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그을린 방화복이 패션 가방 되기까지

CJ ENM ‘펀샵’·사회적 기업 ‘119REO’, ‘공상 불승인’ 소방관 돕기

  •  

cnbnews 제671호 김금영⁄ 2020.02.26 16:10:22

CJ ENM 오쇼핑 부문의 이색 상품 전문 쇼핑몰 ‘펀샵’과 사회적 기업 ‘119REO(레오)’가 공상 불승인 소방관 기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사진 = 광주광역시 소방안전본부

‘레스큐 이치 아더(Rescue Each Other)’. 서로가 서로를 구한다는 신념 아래 CJ ENM 오쇼핑 부문의 이색 상품 전문 쇼핑몰 ‘펀샵’과 사회적 기업 ‘119REO(레오)’가 만나 기부 프로젝트를 진행해 눈길을 끈다.

이들이 주목한 대상은 공상 불승인 소방관(업무 중 상해를 입었지만 국가 보상 승인을 받지 못한 소방관)이다. 소방관이 사용했던 방화복을 119REO가 업사이클링(Up-cycling, 재활용품에 디자인 또는 활용도를 더해 그 가치를 높인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해 패션 소품을 만들고, 이를 펀샵 온라인몰에서 판매한 뒤 수익금의 50%를 소방관에게 기부하는 형태다.

 

‘레스큐 이치 아더(Rescue Each Other)’ 프로젝트 포스터. 사진 = CJ ENM

이번 프로젝트는 펀샵 측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올해 20주년을 맞이한 펀샵은 설립 초기엔 국내에 많이 소개되지 않았던 전자제품 및 피규어, 아이디어 상품들을 소개하는 편집샵의 성격이 강했다. 최근엔 3040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한 각종 덕심(덕후+心) 자극 상품을 발굴·판매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시장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제품들을 소개하며 점차적으로 범주를 확장해 왔다. 이번엔 그 범주가 119REO와의 프로젝트까지 닿았다.

 

펀샵 측은 “다양한 언론 기사를 통해 일반 시민이 잘 모르고 있는 소방 업무의 고충에 관심을 가졌고, 자세한 사례를 찾아보다가 소방관의 권리 보장에 힘써 온 사회적 기업 119REO를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이후 미팅을 제안했고, 기부 프로젝트의 취지에 함께 뜻을 모았다”며 “펀샵 회원에게도 좋은 취지의 제품을 소개하고, 더 나아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소방관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과 이들에 대한 감사함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고 프로젝트의 시작 과정을 밝혔다.

 

소방관이 안전을 위해 소지하고 다니는 로프 연결용 금속 고리 카리비너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진 카라비너 팔찌. 사진 = 119REO

각각의 장점과 특징을 살려 119REO는 제품 기획, 펀샵은 프로젝트의 홍보 및 판매 라인을 제공하는 데 주력했다. 프로젝트 대표 제품인 ‘히어로백’은 소방관이 실제로 착용했던 방화복을 재활용해 만든 가방이다. 고온에서 버틸 수 있는 신소재 섬유인 아르미드(방화복 원단)로 구성됐고, 여기에 일상생활에서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디자인에도 신경 썼다. ‘히어로 메신저백’은 8개의 주머니로 수납공간을 넉넉하게 마련했고, 배 모양 같이 생긴 ‘히어로 보트백’ 슬링백(어깨 끈이 달린 가방)도 선보이고 있다.

 

이 밖에 소방관이 안전을 위해 소지하고 다니는 로프 연결용 금속 고리 ‘카리비너’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카라비너 팔찌’, 광주소방본부와 협업해 제작한 ‘2020 플래너 패키지’도 마련했다. 다이어리와 탁상 달력으로 구성된 패키지 곳곳에는 소방관들의 진솔한 직업관이 담긴 멘트와 실제 소방 훈련 사진들이 담겼다.

 

광주소방본부와 협업해 제작한 ‘2020 플래너 패키지’. 사진 = 119REO

펀샵 측은 “이번 ‘서로가 서로를 구하다’ 기부 프로젝트는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의 생명을 지켜줬던 방화복이 업사이클링 상품으로 재탄생해 소방관을 다시 지켜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좋은 취지의 프로젝트에 119REO와 펀샵의 개성적인 색깔이 만나 이색적인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었다”며 “119REO와 협업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소방관의 권리 보장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색다른 방식의 기부 아이디어나 방식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방관의 처우 개선이 아닌 권리 보장”
119REO 이승우 대표 인터뷰

 

119REO 이승우 대표. 사진 = 김금영 기자

젊은 창업자들의 스타트업이 모인 서울 성동구의 한 공유 사무실. 좀 더 깊숙이 안쪽으로 들어가자 마네킹 위에 입힌 소방관의 방화복이 눈에 들어왔다. 방화복에 남아 있는 새까만 그을음이 치열했던 화재 현장을 짐작케 했다. 이곳은 건국대 건축학과에 재학 중인 이승우 대표를 중심으로 젊은 디자이너들이 함께 이끌고 가고 있는 119REO 사무 공간이다.

119REO는 소방관의 방화복을 업사이클링한 패션 소품을 판매해 얻은 수익의 일부를 소방관에게 기부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2018년 8월 설립 이후 3년 동안 영업 이익의 절반 3400만 원을 암 투병 소방관을 위해 기부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오프라인 강연, ‘2018, 5월 현장의 기억’ 전시 등 소방관의 권익 향상에 힘을 기울여 왔다. 이승우 대표는 “소방관의 처우 개선이 아닌 권리 보장”에 목소리를 높이며 119REO의 시작부터 올해 펀샵과의 기부 프로젝트까지의 여정을 들려줬다.

 

‘2020 플래너 패키지’에 삽입된 소방관 이미지. 사진 = 광주광역시 소방안전본부

-119REO라는 이름이 특별해 보인다.

“서로가 서로를 구한다는 뜻의 ‘레스큐 이치 아더(Rescue Each Other)’에서 비롯됐다. 119REO의 시작은 대학교 동아리 활동 때부터였다. 여러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고 행동에 옮기는 동아리 ‘인액터스’를 2016년 만들었다. 2018년 8월 정식으로 119REO를 창업했고 현재 디자이너들과 팀을 구성하고 있다.”

 

119REO는 소방관의 방화복을 업사이클링한 패션 소품을 판매해 얻은 수익의 일부를 소방관에게 기부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사진 = 광주광역시 소방안전본부

-수많은 직업군 중 소방관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인액터스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을 당시 특히 소방관에 대한 이슈가 언론을 통해 한창 불거졌다. 소방 장비 부족에 관한 이슈가 이야기의 중심을 이뤘다. ‘일상 속 영웅이라고 여겨진 소방관에게 정말 장비가 없을까?’ ‘없다면 왜 없을까?’가 궁금해져 직접 소방서를 찾아가 100명이 넘는 소방관과 인터뷰를 진행했고, 자료도 찾아봤다. 그때 소방관은 지방직 공무원이고, 지방 예산에 따라 장비 보급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 표면적으로 비춰진 문제뿐 아니라 소방관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 인력 문제 등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분들이 더 많다는 걸 깨달았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에만 접근해서는 해결 방안이 보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동아리가 실질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31살의 나이에 심장 혈관육종으로 세상을 떠난 고 김범석 소방관의 이야기를 들었다. 소방관이 암에 걸리면 당연히 사회에서 보장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실상은 본인이 직접 발병의 인과 관계를 의학적인 부분에서 밝히지 못하면 공무상 상해를 인정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소송이 진행 중이었다.

단지 고 김범석 소방관뿐 아니라 암 투병을 하는 모든 소방관이 같은 처지였다. 당시 암 투병 소방관 150여 명 중 공상 인정 사례는 1~2건에 불과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부분뿐 아니라 우리가 잘 몰랐던 이런 부분들에 주목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암 투병 소방관에게 도움도 줄 수 있는 프로젝트가 의미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프로젝트가 현재의 119REO까지 이어졌다.”

 

올해 새롭게 출시한 ‘히어로 라인’의 메신저백. 소방관의 방화복을 재활용해 만들었다. 사진 = CJ ENM

-특히 방화복을 리사이클링해 제품을 만든 점이 주목받았다.

“살수차를 비롯해 구급차, 구조차, 사다리 등 수많은 소방 장비가 있다. 이 장비들은 불을 끄고 인명을 구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다. 이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소방관을 지켜주는 장비가 방화복이었다. 소방관을 돕기 위한 프로젝트인 만큼, 현장에서 소방관을 지켜주던 방화복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면 더욱 사람들에게 와 닿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 방화복은 3년 사용연한이 정해져 있어 연간 34톤 정도 버려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 방화복 모두 원사 직조의 차이는 조금 있지만 원천 소재로 아라미드 섬유 계열을 사용한다. 익숙한 소재를 업사이클링하면 추후 더 넓게 해외 시장을 바라봤을 때에도 경쟁력이 많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요즘 해외 수출도 조금씩 진행 중이다.”

 

‘히어로 라인’의 보트백. 방화복을 제작하고 남은 자투리 원단을 사용해 만들었다. 사진 = CJ ENM

-펀샵과 기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1월 펀샵 측이 먼저 협업을 제안했다. 기존 119REO의 주요 소비층은 일반 제품을 구매, 선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 의미, 가치까지 담은 제품에 관심이 많은 20~30대 여성 고객이었다. 전문적인 유통 채널을 지닌 펀샵과의 협업을 통해 가치 소비를 중심으로 하는 고객층뿐 아니라 기능 중심의 소비를 하는 고객층에게도 제품과 기부의 취지를 알릴 수 있었다. 보다 다양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자리가 앞으로도 마련되길 바란다.”

-이번 프로젝트의 대표 제품들을 소개한다면?

“119REO의 기존 가방들은 폐방화복을 수거한 뒤 업사이클 과정을 통해 만들었다. 올해부터는 방화복을 제작하고 남은 자투리 원단을 사용해 가방을 만드는 ‘히어로 라인’을 통해 메신저백, 보트백도 새롭게 추가했다. 펀샵과 미팅 중 이 사실을 공유했고,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히어로 라인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제품은 의미뿐 아니라 기능성과 디자인도 중요하다. 제품을 디자인할 때 방화복을 디자인 안에 어떻게 자연스럽게 녹일 수 있을지 팀원들과 같이 의논한다. 그 뒤 샘플을 만들어 직접 2주 정도 사용해보고 불편한 점을 수정한다. 가령 주머니를 어느 위치에 넣으면 좋을지, 수납공간을 더 마련하는 게 좋을지 등 세세한 부분까지 의견을 공유한다. 최근엔 가방 무게를 줄이면서 동시에 수납할 공간을 많이 확보하기 위한 디자인을 연구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광주소방본부와 협력해 달력 제작도 시작했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현장에 있는 소방관의 모습을 달력에 담아 그들의 직업 가치관을 함께 공유하길 바랐다.”

 

탁상 달력과 다이어리엔 다양한 현장에서 뛰고 있는 소방관의 모습을 담았다. 사진 = 서울특별시 강남소방서

-기부 프로젝트에 대한 현재까지의 반응은?

“‘소방관의 권리 보장에 동참할 수 있어 뿌듯하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특히 실제 현장에서 뛰고 있는 소방관 중 제품을 구매해서 쓰는 분들도 있었다. ‘소방관에 대한 인식 개선에 뜻을 모아줘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아리로 첫 시작의 발걸음을 내딛었을 때는 1년 혹은 길면 2년 안에 프로젝트가 끝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지만 현실을 몰랐던 안일한 생각이었다. 기부금은 전달했지만 1년이 지나도 현실적으로 많이 바뀐 부분이 없어 ‘괜히 옆에서 희망만 불어넣은 것이 아닐까?’라는 자책도 많이 했다. 그 와중 암 투병으로 세상을 떠났던 소방관의 유가족에게 ‘소방관 문제에 대해 이슈가 많지만, 실질적으로 더 깊게 들어가 암 투병 소방관에 관심을 가져주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정말 고맙다’는 연락을 받았다. 지난해 9월엔 고 김범석 소방관이 공무상 상해 소송에서 5년 만에 승소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그때 ‘다시 프로젝트를 이어가보자’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앞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과 프로젝트의 의미를 함께 나누고 싶다.”

 

소방관이 사용했던 방화복을 119REO가 업사이클링해 패션 소품을 만들고, 이를 펀샵 온라인몰에서 판매한 뒤 수익금의 50%를 소방관에게 기부한다. 사진 = 광주광역시 소방안전본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기대하는 성과는?

“더 나아가서는 제품 개발뿐 아니라 시스템적인 측면도 구축하고 싶다. 현재는 암 투병 소방관을 추후에 돕는 식으로 프로젝트가 전개되는데, 암 발생 이전부터 예방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방화복 청결 유지가 중요한데 현실적으로 아직 어려운 점이 많다. 체계적인 방화복 세탁 관리 시스템을 마련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수출해보고 싶다. 이밖에 119REO의 활동적인 특징을 살려 스포츠 브랜드와의 협업도 진행해보고 싶다. 지금은 가방 중심으로 제품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데, 특이한 옷이나 음식 등과 협업을 진행해 봐도 흥미로울 것 같다.

119REO는 ‘소방관 처우 개선’이 아닌 ‘소방관 권리 보장’이라는 표현을 쓴다. 처우 개선이라는 표현은 자칫하면 해당 직군의 좋지 않은 점을 부각시키는, 부정적인 측면으로 빠질 수 있는 오류가 있다. 소방관을 불쌍한 이미지로 만들어 감정팔이식 모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현장으로부터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기반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

관련태그
CNB  씨앤비  시앤비  CNB뉴스  씨앤비뉴스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