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세계적인 확산 추세가 한풀 꺾인 시점에서 방역 모범 국가인 한국의 자동차 산업이 주목받고 있다. 대부분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그동안 중단했던 생산 라인을 다시 가동하기 시작하지만 안전은 물론 실적 회복을 장담할 수 없는 가운데, 한국은 뛰어난 방역 정책과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경제 회복 과정을 먼저 이뤄나갈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1분기 성적은 한마디로 참담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1분기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은 1120만 50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27.5% 급감한 것으로 집계된다. 또 LCM오토모티브에 따르면 1분기 유럽의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7% 감소한 270만 대에 그쳤다.
업체별로 발표한 분기 실적도 마찬가지다. BMW는 1분기 자동차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20.6% 줄어들었으며 앞으로 수요가 더 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고, 메르세데스-벤츠도 판매량이 14.9% 감소했다고 밝혔다.
BMW 판매 –20% …VW 영업이익 -81%
판매량 감소율이 20% 후반대를 기록하면서, 영업이익 감소율은 7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모회사 다임러AG의 1분기 잠정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68.9% 떨어진 7억 1900만 유로에 그쳤다. 폭스바겐의 분기 영업이익도 9억 유로에 불과했고, 이는 81% 감소한 액수였다. 또 포드 사는 1분기 20억 달러의 적자를 예상했는데, 지난해 1분기에는 11억 달러 흑자였던 것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급전직하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실적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신차 수요 급감 및 공장 생산 중단 탓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감염병 확산 및 확산 우려로 인해 소비 심리가 위축됨과 동시에 생산 라인이 멈추고 영업조직들도 문을 닫았다. 이어 각종 경제지표들이 일제히 하향세를 나타냈는데, 사실상 이러한 여파는 1분기 실적에는 아직 모두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LCM오토모티브는 앞으로 몇 개월 동안 더 많은 판매 감소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그런데 사실 자동차 수요가 마냥 하향곡선만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현재 코로나19의 가장 큰 피해국인 미국에서 수 주 동안 내리막을 유지하던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 곡선이 4월 중순부터는 평탄해진 것으로 나타난다,
자동차 수요는 회복세...생산 맞춰야
27일(현지 시각) 미국 NBC뉴스에 따르면 J.D. 파워는 이달 초 미국 시장의 월간 자동차 매출이 80% 급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으나, 중순에는 그 수치를 45% 정도로 다소 누그러뜨렸다. 이는 소매 시장이 회복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신호로, J.D. 파워는 자동차 업계가 부활하는 수요에 맞춰 생산을 재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J.D. 파워는 이 같은 수요 예측 변화가 일부 자동차 업체의 공격적인 프로모션이 효과를 거두고 있으며, 이러한 프로모션과 그에 따른 소비 활성화의 패턴이 당분간 반복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J.D. 파워에 따르면 최근 미국의 일부 자동차 업체는 대형 픽업 트럭 구매자에게 대당 7천 달러가 넘는 혜택을 제공하거나, 84개월 무이자 할부 등의 구매 프로그램을 제시했는데, 최근 이러한 방식의 구매자가 전체의 4분의 1에 달했고,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는 그동안 많은 완성차 업체들의 생산 라인이 가동을 멈춘 상태에서 오래된 재고를 처리하기 위한 프로모션이었으며, 현재 이들 공장의 재가동 스케줄이 속속 발표되고 있으므로 신차 출고도 늘어날 것이고, 그에 따라 더 많은 판매 채널에서 재고 해결을 위해 더욱 공격적으로 구매 혜택을 제공할 것이라는 것.
한국, 수출 막혔지만 내수 안정적
그런데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은 이러한 분석에 맞는 결과를 이미 1분기에 기록했다. 1분기 현대·기아자동차는 외국 완성차 업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실적을 기록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글로벌 수요가 40% 이상 감소했지만 내수가 안정적으로 뒷받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3월 자동차 내수 판매는 17만 2956대로 전년 동월 대비 10.1% 증가했다. 코로나19 방역 모범 국가답게 소비심리 위축이 크지 않았고, 각 업체가 신형 아반떼, 신형 G80, XM3 등등 경쟁력 있는 신차를 잇달아 출시하는 동시에 다양한 프로모션을 시행했으며, 정부가 개별소비세를 크게 완화해주면서 시장을 더욱 따뜻하게 했다는 평가다.
특히 3월 수입차 판매량을 보면 국내 자동차 수요는 크게 걱정할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3월 수입차 신규등록 대수는 1만 8078대로 전년 동월 대비 12,3% 증가했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1분기 중국과 미국 등 코로나19의 피해가 컸던 시장을 중심으로 해외 판매량에서 피해가 컸다. 하지만 글로벌 판매량 감소율이 27.5%인 데 비해 한국차 브랜드의 글로벌 판매는 15.9%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다른 나라 업체들의 점유율이 크게 떨어지면서, 국산차 브랜드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전년 동기 대비 1.1%포인트 늘어난 8.4%를 기록했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침체의 영향은 2분기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수익성 하락은 거의 확실하고, 판매량 회복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글로벌 완성차들에 비해서 현대·기아차는 이미 좀 나은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5월 생산 재개 앞둔 업계 고민은...
수요 회복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고, 코로나19의 확산세도 주춤해지고 있다. 이에 각국의 자동차 공장들도 슬슬 재가동에 돌입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볼보는 4월 20일부터 스웨덴 토슬란다 공장의 생산을 재개했고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 공장은 5월 11일에 열 계획이다.
BMW는 지난 20일 엔진공장을 이미 열었고 5월 4일부터는 미국 공장을, 11일에는 유럽 내 최대 규모인 딩골핑 공장과 멕시코 공장을 연다. 딩골핑 공장은 1교대로 운영할 예정이다.
폭스바겐은 20일 독일 츠비카우와 슬로바키아 공장을, 27일부터는 러시아·스페인·포르투갈·미국 공장을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FCA는 이탈리아 세벨 공장을 4월 27일부터 가동했다. 토요타는 미국과 캐나다 공장을 5월 4일에 연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앨라배마 공장은 4월 27일, 폭스바겐 테네시 공장은 5월 3일에 가동한다.
현대·기아차는 유럽에선 가동을 시작했고 미국에선 5월 4일부터 생산을 재개한다. 기아차는 3교대에서 2교대로 줄여서 운영한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는 효율적 재고관리를 강조하고 있다.
해외 업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동 중단이 심각하지 않았던 국내 공장에 대해서는 4월 말부터 시작되는 연휴를 계기로 쉴 예정이다. 현대차는 4월 30일 석가탄신일부터 5월 5일 어린이날까지 대체 휴무까지 활용하며 국내 공장을 쉬기로 했고, 기아차는 광주공장과 소하리 공장을 4월 27일부터 5월 8일까지 휴업하고, 소하리 공장은 5월 22일부터 25일까지 추가로 휴업하기로 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5월 4일부터 8일까지 한 주간 휴업하기로 하여 연휴와 주말 포함 총 11일간 휴무에 들어간다.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쌍용자동차는 5월 4일부터 29일 사이에 최대 8일간 휴무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우선 고려사항 ‘안전’, 과연 확보 될까?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각국의 생산 라인을 재가동하면서 임직원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 예컨대 폭스바겐 그룹은 재가동되는 생산라인에서의 감염 위험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약 100가지의 조치를 취했으며 이는 업계의 표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폭스바겐은 3주 동안 단계적으로 공장 생산 재가동을 진행하며, 초기에는 단시간, 단기간 작업만을 예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장 내 직원 간 거리를 1.5m 이상 유지할 수 있도록 라인 전체의 배치를 바꾸었고, 거리 유지가 불가능한 작업 구간에서는 개인 보호 장구를 착용하게 했다. 또 두 직원이 마주 보는 위치에서 작업하는 구간에는 아크릴판 등의 투명 장벽을 설치했고, 구내 식당의 테이블 재배치, 화장실 변기 사이의 칸막이 추가 설치 등의 조치도 취했다고 설명했다.
폭스바겐은 산업안전, 보건, 산업공학 및 작업장설계 전문가들과 함께 각 개별 작업장을 검토, 분석한 뒤에 개선안을 마련했으며, 조치를 정한 뒤에도 관련된 모든 사람의 동의를 거친 후에만 코로나19에 대비된 작업장으로 간주했다고 덧붙였다.
NBC뉴스에 따르면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들이 생산 라인을 재가동 하면서 이와 비슷한 수준의 안전 조치를 준비했다. 5월 4일 북미 생산라인 재개를 준비하고 있는 토요타의 북미 생산본부장 크리스 레이놀즈는 이처럼 조치된 생산라인 표준을 ‘새로운 표준’(New Normal)이라 칭하며 “한동안은 (기존의) 표준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새로운 표준’에 익숙해져야만 한다”고 말했다.
NBC뉴스는 이처럼 생산직 노동자들이 복귀하더라도 이들 모두가 새로운 라인 배치 및 시스템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며, 특히, 자신이 안전하다고 안심할 수 있는지도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포드의 미시간 공장에서 지난달 다수의 동료들과 함께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가 회복된 한 생산직 노동자는 포드의 공장 재가동을 위한 안전 조치에 대해서도 “안전이 충분히 보장될 거라고 믿기 쉽지 않다”며 회의적으로 반응했고, 개인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일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완성차 산업은 부품 산업과 고도로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어서, 어떤 한 공장, 어떤 한 지역이 방역 문제로 폐쇄될 경우 다른 조립 생산 라인이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도 있다. 예컨대 얼마 전 남부 캘리포니아에서의 토네이도 피해로 보그워너의 공장이 가동 중단되었을 때 포드 및 FCA의 픽업트럭 조립공장에 부품 수급 문제가 발생한 일이 있다.
방역 유리한 한국, 고용 유지하며 경제 회복 앞설 것
회복되는 수요에 맞추기 위해 생산공장을 재개하고, 노동자에게 일을 돌려줘야 할 필요성이 크지만, 이처럼 방역과 관련한 이슈에 관해서는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들이 쉽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 방역 모범국가로 상대적으로 방역 문제가 크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자동차 생산 라인과는 사정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브랜딩인아시아 매거진은 최근의 칼럼에서 지금의 팬데믹 사태에서 글로벌 경제가 회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분야로 한국의 자동차 산업을 꼽았다.
특히, 생산 라인은 물론이고, 전반적인 경제 활동을 재개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방역과 보건안전 문제에 있어서 한국은 가장 앞서 있기 때문에 한국 경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동차 산업이 사업을 어떻게 유지하고, 고용을 유지하는지를 보고 따라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매체는 한국의 5대 완성차업체와 9개 부품업체의 대표들이 지난 21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정부 관계자와 만나 간담회를 열고, 현 상황에 대한 공유와 공동 대응 방안 모색에 나선 것을 언급했다. 특히, 정부가 자동차업계의 고정비 부담을 줄여주고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업체들은 그동안 고용을 최대한 유지하기로 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고용 유지 문제 등)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국가가 조만간 마주하게 될 공통된 난제들 속에서 한국이 성공적으로 일자리를 지켜낼 수 있다면, 글로벌 경제에 크나큰 교훈을 전해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