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암호화폐시장에서 ‘업비트’가 다른 대형 거래소들과 격차를 벌리면서 독주 체제를 굳혀가고 있다. 가상화폐 투자자 약 600만 명 가운데 업비트를 이용하는 투자자는 전체 투자자의 83%를 넘는다.
키움증권 MTS 영웅문S보다 사용자 많아
업비트가 업계 1위로 치고 올라온 결정적인 요인으로는 UX(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가 꼽힌다. 업비트는 주식 투자 앱 ‘증권플러스’를 개발한 두나무가 운영하는 거래소다. 오랜 시간 동안 증권앱 시장에서 노하우를 쌓은 덕에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과 서비스를 빠르게 도입할 수 있었다. 사용자들은 타 거래소와 다르게 평가 손익, 수익률, 총 평가 등의 투자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런 편리함 덕에 어플리케이션 월간순사용자수(MAU)도 거래소 중 가장 높다. 모바일인덱스는 지난 4월 업비트 MAU가 534만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2위 거래소(228만 명), 3위 거래소(90만 명)는 물론 주식 거래 앱 1위인 ‘영웅문S’(328만 명)를 앞섰다.
업비트 관계자는 “업비트는 가장 신뢰받는 글로벌 표준 가상자산 거래소를 표방하고 있다”며 “디지털 자산 투자 활성화를 위해 업계 수수료도 가장 낮다”고 말했다.
업비트는 국내 4대 거래소 가운데 최저 수수료인 0.05%(원화마켓 기준)를 책정했다. 빗썸이 0.25%로 가장 높고 코인원 0.2%, 코빗 0.15% 순이다.
큰 폭으로 늘어나는 가상화폐 투자자
투자자들이 가상화폐 시장으로 몰린 데에는 단기간에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다고 믿어서다. 실제로 비트코인을 제외한 나머지 군소 규모 코인인 ‘알트코인’은 지난 8월 한 달 동안 30% 이상의 높은 상승세를 나타냈다.
이처럼 가상화폐 광풍이 불자 금융위원회는 올해 5월 가상화폐 투자자 수를 집계했다. 작년 말까지 162만 6000여 명이었던 투자자는 올해 587만 3000여 명으로 약 3.6배 늘었다.
1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실이 가상화폐 정보 업체 코인게코의 거래량 데이터를 비트코인으로 환산한 자료에는 지난달 26일 국내 전체 코인 거래량의 83.28%를 업비트가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빗썸(11.62%), 코인원(3.10%), 지닥·후오비코리아(0.68%), 고팍스(0.55%), 코빗(0.21%) 순이었다.
업비트가 이런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국내에 코인 투자 광풍이 다시 불기 시작한 지난해 연말까지만 하더라도 업비트와 빗썸은 전체 거래량에서 대체로 양강 구도를 지켜왔다.
월평균으로 따졌을 때 12월 업비트와 빗썸의 코인 거래 비중은 각각 46.34%, 43.01%로 전체 시장을 양분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분위기가 업비트 쪽으로 기울었다. 1월 평균 업비트의 코인 거래량 비중은 55.17%로, 빗썸(34.16%)을 크게 따돌렸다.
업비트의 코인 거래 비중은 3월(71.54%) 70%를 넘어선 데 이어 7월(80.53%)에는 80%까지 차지했다. 7월 25일 하루의 비중은 무려 88.48%나 됐다.
이런 현상은 어디까지나 서비스를 직접 경험하는 투자자의 선택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에 따라 이달 24일까지 사업자 신고를 마친 뒤 소수의 거래소만 살아남을 경우 독과점의 폐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금법으로 가상화폐 거래소 ‘1위’ 굳혀지나
정부는 그동안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가치에 대해 경고 메시지를 내놓음과 동시에 암호화폐 투기 과열 진정과 사기 등 불법행위에 의한 거래참여자의 피해 예방을 위해 어떻게 이 시장을 관리할지 골머리를 앓아왔다.
그 결과 올해 3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을 개정해 암호화폐거래소는 6개월 이내에 요건을 갖춰 신고토록 했다. 그 마감 시한이 바로 9월 24일이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하려면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에 가상자산사업자로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신고 요건을 갖추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먼저 거래소는 영업을 지속하기 위해 ISMS(개인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을 받아야 한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정보자산 보호를 위한 관리체계가 적합한지 심사를 요청한 뒤 여러 인증을 거쳐야 한다. 신청에서 인증서 발급까지 통상 4~6개월이 소요되며 정보보호조직 구성과 보안체계 구축을 위해 많게는 수억 원의 비용이 든다. 영세한 사업자의 경우 조건을 갖추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다음으로 은행을 통한 실명 확인 입출금계정 서비스가 필요하다. 기존 가상계좌 발급을 통한 방식이 아닌 은행의 실명 확인을 거친 입출금계좌를 이용해 자금 세탁 등의 범죄를 막기 위한 조치다.
거래소가 영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은행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정작 은행들의 반응은 소극적이다. 특금법 제5조2항에는 금융회사 등으로 하여금 일정 사안에 대해 고객 확인의무 등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은행은 가상화폐 거래소로부터 실명 확인 입출금계좌 발급 신청을 받으면 해당 거래소의 위험도·안전성·사업모델 등에 대한 종합적 평가 결과를 토대로 실명 입출금계좌 발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즉, 은행이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여부와 고객의 예치금과 거래소의 자기 재산을 분리해 관리하고 있는지와 ISMS 인증을 획득하였는지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도 은행이 계좌를 내준 거래소의 안정성이 미비하거나 해당 거래소가 자금세탁 등에 연루될 경우 은행에도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은행이 실명계좌 발급을 꺼릴 수밖에 없는 셈이다.
업비트는 거래소 가운데 가장 먼저 사업자 신고를 마쳤다. 다른 거래소들은 이달 24일 시한까지 신고 여부가 불투명하다. 이달 말부터 비트코인뿐 아니라 주요 가상자산 현금거래 시장을 사실상 업비트가 독점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윤창현 의원은 “현재의 업비트 독점 구조는 시장 질서와 소비자 선택이 아니라 행정 허가 절차가 사실상 은행에 떠넘겨진 불공정 입법 때문으로 봐야 한다”며 “모든 거래소가 공정하게 심사받고 탈락하거나 정당한 프로세스를 거쳐 합격할 수 있도록 심사 공정성 회복을 위한 특금법 개정안 처리에 속도를 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정 거래소가 시장을 독점하면, 향후 수수료 등 측면에서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문제를 인지하고 있지만, 신고 수리 권한을 가진 금융위원회는 ‘추후의 문제’라며 원칙에 따른 신고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