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2호 이동근⁄ 2020.08.19 09:44:20
환자 치료에는 꼭 필요하지만 제약사가 안파는 의약품이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 공급을 장려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제약사들은 공급을 꺼려 한다. 최근 코로나19 치료에 필요한 의약품이 국가필수의약품으로 특례지정되면서 수입되기도 했고,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이 국가필수의약품을 공급하기로 하면서 제약업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 약품들의 공급은 쉽지 않다. 대부분 국내 기술로 만들기 어려운 의약품은 아니다.
현재 국가필수의약품은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38개를 추가하면서 총 441개가 지정돼 있다. 이 중 코로나19 치료제는 4개(램데시비르, 로피나비르·리토나비르 복합제, 인터페론 베타1-b 주사제 등), 재난대응·응급의료용 46개, 응급해독제 31개, 결핵치료제 31개, 간염·기생충 등 감염병 치료제 99개, 백신 33개, 기초수액제 10개 등이다.
이같은 의약품은 보건의료 상 필수적이지만 시장 기능만으로는 안정 공급이 어려운 의약품으로 보건복지부장관과 식약처장이 관계기관과 협의해 지정한다.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되면 해외에서 긴급히 들여오거나 직접 국내 제약사에 위탁 제조를 요청하게 된다.
시장 기능만으로 안정 공급이 어려운 이유는 여러가지이지만 대부분은 경제적 문제다. 예를 들어 약가가 너무 비싼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는 의약품 제조사가 너무 비싼 가격을 요구할 경우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는 ‘비급여’ 방식으로 국내에 공급된다. 이 경우 약물이 많이 팔리지 않기 때문에 제약사들이 의약품 공급을 거절하거나 적은 양을 공급하는데 그친다. 또는 약가가 싸게 책정돼 이윤이 적어 의약품을 공급하는 제약사가 없는 경우다. 사실 후자가 가장 많다.
비슷한 제도로 퇴장방지의약품이 있는데, 이 제도는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에서 약가가 낮게 책정돼 의약품 공급이 원할하지 않은 경우, 국가가 최저 단가를 보장해 주는 제도다. 하지만 이 제도가 적용된 의약품도 단가가 낮기 때문에 상당수의 제약사들은 공급을 꺼려한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 연이은 국가필수의약품 공급
이같은 상황에서 최근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이 지난해 ‘미토마이신씨주’에 이어 올해는 ‘닥티노마이신주’ 공급을 결정, 눈길을 끌었다. 미토마이신씨는 안과 수술 등에 쓰이는 약물이고, 닥티노마이신은 윌름즈종양, 임신융모종양, 횡문근육종, 고환종양, 유잉육종 등에 사용 가능한 항암제다.
이 중 ‘닥티노마이신’은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이 1992년부터 생산해왔으나 채산성 등의 이유로 2015년 수출용으로 허가 조건을 전환하고 국내 공급을 중단했다. 이에 정부는 2015년 퇴장방지의약품, 지난해에는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지만, 낮은 단가로 인해 국내에서는 선뜻 생산에 나서는 제약사가 없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가 수입하는 해외 의약품에 의존해 왔다.
그러던 중 식약처가 비용 절감 및 국내 수급 안정화를 위해 국내 제약사에 닥티노마이신 재생산을 요청했고, 이를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이 받아들인 것이다. 식약처 양진영 차장은 이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지난 5월 15일, 한국유나이티드제약 세종시 공장을 찾아 감사를 표하고, 애로사항을 청취하기도 했다.
▲ 한국유나이티드제약 대외협력실 이강래 실장 미니 인터뷰
문화경제(이하 ‘문’) : 올해 ‘닥티노마이신주’ 공급이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의 요청에 따라 공급이 이뤄졌다고 들었다. 낮은 채산성에도 불구하고 생산을 결정한 이유는? |
저렴한 기초수액제. JW중외제약 등이 공급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사실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됐다고 해도 공급 제약사들 입장에서는 큰 이득이 없다. 아니 오히려 손해를 보기도 한다”며 “이들 의약품은 대개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공급이 안되는 것인데, 이는 단가를 정부(건보공단)에서 책정하고, 강제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대표적인 문제로 ‘기초수액제’를 지적했다. 기초수액제는 소위 ‘링거’라고 불리는 약물로 수분 및 전해질 보급용으로 사용되며 다른 의약품의 사용에도 필요하다. 하지만 막대한 설비투자와 물류시스템이 필요한 반면, 약가가 너무 저렴하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제약사들이 공급을 꺼린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수액제를 가장 많이 공급하는 JW중외제약 측에 따르면, 가장 기초적인 수액제도 지하수를 끌어 올려 최종 제품으로 만들어질 때 까지 무려 13단계를 거치지만, 단가는 약 1000원대에 불과하다. 부피가 커 다른 의약품과 달리 운송비 부담도 큰 편이다. 11t 트럭에 수액을 꽉 채워 공급할 때 제품 금액은 800만원(비아그라 100㎎를 동일한 공간에 채우면 약 350억 원)에 불과하다.
다행히 JW중외제약(JW생명과학)과 HK이노엔(구 CJ헬스케어), 대한약품이 국내 수액제의 약 90%를 공급하고 있어 큰 문제는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2017년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공급이 충분한 편은 아니라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실제로 이들 공장은 가동률이 매회 100%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현재 공급량이 빠듯하다는 이야기다. 만일 대규모 전염병으로 인해 환자수가 크게 늘거나 전쟁 같은 비상상황이 발생한다면 매우 부족할 수 있다.
이 관계자는 “국가필수의약품을 공급하는 제약사들의 경우 이익 보다는 ‘제약주권’을 내세우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해 줄 필요가 있다”며 “정부에서 필수의약품 취급하는 업체에 대한 인증제도 등을 마련해 지원해 주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