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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80) 위성 프로젝트 ‘공생하는 사물들’] 기후위기 시대에 다른 동·식물로 변신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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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13호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2021.12.16 09:15:00

(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아르코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2021 아르코미술관 융복합 예술 페스티벌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는 ‘기후 위기와 팬데믹을 겪고 있는 동시대 예술가들의 작업을 통해 인간과 기술, 환경 사이의 관계를 고찰’한다.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에서는 미술관과 스페이스 필룩스에서의 전시뿐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에서 구현되는 온라인 전시와 위성 프로젝트가 함께 진행되었다. 더 갤러리 이번 회에서는 위성 프로젝트 ‘네트쇼’, ‘제로의 예술’, ‘환대의 조각들’ 중 ‘공생하는 사물들’을 기획한 ‘네트쇼’의 정소라 큐레이터, 참여 작가 권혜원, 진 인이 나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 ‘네트쇼’는 2020년 12월부터 인스타그램을 기반으로 전시와 온라인 북클럽 등을 선보였다. 현재도 이정형 개인전 ‘바닥에 마킹을 하면서 우리는 너를 엘름그린 너는 피크라고 불렀어’가 진행 중이다.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의 주제에 부합하는 동시에 그동안 ‘네트쇼’가 추구해온 방향성을 유지해야 했는데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는가? 또한 참여 작가 선정은 어떻게 이뤄졌는가?

정소라 : 아르코미술관에서 ‘네트쇼’의 두 가지 지향인 ‘기술’과 ‘환경’이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의 기획 콘셉트와 연결된다고 판단해 ‘네트쇼’를 섭외한 것이기 때문에 전시 속의 전시를 준비하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나는 예술가들의 창의성을 신뢰하고 가능성을 크게 보는 편이다. 온라인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예술가들이 무엇을, 어떻게, 실험적으로 흥미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물리적 공간에서는 시도할 수 없었던 작품(경험)을 보여주는 전시나 포럼 등을 기획하게 되었다. 주제적인 면에서는 인류에게 긴급하다고 생각되는 기후 변화라는 문제를 다뤄보고 싶었다. 이것이 ‘네트쇼’를 시작하게 된 첫 번째 이유이다. ‘공생하는 사물들’이란 주제를 정하고 세계 속 모든 존재를 동등성을 지닌 실재로 보는 객체 지향적 관점에서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을 다루는 작가들을 선택했다. 행동주의자인 애크로이드와 하비, 벤 오크리(Ackroyd & Harvey and Ben Okri), 환경과 관련된 주제를 전면에 내세워온 메리 매팅리(Mary Mattingly), 비인간 존재의 권리에 대한 작업을 지속한 진 인이 나래, 다른 종과 섞여 혼종이 되는 SF적인 인터랙티브 픽션을 계획한 권혜원 등이다.
 

네트쇼, ‘공생하는 사물들’, 메인 페이지 캡처, 2021, 도판 제공 = 네트쇼
애크로이드와 하비, 벤 오크리, ‘강변에서, Act 1’, 도큐멘터리 영상, 1분 45초, 스틸컷, 2021, 도판 제공 = 네트쇼

- 작품과 전시가 비물질적이라는 점을 환경 문제와 연결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정소라 : 전시 및 행사가 온라인 플랫폼에서 진행되다 보니 탄소 배출이나 불필요한 폐자재가 줄어든다는 부분도 고려하긴 했지만, 우선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또한 비물질적인 공간에서 작품을 선보인다고 탄소 배출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물리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전시들과 비교한다면 조금 더 친환경적이지 않을까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진 인이 나래, ‘추상성의 법칙: 범-생명 권리 헌장 만들기’, 온라인 참여 플랫폼, 스크린 캡처, 2021, 도판 제공 = 네트쇼

- 인간과 기술, 환경(자연)을 고찰하는 작품을 감상할 때는 특히 현실과의 영향 관계나 실천 등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인간의 욕망은 제각각이고, 그로 인해 근시안적인 판단을 내리게 되는 경우도 많아 예술을 통한 사유와 현실의 간극이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똑같은 상황도 문제 인식을 하고 겪는 것과 아무 고민 없이 겪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권혜원 : 나는 생태학적인 작업이 현실에서 실천적인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 작품이 환경 운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와 같은 주제를 다루는 작업의 최종 목적이 행동주의적인 실천에 있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예술이 할 수 있는 것과 행동주의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예술은 현재의 우리가 갖고 있는 인식을 재고하게 하는 여러 전략 중 하나이다. 행동주의적인 입장에서 보면 사소하고 작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접근 방법이 존재한다.

진 인이 나래 : ‘추상성의 법칙: 범-생명 권리 헌장 만들기’(2021)처럼 선언도 해보지만 명확한 답을 찾기 어렵고, 나의 작업이 직접적인 사회운동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희망적인 생각만 하지 않는다. 나의 작업에서 최종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어떤 한 존재만을 위한 세상은 없다’이다. 여기엔 ‘항상 선할 수 없고 미래는 우울한 방향으로 가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것을 고민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이 함께 한다. 나의 작업이 당장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시도를 통해 변화를 일으키는 지점을 만들어내면 그것이 사회적인 의미로도 연결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확신이 있다기보다는 질문의 단계에 있다고 생각하며, 이런 이유로 나의 작업에서 워크숍, 즉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은 중요하다.

정소라 : ‘공생하는 사물들’의 기획 의도는 직접적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로 상상력을 자극해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를 생각해보고, 다수가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재고하는 기회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완벽하게 순종인 인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기술을 통한 이종 간 결합 속에서 진화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애크로이드와 하비, 벤 오크리가 워크숍 ‘대지를 색칠하라’에서 말했듯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일 뿐이다. 나는 예술의 정치적인 힘도 인정하는 편이다. 이와 같은 작업이 실제 우리 현실에 미친 영향이 미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은 우리의 태도와 생각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진 인이 나래, 워크숍, ‘구체성의 법칙: 이상한 과일의 입법’, 2021, 도판 제공 = 네트쇼

- ‘추상성의 법칙: 범-생명 권리 헌장 만들기’는 UN인권최고대표사무소의 ‘세계인권선언’에서 시작한다. 여기에 참여자들이 첨삭하면 작가가 그것을 수렴해 최종 완성본을 만드는 방식이다. ‘범-생명 권리 헌장’인데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선언에서부터 시작하면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진 인이 나래 : 나의 작업은 비인간 존재를 위한 입법을 사회에 직접적으로 제안하기보다 인간의 법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관계를 우리가 어떻게 규정해왔는지 사유하여 기존 인식을 탈피하고, 새롭게 학습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우리의 인식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주변화되었을 때를 상상해볼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선언조차 누군가를 억압했고, 그래서 저항이 일어났다. 억압은 아주 선한 의지에서 선언된 추상적이고 전체적인 유토피아의 가장자리에서 일어난다. 선언이 아무리 모두를 담으려 해도 구체적으로 지시되지 않은 상대에게조차 억압은 발생한다. 더군다나 인간의 법이 하는 일 중 하나는 인간 외의 자연을 소유의 대상과 사유의 재화로 규정하는 것이다. 또한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한 명의 사람에게는 선과 악이 모두 존재한다. 내가 아무리 선한 것을 추구하려 해도 의도하지 않게 악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 지점들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정소라 : 인간이 만든 형식에 새로운 내용을 덧붙이면서 기존의 것을 수정해나가는 작업이라 보면 될 것 같다. 인간에서부터 출발한다기보다 그것을 비판적으로 보면서 변화시키려고 하는 작업이다.
 

진 인이 나래, 워크숍, ‘구체성의 법칙: 이상한 과일의 입법’, 2021, 도판 제공 = 네트쇼

- 작가가 작성한 ‘추상성의 법칙: 범-생명 권리 헌장 만들기’의 전문(前文)을 보면 헌법이나 헌장에 어울리지 않는 문학적이고 시적인 표현들이 등장한다. 남다른 의도가 있을 것 같다.

진 인이 나래 : 법문에 쓰이는 논리적이라 여겨지는 언어, 무언가를 규정하는 폭력적일 수 있는 언어를 벗어나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려면 문학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했다. 실제로 인간권리헌장을 반박하며 나온 다성성을 지향하는 문헌 중 문학적인 것들이 있다는 자문을 받기도 했다. 그동안은 참여자들이 함께 생각할 기회(워크숍)를 제공해왔는데, 비대면 상황에서 글로 참여를 유도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폭제처럼 작동할 수 있도록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두었다.

- ‘전환의 순간’은 다른 존재로의 변이를 다룬다. 인간이 아닌 존재는 많다. 그런데 왜 식물로 변이하는 상황을 다루었는지 궁금하다.

권혜원 : 오늘날 젠더의 전환이 가능해진 것처럼, 생물학적으로 다른 종(種)이나 계(界) 간의 전환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그것이 의식적으로 가능할지, 아니면 줄기세포 단위에서 의학적으로 가능할지 알 수는 없지만, 만약 전환의 선택과 실현이 가능하다면 ‘사람들은 어떤 경험을 얻게 될까?’ ‘어떤 사람들이 전환을 원할까?’란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작년부터 식물과 정원 등을 조사, 연구하고 있어서인 것 같다. 만약 ‘유령과 괴물들의 풍경’(2019)을 제작할 때처럼 제주도 동굴을 계속 리서치하고 있었다면 다른 작품이 나왔을 것이다.

- 혹시 식물을 선택한 데에 물리적으로 움직이지 않아서란 이유도 있는가? 씨앗 등이 이동하긴 하지만 우리 눈에 식물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권혜원 :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식물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생각은 인간 중심적인 것이다. 식물이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음에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인간의 시공간적 스펙트럼 안에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밝혀졌듯 숲속의 많은 나무가 화학적 물질, 곰팡이나 뿌리 등으로 신호를 교환하고 아주 먼 곳까지 다다른다. 사람의 관점에서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권혜원, ‘전환의 순간’, 인터랙티브 픽션, 스크린 캡처, 2021, 도판 제공 = 네트쇼
권혜원, ‘전환의 순간’, 인터랙티브 픽션, 스크린 캡처, 2021, 도판 제공 = 네트쇼
권혜원, ‘전환의 순간’, 인터랙티브 픽션, 스크린 캡처, 2021, 도판 제공 = 네트쇼

- 나의 경우, 다른 종이나 계로 전환될 수 있다는 상상을 할 때 기계 혹은 동물이 아닌 식물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 또 자연을 생각하게 하는 이슈인데 깊이 들어갈수록 과학기술과 긴밀해진다.

권혜원 : 식물 호러가 이번 작업의 중요한 레퍼런스였다. 철학과 인문학적 계보에서는 찾기 어렵지만, 문학이나 영화에서는 식물이 호러적 존재로서 인간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변종을 완성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꽤 오래전부터 발견되어왔다. 나는 어슐러 르 귄(Ursula Le Guin)의 ‘제국보다 광대하고 느리게(Vaster Than Empires And More Slow)’(1971)나 제프 밴더미어(Jeff VanderMeer)의 ‘서던 리치(Southern Reach)’ 시리즈(2014)뿐 아니라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어셔가의 몰락(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1839), 한강의 ‘채식주의자’(2007)도 같은 계보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이야기의 다수를 여성들이 써왔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것의 실현 가능성은 하이테크놀로지와 연결되는데, 실제로 해당 연구를 보면 생물조직이나 식물조직을 바탕으로 한 오가노이드(organoid)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허황한 상상은 아니다. 그것이 얼마나 현실화되었고, 현실화될 수 있는지를 확인해 작업에 반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 인터랙티브 픽션은 참여자의 선택에 따라 결말이 바뀐다. 나는 모든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번 되돌아가 모든 선택지를 다 클릭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진짜 원하는 방향을 선택해 한 번만 실행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모든 선택의 결과를 다 확인하는 것이 맞는지 궁금해졌다.

권혜원 : 인터랙티브 픽션이므로 전적으로 참여자(플레이어)에게 달려 있다. 심지어 중간에 끝내도 된다. 나에겐 바로 이런 부분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누군가는 단선적인 하나의 이야기 전개를 원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작가가 구축해놓은 여러 세계를 보고 싶을 것이다. 이전에 정소라 큐레이터가 플레이어를 왜 추방자로 설정했는지 질문했었는데, 인터랙티브 픽션은 시작할 때 독자에게 어떤 캐릭터나 위치를 부여하는지가 중요하다. ‘전환의 순간’의 플레이어인 추방자는 루스 이리가레(Luce Irigaray)와 마이클 마더(Michael Marder)의 ‘식물의 사유(Through Vegetal Being)’(2016)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두 철학자가 식물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된 시작점에 추방이 있었다. 이리가레는 ‘검경(Speculum of the Other Woman)’(1974)을 출간한 뒤 자신이 속했던 학회와 대학에서 추방되었다. 그때 그녀는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며 식물에서 피난처를 찾고 회복했다. 마더는 유태인으로 러시아, 캐나다, 캘리포니아 등을 이동하며 성장했다. 어디에도 속하기 힘들었던 그 역시 오래된 숲에서 위안을 받았고 그의 철학적 사유가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만약 미래에 계의 전환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면 추방된 사람들일 거라 설정하게 되었다.

- 권혜원의 작업 중 이미지 없이 텍스트로만 진행된 것은 ‘전환의 순간’이 처음인 것 같다.

권혜원 : 동굴 작업 때부터 카메라가 이미지를 기록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더 다양한 존재를 다룰수록 볼 수 없고 기록할 수 없는 영역이 늘어난다. 식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내가 상상하는 변환된 존재를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것보다는 그 상태를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인 이미지가 없을 때 사람들은 더 많이 상상하는 것 같다. 우리가 다다를 수 없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무언가를 상상할 수 있으려면 이미지가 없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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