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경제 = 이종영 전 경희대 음대 학장) 오페라라고 하면 그 안에 독백, 아리아, 앙상블(ensemble), 합창, 중창, 춤, 기악 음악, 오케스트라, 의상, 무대장면(scenary), 기계장치가 모두 어우러져야 한다. 그리스나 중세의 드라마에서도 이들 중 여러 가지가 노래로 이어진 적이 있었다. 음악은 춤, 합창, 독창(solo song), 중창, 기악 음악의 형태로 단적으로 분리되었거나 때로는 합쳐진 형태로 발전되어 왔기에 이들이 어떻게 오페라라는 장르의 탄생에 영향을 주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중세 수도원의 음악 드라마 들어보면
말로는 음악을 설명할 수 없다. 오래 전 쓰인 작품의 훌륭한 연주가 DVD나 유튜브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얼마 안 되기에 Hildegard of Bingen(1098~1179)의 ‘Ordo Virtutum(the play of Virtues)’를 들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수도원에서 연주된 음악 드라마이기에 중세 종교의식의 하나로 이루어진 음악을 체험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이 드라마는 서양 음악의 기초였던 그레고리 성가와 흡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가톨릭 교회가 “기악 음악은 세속(pagan)에 속한다”며 교회 안에서는 별로 허용을 안 했기에 서양 음악은 주로 성악 음악으로부터 발달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게다가 현대인들에 익숙한 대부분의 음악들은 미터가 있는 댄스 리듬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기에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랩 음악을 제외하고는)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는 생소할 수 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음악을 접할 때 가끔 음악이 언어보다 이해하기 쉽다고 착각할 수 있다. 음악의 직접성(immediacy: 언어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귀로 듣고 몸으로 느끼는 감각적인 요소 때문에 그럴 수 있다)로 인해 사실상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알파벳을 알게 되고 글을 익혔다고 책의 내용을 알 수 없듯이 음표는 알파벳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사실상 내가 아는 음악의 영역은 여러 가지 소양을 키운 사람 이외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독일어를 모르면서 독일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지만 음악은 그러한 의미에서는 접근이 비교적 쉽다. 또한 좋은 음악에 익숙해지는(familiar) 속도는 비교적 빠르게 일어날 수 있다.
위에 언급한 ‘Ordo Virtutum’ 역시 그 음악이 어렵다기보다는 우리가 평소 익숙해진 음악과 다르기 때문에 공허하다든가 단조롭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반주도 없고 규칙적인 박자도 없어 소절의 강약을 느낄 수 없기에 어떠한 구조로 썼는지 기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다른 선입견 없이 몇 번 듣다 보면 이런 종류의 음악이 아름답고 경이로움을 느끼리라.
음악이 말의 내용을 더 중요시하면서 이루어졌을 때는 우리가 아는 소절의 개념과는 다르게 이루어진다. 서양 음악의 기초를 이룬 그레고리 성가는 가사를 중요시하는 데 기초를 두고 음악을 접속한 형태였다. 그 점에 있어서 오페라의 레시타티브는 그레고리 성가와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다.
단지 오페라는 ‘Drama in Music’이니만큼 그 안에 훨씬 극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다. 가끔 바흐가 쓴 ‘마태 수난곡’을 바흐의 오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 안에 레시타티브, 아리아, 중창, 오케스트라, 합창, 극적인 줄거리 등 오페라가 가져야 할 거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의상이 화려하지 않고 장면(scenery)에 신경을 안 써도 되는 부분 말고는….
몬테베르디라는 이름
1610년 몬테베르디(Monteverdi)가 쓴 ‘Vespro Della Beata Vergine(성모마리아를 위한 저녁기도)’는 종교적인 작품이지만 그 당시 음악이 얼마나 발전되어 있느냐를 체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참고로 바로크 초기 가장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였던 몬테베르디가 처음으로 쓴 위대한 오페라가 1607년 작 ‘Orfeo’이다. 앞에 말한 ‘Vespro’는 몬테베르디의 방대한 지식을 총망라한 작품이다.
그는 바로크 기법만이 아니라 르네상스 기법도 전부 통달한 위대한 작곡가였기에 이 곡을 듣는 것은 놀라운 체험이 될 것이다. 그 안에 여러 명의 독창자, 오케스트라, 여러 개의 합창단, 새로운 바로크 스타일 monody뿐 아니라, 레시타티브와 거대한 르네상스 스타일의 antiphonal(주고 받는) 합창단들, 오케스트라, 소규모의 앙상블까지 모든 음악을 망라했다. 그는 ‘Orfeo’ 오페라에서 쓴 서두의 ‘fanfare toccata’를 이 곡에서도 사용하였다.
난 왜 영국의 지휘자 존 가디너(John Eliot Gardiner)가 자신의 합창단 이름을 몬테베르디 합창단이라고 지었는지 이해한다. 니콜라우스 아농쿠르(Nicolaus Harnoncourt) 역시 취리히 오페라 하우스(Zurich Opera House)의 앙상블 이름을 ‘Monteverdi Ensemble’이라고 지었다. 그만큼 옛 음악을 아는 음악가들에게 몬테베르디는 그냥 가장 위대한 작곡가이다.
두 개의 시대를 넘나들며 양 시대의 작곡을 가장 훌륭하게 쓴 작곡가. 세속적인 오페라든 거대한 종교적 작품이든, 모든 장르를 넘나들던 작곡가. 필자가 많은 설명을 하기 전에 이 작품을 들어보기를 권하는 이유는 듣는 체험한 후에 이 글을 읽는 것이 음악을 이해하는 데 훨씬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음악을 들어보면 너무 다른 형태의 음악 스타일에 놀랄 것이다. 마치 우리 기와집과 밀라노의 성당을 나란히 놓으면 느낄 수 있듯.
서양 음악에서 그레고리 성가로부터 몬테베르디의 ‘Vespro’가 나올 때까지의 역사는 여러 실험과 교류와 변천의 역사였다. 독자들이 많은 음악 용어는 모르고 지나가도 되지만 Monophony(단성 음악), Polyphony(다성 음악), counterpoint(대위법), Monody(17세기 초에 많이 쓰여진, 류트나 기타, 합시코드로 반주하며, 장식음을 많이 사용하고 슬픔을 노래하는 등 감정의 격분이 많이 들어간 declamatory한 노래) 등의 음악 용어는 알아야 한다.
Leonin, Perotin school의 리듬에 대한 실험, 그레고리 성가에서 발달한 melismatic한 노래(한 모음에 여러 장식을 가지고 길게 뻗어 나간 노래), 네덜란드로부터 발달한 Fugue 같은 대위법적 음악, 5도 4도의 organum, 삼화음의 형성 등을 거쳐 건축적으로 위로 쌓아가면서 뻗어간 거대한 다성 음악의 발달이 서양 음악을 지금의 고유한 위치로 이끌어 왔다.
당시 교회 안에서는 주로 라틴어를 사용했다. 교회에서 천대받아 밖으로 나온 Trouvadour(음유시인)들은 기악 음악, 댄스, 민속 음악, 세속적인 내용을 담은 음악들을 발전시켜갔다.
여러 요소들이 피렌체에서 만나 오페라로
르네상스 시대로 오면서 그리스 문학에 대한 관심, 오랫동안 세속적으로 여겨졌던 인본주의적 사상, 그리스어에 대한 관심들이 합쳐지면서 바로크 초기 피렌체의 학자와 귀족들 사이에서 오페라라는 장르를 탄생시켰다.
당시의 귀족들은 오페라 리브레토도 쓰고 작곡도 할 수 있는 아마추어들이었다(몬테베르디의 오페라에 리브레토를 쓴 Alessandro Striggio처럼). 음악을 아는 것을 귀족 교양의 필수로 생각했던 시기, 귀족들이 자신의 궁전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 부와 계급의 상징이었고, 음악가-시인은 귀족 집안의 하인으로 고용됐다.
1577년과 1582년 사이 피렌체의 지오반니 데 바르디(Giovanni de Bardi) 백작의 집에서 모인 당시의 유명한 음악가, 시인, 지식인들은 어떻게 그리스 드라마를 재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토론과 연구를 해 나갔다. 그 멤버 중에는 Giulo Caccni, Vincenzo Galilei(과학자 갈릴레오의 아버지) 같은 사람이 있었다. Girolamo Mei처럼 고대 그리스어에 능통한 학자도 있었고 Ottavio Rinuccini(Peri의 ‘Dafne’에 리브레토를 쓴 시인), Alessandro Striggio도 이 그룹에 참여했다.
그 당시 그들은 그리스 시대의 드라마는 노래로 이루어졌지만 말(speech)과 노래(song)의 중간이었을 거라고 추측했다. 20세기에 아르놀트 쉔베르크(Arnold Schoenberg)가 쓴 ‘Pierrot Lunaire’에서 사용한 ‘슈프레히슈티메(sprechstimme: 말소리)’ 같은 소리를 상상했던 것 같다.
이것이 ’Stile recitativo‘를 탄생시킨다. 즉 고도의 다성 음악의 발달로 말의 내용을 알아듣기 어렵게 만든 음악에 대한 반발로 단순한 악기의 반주에 아리아와 레시파티브의 음악(앞에 언급한 Monody)을 탄생시킨다. 그렇기에 드라마의 중간에 말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전체가 노래하는 장르로 바뀌는 것이 오페라의 시작이다.
16세기에 많이 쓰였던 intermedio(드라마의 막과 막 사이 음악이나 춤을 넣는 것)는 오페라를 탄생시키는 데 큰 영향을 준다. 유명한 음악 역사학자 Donald Grout에 의하면 이것은 첫째, 음악가와 시인들의 사고 안에 음악과 드라마가 같이 간다는 생각을 지속하게 해주었고 둘째, 프랑스 dramatic ballet에서 보는 외부적인 요소들, 멋진 scenery, 무대 효과, 춤이 드라마와 같이 간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렇기에 이런 것들을 지닌 드라마가 오페라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카니발(carnival) 시즌 마지막에 여는 가면무도회에서의 이태리 masquerade는 발레의 전신이었다. 이것이 프랑스나 영국으로 전해지며 궁중 안에서 화려한 발레 형식이 발전되고 거기에 걸맞은 화려한 음악들도 탄생한다. 권력이 교회에서 왕이나 귀족, 돈 많은 부르주아(bourgeois)로 이동하면서 흥겹고, 세속적이며, 좀 더 쉽고,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예술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되면서 오페라 같은 종합 예술이 탄생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태리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복잡하거나 불분명함은 좋아하지 않는 경향, 그리고 멜로디에 대한 깊은 감정을 지녀왔다. 또 Florentine Camerata(지오반니 데 바르디 백작의 집에 모였던 인사들)가 믿었듯, 그리스 음악은 말과 음악의 완전한 혼합이고, 말의 억양을 따라 Declamatory한 레시타티브를 사용한 monody의 단순해진 음악, 레시타티브와 아리아가 오페라를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다.
위에 나온 다성음악의 발달을 살펴보기 위해 죠반니 팔레스트리나(Giovanni Palestrina) 같은 르네상스 작곡가를 들어보는 것이 좋다. 그의 ‘Misere mei’, ‘Deus’ 같은 곡은 14살의 모차르트가 바티칸을 방문했을 때 바티칸 라이브러리가 악보를 밖으로 내보이는 것을 금지했지만 이 음악에 감동한 모차르트가 그대로 기억해 악보로 옮겨 놓았기에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외에 레오나르도 빈치(Leonardo Vinci)의 라 파르테노페(La Partenope)에서 여러 번 나오는 intermezzi를 감상하면 오페라에서 intermedio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아는 데 도움이 된다.(다음 호에 계속)
참고문헌: Donald Grout 저 ‘A Short History of Opera’
참고 음악들: * Ordo Virtutum, Hildegard Von Bingen, opus art, BBC
* Monteverdi 작 ‘Vespro Della Beata Vergine’, Archiv John Eliot Gardiner
* Leonardo Vinci 작 ‘La Partenope’
* Dynamic Dancing ‘Power of Dance’, R M associates Kultur
이종영 전 경희대 음대 학장 첼리스트로서 이화여고 2학년 때 제1회 동아일보 콩쿠르에 1등을 했고, 서울대 음대를 거쳐 맨해튼 음대 학사, 석사를 마쳤다. Artist international 콩쿠르 입상, 뉴욕 카네기 홀 연주, 아메리칸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 등으로 활약했다. 예술의 전당 개관 및 10주년 기념 폐막 연주 등 수많은 연주 활동을 펼쳤으며 1996년 Beehouse Cello Ensemble을 창단하고 사단법인을 만들어 음악감독으로 여러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