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의 품을 떠나 ‘젊은 피’로 무장한 롯데손해보험과 롯데카드의 대표들이 기업문화 개선에 나섰다. 직원들과 소통하고 조직 공간을 개선해 업무 효율성 제고에 박차를 가하려는 것이다. 이는 롯데가 주는 기존의 이미지에서 탈피하려는 시도다. 롯데 계열사로 남아있는 롯데홈쇼핑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새로운 시도에 나서고 있다. 회사 대표가 유튜브 생방송에 출연해 직원들과 쌍방향 소통에 나서고 있다. 새로운 롯데의 서막을 문화경제가 살펴봤다.
롯데 품 떠난 손보‧카드, ‘젊은 CEO’ 열풍
롯데손해보험은 지난해 호텔롯데에서 JKL파트너스로 대주주가 변경된 이후 임직원들과의 소통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 12월 선임된 롯데손보 최원진 대표는 1973년생으로 보험업계 최연소 CEO다.
최 대표는 업무 효율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 근무환경 개선, 회사 비전·전략 방향 등에 혁신 과제를 뒀다. 그 일환 중 하나가 ‘CEO LIVE 방송’이다. 실시간 댓글을 중심으로 회사의 비전과 전략방향, 조직문화 혁신 요청, 직장 선배로서 사회생활 팁 등의 질의에 답변하며 소통에 나섰다.
롯데그룹의 또 다른 금융계열사였던 롯데카드도 MBK파트너스로 대주주가 바뀌면서 젊은 CEO를 통해 개혁에 나서고 있다. 롯데카드는 올 3월 새 대표이사 사장에 조좌진 전 현대캐피탈아메리카 대표를 선임했다. 조좌진 대표는 1967년생으로 8개 카드사 CEO 가운데 가장 젊다.
조 대표는 최근 이전한 광화문 신사옥의 내부 설계와 공간배치, 인테리어 등을 직원들과 의견을 나누며 함께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테리어는 수평적 기업문화와 탄력적인 조직문화에 초점을 맞췄다. 업무, 회의, 수납 등 목적에 따라 효율적으로 변경 가능한 ‘모듈형 테이블’과 ‘스탠딩 테이블’ 등을 설치했으며, 팀장과 팀원과의 자리 구분도 없앴다.
복합문화공간인 워킹 라운지도 만들었다. 워킹 라운지에는 카페, 다락방, 디지털룸, 차고지, 오락실, 극장, 도서관 등이 형성돼 있다. 신사옥에는 자유롭게 통화할 수 있는 ‘폰룸’은 물론 ‘수면 캡슐’도 설치했다.
‘뉴롯데’로 향한다 … 고루한 이미지 탈피
롯데를 떠난 계열사들이 이 같은 개혁에 나선 이유는 ‘롯데’가 주는 고루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으로 보여진다. 그동안 롯데는 경제적 리스크와 경영권 분쟁으로 이미지가 하락돼 왔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때 국내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한 이후 중국이 경제 제재로 보복하면서 면세점뿐만 아니라 롯데그룹 전체가 타격을 받았다.
작년 하반기엔 일본이 한국에 수출 규제를 가하면서 국내에선 일본 상품을 불매하는 운동이 일었다. 일본 기업과 롯데가 합작으로 국내에서 사업을 해온 유니클로, 아사히맥주 등이 일본 불매운동의 표적이 됐다.
뿐만 아니라 롯데가 형제의 난은 국적 논쟁으로 이어져 그룹 이미지에 손상을 입었다. 신동빈 롯데 회장과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롯데의 해외계열사 지배구조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롯데 지배구조의 핵심기업인 광윤사 등이 일본기업이고, 이들이 한국 롯데를 지배하고 있으니 결국 롯데가 일본기업 아니냐는 국적 논란이 벌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이 일본기업, 고루한 회사라는 것이 국민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게 사실”이라며 “반(反)롯데 이미지를 개선하고 착한 기업이라는 공감대를 얻기 위한 이미지 쇄신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롯데홈쇼핑, 대표가 나서서 ‘라이브 진행’
실제로 롯데 계열사로 남아있는 롯데홈쇼핑은 신동빈 체제가 출범한 이후 올드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롯데홈쇼핑 이완신 대표는 자신의 이름을 딴 ‘완신 라이브(완전 신박한 라이브)’를 진행했다. 이 라이브는 회사의 전략방향부터 대표이사에 관한 궁금한 점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CEO와 직원들이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프로그램이다.
라이브 방송에선 ‘벨리곰, 롯데홈쇼핑 사장님을 만나다’라는 코너를 통해 롯데홈쇼핑 캐릭터 ‘벨리곰’이 직원들을 대변해 이 대표의 경영철학, 관심사 등을 질의하는 인터뷰가 진행됐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신입사원 시절 에피소드, 직장 선배로서 사회생활 팁 등을 전하기도 했다.
롯데홈쇼핑 박재홍 경영지원부문장은 “접근성이 높은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최고경영자와 직원 간 보다 더 편안하고 유연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언택트 조직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해 외부환경으로 소통이 위축되지 않도록 노력해 나갈 예정이다”고 말했다.
“변해야 한다” … 새로운 롯데의 과제
다만, 이 같은 변화가 보여주기식에 그칠지 아니면 지속될지에 대한 우려가 남는다. 지난 2014년부터 5년간 경영권 분쟁과 검찰 수사 등을 거치며 사업을 재정비할 시간마저 놓쳤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롯데홀딩스와 일본 롯데 계열사가 지분 99%를 보유하고 있는 롯데호텔의 상장이 코로나19 확산으로 미뤄지면서 타격을 크게 받았다. 올해 신동빈 회장이 신년사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각오로 변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그 맥락일 것이다.
게다가 ‘일본기업’이라는 꼬리표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한계로 남아있다.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직에 2월 복귀하면서 한·일 양쪽의 경영을 모두 책임지는 위치에 오르고, 지배구조 선진화 등을 추진하면서 어느 정도 일본에 귀속 됐다는 이미지는 벗어났다는 평가도 있지만, 소비자들은 아직도 ‘일본’ 롯데가 ‘한국’ 롯데를 지배하고 있다는 인식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는 분위기다.
신동빈 회장이 경영권 다툼에 나서면서 어눌하지만 또박또박 한국말을 하며 기자들 앞에 선 것이 지분율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일본어만 할 줄 아는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을 제치고 승패를 갈랐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롯데에 있어 ‘일본’이라는 단어는 예민하다.
하지만 이같은 부분은 그룹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기에 각 사 차원에서 ‘올드함’은 벗어날 수 있다고 해도 ‘일본색’은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 한계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회사 대표가 직원들과 소통에 나서고, 조직문화를 개선하려는 것이 ‘올드’한 이미지를 벗어나 새로운 롯데를 만들어가려고 하는 것은 맞을 것”이라며 “그렇다고 해서 롯데 계열사가 롯데를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브랜드의 무게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솔직히 칠성사이다나 롯데껌 등 지금 40대 이상의 향수를 자극할 수 있는 브랜드를 갖고 있는 것이 롯데다. 결국 브랜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젊어지고, 일본 관련 등 부정적인 이미지는 버리는 것이 롯데 계열사들의 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