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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이해충돌방지법과 LH사태, 그리고 부동산 기사와 집값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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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96호 최영태 편집국장⁄ 2021.03.30 09:44:08

(문화경제 = 최영태 편집국장) 필자는 미국 살 때 버지니아 주와 캘리포니아 주의 부동산 중개사 자격을 취득했다. 돈을 좀 벌어보려는 기획이었지만 실제론 거의 벌지 못했다. 부동산 중개업자 면허라는 게 그 자체로 돈이 되지는 않고 영업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백면서생(白面書生)인지라 영업이 잘될 리 없었다.

LH 사태가 일어났을 때 당장이라도 이해충돌방지법이 통과될 듯 하더니 야당 등의 반대로 이번에도 그냥 넘어갈 것 같단다. 한심하다. LH 임직원들의 부동산 투기에 대한 국민의 분노 정도를 생각한다면 당연히 이런 사태를 막을 ‘기본법’으로서 이해충돌방지법이 통과돼야 하는데, 야당은 LH 사태에 대해서는 그렇게 분노하면서 왜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에 대해서는 그리 주저하는가? LH 사태에 대한 분노는 다가온 보궐선거를 위한 선택적 분노일 뿐이고, 국회의원이 누리는 ‘단물’에 근본적 제약을 가할 수 있는 이해충돌방지법에 대한 무시 역시 선택적일 뿐인가?

美 부동산 중개에 두 명의 중개사가 붙는 이유

미국은 합중국인지라 주마다 법이 달라 부동산 중개사도 주별로 자격을 달리 따야 한다. 물론 버지니아 주에서 자격을 딴 사람이 캘리포니아 주에서 추가로 자격을 따려 할 때는 일부 혜택을 주기도 하지만, 큰 혜택은 아니고 어차피 공부를 따로 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의 부동산 주법을 공부할 때 거의 가장 앞부분에 나오는 내용이 바로 이해충돌(conflicts of interest)에 대한 것이다. 부동산 중개란 것이 판매자와 매수자 중간에서 대리인(agent)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부동산을 사거나 팔려는 고객(principal = 주인)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게 대리인(= 하인)이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란 것도 있지만, 하인은 원칙적으로 주인의 의도만을 100% 존중해야 하지만, 하인도 사람인지라 자신의 이익이 있고, 그래서 자칫 주인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할 수도 있고, 그래도 정립된 것이 이해충돌 방지의 원칙이다.

 

이해충돌을 나타낸 1896년의 그림. 공정한 중개자여야 할 가운데 저울을 든 여자는 부자(오른쪽) 편에 다가붙어 앉아 의아해하는 가난한 자와 거리를 두고 있다.

이해충돌은 상시적으로 일어난다. 모든 인간이 각자의 이해타산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에선 이해충돌 방지를 위한 원칙이 거의 모든 분야마다 제정돼 있다. 한국에선 한 부동산 중개인이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을 모두 중개하지만 미국에선 사는 쪽(buyer)과 파는 쪽(seller)의 에이전트가 다른 경우도 있다. 양쪽의 이익을 공정하게 대변하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seller와 buyer의 이익을 모두 대변하려 들다가는 자칫 소송에 휘말리기 쉽다.

지난 회 칼럼에서도 지적했지만, 이해충돌 의무의 위반이라는 점에선 LH사태나 중개업소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신고가 신고 뒤 취소’가 똑같은 현상인데, 현재 한국에선 정치적 싸움에 도움이 되는 LH사태에 대해선 언론들이 경쟁적으로 보도를 하는 반면, ‘신고가 취소’에 대해서는 뉴스가 뚝 끊겼다. 이래도 되나?

이해충돌 방지를 위한 미국식 방책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1 원칙은 ‘공표’(declaring)다. 공정한 대리인 또는 중개인 역할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나는 이 사안에 대해 중개만 할 뿐, 내 개인의 별도 이익을 챙길 사유가 없다’는 점을 공표하는 것이다. 반대로 특정 사익이 있을 경우는 이를 미리 밝히지 않으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런 식이다. 내가 부동산 중개를 하는데, 누나의 집도 매물에 포함돼 있다. 누나의 집을 중개하고 싶다면 바이어에게 “이건 제 누이의 집입니다”라고 미리 밝혀야 한다. 밝히기 싫다면 거래하지 말라는 것이다.
 

23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참여연대가 이해충돌방지를 위한 5대 입법 촉구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공표하는 미 언론 vs 꿍치고 정치하는 한국 상업언론

똑같은 원리는 언론에도 적용된다. 선거를 앞두고 뉴욕타임스가 특정 후보를 지원하고 싶다면, 꿍치고 1번 또는 2번 후보에게 유리한 내용을 써대는 게 아니고, 공표부터 해야 한다. 뉴욕타임스가 2번 후보를 합당하다고 판단한다면 그 이유를 밝힌 뒤 기사를 쓰면 된다. 그래야 독자들이 “아, 이 기사는 2번 후보를 지지하는 차원에서 쓰였구나” 하고 감안하면서 읽을 수 있다. 한국에서처럼 모든 언론이 공명정대, 불편부당, 민족언론 등 온갖 좋은 수식어를 온몸에 휘두른 채, 그러나 논조는 특정 후보에게 전적으로 유리하게 도배하는 행태를 막을 수 있다.

부동산 기사도 마찬가지다. 특정 언론이 부동산 관련 ‘사업’을 하고 있거나, 부동산 관련 사업체와 제휴를 맺고 이익 사업을 하고 있다면, 부동산 기사를 쓰기 전에 그 내용부터 공표해야 한다. 부동산 관련 사업에 연관돼 있다면 집값을 올려야 한다. 그래서 ‘집값 올라서 큰일났다’는 공포 마케팅 기사는 많이 나와도 ‘집값 내렸다’는 팩트 기사는 잘 안 나온다. 이런 언론이 있기에 한국의 부동산은 상시적으로 오르게 돼 있고, LH직원이나 기획부동산은 그 흐름에 이해충돌을 무릅쓰고 올라타기 쉽다. 이래도 이해충돌방지법은 필요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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