 확대하고 360도 돌려가며 감상할 수 있다.
뷰티 업계에서도 펭수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LG생활건강은 네이처컬렉션 매장에 방문해 뷰티 컨설턴트 교육을 받고, 직접 fmgt 브랜드 제품 판매에 나서는 펭수의 직업 체험기를 함께 진행했다. fmgt 브랜드 담당자는 “펭수의 핵심 팬층과 fmgt의 주요 고객층이 2030세대로 비슷하다는 점에서 협업 영상을 시도하게 됐다”고 말했다.
펭수의 주요 팬층 어른이들 공략
앞선 담당자의 말처럼 다양한 업계가 펭수와의 협업을 선호하는 건 경제력을 갖춘 20~30대 사이에 특히 펭수가 사랑받고 있기 때문.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과거 아이들을 대상으로 캐릭터를 만들고, 그 캐릭터 상품을 부모가 아이들에게 사주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면, 요즘은 경제력을 갖춘 20~30대를 주요 타깃으로 한 캐릭터 상품이 보다 많이 개발되고 있다”며 “특히 점점 결혼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즐기며 이를 바로 구매 행위로 잇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는 사회적 환경에 맞춘 변화”라고 말했다.
실제로 펭수는 ‘20~30대의 뽀로로’라 불리며 어린이들보다 어른이들(어른과 어린이의 합성어로, 아이 같은 어른을 뜻하는 말) 팬이 더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EBS에 따르면 ‘자이언트 펭TV’ 전체 시청자 비율이 여성 65.1%, 남성 34.9%로 여성이 남성보다 높으며, 시청 연령층은 만 18~24세 24.6%, 만 25~34세 40.2%, 만 35~44세 21.8%, 만 45~54세 7.8%로, 성인들에게 폭넓게 사랑받고 있다.
부산에서 진행된 팬사인회 영상에서는 펭수의 팬이라는 40대 여성이 반가움에 눈물까지 글썽여 눈길을 끌었다. 최근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배우 박정민(33)과 개그우먼 박지선(36)은 펭수의 열렬한 팬임을 고백하며 펭수 굿즈에 열광하는 모습도 보였다. 특히 박정민은 “힘든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보다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는 펭수의 말에 울컥했다”고 말했다. 30대 직장인 김예나 씨는 “스타를 꿈꾸는 EBS 연습생 펭수는 결코 녹록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는 모습으로 특히 지친 어른이들에게 위로를 건넨다”며 “이 가운데 ‘김명중!’이라며 자신이 속한 EBS 사장의 이름을 서슴없이 부르는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한다”며 펭수의 매력 포인트를 공감과 위로라고 꼽았다.
하지만 모든 업계가 펭수와의 협업을 선호하기만 하는 건 아니다. 한 식음료업계 관계자는 “펭수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상품과 결합해 좋은 이익을 끌어낼 수 있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펭수 자체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 정작 제품의 이미지는 뒷전이 될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 그렇기에 펭수와의 협업에 관심은 있지만, 신중하게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통업계 관계자는 “어떤 캐릭터나 인물이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올랐을 때 그 인기의 효과를 보기 위해 수많은 업계의 접촉이 이어지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이것이 빠른 이미지 소비로 이어져 금방 식상해질 수도 있다”며 “이에 EBS 측도 펭수의 이미지를 고려하며 신중하게 협업 상대를 고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아이들의 대통령 ‘뽀로로’ 캐릭터로 황금기를 맛봤던 EBS가 이번엔 펭수 효과를 톡톡히 볼 것이라는 전망들이 이어지고 있다. EBS 측은 올 연말을 기점으로 보다 펭수와 관련된 다양한 굿즈와 협업 콘텐츠를 선보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신이 나! 신이 나! 엣헴 엣헴 신이 나”라는 시그니처 송처럼 펭수가 유통·패션·뷰티 등 다양한 업계에 긍정적인 경제 효과로 신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