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2호 최영태 편집국장⁄ 2021.06.29 11:21:56
(문화경제 = 최영태 편집국장) 30대 야당 당대표가 탄생하면서, 그리고 전직 검찰총장이 차기 대선 지지율 1등을 달리면서 ‘공정’이 화두가 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공정하기만 하면 한국인은 모두 행복해질까 하는 질문이다. 트레이더(금융 상품을 거래하며 이익을 내는 전문가) 김동조는 자신의 책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에서 이런 답을 내놓는다.
사람들은 차별 없는 세상이 공평하고 공정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차별 없는 능력 위주의 세상은 매우 불평등하다. 흔히 차별을 없애려고 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차별 없는 세상을 가져온 것으로 여기지만, 차별은 경쟁이 심해지면서 비로소 줄어들 때가 오히려 많다.(19쪽)
미국의 경우 지난 30년 사이에 차별은 줄고 불평등은 확대되었다. 차별이 줄어든 것은 경쟁의 심화 때문이다. 경쟁의 심화가 차별의 비용을 크게 만든 것이다. 세계화로 인한 경쟁의 심화는 필연적으로 차별을 점점 더 줄어들게 할 것이다. 인종에 따른 임금 격차는 줄어들고 있는 반면, 학력 수준에 따른 임금 격차는 점차 확대되고 있는 미국의 현상이 이를 잘 보여준다. 세계화 흐름이 생기면서 여성과 흑인 대졸자의 임금 상승 폭이 가장 컸던 것이다. 경쟁의 심화로 인해 차별에 따른 임금 격차는 줄어들고 소득 불평등이 확대되면, 남부 백인이든 경상도 사람이든 저소득 유권자라면 차별로 말미암아 누릴 수 있었던 편익이 점차 감소하기 때문에 소득 불평등을 줄이려는 정책을 지지하는 경향이 생길 것이다.(49쪽)
줄여서 말하면, 모든 사회가 그렇듯 미국 사회에도 ‘내재적으로’ 차별은 있었지만(비록 차별금지법에 해당하는 민권법이 1960년대부터 있었다 하더라도), 경쟁이 심화되는 바람에 차별을 했다가는 경제적 손해를 보기 때문에 시장의 작용으로 차별은 줄어든 반면, 그러다 보니 백인-남성(전통적 강자)은 손해를 보게 됐고, 흑인-여성(전통적 약자)은 상대적 이익을 보면서, 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는 소리다.
현재 한국에서는 이준석 당대표 같은 보수 진영에서 공정 경쟁(A)을 얘기하고, 정의당-민주당 같은 진보 진영에서 차별금지(B)를 말하지만, 위의 미국 예에서 알 수 있듯, A와 B를 동시 진행한다 해도 거의 모든 국민의 행복도가 일률적으로 상승하지는 않고, 더 행복해지는 그룹과 더 불행해졌다고 느끼는 그룹으로 나뉘게 된다.
설사 이렇게 불행과 행복이 엇갈린다고 해도, 미국식의 공정경쟁과 차별금지를 한번 해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한국은 여전히 공정경쟁이 불가능한 사회이고, 차별이 횡행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미국식이 수입 안 되면 미국으로 나가자” 흐름은?
공정경쟁이 불가능한 것은 한국이 지독한 학벌 사회라서 그렇다. 한 벤처 업체 사장의 말이다. “실제 소프트웨어 개발 단계에서는 출신 학교와 상관없이 실력에 따라 일한다. 명문대와 실력이 비례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자금을 따내기 위한 프레젠테이션에는 항상 서울대 공대 출신을 내보낸다. 이 팀장은 평소 그냥 논다. 하지만 프레젠테이션을 ‘서울대 공대 출신’이 하면 심사위원들의 눈빛이 달라지고, 벤처 투자금도 잘 내준다. 실제 소프트웨어 개발을 잘하는 사원을 발표자로 내보내 봤는데 서울대 공대 출신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없었다.” 발표자의 학벌에 따라 지원금을 받고 못 받고가 결정되니 다른 도리가 없다는 소리다. 이래서 한국은 대학 입학 때 한 번, 첫 직장 선택 때 한 번, 그래서 딱 두 번의 결과만으로 100년 인생을 좌우해 버리는 나라다. 한국판 스티브 잡스가 나올 수 없다. 인문대를 중퇴한 잡스라면 한국식 프레젠테이션에 나설 확률도, 설사 나서더라도 벤처 투자금을 따낼 확률이, 위 벤처 기업 사장 말대로라면, 극히 낮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당은 차별금지를 말하고, 야당 대표는 공정경쟁을 주장하지만, 차별금지도 공정경쟁도 제대로 되지 않는 나라에서, 일반 국민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나?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민주당의 집권 뒤 한국의 과거를 지키려 맹위를 떨치는 세 집단이 있다. 검찰-사법-언론 권력이다. 이 세 집단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수입대체 불가’다. 국산의 품질이 조악하다면 급한대로 수입품을 들여오면 되는 게 경제 영역이지만, 법조-언론계에선 수입대체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 가지 가능성이 최근 아주 작지만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바로 ‘국외에 맡기자’는 방식이다. 한국에서 저평가돼온 쿠팡은 뉴욕 증시에 상장해 대박을 쳤다. 수감 중인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옵셔널캐피탈 관련 혐의는 한국 검찰 수사 단계에서는 무혐의 처리됐지만, 미국 재판에서는 “미국 법원이 한국 검찰 수사 결과를 불신”(2017년 당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라디오 인터뷰 발언)하면서 이 전 대통령의 수감 가능성을 여는 단초가 됐다.
‘수입’이라는 간편한 방법이 있지만, 수입이 도저히 불가능한 영역이라면, “이 몸이 직접 나가 경험하고 너도 경험하게 해주마”라는 어려운 방법이, 그 실낱같이 작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시도되고 있다. 작은 구멍이 큰 댐을 무너뜨릴지 지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