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 신청인들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감내해야 한다고 볼 수 없어"

출제오류 논란이 불거진 수능 생명과학Ⅱ 문항을 둘러싼 첫 법정 공방이 열린 8일 오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집행정지를 신청한 수험생과 소송대리인들이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심문이 끝난 뒤 법정에서 나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행정법원은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II 문항에 대해 정답 결정의 효력을 정지하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10일 나올 예정이던 생명과학II 과목 성적 통보는 미뤄졌다.

앞서 수험생들은 생명과학II 20번 문제에 오류가 있다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의 정답 결정을 취소하라는 취지의 소송을 지난 2일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9일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이주영)는 “20번 문제 정답을 5번으로 결정한 (평가원) 처분의 효력이 유지되는 경우, 신청인들은 생명과학II 과목의 등급이 결정된 성적표를 받는다”라고 말하며 “이를 기준으로 2022학년도 대입 수시전형 및 정시전형에서 합격 여부가 결정된다. 이로 인한 손해는 금전적으로 보상할 수 없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에 해당하므로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 5번을 정답으로 결정한 처분의 효력을 정지할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이번 결정으로 성적 통보가 지연될 수 있고 이에 따라 2022학년도 대입 전형 일정에 지장을 주겠지만, 효력 정지 기간을 본인 판결까지로 정해 신속히 심리하면 지장을 최소화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대입 전형 일정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해당 수험생들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감내해야 한다고 볼 수 없다”라며 “처분 효력을 본안 판결 선고 시까지 정지하더라도 공공복리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칠 우려는 없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1심 본안판단은 효력 정지를 결정한 행정 6부가 맡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평가원은 이번 소송에서 고위로펌을 선임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국경제는 8일 평가원이 이번 소송에서 대형 로펌인 법무법인 지평을 선임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평 소속의 박성철 변호사와 민지홍 변호사 등이 이번 소송에 나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정부 기관들은 소송을 진행할 시에는 정부법무공단을 이용한다. 법무부 산하 단체인 정부법무공단은 상대적으로 민간 로펌보다 가격이 저렴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달리 평가원은 가격이 비싼 민간 로펌을 이용하며 혈세 낭비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관련해 본지가 접촉한 평가원 측 관계자는 “평가원이 정부법무공단이 아닌 대형로펌을 선임한 이유는 전문성 때문이다. 교육행정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로펌을 찾고 있었고, 이에 따라 현재 선임한 로펌이 교육행정에서 다른 로펌과 전문성이 뛰어나 선임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2022학년도 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사진=한국교육과정 평가원

네티즌들은 평가원의 행보에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은 “고3이 저 정도의 난이도를 풀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저게 사람이 풀라고 만든 문제냐?”, “오류가 있는 문제를 낸 것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교육자들이 평가원의 주축이라는 것이 실망이다”, “ 교수와 선생 이런 사람들이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경향이 많다. 오로지 답은 자기만 정해주는 것 한 개만 인정한다는 태도가 이기적이라는 가치관이다”, “ 해당 문제가 수능에 왜 들어가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아이들 인생을 가지고 노냐? 평가원은 똑바로 해라”등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네티즌들의 경우, 대학 지원 일정이 미뤄진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네티즌들은 “내일이 점수 발표인데. 성적 통보가 연기되면 학교 지원도 연기 되는 거 아니냐? 좀 더 빨리 결정해달라”, “내일이 당장 성적 발표다. 지금 와서 발표 연기라니. 연말에 원서 접수 어떡하느냐”, “입시 일정이 줄줄 꼬이겠다. 너무 힘들다” 등의 댓글을 남겼다.

현재 논란이 되는 생명과학 II 20번 문제는 동물 종 P의 두 집단의 유전적 특성을 분석하여 멘델 집단을 가려내야 한다. 학원가 등에서는 ‘주어진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집단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 오류’라는 의견이 나온 바 있다.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집단의 개체 수가 0보다 작은 음수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