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6호 옥송이⁄ 2021.08.09 09:31:11
코로나가 은행을 둘러싼 고정관념을 크게 바꾸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은행 직원의 구성이다. 더이상 상경 또는 문과만의 직장이 아니며, 디지털 인력이 이를 대체하고 있다. 은행들의 포스트 코로나가 디지털에서 비롯되는 양상이다. 은행들의 디지털 변화상을 짚어본다.
국민은행의 AI는 시몬처럼 될까
2002년 작 영화 ‘시몬’은 여배우가 된 인공지능의 이야기다. 그래픽으로 빚은 아름다운 외모와 연기력 덕에 사이버 배우라는 점을 들키지 않고 최고의 인기스타가 된다는 내용이다. 시몬이 영화 속 대중들에게 사람인 양 속일 수 있었던 이유는 로봇 특유의 어색함이 없어서다. 이른바 ‘자연어 처리’가 완벽해서다.
이 개념을 알기 위해선 우리가 쓰는 말이 자연어(Natural Language)라는 점을 먼저 알아야 한다. 인공지능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자연어가 아닌 프로그래밍으로 만든 인공어라서 그렇다. 즉 자연어 처리는 컴퓨터가 자연어를 이해하고 처리해 사람처럼 대화할 수 있는 기술이다. KB국민은행은 이 개념을 은행으로 끌고 왔다.
자연어 처리의 가장 큰 특징은 말의 가장 작은 단위인 형태소 단위에서부터 쪼개 이해한다는 점이다. 덕분에 AI는 마치 사람처럼 대화의 의도를 파악하고 해석할 수 있다. 국민은행의 자연어 학습모델인 ‘KB ALBERT(이하 KB알버트)’ 역시 동일하다. 다만, 일반적인 대화가 아닌 금융 언어에 특화됐다.
사실 금융 언어는 어렵기로 유명하다. 전문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본식 한자어나 외국어 단어가 혼재해서다. 사람 같은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데 앞서 금융 언어부터 고민할 수밖에 없다.
국민은행은 금융 관련 텍스트의 특수성을 고려해 자사가 보유한 약 1억 건 이상의 텍스트 데이터를 바탕으로 KB알버트를 개발했는데, 구글 클라우드 및 시스템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인 메가존과 함께 했다. 3사는 KB알버트의 자연스러운 금융 언어 구사를 위해 인공지능, 머신러닝 기술, 데이터 분석 플랫폼 등을 활용했다.
이렇게 개발된 금융판 시몬은 아직 업무 일선에 있진 않다. 상용화를 준비하는 단계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기존 애플리케이션인 ‘KB스타뱅킹’과 업무용 챗봇부터 도입될 계획이다. 또한, KB알버트를 적용하고 UX를 고도화한 AI 은행원을 향후 영업점에서 파일럿 형태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AI 체험존에 집약된 KB 디지털
완성된 형태는 아니지만, 이 은행이 그리는 디지털 금융의 미래를 시뮬레이션해 볼 수는 있다. 여의도 신관에 마련된 ‘AI 체험존’이다.
이곳에는 두 대의 키오스크가 마련돼 있는데, 각각 캐릭터로 분한 AI와 김현욱 전 KBS 아나운서의 외모를 갖춘 AI가 등장한다. 이 두 인공지능은 KB알버트를 소개하거나, 행원처럼 유창하게 가상상담 또는 은행 업무를 본다. 그러나 이 공간은 단순 체험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접목된 기술들은 모두 향후 영업점에 도입하기 위한 테스트베드이기 때문이다.
은행 관계자는 “카메라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는 영상 분석을 통해 이상을 감지하고, 보이스피싱 방지 등에도 활용 가능하다. 또한, 필기체 인식과 같은 기술은 서명 대조 등 범죄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AI 체험존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비대면 서비스를 위해 상담 채널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도입됐다”며 “비대면 대고객 서비스의 신규 채널로 AI 기술을 적용하고, AI 기반 상담을 통해 접근성과 편리성 등을 검토하고 고객 수용성을 검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업점 업무는 RPA가 자동으로 수행
대고객용 격인 AI 외에 이미 업무에서 사용 중인 기술도 있다. 지난 6월 기준, 영업점의 31개 업무 중 11개를 로보틱 프로세스 자동화(Robotic Process Automation. 이하 RPA)가 해결하고 있다. RPA는 사내 업무를 수행하는 셈이다.
RPA는 주로 부동산담보대출 실행 후 등기 관련 변경 사항의 사후 확인이나 전산등록 업무를 자동화하는 등 단순 반복업무를 처리한다. 최근에는 기계학습 기술도 접목돼 ‘급여 이체 등록 RPA’ 업무 시, 고객으로부터 제공받는 다양한 형태의 급여 이체 서식을 자동으로 내부 시스템에 맞도록 편집해 등록한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RPA를 통해 조직 전체의 업무 효율화를 촉진하고 질적 생산성을 높여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며 “향후 영업점 업무에 적용을 확대해 고객 상담 품질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 은행의 디지털화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관련 인재 확충으로 여러 시도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진행한 채용의 경우, 신입 및 경력직 200여 명 가운데 절반 이상을 IT·데이터에서 뽑았다. 전통 행원 분야인 경영관리 부문은 대폭 줄였다. 빅테크 기반 금융업이 활개를 치면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상경계열의 넥타이 부대 대신 IT 특공대를 택한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