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4호 안용호⁄ 2022.05.24 10:53:29
미술계에 있어 지난해는 ‘아트페어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에서 열린 키아프, 아트부산, 인천아시아아트쇼, 대구아트페어 등 작년 아트페어는 역대 최고 매출, 최다 방문객 기록, 젊은 컬렉터 층의 반가운 유입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상업적인 성과 외에도 지난해 아트페어는 숨은 젊은 작가들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이들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아트페어라는 공간을 넘어 SNS를 통해 공유되고 확산하였다. 작가 드레스반시모도 그 중 하나이다.
지난해 11월 개최된 인천아시아아트쇼(IAAS2021)에서 드레스반시모는 화려한 색감에 해골이 그려진 ‘자화상3.22’로 관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개인전 ‘현대인, 보이는 것’(5월 25일~6월 7일, 토포하우스)으로 다시 돌아온 그를 캔버스 밖에서 만났다.
-지난해 인천아시아아트쇼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작가로서 어떤 삶의 변화가 있었나?
디스플레이도 좋았고 작품의 색이 눈에 띈 탓에 더 시선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작품이 팔린다는 건 작가에 대한 관심입니다. 작품이 팔리면 물론 좋지만, 그보다 관객의 관심이 작가 입장에서는 더 중요합니다. 작가야말로 ‘관심이 고픈’ 직업이거든요. 요즘 저 같은 젊은 층 사이에서 ‘아트테크’라는 것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투자 목적일지라도 미술에 관심을 둔다는 게 너무 좋습니다.
-개인전 타이틀이 ‘현대인, 보이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의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저는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그림으로 해소합니다. ‘작업을 통해 스트레스를 푼다’ 이 말이 정확할 거 같아요. 일상에서 비롯된 여러 감정을 기록한 일기장처럼, 제 안의 감정을 17점의 작품으로 표현해봤습니다. 제가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에서 느낀 복합적인 감정들을 관객들과 캔버스를 통해 소통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작가와 관객 모두 어떤 ‘해소’를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일상, 감정, 해소… 작가의 이야기가 여전히 추상적으로 들린다. 작품을 예로 들어 설명해줄 수 있나
이번 전시 메인 작품인 ‘Dancing 2 4.2’의 작가 노트에 '맴도는 색, 소리가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 나와 맞지 않는 곳에서 춤을 춘다'라고 적었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자기 삶에서 만족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맞지 않고 안 좋은 것들도 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작업을 하는 시간 외에 부업을 할 때가 그런데요. 젊은 작가들은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생계를 꾸려가야 하거든요. 그런데 다른 작가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너무 힘들어’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공감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이 지겨워졌어요. 살아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부업은 해야 하니 그냥 즐겁게 받아들이면 어떨까 하는 거죠. 하지만 이런 불편한 감정이나 순간들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해소되니까. 그걸 해골들의 ‘춤’으로 표현해봤어요.
-결국 개인적 감정의 해소가 작품으로 표현된 건데, 일상 속 감정들을 어떻게 기록하고 작품화 하나?
일기처럼 제 감정을 메모합니다. 감정과 관련된 이미지가 떠오를 때도 있는데 그 이미지와 메모를 작업으로 풀어나가죠. 스케치를 따로 하진 않습니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에는 거기에, 친구들을 만나거나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제가 느낀 감정을 확인하는 작업이 덧붙여졌습니다. 제 개인의 감정뿐만 아니라 타인의 다양한 생각들을 집어넣은, 소통의 결과물일 수도 있고요.
-작품 속에 해골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색이 무척 강렬하다
불편한가요? 저는 해골이야말로 가장 솔직한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화장하고 가면을 쓴 모습이 아니라 가장 본질적이면서도 원초적인 모습이 바로 해골이죠. 죽으면 다 끝인데, 다 껍데기일 뿐이잖아요. 해골을 통해 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과도 솔직히 소통하고 싶어서요.
원색을 좋아해요. 사람들은 저마다의 색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색은 보이는 것도 있고 보이지 않는 색도 있어요. 편안한 색을 가진 사람은 아직 못 만나 봤어요. 제게 색은 편안함에 반대되는 개념이지만 이 색이 어우러지면 편안해지는 역설이 있습니다.
-낙서화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작가가 추구하는 낙서는 무엇인가
병적으로 하는 행동이죠. 낙서하면 마음이 편해져요.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그 순간은 안정감이 생기고, 생계를 위해 일을 하다가 지칠 때 낙서를 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일종의 탈출구, 해소라고 할 수 있죠.
그 연장선에서 작업이 이뤄지는데요. 작업을 하면 예민해지면서도 제가 생각하는 것들을 다 풀어낼 수 있기 때문에, 그 순간만큼은 다 쏟아내는 해소를 경험하게 되죠. 어린 시절부터 저는 혼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환경 속에 있었고 복잡한 감정을 풀어낼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어요. 낙서, 그림이 그 방법이었다고 할까요.
-마지막 질문은 작가의 예명에 관해서이다. 왜 드레스반시모인가
옷을 좋아해요. 그래서 ‘드레스’. 반고흐를 좋아하고 이름이 너무 멋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반’. 마지막 ‘시모’는 제 세례명 ‘막시모’에서 따왔습니다. 솔직히 멋 부리기이죠. 본명보다 예명이 더 끌리지 않나요? 즉흥적인 예명처럼 향후 제 활동이 어떻게 흘러갈까, 저도 잘 모르겠어요. 확실한 건 ‘지금보다 좋아지겠지’입니다. 현대인들에게는 누구나 억눌린 감정이 있다고 봐요. 색깔이 맞지 않아 서로 부딪히고 상처받고…. 그런 것들을 표현하고 있을 거예요.
인터뷰 자리에 함께했던 이번 전시의 기획자 산체스공은 드레스반시모에 주목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기획자로서 작가를 선택하는 기준이 있다면 작가 노트, 작품, 인간성이다. 우선 드레스반시모 작가는 작가 노트 속 작가의 감정과 작품 속 시각적 감정이 일치한다. 또한 그의 작품은 진실한 자기표현이기도 하다. 세 가지 요소가 트라이앵글처럼 일치하는 작가는 많지 않다.”
이번 전시는 작가 드레스반시모, 전시기획자 산체스공, 갤러리 토포하우스의 협력으로 이루어진 전시이다. 산체스공은 “미술계에서 전문성을 살린 협업이 절실하다. 일부 기획자나 갤러리의 경우 작품 소개 글을 작가에게 맡기거나 심지어 디스플레이까지 떠넘기는 경우도 있다. 전문성을 살린 협업이 있어야 대중들에게 예술 향유의 높은 차원을 제공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