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1호 옥송이⁄ 2021.10.06 11:06:32
“기술 발달로 인해 스타벅스와 같은 커피 회사도 금융회사의 경쟁 상대”.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지난해 신년사에서 했던 말이다. 실제로 선불 충전 기반의 사이렌 오더로 무장한 스타벅스의 선불 규모는 웬만한 핀테크 기업 급이다. 그러나 금융사들은 유통업계를 적으로 돌리기보다 협업 무드로 이끌고 있다. 왜 그럴까. 1편은 편의점 업계와 맞손을 잡은 은행들 이야기다.
집 앞 5분 거리 편의점서 은행 업무까지? … 편의점에 은행이 쏙
핸드폰을 꺼내 지도 앱을 켜보자. 현재 내 위치를 검색만 해도, 근방에 다양한 편의점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편의점의 특징 중 하나는 주거 및 생활과 가깝다는 점인데, 이를 활용하려는 금융사들의 움직임이 포착된다.
하나은행은 지난 9월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금융과 유통을 결합한 디지털 혁신 라이프 플랫폼 구축이 목표다. 구체적으로 온·오프라인 채널을 융합한 점포를 구축하고, 고객 데이터를 합쳐 특화상품 및 서비스 개발, MZ세대 맞춤형 공동 이벤트 등 각 사의 역량을 활용해 종합적인 업무 제휴를 펼친다는 계획이다.
오프라인 관련 구상부터 보면 일단 CU 편의점에 하나은행을 집어넣는다. 설마, ATM기 하나만 덜렁 놓는 건 아니다. 이른바 ‘디지털 혁신점포’를 표방하는 만큼 웬만한 은행 업무를 편의점 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STM(Smart Teller Machine)을 설치한다.
STM은 은행 상담원과 직접 상담이 가능한 종합 금융 기기로, 영업점을 방문해야만 처리할 수 있었던 업무를 이 녀석 하나가 갈음한다. 간단한 ATM 기능은 물론 계좌 개설, 통장 재발행, 체크카드 및 보안카드 발급 등을 STM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이번 하나은행과 BGF리테일 합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점포 입지에 있다. 첫 디지털 혁신점포가 예고된 지역은 서울시 송파구인데, 기존 CU 지점을 리뉴얼 해 10월 중 오픈할 예정이다. 해당 입지는 인근 500m 내 일반 은행 및 자동화 기기가 없어 주민들의 금융 업무 해결이 쉽지 않은 지역이다. 생활반경과 밀접한 편의점의 장점을 활용해 금융 사각지대를 해결하겠다는 계산이다.
또한, 해당 점포는 양사의 BI와 CI를 내외부 디자인에 공통 적용해 단순 숍인숍 개념을 넘어 공간의 공유와 함께 양사의 서비스 및 콘텐츠가 결합된 공간으로 구축한다는 것이 사 측의 설명이다. CU가 제휴 브랜드 이름을 점포 간판에 전면 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양사의 협업은 점포에만 국한돼있지 않다. 온라인 융합에 대한 계획도 상세하다. 플랫폼 부문의 경우, CU 방문 횟수에 따라 포켓 CU앱에 적립되는 스탬프를 활용해 우대금리 또는 CU쿠폰 등을 제공하는 적금 상품을 제공할 예정이다.
최근 유통업계의 대세 중 하나인 구독서비스도 연계한다. CU에서 제공 중인 구독서비스와 결합해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인기 상품과 금융상품이 합쳐진 다양한 구독 상품을 개발 및 판매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또 양사의 빅데이터를 제휴해 MZ세대를 위한 다양한 이벤트와 상품개발 등 종합적인 협업에 나설 계획이다.
박성호 하나은행장은 “이번 업무협약을 통해 금융과 생활 편의점의 장점을 결합함으로써, 더 많은 고객에게 일상 속에서 편리한 종합생활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양사의 빅데이터에 기반한 생활금융 서비스를 지속 선보이고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금융 사각지대 해결 기대
신한은행도 비슷한 계획을 실행 중이다. 앞서 지난 5월 GS리테일과 손잡고, 혁신 금융 업무 추진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편의점과 은행을 합친 금융점포 구축이나 온·오프라인 통합 등 골자는 비슷하지만, 금융 사각지대 개선 방법에서 차이가 있다. 신한은행은 격오지나 도서 지역을 중심으로 금융과 유통을 결합한 특화 공간을 도입한다. 첫 시범 점포가 예정된 곳은 강원도로, 연내 오픈 계획이다.
이처럼 은행들은 편의점과 연계함으로써 금융 서비스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하는데, 그 이면에는 축소되고 있는 은행 점포 수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 4월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국내 은행 점포 운영현황’ 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은행 점포(지점+출장소) 수는 6405개로, 전년 대비 304개 줄었다. 312개가 줄었던 2017년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이다. 2018년엔 23개, 2019년엔 57개가 감소했다.
지난해 문을 닫은 점포만 334개였다. 점포 감소는 주로 대도시에서 이뤄졌다. 수도권과 광역시에서 251개 줄어 전체 감소분의 82.6%를 차지했으나, 본래 지점 수 자체가 적은 소도시 역시 좋지 않은 상황이다. 반면 편의점은 공격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편의점 5사의 지난해 말 기준 점포 수 총합은 4만 7884개로, 전년 4만 4881개에서 3003개 증가한 수준이다.
비대면 금융 서비스 확산에 따라 몸집을 줄여나가고 있는 은행들 입장에서, 편의점은 대면 고객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 딱 들어맞는 파트너인 셈이다. 게다가 편의점과 은행 맞손은 데이터 확보 측면에서도 서로 간에 윈윈이다. 편의점의 구매데이터를 은행이 활용해 상품으로 개발하는 등 다양한 서비스 구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편의점은 24시간 운영하는 데다 접근성이 좋다. 강력한 오프라인 플랫폼”이라며 “최근 편의점 등 리테일 업계에서도 자체 간편결제를 도입하거나 앱을 강화하고 있는데, 온·오프라인 라이프 플랫폼이 되기 위해선 색다른 편의와 데이터 제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