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경제 = 문규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필자는 초임 검사로 춘천지검에서 2년 6개월이나 근무하다가 1989. 9. 1.자로 두 번째 임지인 당시 마산지방검찰청 진주지청으로 발령을 받고 부임하였습니다.
필자가 춘천지검에 근무한 2년 6개월 동안에는 우리 사회에 수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1987년에는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의 사건으로 촉발된 전두환의 6. 10. 선언, 노태우의 6. 29. 선언 등과 수많은 민주화 운동이 있었고, 그해 12월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일어난 북한의 대한항공 항공기 폭파 사건과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화 세력의 연대 실패로 인한 노태우 정권의 집권, 1988년의 서울올림픽, 1989년 전두환의 백담사 칩거 등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필자가 부임한 진주지청은 경상남도 전체(당시 직할시로 승격되기 전인 울산시를 관할하는 울산지청은 부산지방검찰청의 산하 지청이었음)를 관할하는 마산지방검찰청(당시는 창원지검이 생기기 전임) 산하의 3개 지청[진주, 거창, 충무(현 통영)] 중에서 평검사가 6명이나 되는 가장 큰 규모의 지청이었는데 대체로 초임검사를 거쳐 2번째 임지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는 곳이었습니다.
부임한 지 약 1달여가 지난 어느 날 검사실 입구가 왁자하여 수사기록 보던 것을 멈추고 쳐다보았더니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 1명이 자신이 고소한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여직원에게 따지고 있었고, 참여 계장도 그 옆에서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남자를 검사실로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더니 제가 부임하기 직전 놀라운 일이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남자는 본사가 진주에 있다가 얼마 전 대구로 이전한 경운기를 만드는 회사인 대동기계의 생산직 직원으로 근무하던 중 노조 활동을 하다 회사로부터 부당 해고를 당하였다며 회사를 상대로 부당해고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 소송에서 회사 측 증인으로 나왔던 회사의 임직원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였다는 이유로 그들을 상대로 위증죄로 고소한 사건을 제 전임 검사였던 K 검사가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건 위증고소 사건 이전에도 그 남자는 회사를 상대로 많은 고소, 고발, 진정 등을 남발하였고, 그 사건을 담당한 주임검사, 지청장, 본청인 마산지검의 검사장, 부산고검장, 검찰총장 등을 상대로도 편파 수사, 지연 수사 등을 트집 잡아 고소, 고발, 진정을 남발하였던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사건을 담당한 검사들은 가능한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하였고, 또 가능한 한 그 남자와 대면하지 않으려고 하였던 것 같았습니다.
K 검사도 그 남자가 고소한 위증 사건을 제때 처리하지 않고 최대한 미루다가 그 남자를 소환하였으나 그 얼마 전 비 오는 날에 그가 우산을 가지고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던 딸을 마중하기 위하여 진주버스터미널에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자 이를 빌미로 ‘고소인 소재불명을 이유로 기소중지’(최근에는 이런 경우 ‘참고인중지’ 결정을 하지만 당시에는 ‘참고인중지’ 제도가 만들어지기 전임) 처분을 하였습니다.
그 남자가 검사실을 점거한 이유
그로부터 몇 달 후 그가 퇴원 후 K 검사를 찾아와 사건의 처리 결과를 문의한 결과 기소중지 처분된 사실을 알게 되자 자신이 병원에 입원 중이라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연락이 가능하였음에도 고소인 소재불명을 이유로 기소중지 결정을 하였다면서 격렬하게 항의하며 검사실 참여계장 책상 위에 놓여있던 송곳(수사기록을 끈으로 묶기 위해 구멍을 뚫는 데 사용)으로 자해할 것 같은 태도를 취하며 위협하자 K 검사와 참여계장, 여직원은 도망을 가버리고 혼자 검사실에 남은 그 남자는 검사실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고 자신의 속내의를 벗어 매직펜으로 K 검사를 비난하는 글(‘악덕 기업주 감싸는 K 검사는 반성하라’는 취지)을 써 검사실 창문에 내걸고 이틀 동안이나 점거 농성을 한 사건이 벌어졌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검찰의 정기 인사가 발표된 직후였고, K 검사도 다른 검찰청으로 발령이 난 상황이었기 때문에 K 검사가 사과를 하고 시간을 잘 처리하겠다고 약속을 하자 그 남자는 겨우 점거 농성을 풀고 귀가하였는데 필자는 K 검사의 승계 검사로서 K 검사가 사용하던 검사실과 처리하던 사건 등을 그대로 승계하여 사용하게 되었음에도 모두가 ‘쉬 쉬’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참 동안 그런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 남자가 다녀간 후 즉시 기소중지되었던 사건을 재기하여 기록을 꼼꼼히 검토하였고 피고소인과 참고인 등 조사 대상자의 숫자와 수사할 분량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일과시간이 끝난 후 검사실이 조용할 때 그를 상대로 충분히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필요한 경우에는 피고소인들과 참고인들과의 대질조사도 실시하였으며, 타 청 관할에 있는 조사 대상자들이 소환에 응하지 않을 때는 조사할 사항을 적어 타청에 조사를 의뢰하면서 그러한 사정을 사전에 충분히 설명을 해 주는 등 소통에 만전을 기하였더니 그가 굉장히 고맙게 생각을 하면서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든지 결과에 승복을 하겠다는 말도 하였습니다.
들어주면 달라진다
그는 딸이 비를 맞을까봐 우산을 가지고 터미널에 마중을 나갈 정도로 딸에 대한 사랑이 충만한 평범한 가장이었음에도 그동안 고소, 고발, 진정을 남발하였다는 이유로 기피 대상이 되었으나 그의 말로는 한 번도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이든 검찰이든 수사기관을 철저하게 불신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필자가 거의 3-4개월에 걸쳐 밤늦게까지 그 남자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고 그가 요구하는 참고인들을 소환조사한 결과 그 남자에 대한 부당해고 소송에서 증인으로 나왔던 피고소인들의 위증이 인정된다고 판단되어 모두 불구속 기소를 하였는데 그로부터 약 열흘쯤 지난 후 부산지방법원에서 그 남자에 대한 부당해고를 인정하는 1심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 사건은 저 자신이 저의 판단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그로부터 한참 지나 그 남자로부터 위증 사건이 유죄 선고되어 감사하다는 편지를 받고 검사로서의 보람과 자부심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법무법인 대륙아주 문규상 변호사는 1978년 서울법대 졸업, 1987년 검사로 임용되어 ‘특수통’으로서, 변인호 주가 조작 및 대형 사기 사건, 고위 공직자 상대 절도범 김강용 사건, 부산 다대/만덕 사건, 강호순 연쇄 살인 사건 등을 맡아 성과를 냈고, 2003년의 대선 자금 수사에서도 역할을 했다. 2009-2014년 대우조선해양의 기업윤리경영실장(부사장)을 역임하며 민간 부패에 대한 경험도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