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음식점총량제’ 관련 발언에 대해 야당 대표가 “아무말 대잔치”라고 비난했지만, 2018년 국감 중 외식업 전문가 백종원 더본 대표가 국감장에서 한 발언, 즉 “미국 같은 경우에는 새로운 자리에 매장을 열려면 최소한 1년, 2년이 걸린다. 왜냐하면 인스펙션(inspection)이 잘 안 나오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식당을 쉽게 못 하는데 저희 같은 경우는 신고하면 바로 할 수 있는 것이 문제다”는 발언이 전해지면서 논쟁이 붙고 있다.
미국 생활을 하면서 식당 경영하는 친구를 곁에서 도운 경험으로 말하자면, ‘식당 개업을 완전 자유화하는 것보다는 개업하기 어렵게 만드는 게 국민 경제에 더 낫다’는 의견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우선 백 대표가 말했듯 미국에서는 식당 ‘신규’ 허가를 얻기 힘들다. 모든 식당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불고기 한식당처럼 테이블 위에 불을 피워놓고 고기를 굽거나 찌개를 데우거나 하면서 식사하는 식당의 허가 절차는 엄청 까다롭다. 화재 위험 등에 대한 소방당국의 까다로운 검사(인스펙션) 절차를 통과해야 하는데, 설비에 돈도 많이 들고, 검사 기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미동포가 한식당을 열고 싶으면 기존 식당 중 사들일 수 있는 것을 물색하는 게 첫 번째다. ‘기존 업소라야’ 빠른 시간 안에 개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폐점이 임박한 식당만 찾아다니며 중개해주는 한인 업자가 있을 정도다. 망할 업소는 비록 현재 장사는 안 되지만 관련 허가를 이미 다 갖고 있기 때문에, 망할 업소 중 개선에 따라 매출을 회복시킬 만한 여지가 있는 업소를 찾아다니며 거간꾼 노릇을 하는 게 이들 업자들의 주특기다.
미국에서 식당 하려면 ‘식당 해온 자리’부터 찾아야 하는 이유
그래서 미국의 경우 상가 지역이라도 식당 자리는 거의 정해져 있으며, 업자가 바뀔 뿐 식당의 전체 숫자는 한국처럼 경기-실업 상황에 따라 폭발적으로 늘어나지는 않는 듯 싶다.
물론 미국에서 모든 식당의 개업에 제한을 두는 것은 아니다. 커피숍 같은 것은 비교적 쉽게 문을 열 수 있는 듯 하다. 필자가 살던 버지니아의 백인 거주 지역에 어느 날 보니 백인 노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커피집이 하나 생겼다. 아담하고 예쁜 커피숍이었지만 “노부부가 저걸 어떻게 운영하려고… 용기도 좋네”라고 생각하고 지켜봤더니 역시 몇 달이 안 돼서 문을 닫았다.
미국에서 신규 개업이 거의 불가능한 업종으로 세탁업도 있다. 세탁소의 경우 세탁 과정에서 유해 물질을 배출하기 때문에, 이 유해 물질에 대한 처리 시설을 갖춘 빌딩에만 세탁업 허가(permit)가 주어져 있다. 그리고 새 건물에 대한 세탁업 신규 허가는 지자체가 거의 내주질 않는다. 식당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세탁소 건물’은 미리 정해져 있고, ‘신규 허가’를 받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니 세탁소도 ‘사실상의 총량제’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이른바 보수 야당과 언론은 ‘자유’를 말한다. “식당 할 자유를 제한 말라”는 식이다.
미국에서 식당 할 자유, 기업 할 자유는 보장된다. 단, 공공의 안전을 위해 꼭 지켜야 할 규제는 엄격하게 적용된다. 그럼으로써 사실상의 총량제 형태로 운영된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엄청난 돈을 풀어 위기를 막아낸 미국 중앙은행(Fed)과 정부는 최근 이른바 테이퍼링(tapering)이라 불리는 통화 환수 정책의 실시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이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것은 실업률이다. 국민의 먹는 입(口)에 대해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것은 일자리이지, ‘장사할 자유’는 아니다. 미국 신문에서 고용률에 대한 기사는 봤어도, 장사할 자유 따위에 대해 논쟁이 벌어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민의 고용률을 높이려면 정부가 각종 정책을 써서 직장(일자리)을 늘려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반면 ‘규제 없이 맘대로 장사할 자유’를 주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냥 선언(립 서비스)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의 중앙정부가 지자체가 “오늘부터 식당-세탁소 등에 대한 인스펙션 절차를 한국처럼 없애버릴 테니 맘대로들 장사해서 모두 부~~~자 되세요”라고 선언한다면, 그날은 미합중국이라는 나라의 분해가 시작하는 날이 될 것 같다. 그런 나라는 힘세고 돈많은 사람만이 살아남는 ‘無규제 정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추구할 건 ‘시장’ 경제이지, ‘無룰’ 경제가 아니다
규제란 이런 것이다. 시장으로 치자면 ‘각 상인이 정해진 자리에서, 정해진 업종의 물건을, 강압적 수단이나 사기를 치지 않으면서(전제조건) 자유롭게 팔아라. 이를 어기면 시장에서 쫓아낸다’가 될 것이다. 축구로 치자면 ‘파울을 범하지 않은 상태에서(전제조건) 마음껏 몸과 머리-전략를 써가며 플레이하라’는 식이다. 전제조건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엘로우카드, 레드카드를 주면서 퇴장시키는 수순이 기다리고 있다.
앞의 전제조건(규제 또는 룰)을 생략하고, 제멋대로 팔고 플레이하라고 풀어놓는다면 시장은 깡패가 지배하고 되고, 축구 경기장은 유혈 난장판이 될 것이다. 한국의 ‘이른바 보수’ 정당-언론처럼 “자유가 절대진리이고 자유만 보장되면 만사 오케이다” 식으로 외친다고 경제가 좋아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물론 이재명 후보가 말한 음식점총량제와 미국의 인스펙션 제도는 같은 게 아니다. 앞의 것은 숫자 제한이고, 뒤의 것은 룰 적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 미국의 ‘룰 적용’은 사실상의 숫자 제한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의 이른바 규제 완화(주로 대기업을 위한) 탓에 편의점 사이의 거리 규정이 대폭 완화되면서 ‘한 집 건너 편의점’, ‘빌딩마다 편의점’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이후 죽어 나가는 건 가맹점주이며, 재미를 보는 건 재벌 본사들이다. 편의점 할 자유를 풀어줌으로써 죽음으로 가는 입구를 더 크게 펼치는 잘못을 더 이상 범하지 않기를, 음식점총량제 논쟁을 보면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