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6호 윤지원⁄ 2020.10.17 09:31:09
삼성전자가 10월 5일 프리미엄 가정용 프로젝터 ‘더 프리미어’를 출시했다. 이는 2011년에 프로젝터 사업을 거의 접다시피 했던 삼성전자가 9년만에 내놓은 신제품 프로젝터여서 업계의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더 프리미어’, 레이저 광원이 세 개
더 프리미어는 국내 프리미엄 가정용 프로젝터 시장에서 소니, 엡손, LG전자, 옵토마에 이어 나온 초단초점(UST) 프로젝터다. UST 프로젝터는 화면이 투사될 스크린 가까이에 두고도 100인치 이상 크기의 화면을 구현할 수 있으며, 설치 공간 제약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더 프리미어는 스크린과 약 24cm 거리를 확보하면 최대 크기인 130인치 화면을 구현할 수 있다.
또 더 프리미어는 국내에 출시된 프로젝트 중 처음으로 ‘트리플 레이저’ 기술을 채용했다는 특징이 있다. 트리플 레이저 기술이란 화면을 구성하는 색상의 기본 단위인 R(Red, 적), G(Green, 녹), B(Blue, 청) 색상을 각각 다른 레이저 광원을 이용해서 구현하는 것으로, 삼성전자는 더 프리미어가 세 개의 광원을 쓰기 때문에 더욱 풍부한 색과 밝기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더 프리미어를 트리플 레이저가 적용된 고급형 모델과 싱글 레이저가 적용된 보급형 모델 2가지로 출시했다. 고급형 모델은 4K UHD 화질로 즐길 수 있고 화면 크기는 최대 330.2cm(130형)까지 확장할 수 있다.
설계와 개발은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가 담당하며 생산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이뤄진다.
더 프리미어에 쏠린 업계의 관심은 상당하다. 그도 그럴 것이 더 프리미어는 삼성전자가 9년 만에 내놓은 프로젝터 신제품이자, 경쟁사들의 스펙(spec)을 능가하는 막강한 기술들로 무장한 프리미엄 제품이기 때문이다.
9년 만의 신제품 출시, 왜?
삼성전자는 과거 가정용·휴대용 프로젝터를 선보인 바 있으며, 2008년 SP-A800B 같은 모델은 컬러가 정확한 편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홈시어터 애호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프로젝터의 매출이 적고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 2011년에 프로젝터 사업을 접었다. 이후 2016년부터 OEM·ODM 방식으로 제조한 미니빔 빔프로젝터 등을 출시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공을 들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올해 신제품 프로젝터를 내놨다. 그것도 무려 700만 원 후반대 프리미엄 가정용 4K UHD 프로젝터를 공개했다. 고사양 제품에 대한 기대도 크지만 10년 가까이 외면했던 프로젝터에 갑자기 과감히 투자한 배경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삼성전자 VD사업부 추종석 부사장은 “집 안에 자신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꼭 맞는 홈 엔터테인먼트 환경을 구축하려는 소비자가 증가하고 있다”며 “특히 화질과 스마트 기능 등 모든 측면에서 우수한 더 프리미어는 보다 완벽한 홈 시네마 경험을 추구하는 소비자들로부터 많은 선택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최근 들어 홈 시네마 관련 시장, 특히 가정용 4K 프로젝터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점에 삼성이 주목했다는 얘기다.
국내 4K 프로젝터 시장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사이 10배 이상 초고속 성장한 바 있다. 시장조사업체 PMA에 따르면 2017년에 국내 4K 프로젝터 출하량은 514대에 불과했으나 2018년 5066대 수준으로 성장한 데 이어 2019년에는 상반기에만 3475대로 빠른 증가세를 이어 왔다.
여기에 올해 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 사태와 관련해 홈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집콕 문화가 일반화되고 재택근무가 늘었으며, 극장 같은 단체 관람 장소 대신 집에서 영상 콘텐츠를 즐기는 시간이 늘면서 ‘홈 시네마’ 관련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또한, 이는 전 세계에서 공통적인 현상이므로, 글로벌 시장의 확장세도 더욱 거세질 것으로 기대된다. PMA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홈 시네마 프로젝터 시장은 올해 101만 5645대 규모에서 오는 2024년 217만 5672대까지 2배 이상 확대될 전망이다. 매출 규모 역시 올해 약 1조 5천억 원(13억 달러)에서 2024년 약 2조 6천억 원(22억 달러)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전통의 라이벌전, 프로젝터 시장으로 옮기나
현재 국내 가정용 프로젝터 시장에서는 LG전자가 최강자다. LG전자는 올해 1분기 국내 가정용 프로젝터 시장 점유율이 수량 기준으로 무려 43%나 된다.
LG전자는 2018년 7월 ‘LG 시네빔 레이저 4K 프로젝터’를 선보인 이래로 4K 프로젝터 시장에서도 1위를 지켜오고 있다. LG 시네빔 레이저 4K 프로젝터는 당시 출고가가 무려 589만 원이었음에도 예약 판매 물량이 일찌감치 모두 소진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 시장 점유율 2위인 엡손과 벤큐, 옵토마, 소니, 뷰소닉 등 다른 프로젝터 전문 기업들도 모두 가정용 4K 프로젝터 시장에 뛰어든 상태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올가을 본격적으로 가세하면서 시장 판도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특히 시장을 선점해 온 LG전자와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두 기업은 이미 대형 프리미엄 TV 시장에서도 수년간 치열한 경쟁을 펼쳐오고 있어서, 홈시네마 프로젝터 시장에서의 경쟁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프로젝터 신제품을 처음 선보일 때부터 LG전자와 정면 승부를 피하지 않았다.
LG전자는 지난 9월 3일(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IT 전시회인 IFA2020에 참가하면서 마련한 3차원 가상 전시장에서 ‘LG 시네빔 레이저 4K’ 신제품을 공개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IFA2020에는 불참하는 대신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하반기 주요 신제품들을 소개하는 삼성전자만의 신제품 소개 행사를 온라인으로 열고, 이 행사를 통해 ▲커브드 게이밍 모니터 ‘오디세이 G5’ ▲‘비스포크’ 냉장고와 ‘그랑데 AI’ 기능 세탁기·건조기 신제품 ▲‘갤럭시 Z 폴드2’ 등의 신제품과 함께 프리미엄 프로젝터 더 프리미어를 처음 소개했다. 이 행사를 연 날이 공교롭게도 IFA2020 하루 전이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초단초점 레이저 4K 프로젝터 모델의 스펙(spec)은 전반적으로 비슷하다. 둘 다 4K UHD(3840×2160) 해상도를 구현하며, 최대 화면 크기는 LG 시네빔이 120인치(화면 대각선 길이 약 305cm), 더 프리미어가 130인치(대각선 330.2cm)를 보장한다.
어두운 이미지의 표현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명암비는 둘 다 200만 대 1을 내세운다. 밝은 환경에서도 무리 없이 볼 수 있는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최대 밝기는 LG 시네빔 레이저 4K가 2700안시루멘(ANSI Lumen*, LG전자 자체 측정값 기준), 삼성전자 더 프리미어가 2800안시루멘으로 조금 차이가 있다.
*ANSI lumen : 프로젝터 투사의 밝기를 나타내기 위해 미국표준협회(ANSI: American National Standard Institute) 표준에서 제시한 휘도 측정 단위
선명함을 위해 명암비 차이를 극대화해주는 HDR 기술의 경우 LG 시네빔은 HDR10을 지원하고 더 프리미어는 HDR10+를 지원한다. 또 두 제품은 양사의 TV에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운영체제를 통해 TV를 사용하는 것만큼 편리한 사용성을 내세운다.
디테일한 스펙에서 삼성전자의 더 프리미어가 조금 높은 숫자를 내세우는 항목들이 있다. 그리고 가격은 더 프리미어가 200만 원 이상 더 비싸다.
이렇듯 두 프로젝터 모델은 딱히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최첨단 프리미엄 기술을 내장하고 있어 시장에서 치열한 라이벌로 떠오를 전망이다.
다만, 프로젝터 시장에서의 전반적인 라이벌 구도를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 있다. 이번 더 프리미어의 출시가 반드시 삼성전자의 프로젝터 사업 복귀를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삼성의 신제품은 "TV 라인업의 확대"
삼성전자는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더 프리미어에 대해 “가정환경에서도 소비자에게 영화관 같은 스크린 경험을 제공하고자 하는 라이프스타일 TV”라고 소개했다.
라이프스타일 TV란 삼성전자가 2016년 ‘더 세리프(The Serif)’를 시작으로 소비자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는 TV들을 말한다. 올해는 지난 5월 미국에서 아웃도어용 TV ‘더 테라스(The Terrace)’를 선보인 바 있다.
따라서 더 프리미어가 삼성전자 프로젝터 사업의 전면적인 복귀를 이끌 첨병일지, 아니면 단지 TV 사업에 있어 라이프스타일 TV 라인업을 다양하게 만들기 위해 초청한 용병일지는 아직 좀 더 두고 볼 필요가 있다.
LG전자의 프로젝터 사업은 다르다. LG전자는 삼성전자가 없던 기간에도 외국 프로젝터 기업들과 경쟁하면서 국내 가정용 프로젝터 시장을 주도해 왔으며, 프로젝터 사업의 비중을 키우기 위한 투자도 이어가고 있다.
지난 4월에는 가정용 프로젝터 시장에서의 우위를 기반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차원에서 비즈니스 프로젝터 브랜드로 ‘프로빔’(ProBeam)을 새롭게 론칭하고 신제품 모델도 내놓은 바 있다.
당시 손대기 LG전자 한국HE마케팅담당(상무)은 "LG전자가 그동안 쌓아온 혁신 기술과 노하우를 적극 반영한 '프로빔'은 고해상도 비즈니스 프로젝터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제품"이라며 "시네빔에 이어 프로빔을 앞세워 프리미엄 프로젝터 시장을 지속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회사는 수년 동안 고화질 대형 프리미엄 TV 부문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글로벌 시장을 장악해왔다. 시장 조사 업체 옴 디아에 따르면, 두 회사는 올해 상반기 60인치 이상 4K TV 시장에서 합산 47.6%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출하량 기준).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각 QLED와 OLED라는 각자의 주력 패널을 내세우면서 8K 제품, 롤러블 제품 등 혁신적인 제품들을 잇달아 내놓으며 빠르게 발전하는 한편, 노골적인 TV광고를 통해 서로를 깎아내리는 비방전도 펼치는 등 그야말로 첨예한 라이벌의 모습을 보여왔다.
그런 만큼 올해 4K 프로젝터에 집중하고 있는 두 회사가 향후 프로젝터 시장의 판도를 어떻게 그려 나갈지 궁금하다.
특히, 이들 회사의 혁신 신제품은 대개 연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CES에서 공개되어 온 만큼, 3개월 뒤 CES2021에서 지금의 초단초점 4K 프로젝터를 넘어설 신제품을 누가 내놓게 될지에도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