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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겨도 맛만 좋아” … 가치소비 발맞춰 날아오른 ‘농산물 리퍼브’

롯데마트 ‘농가와 상생', 이마트 ‘못난이 감자’에 큰 호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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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10호 옥송이⁄ 2021.10.18 09:15:27

외모지상주의? 인간계에만 있는 게 아니다. 농산물에도 있다. 쉽게 생각하면 된다. 잘생긴 녀석들이 상품성을 더 후하게 인정받는 거다. 물론 뛰어난 맛은 전제 사항이다.

농산물 계의 '프로듀스101'(아이돌 서바이벌 TV 프로그램)은 어쩌면 인간 세계보다 더욱 가혹하다. 다시 상위권에 진입할 방법조차 없다. 아주 작은 흠조차 결격 사항이기 때문이다. 심사를 통해 꼽힌 우수한 농산물은 최고급 상품으로 팔려나가지만, 나머지는 폐기되기가 일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해마다 상품의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의 양은 전세계 음식 생산량의 3분의 1 수준인 13억 톤에 달한다. 게다가 이 어마어마한 음식물을 폐기할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못생겨도 좋다, 맛만 좋다면’으로.
 

모양이 좋지 않거나, 흠이 있는 농산물은 최상품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농산물 리퍼브 바람이 불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사진 = 픽사베이 


농산물도 이른바 리퍼브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리퍼브는 영어 ‘Refurbished’를 축약한 것으로, 반품이나 전시상품 등 약간 흠이 있는 상품을 할인 판매하는 것이다. 농산물 리퍼브는 맛과 영양상 문제는 없지만, 흠이 있거나 상처가 있는 상품들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방법이다. 우리말로 치환하자면 못난이 채소나 과일로 이해하면 된다.

최상급 아니면 어때

해외의 경우 대대적으로 못난이 농산물을 팔거나, 과잉생산 된 채소·육류를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푸드 리퍼브가 활성화되고 있다. 이에 비하면 국내 농산물 리퍼브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정도다. 주로 대량의 농산물을 매입하는 대형마트 업계가 이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 9월은 대목인 동시에 다량의 농산물이 창고로 향한 시기다. 추석 등의 명절은 농수산물 선물세트가 가장 많이 팔리지만, 소량의 흠만 있어도 판매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롯데마트는 해당 문제를 착안, 상생농산물 기획전을 진행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명절 선물세트는 선물 보내는 사람의 마음과 정성이 그대로 전달되기에 농산물의 맛과 외관 모두 최상급이어야 한다. 이 때문에 지역 농가와 유통사 MD 모두 고품질 작물을 사수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다”며 “그러나 아무리 우수한 작물일지라도 흠이 있으면 창고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올해는 빨라진 명절과 수확기의 장마로 인해 홍로 사과의 흠과(흠 있는 열매) 비율이 작년보다 15% 이상 늘었다. 배의 경우는 흠과 비율이 30%나 늘어나면서 수확량의 3분의 1만이 선물세트로 나갔다”며 “선물세트용 사과와 배를 수확하는 시기에 비가 많이 내리면서 사과의 색이 충분히 붉어지지 못했고, 거친 바람에 배가 서로 부딪치며 상처가 많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롯데마트는 외모 때문에 추석 선물세트로 판매되지 못한 상품들을 모아 기획전을 진행했다. 사진은 '상생 농산물 기획전'에서 판매된 사과. 사진 = 롯데마트 


'상생' 붙이니 어감도 달라

롯데마트는 기획전을 통해 명절 기간 판매되지 못한 농작물을 모아 저렴하게 판매했다. 특히 작명을 달리했다. 기존에는 흠집 작물에 ‘B+’라는 상품명을 붙였으나, 이제는 작물의 가치에 집중한다는 뜻을 담아 ‘상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가치 소비 및 친환경 트렌드와 푸드 리퍼브의 접점을 이해한 것이다. 가치소비는 소비자 자신이 가치를 부여하거나, 지향하는 바에 따라 만족도 높은 소비재를 과감히 소비하는 성향을 뜻한다.

이 회사가 상생농산물 기획전을 통해 판매한 품목은 사과, 배, 인삼이 대표적인데, 인삼의 경우 산지 축제로도 처리할 수 없던 재고를 해결했다. 인삼은 2년째 이어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큰 피해를 입은 농산물 중 하나다. 정상 상품 대비 외관이 고르지 않은 인삼은 50% 이상 시세가 급락한 바 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기획전 진행 결과 매입 물량 중 사과는 83%를 판매했고, 배는 85%, 인삼은 67%를 판매했다”며 “사과, 배, 인삼이 상생1탄 이었다면, 상생2탄으로는 수산물을 진행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앞으로도 농어민을 도울 수 있는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농산물 리퍼브, 곧 대세

농산물 리퍼브와 인연이 있는 곳은 또 있다. 이마트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맞손을 잡은 정용진 신세계부회장이 ‘못난이 감자’를 기획해 식품 손실을 대폭 줄인 바 있다. 해당 감자는 둥글지 않은 생김새를 이유로 규격 외 판정을 받아 폐기될 운명이었으나, 외모 대신 ‘맛’을 강조해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이어 올해에도 SSG닷컴을 통해 다양한 못난이 농작물을 선보인 바 있다.

한편, 국내 농산물 리퍼브 시장은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소비 트렌드와 맞물리는 것뿐만 아니라, 가격도 시중 대비 저렴해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을 충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불황형 소비인 셈이다.

게다가 조리를 끝마치면 예쁜 외모도 다 무너지기 마련이다. 앞서 2014년 프랑스의 대형마트 ‘인터 마르셰’는 등급 외 농산물 소비 캠페인을 벌였는데, 획기적인 문구로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고 판매량도 대폭 늘렸다. “수프에 들어간 못생긴 당근, 누가 신경 써?” 국내도 마찬가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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