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4호 윤지원⁄ 2021.02.19 11:23:36
포스코 최정우 회장이 하청업체 직원의 생명을 앗아간 지난 8일의 안전사고에 대해 16일 현장을 방문해 사과했다. 포스코는 이날 이같은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고 최 회장의 사과 내용을 전했다.
최 회장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회사의 최고 책임자로서 유가족분들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깊이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유가족분들과의 진솔한 대화를 바탕으로 유가족분들이 요구하시는 추가 내용들이 있을 경우 이를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최근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통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는데, 사람 한명 한명의 생명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포스코는 이전부터 안전경영을 최우선 목표로 선언하고, 안전설비에 1조 원 이상을 투자했음에도 최근 사건들이 보여주듯이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음을 절감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등 정부 관계기관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여 특단의 대책을 원점에서부터 찾아보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회장으로서 안전경영을 실현할 때까지 현장을 직접 챙기겠다. 안전상황 점검 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안전 책임 담당자를 사장급으로 격상하도록 해 안전이 가장 최우선되는 경영을 실천하겠다”면서 “포스코는 국민기업을 넘어 기업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해왔다. 앞으로도 대한민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경제적 수익뿐만 아니라 공존과 공생의 가치를 추구하는 데 더욱 매진하도록 하겠다. 국민여러분들께도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사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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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사과에도 싸늘한 여론 왜?
국내 재계 순위 6위 포스코 그룹의 회장이 직접 전한 사과다. 수많은 언론 매체가 이에 대해 보도했다.
그런데 사과 이후 여론은 포스코나 최 회장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분위기다. 이 뉴스를 전한 수많은 매체의 댓글 대부분이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내용이다. 뒤늦은 사과라는 비판, 실효가 부족한 대책이라는 비판과 함께 진정성에 대한 불신이 이어진다. ‘제대로 된 사과’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온 역효과다.
‘제대로 된 사과’의 기준에 반드시 지켜야 할 법제도나 역사적, 과학적 근거는 없다. 다만, 자고로 많은 사람이 공통으로 강조하고 공감하는 사과의 바른 원칙 몇 가지는 뚜렷해 보인다.
논어(論語)에서는 “小人之過也 必文”라 했다. ‘소인배는 잘못을 저지르면 꼭 꾸미려 한다’는 뜻이니, 반대로 군자(君子)라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이렇다, 저렇다 살을 붙여 말하지 않고, 있었던 사실과 잘못을 곧이곧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룹 동물원 출신의 김창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현대차그룹 게시판에 기고한 ‘제대로 사과하는 법’이라는 칼럼에서 4가지 단계와 주의점을 제시했다. 1단계는 잘못의 인정과 전적인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 그리고 비난을 수용하는 태도이며, “하지만...”과 같은 말을 절대 삼가야 한다. 2단계는 피해에 대한 현실적이고 적절한 보상 등 책임지는 방법에 대한 정확한 제시다. 3단계는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과 후회를 진심으로 표현하며, 상대와 성실하게 소통하는 것이며, 이때 따라오는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4단계는 잘못의 재발 방지 대책 제시와 약속이다.
컬럼비아대 경영학과의 애덤 갤린스키 교수 연구진은 조직이 사과할 때 따라야 할 5개 지침을 제시한 바 있다. 누가(who)? 사안이 중대할수록 실무자가 아닌 고위직 책임자가 나서서 주어가 분명하게 사과해야 한다. 무엇을(what)? 사과할 사안을 솔직, 정확하게 얘기하고, 뉘우침과 함께 변화 의지 및 재발 방지 대책 등을 담아야 한다. 어디서(where)? 상대가 직접 육성을 들을 수 있도록 한다. 언제(when)? 잘못을 인지하자마자 가능한 빨리 한다. 어떻게(how)? 형식적인 사과, 공식적인 언사를 자제하고, 개인의 느낌과 소회를 진하게 담아야 한다.
올바른 사과의 ‘5W1H’ 따져보니
뇌과학자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와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호 박사의 공저 ‘쿨하게 사과하라’(2011, 어크로스)에도 이와 비슷한 원칙들이 제시된다. 특히 기업과 같은 공적 조직의 공개 사과와 관련해 체크해야 할 리스트로 사과의 메시지(what), 타이밍(when), 채널(where), 사람(who), 문법(how), 이유(why) 등 육하원칙에 더해, 사과 전 행동(Pre-Apology Behavior)과 사과 후 행동(Post-Apology Behavior)까지 항목별 주의 사항을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국내외 다양한 소통, 심리학, 위기관리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제대로 된 사과’ 방법과, 사과할 때 하지 말아야 할 주의사항 등은 대체로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최 회장의 이번 사과는 ‘제대로 된 사과’와는 거리가 멀다.
What? 이번 사과는 당장 지난 8일 포스코 사업장 내에서 협력업체 직원이 사망한 안전사고 발생에 관한 것이며, 나아가 그동안 포스코 그룹에서 고질적으로 반복된 안전사고와 이에 대한 수많은 지적 및 비판, 또 그럼에도 인명이 희생되는 사고가 재발한 것에 관한 사과여야 했다. 하지만 사과에는 “유가족에게 사죄의 말씀을 전한다”는 말 외에 구체적인 잘못이 지칭되지 않았다.
특히, ‘사죄의 말씀을 전한다’는 사과하는 행위에 대해 묘사하는 표현일 뿐이어서,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와 같은 정확한 사죄 표현이 뒤따르지 않는 한 사과가 아니다.
When? 늦었다. 늦어도 너무 많이 늦었다. 피해 노동자가 사망하고 무려 8일이나 지난 뒤였다. 그 사이 설 연휴가 있었으니 '영업일'로는 겨우 3일 만이라고 할까? 유가족을 포함해 진작 사과를 받고 설명을 들었어야 할 당사자들이 새해 명절을 보내는 마음이 어땠겠는가? 사과가 8일이나 늦어진 것에 대한 사과를 덧붙이는 것이 필요하지는 않았을까?
타이밍이 어긋난 사과는 진정성에 대한 의심을 부르게 마련이다. 정치권과 재계에선 최 회장이 이날 사과한 것을 두고 오는 22일 열리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산업재해 청문회 출석을 염두한 제스쳐라거나, 특히 사과 바로 전날인 15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공개적으로 포스코와 최 회장을 지목하여 인명 사고의 재발에 대해 비판하고 분노를 표현했기 때문에 ‘발등에 불이 떨어져’ 사과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Where? 최 회장은 이날 사고 현장을 방문했고, 포스코는 ‘대국민사과’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유족과 국민을 향해 직접 사과한 것이 아니었기에 이 또한 진정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 회장은 이미 사고 후 조치까지 끝난 현장에 방문한 사진을 찍을 것이 아니라 유족 앞에, 또는 노동계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어야 했다.
또 ‘심려를 끼쳐드린’ 국민을 향해서도 죄송하다고 덧붙였지만 이를 두고 ‘대국민 사과’라고 표현해도 좋은지 의문이다.
‘쿨하게 사과하라’에서는 “미안하다면, 얼굴을 보여라”라면서 “사과란 기본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피해자에게 직접 찾아가서 얼굴을 마주 보고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조한다. 다만, “공개사과는 일대일이 아닌 ‘일대다’(one to many)로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뉴미디어의 활용이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라고 덧붙인다.
8일 늦은 ‘대국민 사과’를 할 생각이었다면 기자회견이 마련됐어야 옳다. 코로나19를 감안했더라도 최 회장이 카메라 앞에 서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포스코는 공식 유튜브 계정을 포함해 다수의 그룹 SNS 채널을 운영하면서도, 그 가운데 최 회장의 사과 장면이나 육성은커녕 사과문을 볼 수 있게 게시해놓은 곳은 없다.
How? 먼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언급한 부분에서, 현재 이 법과 관련해 가장 많은 화살을 맞고 있는 것이 포스코와 최 회장 본인이라는 점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나치게 멀리 떨어진 입장에서 얘기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세간에선 벌써 십수 년 전부터 이런 식의 사과를 두고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비아냥대 왔다.
또, “안전경영을 최우선 목표로 선언하고, 안전설비에 1조 원 이상을 투자했음에도”라고 했는데, 이는 ‘할 만큼 했는데도 일이 생긴 것’이라는 회피의 태도로서, ‘제대로 된 사과’의 기준을 말할 때 거의 모두가 절대 금기시하는 행태다. 일말이라도 잘못을 회피하는 태도는 사과에 진정성이 없음을 드러내는 가장 뚜렷한 지표로 여겨지고, 사과받는 당사자를 분노하게 만들 뿐이다.
"사과는 리더의 언어"라는데...
청문회는 '허리 아파' 불출석 통보
그밖에도 최 회장의 이날 사과가 부족해 보이는 이유는 또 있다. 이 책은 ‘사과 이전의 행동’에 관해 “사과하기 전에 보여준 처신과 행동이 매우 중요하다. 은폐, 축소, 지연, 부인을 일삼으며 끝까지 버티다가 사과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과거에 유사한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중요한 요소다”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포스코는 최근 몇 년간 반복된 일련의 인명 사고들과 관련해 여러 차례 이러한 의혹들에 휩싸여 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고 당일이던 지난 8일, 이날은 최 회장이 '안전 경영'에 대해 강조한지 불과 닷새 밖에 지나지 않았던 날임에도 포스코는 재발에 관해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 정도의 입장만을 내놓았고, 최 회장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날 오후 포스코는 각종 매체를 통해 최 회장이 과거 포스코 '영보드' 젊은 임직원들과 간담회 후 활짝 웃으며 단체 셀카를 찍는 사진을 공개하여 빈축을 산 바 있다.
21세기다. 오만 분야 수많은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전 세계에서 공유되는 시대다. 미국의 기업 애플이 꽁꽁 숨겨둔 차세대 아이폰의 새로운 카메라 사양이, 겉 케이스를 만드는 협력업체에서 유출된 새 도안을 통해 수많은 네티즌 전문가들에 의해 분석되어, 대한민국 경기도 안양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기자의 조카 녀석조차 미리 알게 되는 시대다. 기업의 크고 작은 잘못 역시 기사로 보도되기 전에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이런 시대에 요구되는 리더십은 높은 곳에 앉아 입을 다물고 위엄을 지키는 방식이 아니다. 부정적인 문제가 생기는 즉시 전면에 나서 문제를 직시하고, 인정하여 투명하게 책임지는 정공법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불신의 여론이 조성된다. ‘쿨하게 사과하는 법’에서도 “사과는 리더의 언어”라고 말하면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했다. “책임의 시대에는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며,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이다.”
이낙연 대표는 “포스코, 포항제철, 광양제철 등 3곳에서 5년간 42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목숨을 잃었고, 광양제철소에서는 대기오염물질의 무단방출로 인근 마을에서는 카드뮴, 아연 등 발암물질이 기준치보다 높게 검출됐다”면서 “포스코는 지난해 시민단체와 노동계가 최악의 기업으로 뽑았을 정도이며 정부의 특별 근로감독 결과 광양제철소, 포항제철소에서 각각 수백 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적발됐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포스코의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포스코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국민의 기업이 되도록 '스튜어드십코드'를 제대로 실행해줄 것을 요구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사안이 이러한데, 8일 지각한 짧은 사과가 최 회장 연임의 길을 확짝 열어줄 수 있는 만능열쇠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국민은 다 나오지 말았어야 할 희생자가 자꾸 늘어나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봤고, 그때마다 포스코가 같은 오류를 몇 번이나 되풀이해 온 것도 지켜봤다. 그 1조 원은 정말로 어떻게 쓰인 것일까? 리더가 애초 '적절한 타이밍'에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제대로 된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웠다면 없었을 희생과 오류, 그리고 헛되게 쓰인 1조 원이다.
포스코와 최 회장이 이번 사과에 제대로 담지 못한 진정성과 책임감 있는 리더십을 보여줄 기회는 아직 남아 있었다. 22일 국회 환노위 청문회다. 하지만 19일 국회 관계자에 따르면 최 회장은 "평소 허리 지병이 있어 장시간 앉아 있는 것이 불편해" 증인으로 출석할 수 없다며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