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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18년 전 사스 때 안 배우고 왜 이제 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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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98호 최영태 편집국장⁄ 2021.04.29 11:18:38

(문화경제 = 최영태 편집국장) 이번 호 문화경제에는 신세계, 롯데 등 국내 대형 백화점-유통기업들에 대한 기사가 네 개나 실렸습니다. 오랜만의 ‘보복 소비’에 백화점들이 웃고(58~59쪽), 최저가 경쟁을 펼치고(36~43쪽) 한다는 등의 내용입니다. 지난 697호에는 롯데마트의 일부 매장들이 고객을 받지 않고 온라인 배송 용으로만 운용된다는 이른바 ‘다크 스토어’ 기사도 실렸었습니다. 최고의 유통 요지에 자리잡은 롯데마트의 알짜배기 쇼핑 공간이 배송 기지로만 사용된다는 점에서 변화가 놀랍기만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한 2021년의 이런 대변화를 보면서, 안유화 교수(성균관대 중국대학원)의 과거지사 설명(2003년 중국에서 사스/SARS가 대유행했을 때의 현지 유통가 이야기)을 들으니 더욱 놀랍습니다. 2003년 당시 중국에선 사스의 대유행 때문에 오프라인 상가들이 문을 닫고 온라인 유통기업으로 탄생하는 큰 흐름이 펼쳐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안 교수에 따르면 중국에는 미국의 아마존에 해당하는 초대형 온라인 유통업체가 두 개 있는데 칭둥(360buy)과 알리바바(토보)라고 합니다. 칭둥은 베이징대학을 나온 류창둥이 창업한 회사로 원래 2003년 CD 판매업이 잘돼 베이징에 대형 점포 12개를 오픈했으나 사스로 고객 방문이 끊기며 폐업 위기에 몰리자 오프라인을 포기하고 온라인으로 전환해 그 뒤 360바이라는 초대형 온라인 판매 기업이 됐다고 합니다.

알리바바 역시 사원 중 사스 환자가 발생해 직장폐쇄가 되자 마윈 회장이 특별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타개책을 강구하도록 했고, 그 결과 토보라는 오늘날 ‘중국의 아마존’이 탄생했다는 얘기입니다.

 

지난 2016년 당시 사드 배치 이후 벌어진 ‘한한령’ 관련 내용을 보도하는 방송 화면.

벌써 2003년에 중국에서는 질병 대유행에 따른 오프라인 상가의 몰락과 온라인으로의 대전환이 일어났다는 얘기인데, 그 현장을 목격했을 한국의 중국 진출 대기업들은 당시 도대체 뭘 배웠기에 18년 뒤에 일어난 코로나19 탓에 이런 중병을 치르는가 궁금해집니다.

일례로, 이마트는 지난 1997년 중국 진출을 시작해 26개점까지 매장이 늘어났으나 매출 하락으로 인한 적자가 지속되는 바람에 2011년부터 철수 작업을 시작해 2017년 중국 전면철수를 밝혔습니다.

롯데마트 역시 2007년 중국 진출을 시작해 2017년에 112개까지 점포 숫자를 증가시켰었지만 2017년 철수했습니다. 2016년 박근혜 정권 말기에 한국에 사드 미사일이 전격 배치되면서 이른바 한한령 탓에 이마트와 롯데마트가 철수한 것으로 보통 한국인들은 알고 있지만, 안 교수 말을 참고하면 벌써 2003년 사스 사태 때부터 중국에선 오프라인 → 온라인으로의 대전환이 일어났고, 이에 적응하지 못해 적자가 누적된 것이 벌써 한한령 이전부터의 현상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공룡 대기업은 발빠른 소기업에 벤처투자 해야 하는 이유

물론 2003년 현지에 있던 이마트 직원이 이런 현상을 포착하고 본사에 “오프라인은 이제 끝났습니다. 온라인으로 전환해야 합니다”고 긴급 SOS를 쳤다 한들 약발이 먹히기는커녕 아마 ‘쓸데없는 소리 하는 직원’으로 고초를 겪기 십상이었을 것 같습니다. 수천 억 단위를 투자해 요충지를 잡아놨을 터인데, 즉 이미 매몰 비용(sunk cost)가 발생한 상태에서 이런 직언을 해봐야 대기업에서는 먹혀들기 힘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룡 대기업에서는 방향 전환이 여간해서는 쉽지 않은 까닭이지요.

그러나 이런 생각 또한 해봅니다. 만약 2003년 한국에도 미국식의 ‘벤처 투자 문화’ 같은 것이 있었다면 사태가 달리 진전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조금 길지만 일본 와세다대학 박상준 교수의 책 ‘불황터널’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해봅니다.

한국의 재벌 문제 전문가들은 빌 게이츠도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한국형 재벌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미국의 시스템에서는 창업주의 자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기업의 경영권을 물려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빌 게이츠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았고, 그것이 전도유망한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중략) 벤처 기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활발한 사회라면 젊은이들은 자신의 꿈과 실력을 펼쳐 보일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지 않을까.(295~296쪽)

경영권 세습의 집착에서 벗어난다면 한국의 재벌 가문도 더 다양한 방법으로 한국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충분한 유산을 물려받은 2세 3세들은 젊은 창업자들을 지원하는 벤처 캐피털리스트가 될 수도 있다.(294쪽)

미국에 벤처 투자 문화가 조성돼 있는 것은, 한국 재벌의 경영 상속 같은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고, 태어나면서부터 주식을 물고 태어나는 대기업 2, 3세들은 새 산업 창업보다는 주식 투자-운용에 뛰어나기 때문에 벤처 캐피탈리스트가 되면 본인들도 행복하고, 일자리가 없어 무너져내리는 한국 젊은이들에게도 밝은 빛이 될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게 박 교수의 제안입니다.

이마트-롯데마트도 중국에서 자신의 큰 몸집을 방향전환하기는 힘들었어도 현지든 국내서든 발빠른 소기업을 M&A 하는 식으로 적응을 시도했었다면 대륙에서의 완전철수와는 다른 결과가 펼쳐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대난리가 벌어지는 와중에 귀기울여 들어야 할 내용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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