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갓집에 가면 할머니는 새벽부터 분주했다. 꼬부라진 허리는 유모차에 의지해 꼿꼿이 세우고, 앙상한 다리는 위태롭지만 바쁘게 움직였다. 그렇게 발품 팔아 상에 오르는 메뉴는 매번 같았다. 하얀 쌀밥에 빨간 소고깃국. 여기에 노릇하게 구운 갈치도 일관성 있는 찬이다. 특히 뻘건 기름 둥둥 뜬 할머니 표 소고깃국은 삼가(경남 합천군) 한우가 좋아서인지, 할머니 손맛인지 도통 울 엄마도 흉내를 못 낸다. 우리 남매는 그저 외갓집만 가면 이때다 싶어 작심하고 국을 퍼먹었다. “더 무라. 한솥 끼리놨다. 마이 무라.”
지난 토요일 외조모가 돌아가셨다. 향년 94세. 통상적으로 아흔이면 영화를 누렸다고 할 나이. 나 역시 연세가 연세인지라 임종 소식에도 꽤 덤덤했다. 눈물이 흐르긴 했지만, 바싹 마른 할머니 육신이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 인간 생사에 대한 연민이 컸지, 할머니 인생을 돌아볼 정도로 깊게 생각해선 아니었다. 이희수, 우리 외조모를 할매 타이틀 떼고 한 사람으로서 바라본 건 생뚱맞게 식당에서 주문한 소고깃국을 마주하고서다. 서울 사는 유일한 손주인지라 다음날 출근 때문에 장지도 못 가고 홀로 서울행 버스표를 끊었다. 남는 시간 밥이나 먹자 싶어 국밥을 주문했다. 생각 없이 시킨 음식인데 ‘이제 할머니가 끓여주는 소고깃국은 영영 못 먹겠구나’ 생각이 스쳤다. 콧등이 시큰했다. 고생 참 많이 하셨다. 이른바 ‘한부모 여성 가장’으로서 말이다.
일제 강점기가 채 끝나기 전, 결혼 안 한 처녀들을 일본군이 데려간다는 얘기에 서둘러 혼사를 치렀다. 외조부는 착한 사람이지만 너무 효자였다. 혹독한 시집살이로부터 지켜줄 우산은 못 됐다. 그래도 외조부 생전에는 그럭저럭 형편은 괜찮았다. 사진사 마누라였다가 순식간에 ‘집안 가장’이 된 건 막내였던 울 엄마 13살, 외할머니 49살의 일이었다.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암실로 쓰던 채를 ‘점빵(슈퍼를 이르는 경상도 말)’으로 개조했다. 은하사진관의 영광을 뒤로하고 동네 점빵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생존은 치열했다. 농사와 가게 일을 같이 봐야 했다. 그렇게 ‘엄마’이자 ‘가장’으로서 오롯이 홀로 생계의 무게를 감당하며 자식들 키우고 다섯 남매 시집, 장가보냈다.
이제 자식들한테 신세 질 법도 하건만 완강히 시골에 계셨다. 홀로 오래 산 말로는 치매였다. 그래도 늘 밝아서 자식 손주들은 할머니 뵈러 가면 웃음꽃이 피었다. 장수하셨다 해도 가장으로서 고생한 세월, 치매로 고생한 시간이 엄마는 못내 마음 아픈 모양이다. “너거 할머니 참 불쌍타. 외할아버지 돌아가시고 혼자 고생 마이했다 아이가. 인제 진짜 가는구나 엄마” 회한 섞인 엄마의 눈물은 공감에서 왔을 것이다. 내가 대학 입학하던 해 아빠가 돌아가셨고, 엄마는 줄곧 생계의 중심이 됐다. 그래도 우리 남매 대학 공부 다 시키셨다. 엄마 역시 가장으로서 고군분투했기에, 홀로 생계를 꾸리며 자식 키운 외조모의 어려움과 그 무게를 깨달았을 터. 이제 할머니를 보낸 자손들의 몫은 하나다. 감사하며, 늘 기억할 것.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인 내 몫은 가장으로서 고생한 내 어머니께 늘 감사하고 표현하며 살아갈 것.
한부모 가정이 겪는 어려움은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모자 가정, 부자 가정, 미혼모 가정 등으로 구성된 한부모 가정은 사회적 편견, 자녀 양육, 경제적 어려움 등을 겪는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8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유(有)자녀 가족 10가구 중 1가구가 한부모가족이다. 특히 모자(어머니가 실질적인 세대주)로 구성된 가구는 51.6%로 가장 많지만, 소득은 평균 180만 원으로 가장 낮았다. 한부모 여성 가장의 어려움이 엿보이는 수치다. 여성을 주 고객으로 하는 뷰티 기업 아모레퍼시픽·애경산업·LG생활건강은 한부모 여성 가장의 경제적·심리적 자립을 돕기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생활고를 겪는 한부모 가정은 모자 가정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모자·부자 등을 모두 포함한 한부모가족의 가구소득은 전체 가구 평균의 절반을 겨우 넘는 56.6% 수준에 불과하다. 각계각층에서 지원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특히 생활과 밀접한 다양한 기업들이 지원에 나서면 사회적 관심 제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모든 한부모 가장들과 한부모가족들의 삶이 나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