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4호 이동근⁄ 2020.09.14 07:35:41
에픽게임즈가 구글, 애플과 벌이고 있는 수수료 싸움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처음에는 에픽게임즈가 ‘인앱결제’를 허용해 달라고 주장하면서 시작된 다툼이었지만, 반독점법 위반 논란까지 이어지고,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 거대기업들이 끼어들면서 전장이 확대되는 분위기다.
에픽, 구글·애플에 반기들다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은 이제 상상하기 어렵다. 컴퓨터는 없어도 스마트폰이 없이는 불안하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같은 스마트폰의 OS를 개발한 구글과 애플이 갖고 있는 스마트폰 시장의 지배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리고 이들이 시장을 지배하는 도구가 바로 앱마켓이다. 구글의 ‘구글플레이’, 애플의 ‘앱스토어’는 대부분의 애플리케이션(앱)이 유통되는 경로이며, 구글과 애플이 양 앱마켓를 통해 벌어들이는 금액은 상당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 양대 앱마켓이 벌어들이는 수수료가 너무 높다 보니 개발사들에게는 원망을 사고 있다. 애플은 매출의 30%를 요구하고 있고, 구글은 게임은 30%, 나머지 앱 및 미디어의 매출도 곧 30%로 올릴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인앱결제’에 대한 논란도 있다. 인앱결제란 앱 안에 별도의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뜻하는데, 애플은 여기에도 30%의 수수료를 요구하고 있고, 구글은 게임은 30%, 나머지는 그보다 적은 수수료를 요구한다.
이는 전세계 공통 사항인데, 특히 문제는 애플이다. 수수료도 높지만, 구글은 그나마 별도의 앱스토어 이용이 허용돼 있어 빠져나갈 구멍이라도 있지만, 애플은 자체 앱스토어 외의 앱마켓을 OS에서 허용하지 않고 있다. 참고로 구글플레이와 앱스토어의 시장 점유율은 80~90%에 달해 이들을 무시하면 게임 등 앱의 유통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업계의 큰 손인 에픽게임즈가 반기를 들었다. 에픽스토어는 게임을 개발하는 툴(Tool, 도구)인 ‘언리얼 엔진’을 개발한 곳이다. 언리얼 엔진은 ‘유니티’와 함께 게임 개발의 필수적인 툴로 꼽힌다. 자체 엔진을 보유한 게임 개발사는 많지 않다.
에픽게임즈가 구글·애플과 대립하게 된 이유는 직접 개발한 글로벌 히트 게임 ‘포트나이트’의 인앱결제를 두고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에픽 측이 게임 내 인앱결제 시스템을 구축하자 애플과 구글이 8월, 자신들의 앱스토에서 포트나이트를 퇴출했고, 이에 에픽게임즈가 반독점소송으로 양사를 고소한 것이 사태의 시작이다.
여기에 애플과 이미 한차례 갈등을 겪었던 음원스트리밍 업체 스포티파이, 코로나19 이후 사용자 지원 측면에서 가격 인하를 하려했다가 애플에게 거절당한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MS)가 에픽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판이 커졌다. 삼성전자 미국 트위터는 자사의 ‘갤럭시 스토어’를 홍보하면서 에픽을 지지했고, 앱마켓 내 구독서비스를 운영하는 미국 언론들도 에픽 편을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에픽을 지지하는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사태가 발전하면서 구글과 애플의 대립은 각기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실제 대립이 더 격한 곳은 애플 측인데, 애플은 아예 에픽게임즈의 개발자 계정을 정지시켰다. 이는 언리얼 엔진을 사용하는 다른 게임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이어서 국내 게임사들 중에서도 걱정하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다행히 언리얼엔진에 대한 금지조치는 미국 법원의 판결에 따라 현재는 취소됐다.
참고로 영향을 받을 뻔 한 국내 게임들은 넷마블 ‘리니지 2: 레볼루션·세븐나이츠2’, 카카오게임즈 ‘블레이드 for kakao 1·2’, 넥슨 ‘트라하·오버히트’, 위메이드 ‘이카루스M’ 등이 있다.
구글의 경우 조금 사정이 다르다. 구글의 모바일 OS인 안드로이드는 여러 앱스토어를 허용하고 있으므로 개발자들이 자사의 사이트에서 이용자들에게 응용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글플레이의 높은 지배력 때문에 이번 논란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구글 공문 한 장에 국내서도 수수료 논란 ‘점화’
에픽이 벌인 판과는 언뜻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마침 국내에서도 앱마켓 수수료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까지 끼어드는 모양새다. 구글이 최근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인터넷 대표 기업에 공문을 보내 구글플레이 내에서의 인앱 결제만을 허용하겠다고 밝히자 국내사들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은 9월 8일 구글 등 앱마켓 사업자의 갑질 방지를 위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특정 결제방식 강제, 부당한 앱 심사 지연 및 삭제, 타 앱 마켓 등록 방해 등 앱 마켓 사업자의 대표적인 갑질 사례로 지목된 행위를 일체 할 수 없도록 규정을 마련했다.
10월 중 열릴 예정인 국정감사에서도 다뤄질 예정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는 5G 서비스 품질 문제와 함께 구글의 통행세 인상 요구를 최대 현안으로 꼽고, 구글 책임자 등을 증인으로 세우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구글의 인앱결제 강제에 강도 높은 조사를 예고했다. 공정위 조성욱 위원장은 최근 “구글 등 스마트폰 모바일 운영체제(OS) 시장을 장악한 사업자가 새로운 OS 출현을 방해하거나 다른 앱 장터를 경쟁에서 배제하는 행위를 집중 조사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도 앱 수수료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이다.
구글·애플 논란에 반사이익? 물 들어올 때 노젖기
이같은 대립이 이어짐에 따라 뜻밖에 국내 앱스토어가 주목받고 있다. 바로 ‘원스토어’다. 원스토어는 SK 텔레콤의 자회사인 SK플래닛에서 운영하던 SKT 고객용 ESD인 ‘티스토어’에서 시작됐으나 2015년 KT의 ‘올레마켓’과 LG유플러스의 ‘U+ 스토어’가 합쳐졌고, 2016년 네이버의 ‘네이버 앱스토어’가 더해지면서 국내 최대의 앱스토어로 성장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스토어’와는 합병되지 않았으나 제휴 관계를 맺고 있어 한쪽에 등록한 앱은 다른 쪽에도 등록 가능한 등의 혜택이 있다.
하지만 후발주자인데다, 등록된 앱의 숫자가 적다는 등의 단점이 있어 원스토어의 점유율은 지난해까지 10% 초반을 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앱스토어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8년 하반기, 앱 수수료를 20%로 낮추면서 부터다. 그 이전에는 구글·애플과 같이 30%를 받았다. 현재 원스토어는 수수료도 낮을 뿐 아니라 인앱결제도 특별히 막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자체결제시스템시 수수료는 5%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인게임 관련으로도 주목받았는데, 이는 구글이나 애플이 성인게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정책을 펼치는 반면, 앱스토어는 성인용 게임 카테고리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검열 문제에서 구글·애플보다 국내법을 기준으로 명확한 선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혔다. 실제로 유스티스의 ‘언리쉬드’는 원스토어에서만 서비스 되고 있으며, 스마트 조이의 ‘라스트 오리진’ 등은 수위가 높은 소위 ‘비검열버전’을 원스토어에서만 제공하고 있다.
그러던 중 에픽과 구글·애플의 대립이 심해지자 원스토어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9월 3일 모바일 플랫폼 조사업체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지난달 원스토어의 국내 앱 장터 시장 점유율은 18.4%로 추정됐다. 원스토어 시장 점유율을 집계하기 시작한 2018년 7월 이후 최고 기록이다.
실적이 오르자 원스토어가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통신 3사 멤버십으로 매일 10%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는 것에 더해 5~20% 수준의 각종 할인 쿠폰도 매일 이용자에게 추가로 주고 있다. 게임 중 결제를 많이 하는 유저들은 이미 원스토어 이용을 ‘꿀팁’으로 꼽고 있을 정도다. 여기에 구글이 구글플레이의 30% 수수료를 게임 뿐 아니라 다른 분야까지 확대적용할 경우 원스토어 이용량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동통신 업계 관계자는 “애플의 경우 아예 다른 앱마켓이 진입할 여지를 차단하고 있지만, 안드로이드는 별개의 앱마켓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원스토어가 끼어들 틈이 있었다”며 “이 기회를 잘 활용한다면 이통사들이 지원하고 있는 만큼, 적어도 국내에서는 구글플레이의 대체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