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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87) 작가 이은선] 주변 공간·색과 스며들고 멀어지는 관계맺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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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20호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2022.03.30 13:06:04

(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더 갤러리 이번 회는 관계를 중심에 놓고 다양한 매체적 실험을 지속하고 있는 작가 이은선과의 인터뷰를 싣는다.


- 이은선의 작품 중 상당수가 놀이에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교감이든 갈등이든 놀이는 관계를 만들고 관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관계라는 단어는 추상적이라 생각될 정도로 굉장히 포괄적이고 넓은 범위를 포함한다. 관계성과 관련해 나에게 가장 중요한 초점은 사람이다. 나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고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유심히 관찰한다. 또한 나는 작업의 주제를 멀리에서 찾지 않는다. 예술은 일상적이어야 하고 그래야만 진실성이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미술을 위한 미술이 아니라 삶 속에서 찾은 미술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그래서 나로부터 시작해 매우 가깝고 사소하지만,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과 느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조금씩 관계를 확장해나간다. 내 앞에 있는 종이 한 장, 바로 그 옆에 있는 공간, 그리고 조금 더 멀리 있는 큰 공간으로 나아가는 식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다. 장소 특정적인 설치의 경우에도 특정한 주제나 공간을 내가 미리 생각해놓은 작업과 인위적으로 연결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정말 맨몸으로, 그 공간과 교감한다는 마음을 갖고 그곳이 갖는 요소들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이 역시 관계 맺기이다. 나의 작업은 모두 이와 같은 태도를 갖는다.
 

‘Shape in Space’, 2016 ⓒ이은선 

- ‘Triangle games’, ‘Paper blossom’ 등이 놀이로서의 예술을 떠오르게 하는 대표작이다. 성인들도 놀이를 즐길 수 있으나 아무래도 어린이들을 떠올리게 된다.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만족감을 얻는다고 한다. 관련해 이은선의 작업이 사회 질서에 완전히 종속되기 전의 자유로운 모습을 찾으려는 시도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편 놀이를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반응이나 승부욕, 경쟁심, 배려 등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작업에 놀이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맞다. 무엇보다 놀이는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을 끌어낸다. 놀이 속에서 발생하는 유연성, 우연성 등이 시적으로 느껴지고 흥미로웠다. 놀이는 사람과 사람을 모이게 한다. 마치 식사를 함께하도록 사람들을 한자리에 앉게 하는 테이블과 의자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또 인간의 욕구까지 담아낸다. ‘Triangle games’처럼 땅따먹기 놀이를 이용한 작업을 예로 들면, 한 사람과 땅따먹기를 반복해도 결코 같은 모양이 나오지 않는다. 음악 같기도 하다. 같은 악보를 봐도 매번 다르게 연주되듯이 비슷한 것 같지만 동일한 결과물이 나올 수 없다. 게임의 결과물인 드로잉은 작가인 내가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정해진 공간에 색을 칠해 나의 표현력을 추가한다. 그리고 내가 색칠하는 행위가 조화를 끌어내는지, 부조화를 만드는 것인지 질문하게 된다. 이런 질문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조화 속에 있는지 부조화 속에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며 확장된다.
 

‘Pansy’, pigment print, 130 x 130cm, 2013 ⓒ이은선
‘So’, pigment print, 30 x 30cm, 2017 ⓒ이은선

- 본인의 작업에 어린이들이 참여한 적은 없었는가? 성인들과는 확실히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 같다.

예전에 개인전 ‘점, 선, 면’(2016)에서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켰었다. 어른 대부분은 놀이적인 작품에 한 번 참여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끝없이 새로운 놀이적 행위를 계속 만들어냈다. 작가인 나 역시 작업을 보여줄 때 시작과 끝이라는, 어느 정도 정해놓은 부분이 있었다. 아이들이 참여하는 것을 보다가 그런 내 생각 자체가 틀에 갇혀 있는 것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 역시 내가 정해놓은 범위를 탈피하고 표현 방식도 계속 바꿔나가야 함을 알게 한 전시였다.
 

‘Kemb’, acrylic on wall, 840 x 300cm, 2013 ⓒ이은선

- 미술관이 아닌 공공장소에서의 설치 작업도 많이 진행했다. 이은선의 회화와 사진도 그렇지만 설치에서 특히 색채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본인의 작업에서 색채가 어떤 작용을 하길 원하는가?

색채의 선택은 작업에 참여해준 사람과 함께하는 동안 느낀 인상이나 톤(tone)에 근거한다. 다만 모든 작업이 그런 것은 아니다. 예전에 서울대학교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 ‘Love Impossible(러브 임파서블)’(2013)에서 9m에 달하는 벽화-‘Kemb’-를 그린 적이 있었다. 벽화에 사용할 물감을 다 정하고 미술관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서울대학교미술관과 미술관 주변의 울창한 나무, 하늘, 땅의 흙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바로 콘크리트, 나무, 하늘, 흙의 색으로 벽화의 색을 바꾸었다. 앞서 말했듯 공공미술에서도 내가 공간에 반응하고 교감하는 감각을 최대한 끌어낸다. 나는 나의 직관적인 감각과 표현을 담아낼 수 있는 부분이 색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연과 교감하는 작품에서도 색을 과감하게 쓰는 편이다. 감정 표현을 많이 하기 위해서이다. 생각보다 물감(안료)의 색은 인위적이라 자연 속에 놓이면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조형 요소로 다가온다. 그래서 색감으로 야외 공간과 관계 맺는 작가를 드러내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Fragmented Gaze’, fabric, wood, size variable, 2019 ⓒ이은선

- 특정한 장소나 공간에 대해 순발력 있게 반응을 하면서 색을 결정한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거의 모든 장소에 그렇게 반응하면서 작업한다. 장소 특정적 작업의 경우에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나는 기존에 있던 작품을 그대로 옮겨다 설치하는 것을 지양한다. 작품이 놓일 공간과 작가인 내가 교감하고, 그 공간만이 가진 요소들을 찾아내 공간과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게 중요하다. 여태까지 그렇게 작업하고 있다.
 

‘Deformed Intimacy’, 2006 ⓒ이은선

- 풍선 기둥을 만든 ‘Column-b’(2014)나 ‘Point, Breathe, Plane’(2016)처럼 풍선을 이용한 작품은 다른 작업과 조금 결이 달라 보이는데 설명을 부탁한다.

대학원 재학시절 진행한 퍼포먼스에서 풍선 불기가 처음 등장했는데 관계 맺기를 표현한 시작점과 같은 작업이다. 두 명의 퍼포머가 풍선이 안쪽에 부착된 의상을 입고 서로의 풍선을 부는 퍼포먼스였다. 풍선을 다 불면 퍼포먼스가 끝났는데 내가 생각하는 관계 맺기의 기본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선 풍선을 불면 서로의 상호작용으로 서로의 모습이 바뀐다. 또한 풍선을 불려면 상대방에게 굉장히 가깝게 다가가야 하는데 막상 풍선을 불면 불수록 상대와 물리적 거리감이 발생하게 된다. 상대방과 가까워지는 행위가 또 다른 거리를 만드는 행위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아이러니가 인간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런 관계성을 공간과 공간을 경험하는 관객들의 관계로 확장한 것이 기둥에 풍선을 설치한 ‘Column-b’이다. 전시 기간 동안 관객들이 와서 풍선을 자유롭게 하나씩 불 수 있도록 했고, 그에 따라 기둥의 모습도 계속 바뀌었다. 공간이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변화하는 모습을 시각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Paper blossom’ 시리즈의 경우 특히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다. 특정한 꽃의 형태로 종이접기를 한 뒤 다시 펼쳐 그 흔적을 찍어 보여주는 사진 작업으로 행위의 흔적과 시간의 흐름을 담아낸다. 꽃을 만든 뒤 펼쳤는데 기하학적인 면 분할이 일어났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그 결과물을 사진으로 보여준 이유는 무엇인가?

형태가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 남겨진 흔적, 시간의 순간을 포착하는 게 작업의 주된 의도여서 사진을 찍어서 보여줬다. 시간을 포착하는 가장 좋은 매체는 사진이라 생각했다. 나는 ‘왜 굳이 종이를 사진으로 찍어 보여줘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며 촬영했다. 사진은 종이에 인화되기 때문에 환영으로 받아들여지는데 그것은 회화가 주는 환영과 다르다. 이 부분도 재미있었다. 최근에는 시간의 흐름이 아닌 한순간 자체를 보여주는 회화로 그려내면 어떨지 고민 중이다. 아니면 오브제 자체를 보여줄 수도 있다. 나의 시선에서 선택한 시간의 흔적을 보여주기보다 관객에게 자유로운 선택권을 주고 싶어서이다. 원본을 보여주면 어떤 순간을 가져갈지는 전적으로 관객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Paper Blossom’, 2017 ⓒ이은선

- 본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꽃을 접은 후의 흔적이 어떻게 남는지 미리 확인하는가? ‘so’(2017)는 무엇을 접은 뒤의 상황인지도 궁금하다.

나도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 채 시작한다. 다만 종이의 크기, 얇기, 재질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테스트는 여러 번 하는 편이다. 여러 형태를 다 접었다가 펼쳐서 살펴본 뒤 작품으로 적합한 것을 선택한다. 꽃만 접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구체적인 형태를 염두에 두었지만 나중에는 형태를 갖지 않는 것들을 접은 시리즈를 발표하기도 했다. 구겨진 종이 자체가 담고 있는 명암과 색감으로만 말할 수 있는 것들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so’는 구겨진 종이에서 여러 감정을 떠올린 작품이다. 제목의 ‘so’ 뒤에는 말 줄임표가 붙어있는 것과 같다. 작품을 보며 무엇을 찾아내고 느껴서 풀어낼지는 관객의 몫이다.

- 완성된 종이접기를 펼치니 작가 혹은 누군가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 같고, 인간이 살면서 마음속에 남은 상처 혹은 기억을 의미하는 것 같아 서정적으로 다가온다. 누구든 마음 한편에 숨기고 있는 아쉬움이나 아련한 감정이 담긴 작품 같다. 이러한 부분을 처음부터 의도했는가?

실제로 내가 힘들었을 때 시작한 작업이다. 마치 종이접기의 흔적이 그렇듯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시간과 행위, 사건에는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결, 주름이 있다는 사실을 담고 싶었다. 모두의 내면에는 기억이나 아픔이 있음을 우리 모두 알고 있으며 그것을 공유할 수 있다는 믿음을 나누고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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