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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68) 작가 손동현] “과제처럼 다가오는 전통화 계승 … 그러나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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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00호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2021.05.28 11:26:21

(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더갤러리 이번 회는 신작 ‘이른 봄’(2020~2021)을 통해 지속과 변화 사이의 균형을 보여준 손동현 작가와의 인터뷰를 싣는다.

- 최근 페리지갤러리에서 진행된 개인전 ‘이른 봄’(2021)에서 동명의 신작을 선보였다. 이 작품은 ‘아트부산 2021’에도 전시되었다. 손동현의 이전 작품과 연결되면서도 변화가 보였던 작품이다. 그 결은 다르지만 ‘섬(island)’ 연작(2010), ‘배틀스케이프’ 연작(2013)도 산수화와 연결지을 수 있다. 이번에는 대중문화인 영화와 만화가 아닌 곽희(郭熙)의 ‘조춘도(早春圖)’(1072)를 바탕으로 한다. 이전의 산수화와 ‘이른 봄’의 연결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차이는 무엇인지 설명을 부탁한다.


‘‘이른 봄’과 산수화의 형식을 지닌 이전 작품들 사이의 의미 있는 연결점은 사람들에게 손동현의 작품이라 각인된 인물화가 아닌 다른 쪽의 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했다는 데에 있다. 다만 그 시작은 나의 인물화가 ‘현재에 전통적인 초상화의 목적이나 방법론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기인했던 것과 비슷하다. 나는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풍경들을 과거에 산수를 그렸던 관점이나 기법으로 그리는 것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한편 차이점은 ‘조춘도’라는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작품을 바탕으로 작업함에도 산수를 그리겠다는 생각이 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배틀스케이프’의 경우만 해도 산수를 내 방식대로 다뤄보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이른 봄’에서는 산수라는 틀이 있긴 했지만 먹과 잉크, 탁본 먹이나 붓의 종류 등이 다양하니 그것들로 재미있게 놀아보자는 생각이 강했다. 내가 산수를 그리고 있다든가, 산수를 그릴 때 자세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와 같은 부분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산수화를 그리고 있다는 생각도 그렇게 많이 하지 않은 것 같다. ‘산수는 참 재미있는 것이구나, 언젠가 산수를 다뤄봐야지’라는 생각을 해왔는데, 막상 본격적으로 다뤄보니 산수 자체에 많은 비중을 두지 않게 되었고, 화면 안에서 다양한 방법들을 펼쳐내고 이어 붙여가면서 작업하게 되었다.
 

PERIGEE ARTIST #24 손동현 ‘이른 봄’(2021), 전시 전경, 사진 제공 = 손동현 작가  

- ‘조춘도’가 하나의 이미지로만 기능했다는 이야기인가?

작품을 위한 윤곽이나 이미지만을 제공한 것은 아니었다. ‘조춘도’를 선택한 이유는 좋아하는 작품이고 미술사적으로 중요할 뿐 아니라 그림이 갖는 에너지와 동세가 굉장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의 작업에 힘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봄의 풍경이어서 생명이 피어나는 기운이 담겨 있는 데다가 그림의 부분마다 영감을 주는 요소들이 많았다. 그림을 그리면서 계속 정말 멋진 작품이라 생각했다.
 

손동현, ‘이른 봄’(2020-2021), 194 x 1300cm(10폭), 종이에 먹, 잉크, 아크릴릭 잉크, 사진 제공 = 손동현 작가 

- 작가 본인은 ‘조춘도’를 참조했지만 ‘조춘도’의 차용이 ‘이른 봄’을 그린 목적은 아니라고 말했다.

확실히 차용은 최종 목적이 아니었다. 이 작품을 좋아하고, 누군가에게 산수화를 설명할 때 예시로 보여주는 작품인데도 나는 ‘조춘도’를 실제로 보지 못했다. 오랜 시간 동안 필요에 따라 작품 사진의 부분을 선택하고 확대해서 봐왔던 게 이번 작업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이른 봄’ 열 폭의 그림이 모두 ‘조춘도’ 전체가 아닌 잘린 이미지의 부분들을 다루고 있다. 곽희가 자기 방식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그린 산수화를 내가 바라보는 방식대로 그려낸 것이다.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정석 같은 기준을 마련해준, 역사적으로 중요하다는 고전 회화를 내 마음대로 크롭하고 편집하는 작업 자체에 재미와 쾌감이 있었다.
 

손동현, ‘이른 봄’(2020-2021), 194 x 1300cm(10폭), 종이에 먹, 잉크, 아크릴릭 잉크, 사진 제공 = 손동현 작가 
손동현, ‘이른 봄’(2020-2021), 194 x 1300cm(10폭), 종이에 먹, 잉크, 아크릴릭 잉크, 사진 제공 = 손동현 작가 

- ‘조춘도’ 외에 참고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작품은 없었는가?

작업을 준비하면서 ‘여러 산수를 합쳐 무언가를 만들어 볼까’란 생각을 했었던 적은 있었지만 ‘조춘도’와 등가로 염두에 두었던 작품은 없었다.

- 손동현의 초기 작업은 전통 채색화의 형식을 보여준다. 이후 점차 색채가 약해지고 수묵으로 변화하는 것 같더니 지금은 다시 색채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번에는 아교포수하고 여러 번 색을 올리는 전통 채색화와는 다르다. 마치 수묵화처럼 일회성이 강조되는 방식인데 잉크를 사용했다. 자연히 색채가 강렬해졌다. 형광색도 보인다. 이와 같은 색과 재료를 사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매체에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잉크 작업을 시작했다. 지본수묵(紙本水墨)을 영어로 잉크 온 페이퍼(ink on paper)라 적는다. 그런데 잉크란 단어가 먹만 한정하는 게 아니니 확대해석해서 다른 잉크도 써보기로 한 것이다. 잉크는 먹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잉크를 사용하니 물감을 여러 겹 칠해 채색화를 그릴 때와는 다른 후련함이 있었다. 형광색은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사용한 적도, 사용할 생각도 하지 못했던 색인데 속 시원한 느낌이 있어 신나게 칠했다. ‘이른 봄’의 경우 잉크에 먹을 섞어 사용한 부분도 많다. 톤 다운을 위한 것도 있었고, 나만의 색감과 표현법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손동현, ‘이른 봄’(2020-2021), 194 x 1300cm(10폭), 종이에 먹, 잉크, 아크릴릭 잉크, 사진 제공 = 손동현 작가 
손동현, ‘이른 봄’(2020-2021), 194 x 1300cm(10폭), 종이에 먹, 잉크, 아크릴릭 잉크, 사진 제공 = 손동현 작가 

- 바탕색의 경우 먹으로 형상을 그린 뒤 제일 마지막에 잉크를 칠했다고 했는데, 먹으로 그린 부분이 번지거나 훼손되지는 않았는가?

먹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잉크로 그린 것들만 살짝 번지는 정도였다. 먹으로 그린 뒤 하루만 말리면 뒤에서 어떤 칠을 해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이건 먹 자체의 속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먹을 여러 겹 쌓아 올리지 않고 한 번에 그리는 방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손동현, ‘이른 봄’(2020-2021), 194 x 1300cm(10폭), 종이에 먹, 잉크, 아크릴릭 잉크, 사진 제공 = 손동현 작가 

- ‘이른 봄’에서는 레고 밑판과 자 등을 탁본했다. 작가의 일상에서 발견되는 물건들이다. 탁본으로 완성한 ‘Heelballer’(2016-2017)에도 작가의 작업실에 있는 물건들이 사용되었다. 또 ‘Master Ink’(2015)에서는 작가가 사용하는 벼루의 형상을 화면 중앙에 그려 넣었다. 마치 어떤 힌트를 숨겨놓듯이 일상의 부분들을 작품에 넣는 이유가 있는가?

내가 사용한 것은 레고 듀플로(Lego Duplo) 밑판인데 요철이 있어서 탁본하면 시각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2019년~2020년의 작업에도 조금씩 등장하는데, 나는 이것이 입체적인 여백이라 생각했다. 그 위에 블록을 붙이지 않으면 화폭의 여백과 비슷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블록을 붙인 뒤에도 생길 수 있는 비어 있는 부분은 그림의 빈 공간을 닮았다. 내 그림의 여백에 여백과 같은 오브제의 흔적을 탁본으로 남기면 재미있겠다 싶어서 사용했다. 참고로 나중에는 여백이 아닌 곳에도 사용했기 때문에 레고 밑판이 탁본된 모든 부분이 여백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 내 그림의 여백에 여백을 상징하는 레고 밑판뿐 아니라 다른 오브제들의 탁본이 등장하기도 한다. 한편 ‘Master Ink’는 스스로 먹을 갈아 사용하는 존재를 그리다 보니 내가 사용하던 벼루가 등장하게 되었다. ‘Heelballer’의 경우 나의 일상에서 만나는 것들을 탁본한 것이다. 내가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가져와 작업한 것이 대중문화 그 자체를 그리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항상 접하는 이미지를 가져오기 위함이었던 것처럼 작가인 나의 일상(작업실)에서 손에 잡히는 것들을 사용했다. 나의 화폭은 항상 작업실에서 구성되고 채워지는데 작업실에서 직접 사용하는 것들의 흔적으로 화면을 구성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손동현, ‘이른 봄’(2020-2021), 194 x 1300cm(10폭), 종이에 먹, 잉크, 아크릴릭 잉크, 사진 제공 = 손동현 작가 

- 손동현의 작품 중 많은 수는 참고 자료가 있는 것 같다. 남다른 이유가 있을까? ‘이른 봄’만 해도 그냥 산수화를 그릴 수 있었다.

레퍼런스 없이 작업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도 하고,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수많은 시각 이미지에 둘러싸여 살아왔고 작업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레퍼런스 없이 시각적인 창작물을 만들겠다는 절실한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영향을 벗어날 수 없고 이것이 필연적인 것이라면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나 배경 등) 공부해가며 작업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약 2014년부터 레퍼런스를 사용하는 방식이 변했다. 구체적인 주제에 집중해서 파고들어 그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조금은 느슨하게 유동적으로 적용하게 되었다. 이는 ‘잉크 온 페이퍼 II’(2019~2020)에 잘 드러나는데, 의미의 가능성을 점점 열어가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손동현, ‘이른 봄’(2020-2021), 194 x 1300cm(10폭), 종이에 먹, 잉크, 아크릴릭 잉크, 사진 제공 = 손동현 작가 

- ‘아트부산 2021’에서 ‘아트악센트’전을 기획했다. 동양화/한국화의 기법으로 현대적인 콘셉트를 보여주는 작품들로 꾸며졌다. 작가와 작품 선정의 기준, 기획과 작품 설치에서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아트부산’ 측에서 45세 이하의 동양화/한국화 작가 10명의 작업을 보여주는 전시의 기획을 제안해주었다. 이번 ‘아트악센트’에 내가 붙인 제목은 ‘회화 1’이었다. 동양화 혹은 한국화라 불리는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게 전통의 계승, 전통의 현대화는 반드시 짊어지고 가야 하는 과제처럼 다가오는 것 같다. 그 안에서만 해석되어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작가나 작품도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 미술의 역사에서 문제의식을 찾아내는 것은 중요하다. 다만 그것을 내가 사는 지금의 시점에 맞게,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이뤄가면 되는 일인 것 같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았다. 같으면서도 다른 고민을 하는 작가들이 작업(에 관한 생각)을 공유하는 작은 시작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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