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1호 윤지원⁄ 2021.10.04 09:30:06
글로벌 수소경제 주도권을 잡기 위한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정부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9월 8일에는 국내 15개 대기업의 총수 및 CEO들이 국내에서의 수소경제 활성화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수소기업협의체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Korea H2 Business Summit)을 공식 발족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문화경제는 수소경제를 앞당기는 데 강점을 가진 국내 기업들을 주목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52년 업력' 화학회사의 수소경제
한국판 수소위원회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의 발족은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 포스코그룹이 주도했으며, 15개 회원사로 시작됐다. 지난 9월 8일 열린 창립총회에 참석한 초대 회원사 최고경영자 및 기업대표 중에는 이수그룹 김상범 회장도 있었다.
이수그룹의 대표 계열사인 이수화학은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과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부생 수소를 모범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기업으로 주목받아 왔다. 또한,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한 주요 과제인 저장 및 운반 기술에서 장차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전망이다.
1969년 설립된 이수그룹의 모기업인 이수화학의 주력제품은 계면활성제의 핵심 원료인 연성알킬벤젠(LAB, Linear Alkyl Benzene)과 노멀파라핀(NP, n-paraffi), 중합조정제 TDM(Tertiary Dodecyl Mercaptan) 등이다. 특히 LAB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이수화학만이 독점 생산하고 있다.
올해도 LAB의 글로벌 수급 불균형이 지속된 가운데 수익성이 개선되고, 전방산업인 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타이렌 공중합체 ABS(Acrylonitrile-Butadiene-Styrene)와 NB라텍스 수요 확대 효과로 TDM의 실적도 좋아지면서 실적 상승세를 이어갔다. 그 결과 이수화학은 상반기 기준으로 매출액 7619억 원과 영업이익 362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2.3%, 100.5% 늘어났다.
이수화학은 최근 친환경 신사업 확장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중 수소 경제 활성화를 앞당길 수 있는 LOHC 기술 개발 사업이 주목된다.
LOHC 기술 선점 위한 연구개발 착수
이수화학은 올해부터 2년간 액상 유기 수소운반체(LOHC, Liquid Organic Hydrogen Carrier)기술 선점을 위한 연구개발에 집중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4월 울산광역시와 한국화학연구원이 주관하는 정밀화학 기술협력 과제 참여기관으로 선정된 데 따른 것으로, 이수화학은 ‘LOHC’ 물질의 합성 및 공정개발 과제를 수행하게 된다.
울산시와 한국화학연구원은 울산 화학산업 기반과 첨단 연구역량을 연계하여 지역 화학산업의 지속 발전체계를 구축하고자 ‘울산시-화학연 기술협력사업’을 시행 중이며 매년 4~7개의 과제를 발굴하여 연구자금과 역량을 지원하고 있다.
수소는 단위 부피당 에너지밀도가 낮아 운송 시 높은 액화 비용이 발생해 고효율 저장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이수화학의 설명에 따르면 LOHC는 액상 유기 화합물 기반 수소 운반체로 부피 및 무게 대비 수소저장용량이 다른 저장 방식에 비해 우수해 대용량의 수소를 효율적으로 저장할 수 있다. 또한, 반복적인 수소 저장 및 방출이 가능하고 기존의 파이프라인을 이용하는 장점이 있다.
부생수소 활용으로 온실가스 감축 성공
이수화학은 수소 활용을 통한 온실가스 감축으로 바람직한 기후행동을 실천 중인 기업으로 꼽힌다.
이수화학은 부생수소(공정에서 남은 수소)를 활용한 온실가스 감축에 성공, 연간 2만 6000톤(t) 규모의 탄소배출권을 획득했는데, 이는 국내 화학공정 산업 가운데 최초의 사례다.
이수화학은 온실가스 전문 컨설팅 업체인 ㈜이너젠컨설팅과 협력해 환경부에 ‘부생수소 활용을 통한 수소제조공정 대체사업 방법론’을 제안했고, 지난해 말 이를 승인받았다. 온실가스 방법론은 정부가 공인하는 온실가스 감축 평가방법으로 한국표준협회의 현장검증과 심사를 거쳐 환경부에서 승인한다.
이수화학은 부생수소를 활용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온산공장의 온실가스 규모를 연간 2만6000톤 감축했다. 이에 이수화학은 3차 계획기간(2021~2025년) 동안 총 13만 tCO2eq(이산화탄소 상당량톤) 규모의 탄소배출권을 추가로 인정받게 됐다. 이를 지난 9월 30일 기준 KAU21 배출권 거래 시세인 톤당 3만 500원으로 추산하면 39억 6500만 원에 달한다.
이수화학은 앞서 2018년 에너지공단에서 주최한 에너지절감 우수사업장 인증 수여식에서 ‘에너지챔피언’ 자격을 획득했다. 2019년에는 환경부와 한-EU배출권거래제협력사업팀이 주최한 행사에서 ‘탄소배출권 거래제 우수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5년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처음 시작되면서 이수화학은 1차 계획기간(2015~2017년)에 의무적으로 약 5만여 tCO2eq의 온실가스 감축을 하도록 할당받았다. 이수화학은 각종 화학제품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정배출과 에너지 사용에 의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데, 이로 인해 타 업종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감축율(약 85% 조정계수)을 적용받은 것이다.
지난 9월 16일 종료된 ‘한-EU기후행동사업’에서 정리한 기후행동 우수사례에 따르면 당시 할당 대상 기업들은 대부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설비 교체나 운전효율 개선 등의 방법에 집중했고, 배출권 구매를 실천하는 업체는 드물었다.
반면 이수화학은 사업장이 위치한 울산 지역의 특성과 시장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업체 외부’와의 연계 가능성을 검토했고, 이에 따라 타사의 부생수소를 구매해 생산공정을 대체하는 방안을 구상했다.
이수화학은 자가 공정 중 원료로 사용되는 수소를 2016년 3월 초까지 직접 제조했다. 수소 제조를 위해 나프타(Naphtha)를 원료로 하여 많은 양의 LNG를 소모해 왔는데 주변의 타 업체에서 ‘부생 수소’가 점차 많아지고 있는 상황을 파악하고, 수소를 직접 생산하는 대신 덕양, SPG, 롯데BP화학 등 주변 업체와 수급계약을 통해 부생 수소를 구매함으로써 상호 이익을 도모하는 방법을 구상한 것이다.
이 같은 발상의 전환은 이수화학이 기존에도 정부가 주관하는 프로그램(ISO50001, 에너지절약기술 정보협력) 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리시스템(SAP기반 원단위 시스템, 공정 모니터링 시스템, 최대 부하관리), 다양한 감축활동(에너지진단, 원가절감시 부서별 상금 포상, 설비교체) 등을 추진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는 처음부터 조직 내, 외부의 반대에 부딪혔다. 생산부서 입장에선 ‘QC(Quality Control)’의 리스크를 감수해야 했고, 수소 공급 업체와는 배관 설치 비용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이에 약 1년 6개월에 걸쳐 조직 내 우려와 외부 업체와의 이해를 설득하는 기간이 소요됐다고.
결국 이수화학은 3개 업체와 수급계약을 맺고 부생수소 구매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 방안을 실천에 옮길 수 있었고, 그 결과 경제적 효과, 온실가스 감축, 생산 리스크 감소라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이수화학은 약 5.5만 tCO2eq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할 수 있었으며, 부가적으로 나프타의 구매, LNG의 구매 비용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이수화학 관계자는 "수소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아 석유 및 석탄을 대체할 차세대 청정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는 만큼 이번 과제 수행을 통해 관련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고 수소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