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1호 옥송이⁄ 2020.02.28 22:20:31
기발하다. 사무 공간, 세무·회계 컨설팅 지원부터 광고까지 빌려준다. 금융사들의 스타트업 지원 이야기다. 기저에는 ‘혁신 금융’을 강조하는 정부 정책이 깔려있지만, 각사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덧입히면서 색다른 원조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취지는 ‘신생 기업 어려움 해소’지만 기대도 있다.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벤처 기업들과의 업무 제휴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 이 업계의 스타트업 지원 방법론을 살펴본다.
신한금융 ‘기발한 광고’ 참여 기업, 매출 15%↑
신한금융그룹은 신생 기업에 광고시간을 양보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진행한 ‘기발한 광고 프로젝트’를 통해 스타트업 ‘마케팅 지원’을 펼친 것.
‘기발한 광고’의 정식명칭은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기회를 발견하는 광고’다. 벤처기업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알릴 수 있도록 이 회사 몫의 광고를 신생 사에 빌려준 프로젝트로, 조용병 회장이 직접 아이디어를 냈다. 약 한 달의 응모 기간 250여 개 이상의 광고물이 접수됐을 정도로 기업들의 지지를 받았다.
총 12개 사가 선정됐으며, 신한금융은 참여 기업의 홍보 효과를 높이기 위해 광고제작 전문가들을 투입하기도 했다. 각 사에 맞는 맞춤형 광고 카피 제작을 지원하고, 분석을 통해 적합한 광고 노출 매체를 선정했다. 이렇게 탄생한 광고들은 기발한 광고 홈페이지에서 공개했으며, 지난 12월부터 한 달간 SNS 및 주요 일간지를 통해 홍보했다.
그 결과 이 프로젝트는 화제성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1800만 회가 넘는 유튜브 조회 수를 기록했고, 기발한 광고 홈페이지에는 22만 명 넘는 방문객이 다녀갔다. 화제성은 참여 기업들의 실질적인 매출 상승으로 이어졌다.
한 참여 기업 관계자는 “기발한 광고 참여를 통해 고객들의 문의가 크게 증가하는 등 약 15%의 매출성장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 대표는 “애플리케이션 다운로드 수가 급격히 증가해 플레이스토어에서 인기 급상승 App 순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신한 측은 “이로써 창업벤처기업 발굴을 위한 혁신기업 지원 디지털 플랫폼 ‘이노톡(INNO TALK)’을 시작으로 국내 대표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 ‘신한퓨처스랩’, 스타트업의 마케팅을 도와주는 ‘기발한 광고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그룹의 ‘스타트업 지원 종합 플랫폼’을 완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우리금융·하나은행, 스타트업 프로그램 全 관계사로 확대
우리금융그룹은 ‘공룡 기업’ 육성을 꿈꾼다. 이 회사의 스타트업 협력 프로그램 ‘디노랩(Dinno Lab)’은 신생 기업이 공룡(Dinosaur)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디지털 혁신(Digital Innovation)의 ‘요람’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디노랩은 기존 운영하던 ‘위비핀테크랩’과 ‘디벨로퍼랩’에 지난해 10월 출범한 ‘디노랩 베트남’까지 더해 삼위일체를 이뤘다. 해당 프로그램에 최종 선발된 기업은 사무공간, 특허·세무·회계 등의 컨설팅, 투자유치 및 사업화뿐만 아니라 하노이 현지에 있는 ‘디노랩 베트남’을 통해 실질적인 베트남 진출 기회를 얻게 된다.
해당 프로그램은 지난해까지 누적 매출 247억 원, 업무협약 115건 체결, 투자유치 95억 원 등의 성과를 냈으며, 우리금융은 기존 우리은행에서 운영됐던 디노랩을 그룹 공동사업으로 확대·개편해 전 그룹사와 스타트업 간의 협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KEB하나은행은 지난 2015년부터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1Q Agile Lab’을 운영해 왔다. 설립 이후 올해 9기까지 총 76개 신생 기업을 발굴하고 멘토링을 지원했다.
선정된 기업에는 개별 사무공간이 제공되며, 하나금융 전 관계사 내 현업 부서들과의 사업화 협업, 전문가 초청 경영·세무 컨설팅, 직·간접투자, 글로벌 진출 기회가 제공된다.
지성규 KEB하나은행장은 “1Q Agile Lab을 통해 많은 스타트업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면서 하나은행도 함께 발전해왔다”며 “상생 기반의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과 생산적 금융 지원을 위한 KEB하나은행의 노력이 금융 및 산업계 전반에 널리 확산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정부 ‘혁신금융’ 기조 가운데 은행-스타트업 ‘기술 제휴’ 맞아떨어져
금융사들이 두 팔 걷고 스타트업 원조에 나선 배경은 정부의 ‘혁신금융’에 있다. 금융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해당 정책에 금융사들이 발맞춰 지원하는 식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혁신·신생 기업과의 제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들을 지원함으로써 금융사들은 그들의 기술적인 도움을 받아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실제로 KB금융은 지난 2017년 ‘KB스타터스’(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로 선정한 ‘플라이하이’와 제휴해 기술적인 개선 효과를 얻었다. 인증절차를 간편하게 바꿔 번거로운 작업을 줄이고 업무 효율을 높였다. 또 2018년부터 지원해 온 ‘애자일소다’는 머신러닝 기반의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KB국민카드, KB생명보험, KB손해보험, KB국민은행에 데이터분석 솔루션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금융사의 스타트업 지원은 장기전이 될 것”이라며 “정부 의지도 작용하고 있지만, 금융사 역시 벤처기업과의 기술 제휴를 통해 동반성장, 또 나아가 새로운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어 윈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