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7호 안용호⁄ 2022.07.11 15:43:24
얼마 전 흥미로운 책 한 권을 읽었습니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박영서 저, 들녘)은 조선을 ‘복지국가’로 규정하고 사례를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더 나은 미래를 고민하는 책입니다.
무엇보다 ‘복지 정책’이라는 분석 틀로 조선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시도가 눈길을 끕니다. 학창 시절 역사 교육을 통해 ‘탐관오리’, ‘삼정의 문란’과 같은 말을 숱하게 들었을 뿐 아니라, 사극을 통해 보아온 조선 민중의 처절한 삶이 우리 머릿속에 남아 있는 탓일까요.
책에 따르면 조선의 왕들은 안녕하지 못한 상태에 있는 백성을 구제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고, 백성을 구휼하려는 통치자의 의지는 ‘단 한 명의 백성도 굶어 죽지 않게 하라’는 말로 축약됩니다. 너무나 이상적인 목표이지만 조선은 이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에는 아동복지, 노인·여성복지, 심지어 장애인 복지의 개념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정조는 아동복지 정책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는데, 부모를 잃은 아이에 대해서는 의료와 식량을 지급했고 유기아를 관청에서 직접 보호했습니다.
장애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도 강해 장애인이 적절한 보호를 받으며 살아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일부 시각장애인은 지금의 국립교향악단 격인 장악원(掌樂阮)에 들어가 연주자로 활동했습니다. 책은 이런 조선 복지 정책의 핵심에 사람에 대한 존중과 사랑, 즉 인(仁)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분석합니다.
다시 21세기 대한민국으로 돌아옵니다. 유난히 일찍 찾아온 폭염과 유례 없는 고물가에 홀몸 노인과 저소득층 아동, 청소년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지자체가 나서 이들을 돕고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다행히 지자체· 정부의 손길이 미처 닿지 않는 곳에 기업이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이번 호 문화경제는 ‘엔데믹 시대, 기업의 사회공헌’을 특집기사로 다뤘습니다. 코로나19가 종식되고 엔데믹 시대가 열리나 했더니 다시 물가와 금리가 우리 사회의 발목을 잡습니다. 코로나19 시기에도 비대면 등으로 사회공헌 사업을 유지해왔던 기업들이 고맙게도 다양한 봉사와 교육, 상생 프로그램으로 소외계층과 장애인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끌어안고 있습니다.
‘야쿠르트 아줌마’라는 호칭으로 더 익숙한 hy의 프레시 매니저들은 지역의 홀몸노인을 친부모처럼 돌봅니다. KB금융, 하나금융, NH농협은행 등 금융 기업들은 초등 돌봄교실을 지원하고,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해 어린이집을 짓습니다. 심지어 소외계층, 다문화 아이들을 위해 원격 교육 플랫폼을 만들고 내신관리까지 도와줍니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CSR)은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 사회에 대한 책임을 실천하는 활동입니다. 단순한 봉사 정도로 여겨져 왔던 이 활동이 ESG 경영의 ‘S’로 자리매김하며 이제 기업의 필수 덕목이 되고 있습니다.
하반기 시작을 맞아 기업들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속속 공개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기관의 인증이나 탄탄한 프로그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심’이겠지요. ‘단 한 명의 백성도 굶어 죽지 않게 하라’는 조선 왕들의 높은 뜻을 떠올릴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