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6호 윤지원⁄ 2021.12.24 16:40:25
‘노후 안전판’이라는 주택연금의 중도 해지가 늘고 있는 가운데, 집값 급등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아시아경제의 24일자 보도에 따르면 주택연금 가입 기준을 시가 9억 원에서 15억 원으로 상향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남은 일생을 연금으로 받기보다 가격이 치솟은 집을 팔아 노후생활자금을 마련하려는 가입자가 많아졌다.
주택연금이란 만 55세 이상(근저당권 설정일 기준) 고령층이 소유한 주택(본인 혹은 배우자 소유)을 담보로 맡기고 평생 또는 일정한 기간 매달 연금처럼 노후생활자금을 받는 상품이다. 이때 실제 거주지로 이용하고 있는 주택이어야 하며, 주택 보유 수는 부부 기준 공시가격 등이 9억 원 이하인 주택이어야 한다.
한 70대 어르신은 지난 5월 당시 시세 5억 5000만 원의 아파트를 담보로 주택연금에 가입해 매월 150만 원의 연금을 받아 왔으나, 1년 새 집값이 2배 이상 뛰며 10억 원대에 거래되고 있어 요즘 주택연금 중도 포기를 고민 중이다. 또 다른 60대 어르신은 2017년 초 시세 8억 원의 아파트를 담보로 월 210만 원의 연금을 받았으나, 집값은 현재 20억 원대 후반으로 크게 오른 반면 연금에는 주택 인상률이 반영되지 않아 고민 끝에 최근 주택연금을 해지했다.
이에 태영호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 12명은 지난 22일 주택연금 가입 기준을 공시가격 9억 원에서 15억 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의 주택금융공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집값이 급등한 현실을 반영해 주택연금의 담보로 제공하는 주택 공시가격의 기준을 15억 원 이하로 상향하고 평가가격 상한을 15억 원으로 설정한다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다.
국토교통부의 22일 발표를 보면 내년도 전국 표준지(토지) 공시지가 상승률은 10.16%, 전국 표준 단독주택 공시가격 상승률은 7.36%다. 또한, KB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2억 1639억 원이다. 공시가격으로는 약 9억 원 수준인데, 이는 현행 주택연금 가입 상한선에 해당한다.
태 의원은 "최근 집값 급등으로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없는 사례가 늘면서 가입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며 "우리나라 가구주 평균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고령층의 노후 생활 안정과 주택연금의 건전성을 위해 주택금융공사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집값 상승은 주택연금 가입자 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택연금 가입자 추이는 대개 집값 상승 추이와 반비례한다. 집값이 오르면 집을 팔아 거금을 만드는 것이 이익이고, 집값 상승이 더디면 일정액의 연금을 안정적으로 받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주택금융공사 통계에 따르면 2017년 주택연금 가입 건수는 4만 9815건에서 2018년 6만 52건, 2019년 7만 34건, 2020년 8만 1206건 등 매년 1만 건 넘게 증가했다. 그런데 올해 9월 기준 가입 건수는 기준 8만 8752건으로 전년 말에 비해 7500여 건 늘어나는 데 그쳤다.
기존 가입자들이 중도해지하는 사례도 빠르게 늘고 있다. 주택연금 중도해지율은 지난 2017~2019년까지 최대 3.12%, 최소 2.46% 수준을 유지했으나, 지난해 4.19%로 증가했고, 올해는 더 높아져 지난 9월 기준 5.5%에 달했다. 중도해지 건수는 2019년 1527명에서 지난 9월 기준 3185명으로 2배 넘게 증가했다.
이는 집값이 크게 올랐지만, 연금 액수에는 인상률이 반영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현행 주택연금은 가입 당시 주택가격을 기준으로 연금액이 결정돼 집값이 올라도 연금에 인상률이 반영되지 않는 구조"라며 "제도 활성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집값이 높아졌다고 주택연금을 중도해지하고 집을 파는 것이 과연 유리하기만 할까? 물론 주택연금 해지는 가입자 마음대로다. 본인의 노후에 더 유리한 쪽으로 선택하는 것은 합리적인 경제적 의사결정이다.
하지만 성급한 중도해지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에 부딪힐 수도 있다. 주택연금이란 기본적으로 담보 대출의 속성을 가진 제도이기 때문이다. 즉, 주택연금을 해지할 경우 그동안 받은 연금수령액에 비례해서 이자 및 보증료의 금융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복리 이자까지 더해진다. 게다가 재가입도 제한된다.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주택연금 중도해지 시 그동안 받은 연금액과 이자 등 금융비용을 포함한 주택연금대출잔액을 한꺼번에 상환해야 한다. 또 초기보증료는 반환되지 않고 상환자금 마련을 위해 금융비용이 추가 발생할 수도 있다. 동일주택으로 3년 동안 재가입이 제한되며, 재가입 시에는 초기보증료를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
따라서 집값이 올랐다고 해서 월 수령액수가 함께 높아지는 것이 가입자에게 반드시 좋은 것이라고 볼 수 없다.
한편, 주택연금 기준가격 상한선을 높이는 것이 정부 부동산 정책과 상충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러한 우려 역시 주택연금의 기본 속성이 ‘담보대출’이라는 데 근거한다.
주택연금은 설정 방식(종신혼합방식, 확정기간혼합방식, 대출상환방식, 우대혼합 방식 등)에 따라 최대 50%까지 한 번에 인출이 가능하다. 예컨대 2억∼3억 원을 미리 받아 쓴 뒤 갚는 방식이다.
그런데 정부는 2019년 12월 부동산 가격 안정화 대책으로 15억 원을 초과하는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에 발의된 개정안의 15억 원 상향안은 정부의 대출 규제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