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1호 윤지원⁄ 2022.03.28 13:52:16
현대자동차그룹의 부품계열사인 현대트랜시스가 최근 이탈리아에서 열린 한 국제 행사에서 모빌리티의 미래를 제시하는 콘셉트 시트를 공개했다. 지난 2월 열린 ‘2022 리니아펠레 국제 가죽 박람회’(Lineapelle International Leather Fair)라는 이 행사는 이탈리아의 가죽(테너리) 산업이 진행하는 세계 가죽 무역 박람회로, 밀라노에서 매년 2차례 열린다.
완성차나 부품과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 행사에서 한국 메이저 자동차 부품사의 전시가 열렸다는 사실이 눈길을 끌었다. 문화경제는 ‘이탈리아의 가죽 산업’과 ‘한국 부품사의 미래 모빌리티 시트’를 잇는 연결고리를 찾아보기 위해 현대트랜시스의 시트연구개발사업부장인 서승우 상무를 인터뷰했다. 감염병 확산세를 고려해 인터뷰는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미래 모빌리티와 미래의 시트
모빌리티의 미래라고 하면 이미 상용화된 전기차, 수소차와 같은 친환경 파워트레인의 자동차가 먼저 생각난다. 그리고 곧 우리의 일상이 될 것 같은 자율주행차, 커넥티드 카, 공유 모빌리티 등의 개념들이 떠오른다.
나아가 현대차그룹이 지난 CES 2020에서 공개한 청사진에서 제시된 UAM(Urban Air Mobility, 도심 항공 모빌리티), PBV(Purpose Built Vehicle, 목적 기반 모빌리티), Hub(모빌리티 환승 거점) 등과 이들 솔루션으로 구현될 미래 도시까지 상상력이 확장된다.
미래 모빌리티와 관련된 컨셉 시트 역시 이런 키워드들이 우선되고 있다. 서 상무는 미래 모빌리티 컨셉 시트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가 콘셉트 모델을 개발하면서 항상 초점을 두는 것은 ‘이동하는 공간’에 대한 비전 제시이다. 자율주행 시대가 도래하면 이동 수단이었던 자동차가 이동생활공간이 되는 모빌리티 개념으로 확장되면서, 시트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그 안에서 원하는 행동을 편안하게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을 기대하리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자율주행차 탑승 시 운전자는 굳이 전방을 주시하며 운전할 필요성이 사라진다. 이런 이유로 시트는 회전 기능이 추가되어 뒷좌석 승객과 이야기할 수 있는 라운지 같은 공간을 연출하거나 휴식을 원하는 소비자의 경우 시트의 릴렉션 기능을 작동시켜 가장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자세를 제공받을 수도 있다.
또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는 소비자는 마사지, 시트 내 스피커, IT 장치와 연계된 시트 제어를 통해 마치 오락실에 와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며 시트 내 접목된 센서 기술은 소비자의 건강 상태를 바로 파악하고 알람을 줄 수도 있다.
이처럼 개발 중에도 미래 고객이 필요로 하는 기술과 이동공간은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하며 고객 관점에서 새로운 방향성을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대트랜시스가 리니아펠레에서 선보인 컨셉 시트도 이런 미래 모빌리티의 요소들을 충분히 포괄하고 있다. 달라지는 차내 공간의 용도에 따라 탑승자, 즉 고객의 관점에서 본 시트의 효용과 편안함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번 콘셉트 시트에 더 중요하게 고려된 것은 생산자(기업)의 관점, 그리고 인류와 지구 환경 구성원이라는 관점이다. 미래 못지않게 당장의 현재와도 관련이 깊어 보이는 이 콘셉트 시트의 주제. 그리고 현대트랜시스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유가 궁금했다.
“현대트랜시스는 모든 선행 연구의 기본 철학으로 ‘친환경’을 기조로 삼고 있다. 시트는 모빌리티 내에서 소비자와 가장 밀접하게 닿는 부품이기에 최대한 자연적인 요소와 친환경적 측면을 강조하며 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개발 과정 중에 버려지는 자원을 최소화하고 재활용하여 부정적인 영향을 제로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투리 가죽 최소화를 넘어
업사이클링 활용법 제시
현대트랜시스 측은 리니아펠레 참여 소식을 전하면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방향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번 콘셉트 시트의 주제 또한 ‘재생 모빌리티로의 전환’(Shift to Regererative Mobility)이다.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등 최신 모빌리티 경향성을 컨셉에 반영하면서도 미래의 친환경적 가치를 담은 소재를 발굴해 적용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이를 위해 환경 오염을 최소화한 친환경 가죽과 가공 방법을 적용하고 또 남은 가죽은 재활용할 수 있는 최신 방법을 개발하는 등, 제조공정에서 버려지는 가죽의 최소화를 위한 다양한 방법론을 총동원했다.
디자인 콘셉트는 공존의 가치를 추구하는 두 도시의 이야기를 담아 ‘Seoul to Milan’(서울에서 밀라노까지)로 정해졌다. 이 컨셉은 각각 오랜 역사를 지닌 두 도시의 ‘시간의 영속성’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각 도시가 오랫동안 지녀온 고유의 색상과 아이코닉한 패턴을 활용해 변하지 않는 가치를 표현했다.
서 상무에게 이번 리니아펠레 참여와 자동차 시트 제조사가 고민하는 ‘지속가능성’에 관해 질문했다. 서 상무는 “이번 리니아펠레와의 협업은 정말 흥미로운 작업이었다”고 운을 뗐다.
리니아펠레는 시트와 아주 밀접한 가죽이라는 소재의 친환경적 측면을 이야기하고 싶어 했고, 우리는 시트 제조공정 중 높은 품질 수준 유지를 위해 버려지는 가죽에 대해 지속가능한 활용 방법을 찾고자 했다. 어찌 보면 가죽은 인류가 계속 고기를 먹는다면 버려지는 육가공 부산물 중의 하나다. 우리는 유럽의 높은 기준에 맞게 친환경적인 제조공정을 거쳐 나온 가죽을 버리는 것 하나 없이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자동차 시트는 품질 보증제도로 인해 요구되는 수준이 매우 높다. 이 과정에서 적용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가죽 폐기물도 많이 발생한다. 그동안은 이러한 폐기물을 최소화할 방법만 고민했다면, 리니아펠레와의 작업을 통해서는 이와 함께 업사이클(upcycle)을 통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 결과 버려지는 가죽 중 비교적 긴 가죽은 얇게 컷팅해 엮는 가공 방식을 새롭게 적용해 폐기물을 최소화했고, 그래도 남겨지는 폐기물들은 분쇄하고 꼬아 다시 실로 만들어 직조해 재생 가죽 원단으로 재탄생시켰다.
이번 컨셉 시트에 사용된 모든 소재는 리니아펠레를 비롯해 이탈리아의 혁신적인 가공 기법을 가진 가죽 가공 기업(테너리)들과 신재생 소재 제조 기법을 보유한 한국 소재업체들의 협력으로 탄생했다.
시트 메인 부분에는 이탈리아 다니(DANI)社가 친환경 공법으로 제조한 천연 가죽 및 버려지는 가죽으로 만든 실과 재생 PET 원사를 결합해 직조한 원단을 사용했으며 재활용 신소재 개발에는 한국 업체인 아코플래닝社과 두올社가 힘을 합쳤다.
시트의 볼스터 부위에는 메인부에 쓰지 못하는 가죽을 길게 자른 가죽을 위빙(Weaving)함으로써 가죽 부위별 절단에 의한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도모도쏠라(Domodossola) 社의 기술 노하우를 반영했다.
현대트랜시스는 이 밖에도 양모 펠트를 적용한 대시보드, 재생 알루미늄 파우더를 3D 프린트로 구조화한 헤드레스트 등 컨셉 시트의 전 부문에 걸쳐 다양한 지속 가능 소재를 적용했다.
해당 컨셉 모델 자체도 2018년에 개발했던 자율주행 목업(mock-up)을 업사이클링하여 활용함으로써 산업폐기물을 최소화했다.
같은 곳을 바라본 양측이지만 협업 과정에 난관도 있었다. “코로나19라는 급작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프로젝트가 연장되고 모든 협의를 온라인으로 진행해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국가 간(한국-이탈리아), 업종 간(자동차산업-패션산업)의 경계를 허물고 ‘지속가능한 미래’ 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로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며 새로운 혁신과 가능성을 만들어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래 시트에 대한 꾸준한 연구와 제시
우리는 종종 다양한 전시에서 이상적인 주제에만 매몰돼 상용화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어정쩡한 일회성 컨셉 프로젝트 결과물들을 만나 실망하곤 한다. 반면 현대 트랜시스는 그동안 미래 모빌리티의 컨셉 시트를 꾸준히 연구하고, 개발해 왔으며, 그 결과 이번 컨셉 시트에도 최근까지 제시된 미래 모빌리티의 캐빈 및 시트 등의 경향이 고루 담겨 있다.
“현대트랜시스는 2017년부터 미래 모빌리티의 핵심 메가 트렌드인 M.E.C.A., 즉 모빌리티(Mobility), 전동화(Electrification), 연결성(Connectivity), 자율주행(Autonomous)에 맞춰 미래형 시트를 개발하고 있으며, 특히 자율주행 시대를 대비한 시트 중심의 토탈 인테리어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고객에 따라 시트 기능을 융합하거나 연동하는 것에서 시작해 차별화된 인테리어 방향성을 토대로 차량 모듈화 구조에 최적화된 가변형 시트 레이아웃을 제안한다.
매년 새로운 컨셉의 미래 모빌리티 시트 모델을 제작해 선보이고 있는데, 기존에는 자율주행차 내부 공간에 주력해 시트 작동 방법과 레이아웃 방향성을 제시하고 자율주행 시나리오 모드를 설정하는 데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다양한 차급, 차종에 맞춘 맞춤형 디자인을 제안하고 있다.
또 이를 포괄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지속가능성에 중점을 둔 CMF(Color·Material·Finishing) 컨셉을 제안하고 있다. 리니아펠레에서 선보인 재생 가죽 및 친환경 가죽 활용 시트가 바로 이런 경향성을 반영한 모델이다.”
“제네시스 G90에 현대트랜시스 기술의 정수 담았다”
컨셉 시트가 미래 모빌리티를 겨냥한 기술 연구개발 성과의 집약물이라면, 현재 시점에서 현대 트랜시스의 시트 기술은 현대차그룹 내 최신 완성차 모델들을 통해 그 위상을 살펴볼 수 있다. 서 상무에게 그동안 참여한 프로젝트 중 자랑스러웠던 것을 묻자 그룹의 최신 플래그십 모델인 '2022 제네시스 G90'를 꼽았다.
“2022 제네시스 G90에는 현대트랜시스 시트 기술의 정수를 담아 세계 최고의 안락감을 제공하는 시트를 탑재했다. 꾸준히 성장하는 고급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우리는 비행기 퍼스트클래스 수준의 편안함을 목표로 기존의 설계를 완전히 바꾸어 새롭게 도전했다. 제한된 공간 안에서 더 많이 펼쳐지고, 더 편안히 받쳐주는 구조를 만들어 승객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최고의 안락감을 선사하는 시트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여러 건의 특허와 함께 독일 척추건강협회에서 인증하는 AGR 인증을 획득했다. 차량 전체적인 경쟁력뿐만 아니라, 각 기능을 같이 개발한 국내 협력사의 기술력 향상과 매출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된 점도 뿌듯하다.”
끝으로 ‘시트 연구’라는 직무가 생소한 사람, 또는 이쪽 분야로 취업하거나 진출하고자 하는 청년들을 위해 현대트랜시스의 시트 연구 업무에 관한 소개를 부탁했다.
“시트는 승객과 가장 가까이에서 편안함, 안전, 즐거움 등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시트는 마치 유기적인 신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뼈대(스트럭처)를 구성하고, 관절에 해당하는 코어 부품들이 들어간다. 이것을 스프링과 폼패드 등이 감싸 편안함을 주고, 또 가죽/패브릭 등의 소재가 표면을 피부처럼 둘러싸게 된다. 이 밖에도 통풍/히터 등의 편의장치가 내부에 들어가고 이들을 제어하기 위한 뇌에 해당하는 통합제어기가 있다.
시트에는 이처럼 정말 다양한 소재와 많은 부품이 들어가기에 이 부품들의 특성을 잘 알고 세밀한 조합을 통해 최적의 설계를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현재도 최고의 전문가들이 근무하고 있고, 앞으로 세계 최고의 시트를 함께 만들어갈 인재는 언제든지 환영한다.”
< 문화경제 윤지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