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5호 안용호⁄ 2022.06.09 17:19:05
지난 5월 31일 서울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2022 삼성호암상 시상식이 개최됐다. 삼성호암상은 호암 이병철 선생의 인재 제일과 사회 공익 정신을 기려, 학술·예술 및 사회발전과 인류복지 증진에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인사를 현창(顯彰)하기 위해 1990년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제정한 상이다. 제32회 시상까지 총 164명의 수상자에게 307억 원의 상금을 수여했다.
올해 과학상, 공학상, 의학상, 예술상 등 6개 부문 중 유독 눈에 띄는 수상자가 있다. 사회봉사상을 수상한 하트-하트재단은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된 ‘하트하트오케스트라’를 통해 지난 17년간 기적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하트-하트재단의 오지철 회장은 시상식 현장의 감격을 이렇게 전했다.
“코로나 거리두기 때문에 30여 명 단원 중 단원 3명, 어머니 3명 총 6명만 참석했어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저희 단원들과 어머니들을 일일이 포옹해주고 함께 사진을 찍어준 거예요. 아이들뿐만 아니라 20~30년간 자녀를 위해 고통을 견뎌왔던 어머니들의 얼굴이 한순간 환하게 밝아지는 모습을 봤습니다.”
발달장애인은 두 가지 면에서 음악을 하기 어렵다. 먼저 정상인보다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 나이가 들고 신체가 성장해도 지능이 초등학교 1학년 수준에 머물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정상적인 아이에 비해 연습 시간이 수백 수천 배 더 필요하다.
사회성 부족 또한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힘겹게 만든다. 이들은 타인과의 대화와 소통에 서툴고 때로는 언어 장애가 있는 경우도 있다. 사회성이 부족해 동료의 연주에 화음을 맞추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처음 오케스트라를 시작할 당시, 많은 이들이 사회성이 부족한 발달장애 특성상 오케스트라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음악 학습과 연주에 필요한 지적 능력이 떨어지고 사회성이 부족해 동료의 연주에 귀 기울이기도 어려운 발달장애인을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초대한 이유는 뭘까.
하트-하트재단은 1988년 설립 이후 발달장애인이 장애로 인해 차별받지 않고 사회에 통합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주간보호 프로그램, 특수체육, 동아리활동, 방과후 프로그램, 직업훈련 등 다양하고 전문적인 사회복지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이러한 교육과 프로그램을 통해 크리스천 미션인 하트-하트재단은 발달장애인도 신이 선물한 각자의 달란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2006년에 발달장애인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단원들은 한 곡 한 곡 음악을 완성해가며 즐거움과 성취감을 경험하고 도전과 연습을 통해 전문 음악인으로 성장한다. 또한 팀워크를 중시하는 오케스트라 안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 함께하는 방법, 인격적으로 존중 받는 경험 등을 통해 다른 사람과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간다.
오지철 회장은 하트하트오케스트라의 의미를 ‘치유’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우리 아이들이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은 음악을 할 때입니다. 함께 연습하고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바로 그 시간이죠.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누군가 손뼉을 쳐주고 칭찬하고 격려하면 엔도르핀이 막 솟아나는 거예요. 아이들과 늘 힘겨운 동행을 하는 엄마들도 음악을 통해 치유 받습니다. 아이가 연주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주는 기쁨과 함께, 아이가 음악을 하는 시간만큼은 엄마들도 잠시나마 쉴 수 있거든요.”
발달장애인을 위한 음악 치료로 출발한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비장애인에게도 동일한 치유를 선사한다. 일반인도 힘든 오케스트라 연주를 발달장애인들이 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큰 감동을 느낀다. 또한 발달장애인들은 연주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의 메시지를 전하며 ‘장애인도 할 수 있다’ 라는 긍정적인 인식을 사회에 확산시킨다.
전문 음악인들도 마찬가지이다. 비올리스트 리처드용재오닐,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피아니스트 임동혁, 첼리스트 송영훈 등 최고의 음악가들도 하트하트오케스트라와 협연이나 만남을 통해 감동하고 치유 받았다.
“저희와 한번 협연해본 분들은 일정만 맞으면 다시 함께하고 싶다고 얘기하세요.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와는 현재 협연 일정을 맞추고 있고, 1세대 피아니스트인 한동일 씨는 올해 12월 저희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기로 했습니다. 그분들이 그럽니다. 우리 아이들 연주를 듣거나 함께 연주하면 저절로 눈물이 난다고…. 고통, 인내, 노력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하면 울지 안을 수 없다는 거죠.”
정상급 음악가들도 눈물 흘리는 발달장애인들의 연주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창단 이후 지금까지 1000여 회가 넘는 국내외 공연을 통해 한계를 뛰어넘는 최고 수준의 연주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전하고 있다. 해외공연으로 일본 도쿄 공연(2019), 미국 뉴욕·워싱턴 D.C. 공연(2018), 캐나다 밴쿠버 공연(2017), 중국 북경·상해·청도 공연(2010), 미국 시카고 LA 공연(2008)이 있었다. 국내에서는 예술의전당 공동 기획 장애인식개선 콘서트를 7회 열었고, 병원 투어 힐링 콘서트 연주를 개최했다.
오 회장은 수많은 콘서트와 이를 위한 피나는 연습, 노력 뒤엔 지휘자의 숨은 희생이 있다고 소개했다.
“일반인들이 10시간 연습하면 될 것을 우리 아이들은 1천 시간 이상 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휘자 선생님도 무한 인내, 무한 헌신으로 봉사하십니다. 봉사·헌신·희생이 마음속에 배어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죠.
지난 17년 동안 지휘자가 딱 세 번 바뀌었습니다. 최소 6년 이상을 하신 겁니다. 현 상임 지휘자인 안두현 선생님도 6년째 봉사하고 계십니다. 이게 참 어려운 일이거든요. 아이들이 처음 오케스트라에 들어올 때는 피아노 건반조차 두드려본 적 없고 겨우 리코더 정도 불 수 있는 수준입니다. 연습할 때 슬그머니 자리를 뜨는 아이들도 있고 말을 안 듣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을 지휘자가 훌륭한 연주자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참고 노력했겠어요. 인내와 희생이라는 단어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단원들은 가정이 어려운 경우가 흔하다. 특히 어머니들이 힘겨운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도배 일을 하며 아이를 돌보거나, 발달장애아 둘을 키우는 어머니도 있다. 오 회장은, 성장 과정에서 아이들의 장애를 엄마 책임으로 떠넘기며 아버지가 가정을 등한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전했다.
“유일하게 소통하는 대상이 엄마예요. 사회성 훈련을 받은 친구들은 혼자서 외출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어머니가 항상 따라다닙니다. 지하철 같은 곳에서 혼자 떠들고 뛰어다니기도 하는데 그래서 늘 엄마가 필요합니다.”
늘 힘겨운 일상을 반복하는 어머니들에게, 오케스트라 활동을 통해 우리 아이도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용기를 줄 수 있다는 자존감이야말로 힘겨운 삶을 버텨낼 힘이 된다. 오케스트라는 이렇게 장애 가족의 기능을 회복시키고 부모가 자녀의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를 하도록 돕고 있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 장애인 인식개선에도 앞장
하트하트오케스트라의 중요한 미션 중 하나는 장애인 인식개선이다. 오케스트라는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참여하는 장애인인식개선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정부, 기업, 단체 등과 협력해 인식개선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당당하게 활동하고 있는 발달장애인들의 모습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확산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사회를 만들어간다는 취지이다.
“우리 재단에서 발달장애인식개선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 공공기관들은 의무적으로 장애인인식교육을 시행하게 되어있는데 우리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인식개선 강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저희를 초대하는 곳들이 굉장히 많아요. 전문 강사의 교육과 함께 우리 단원들이 연주하고 서툰 말로 발달장애에 관해 설명합니다. 그야말로 감동이 동반된 살아있는 장애인인식교육이죠.”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라 장애인식개선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는 단원들은 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지원받는다. 또한 단원 전원이 재단과 협력하고 있는 기업들에 취업해 있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이렇게 음악을 통한 치료뿐만 아니라 단원들의 경제적 자립까지 돕고 있다.
한편 하트-하트 재단은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라 가난, 장애, 질병으로 어려움 겪고 있는 취약계층 아동과 그 가족을 지원하는 기초복지사업, 평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교육복지사업, 소외된 아동·청소년 문화예술 활동을 돕는 문화복지사업, 해외사업 등도 펼치고 있다.
“우리 재단은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창립해 올해로 35년째를 맞이하는 사회복지기관입니다. 당시 복지라는 개념이 태동하던 시기였는데요. 저희는 토종 사회복지재단의 초기 모델로 그동안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인 장애인·극빈층·질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을 돕는 활동에 주력해왔습니다.”
최근 재단의 활동으로 유니버설디자인 환경개선과 특별한도서 지원 사업이 눈에 띈다.
유니버설디자인(Universal design)은 성별, 연령,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장애 예술인의 창작활동 공간 및 교육 공간에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해 개보수함으로써, 접근성을 높이고 장애 예술인들의 문화예술 창작활동 확대에도 기여하고 있다. 유니버설디자인은 아주 흐리게 물체를 분간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들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국제 공통의 디자인이다.
자원봉사자의 따듯한 손길로 만들어지는 ‘특별한도서’(촉각으로 느끼는 팝업북 형태)는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장애인도서관, 시각장애 학교 등으로 배포된다. 특별한도서를 통해 시각장애 아동들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다양한 정보를 접하게 된다.
“특별한도서는 점자책에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형태입니다. 예를 들어 새를 본 적이 없는 시각장애인들이 촉각을 통해 새의 생김새를 느끼도록 하는 거죠. 중요한 것은 이 책을 만드는 작업에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임직원들이 함께 참여한다는 점입니다. 이 자원봉사자들이 키트 형태로 만들어진 새 모양이나 가야금, 트럼펫 같은 악기 모양을 직접 책에 붙입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자원봉사자들도 시각장애인들의 삶을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밖에도 재단은 말라위, 탄자니아 등에서 식수위생개선사업, 안보건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삼성호암상 수상으로 더 어깨가 무거워졌다는 오지철 회장은 하트하트오케스트라의 미래를 이렇게 밝혔다.
“어제 직원 조회 시간에 ‘큰 상을 받았으니 더 책임감 있게 일하고 봉사하자’고 말했습니다. 여러 기업과 개인들의 후원이 의미 있는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앞으로 좀 더 창의적이고 효과가 큰 일을 찾아서 할 예정입니다. 아무도 손 안 대고 있는 복지 사각지대가 분명히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관련해서는, 올해 6회를 맞는 전국 발달장애 오케스트라 경연대회를 통해 지역에 있는 작은 오케스트라들을 활성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코로나19로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가 지역에서 많이 사라졌습니다. 앞으로 저희 하트하트오케스트라를 롤 모델로 더 많은 발달장애 오케스트라가 생겨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노력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