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6호 유재기⁄ 2022.01.21 16:02:54
일면식도 모르는 사람끼리 가상화폐를 모아 누군가의 경매를 도와주자고 한다면 선뜻 손이 나갈까? 그러나 실제 이런 일이 발생했다. 지난해 11월 18일(현지시간) 미국 헌법 초판이 소더비 미국 경매로 나왔다. 경매 물품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 컸지만 이를 능가하는 화제의 중심은 암호화폐 투자단체였다.
이 단체는 경매 시작 일주일 전, 온라인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해 가상화폐 중 하나인 이더리움으로 모금액을 충당했다. 초기 모금 목표액은 2000만 달러였지만 모인 금액은 무려 4000만 달러(약 473억 원)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단체는 헌법 초판본을 손에 넣지 못했다. 최종 낙찰자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4320만 달러에 미국의 상징을 거머쥐었다.
가상화폐 기부를 밑천 삼아 당시 미국 소더비 경매장에서 최종 낙찰권을 놓고 끝까지 경합을 벌인 단체가 바로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의 약자 ; 탈중앙화 자율 조직)다.
당시 ConstitutionDAO는 낙찰에 실패했지만 트위터를 통해 "우리가 바라던 결과는 아니지만 우리는 역사를 만들었다"면서 "우리는 소더비 경매에 참여한 최초의 DAO이며, 마지막 DAO는 아닐 것"라며 그 세를 강조했다.
여기서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래서 DAO가 뭔데?"
"이게 미래 먹거리가 되겠어?" … 그러나 혁신은 언제나 비꼼의 대상이기도
대부분 기업은 모두 중앙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DAO는 정반대다. 비유하자면 드라마 속 메인 주인공 말고 수많은 서브 조연들이 목소리를 높여 자율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면서 극의 줄거리를 바꿔나가는 것 같은 형태다. 만약 이런 프로세스가 점점 더 활성화된다면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야기할까?
자판기의 비유로도 DAO에 접근해보자. 자판기는 소비자가 일정 금액을 투입하고 버튼을 누르면 알아서 상품을 건내는 아주 간단한 프로세스로 운영된다. 사람이 필요없는 시스템이다. 자판기가 DAO라면, DAO는 사람이 개입해야 하는 부분을 코드로 대체한다. 상품의 재입고가 필요할 때 정보를 보내고 재고가 도착하면 로봇이 다시 상품을 채우는 행위와 비슷하다. 이처럼 '인풋'과 '아웃풋'만 존재하는 자율성이 DAO의 본질이다.
DAO는 스마트 계약이라는 과정을 통해 진행된다. 즉 계약 전 서로 합의한 내용을 프로그래밍해 전자 계약서에 넣고, 계약의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계약된 내용이 실행되는 시스템이다. 앞서 언급한 자판기의 원리다. 커피 버튼을 누르면 커피가 전달되고, 코코아를 누르면 코코아가 전달된다. 이처럼 규칙이 성립되면 자금 조달이 진행되며, 이렇게 의사 결정권자들은 DAO에 투자하며 투표권을 얻는다.
이처럼 DAO라는 개념은 새로워 보이지만 가상화폐 투자자라면 이미 그 맛을 봤을 수도 있다. '유니스왑(UNISWAP)' 이 바로 그것. 2018년 설립된 유니스왑은 탈중앙화 거래소다. 모든 업무가 프로토콜에 의해 자동으로 돌아가는 분산 거래소(DEX)로 불린다. 국내 4대 거래소(업비트, 빗썸, 코빗, 코인원)와 다른 분산 자율조직이다.
일명 스시코인이라고 불리는 '스시스왑(SUSHISWAP)' 역시 탈중앙화 방식으로, 투표 시 거버넌스 토큰에 의존한다. 탈중앙화 거래소는 기록이 남지 않아 수많은 거래 자금이 몰리면서 투자자들의 이목을 끈 바 있다.
가상화폐 거래를 불법 금융 활동으로 규정지은 중국의 경우 중앙관리자가 없는 DEX 관련 거래소 코인은 가상화폐 그 이상의 가치로 산업 전반에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
강점을 살펴보자. 우선 조직 구성원들의 의사 결정이 자유롭기 때문에 진행 과정을 투명하게 열람할 수 있다. 보상 또한 균일하게 구성원에게 돌아간다. 여기서 장단점이 드러난다, 바로 '점유율'이다. 거버넌스 참여의 위력은 토큰이 많을수록 커진다. 토큰 보유에 따른 힘의 이동은 마치 일을 잘해 더 높은 샐러리를 받는 성과제와 흡사하다.
리스크도 존재한다. DAO의 분산화 프로세스 중 하나에서 출시 후 결함이 발생하면, 투표가 종료될 때까지 수정에 대한 승인이 미뤄진다. 다수결의 장점이 발목을 잡는 거다. 또한 이때 방치된 프로세스에 얽힌 자금이 크다면 해킹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DAO는 서로의 얼굴을 모르는 토큰 보유자들이 모인 단체다. 소유권자들의 투표가 필요할 때 걸리는 물리적 시간, 즉 승인에 관한 시간적 소요는 예측할 수 없다. 개발이 필요하다면 즉각적인 수용은 어려울 수 밖에. 무엇보다 법적 규제 장치가 불분명하고 '탈중앙화 조직'이라는 용어가 주는 핸디캡도 유효하다.
몇 해 전 기자는 박형준 부산 시장과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 정치 및 사회 이슈에 관한 대화 중 박 시장은 “스스로 모든 걸 판단하고 실행하는 중앙처리 시스템은 초기 발전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다양한 파트가 저마다의 능력으로 성장하도록 자유를 주는 분산처리 시스템이 더 나은 미래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은 의사를 결정할 최고경영자가 필요하지만 DAO에선 주주들의 변경 사항을 반영하면서 시간이 걸려도 수정과 성장을 지속한다. 물리적인 형태의 회사가 없이도 설립 가능한 세상이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모두가 평등하다는 자율성 규칙 또한 블록체인에 기록되며, 참여자의 투명한 투표로 통해 수정이 이뤄지는 차세대 시스템으로서의 덕목을 갖췄다.
기업의 입장에선 손해볼 시스템은 아니지만 녹록치 않을 수 있다. 세계적 기업 흐름이 'ESG'를 쫓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비롯한 환경 보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사회적 책무를 위해 약자를 케어한다는 의미로 책임감있게 나서고 있다. 그러나 기업은 이익 집단이다. 수많은 이권에 얽매인 기업이 DAO를 통한 과정의 투명화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굳이 포기하기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DAO가 지닌 폭발력은 가상화폐 공간과 언론에서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갈수록 메타버스나 NTF 등 생소하지만 알수록 수긍이 가는 문화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이유다. 얼마 지나지 않아 DAO 역시 설명 없이도 시대를 이끌 콘텐츠로 일상의 한 부분이 될지 모르는 일이다.
(문화경제 유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