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1호 김예은⁄ 2022.09.07 16:56:49
부산 현대 모터스튜디오. 2045년의 지구를 미리 경험하고 싶다면 이 곳으로 갈 것을 권한다.
지금으로부터 25년 후 2045년의 지구. 도시가 회색 벽 대신 녹색 자연으로 변화한 친환경 도시.
이곳은 광합성 작용을 하는 녹조류 알게(Algae)가 건축물 외벽에 붙어 도심 속 공기청정기 역할을 하는 미래 도시의 일부이다. 공원을 산책하다가 잠시 쉬고 싶을 때 벤치가 찾아오고, 자연 환경 속에서 무선 충전도 이루어지며 세계는 어디서나 연결(커넥티드)된다.
이곳은 현대자동차에서 그려본 2045 탄소 중립 시대의 지구이며, 현대자동차와 에콜로직 스튜디오(ecoLogicStudio), 그리고 바래(BARE)가 합작해 만든 미래 도시의 축소판이다. 상상 속의 지구가 가상의 공간이 아닌 실존의 형태로 펼쳐진 곳, 바로 부산 현대 모터스튜디오의 ‘해비타트 원’이다. 공간에 들어서면 청아한 소리와 피부에 와닿는 신선한 공기를 통해 미래의 제3의 공간에 와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자동차 회사가 주거 환경을 이야기하다
자동차 회사가 자동차만 이야기하는 것은 진부하다.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가 머리 속에 떠오른다. 그런데 자동차 회사가 주거환경을 말한다니 신선하다.
현대자동차는 '인류를 위한 진보'라는 브랜드 비전을 바탕으로 이번 전시에 도시의 주거 환경을 개선시킬 수 있는 '쉘터' 솔루션을 담았다. 탄소 중립과 순환경제 생태계를 이야기하더니 이를 융합한 미래 주거 환경까지 구축하려는 목표를 갖게 된 걸까(현대자동차는 지난해 9월 독일 뮌헨 ‘IAA 모빌리티 2021’에서 ‘2045년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현대자동차의 탄소 중립은 지속가능한 지구환경을 미래세대에 물려주기 위해 전동화, 수소사회, 스마트시티, 순환경제 생태계 구축을 골자로 한다).
현대자동차 HMS크리에이션팀의 이민희 책임매니저를 만나 기획 의도를 물었다.
“저희가 쉘터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은 향후 현대차가 주거 환경과 같이 새로운 산업을 펼치거나 미래 주거를 위한 새로운 제품을 창조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현대자동차가 구축하고 있는 전동화와 수소 사회 등의 활동에 내포된 비전을 시대적 키워드와 연결 지어 해석하는 작업의 결과물이라고 보면 좋을 듯합니다.”
현대자동차는 시대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를 선정하여 한 해의 전시를 구성한다. 2021년의 키워드는 시간의 가치, 올해는 쉘터가 선정되었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인 지속가능성과 혁신성은 광의의 개념이며, 직관적인 경험 없이 말만 하는 것은 공허한 외침이 될 수 있죠. 따라서 현대자동차가 전하고자 하는 가치를 가장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다 보니 인간이 일상에서 가장 밀접하게 경험하는 주거 환경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팬데믹 시대에 심리적, 물리적 쉘터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가 아트와 디자인에서 더욱 부각되어 온 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현대자동차가 추구하는 비전을 주거공간에 담아 새롭게 해석된 쉘터를 물리적 경험으로 보여주는 것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개념의 쉘터를 제시함과 동시에 현대자동차의 비전에 대한 직관적 이해를 가능케 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죠.
자동차 안에서 움직이는 공간도 확대된 형태의 또 다른 쉘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빌리티 솔루션 프로바이더로서 ‘주거=집’이라는 개념을 벗어나 쉘터라는 개념을 모빌리티의 새로운 포맷으로 재해석하는 것 역시 현대자동차가 이룩할 수 있는 진보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움직이는 모빌리티 안에서의 쉼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해봤습니다.”
수소, 탄소… 누군가 이에 대한 비전을 설명한다고 한다면 관심을 가질까? 지금 내 눈앞에 주어진 일상을 살기에도 바쁜 것이 현대인의 숙명이다. 하지만, 개인의 일상에 개입된 변화를 제시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해비타트 원은 피부에 와닿지 않는 추상적인 비전을 우리의 일상과 맞닿는 물리적인 경험으로 구체화하고 현실 공간 내에 실현시킨 공간이다. 현대자동차 HMS크리에이션팀은 이처럼 추상적 개념의 비전을 실체화된 경험을 통해 제시하는 커뮤니케이터, 비전 번역가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자동차 전시에 자동차를 빼고 고객과 소통을 해보겠다는 획기적인 시도를 제안한 것도 이들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파빌리온’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탄생했다.
“자동차만이 우리의 비전을 소통할 매개체는 아니라는 게 저희의 생각입니다. 그 안에 담긴 메시지와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현실과 맞닿아 있는 고민과 문제들, 그 안에서 현대자동차가 불러올 변화와 미래를 앞당겨 고객에게 제시하고 경험케 하는 것. 그것이 저희가 현대 모터스튜디오와 전시 공간을 운영하는 기조입니다.
현대 모터스튜디오 역시 저희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여러 플랫폼 중 하나이며 이 밖에도 평창 올림픽의 파빌리온, 월드컵 캠페인 등 다양한 형태가 존재합니다. 플랫폼은 다양하지만 궁극적으로 저희가 소통하는 메시지는 하나입니다. 하나의 메시지를 여러 플랫폼으로 풀어 효과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고, 그 외침이 모여 큰 변화를 창조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자동차가 이 모든 활동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현대자동차의 인류애를 향한 진보(Progress for Humanity) 입니다. 현대자동차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어떤 방식이 인류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혁신이 될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탄소 중립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죠.
현대자동차가 추구하는 비전을 2개의 단어로 집약하자면, ‘지속가능성’과 ‘혁신성’입니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이란 목표는 광의의 개념이고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 가능케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정부의 정책이나 사람들의 인식이 함께 가야 실현할 수 있는 목표이죠. 저희는 이 지속가능성의 비전을 다각적인 경험으로 창조하여 소통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지속가능한 세계라는 큰 꿈을 품고 있지만, 현대자동차 자신이 곧 미래 주거를 위한 건축 회사가 되고, 바이오테크놀로지 연구자가 될 수는 없다. 이번 전시에서 에콜로직스튜디오와 바래를 선정한 계기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가 이루고자 하는 지속가능성의 목표는 개별 기업의 범위를 넘어선 광의의 차원입니다. 그래서 브랜드 활동의 근간으로 ‘연대’를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 역시 저희가 중시하는 비전에 공감하는 작가들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연대를 이루어 구축한 결과물입니다.
작가 선정 단계에서는 지속가능성의 가치에 공감하며, 독창성과 기술력을 결합해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곳들과 연대해, 지속가능한 미래의 쉘터를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에콜로직스튜디오’는 알게(광합성을 통해 태양광을 산소와 바이오매스로 전환시키는 녹조류)를 이용해서 탄소 중립 솔루션을 찾아 지속가능한 환경을 구축하려는 시그니처를 가졌습니다. 또한, ‘바래’는 건축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고찰해 장소 조건에 적응하는 설치물에 특화된 전문성을 가진 분들입니다.”
클린·커넥티드·프리덤을 품은 전시, 헤비타트 원
현대자동차가 모빌리티에서 ‘지속가능한’ 혁신을 추구한다면, 에콜로직 스튜디오는 박테리아와 미생물의 작동방식으로 도시의 녹지화를 구현하는 혁신, 바래는 새로운 차원의 건축물을 통한 주거의 혁신에 집중한다. 현대자동차는 이들과의 연대를 통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함께 구현하고 이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이들과 연대하길 기대한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를 위해 궁극적으로 현대자동차가 그리고자 한 거주 환경의 미래는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기술의 발전이 더 이상 고도화가 아닌 자연의 원래 모습을 되찾아 가는 방식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미래 기술을 통해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이 곧 미래 거주 환경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저희는 오로지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든 종(pecies)위한 비전을 꿈꾸고, 지구의 환경을 변화시키지 않고 상생하여 살아가는 모습까지 상상해 보고자 했습니다. 살아갈 가치가 있는, 함께 만들어갈 가치가 있는 미래야말로 이번 전시가 표현한 세상이지 않을까 합니다.”
바래의 ‘인해비팅 에어’ 전시물은 모듈형 로봇 유닛인 ‘에어리’가 공중에서 모이고 결합되어 땅에 구축되는 원리로 새로운 차원의 쉘터를 제공한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도시의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자연 속에서 현대인이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고, 기후위기 속 동식물을 위한 대피소가 될 수도 있다.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지향하는 현대자동차는 모빌리티 분야에서 클린 모빌리티(Clean Mobility), 커넥티드 모빌리티(Connected Mobility), 프리덤 인 모빌리티(Freedom in Mobility)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 3가지 모빌리티 비전은 현 세대로부터 다음 세대까지 연결하기 위한 중요한 브랜드의 지향점이자 해비타트 원의 전시물에 내포된 가치입니다."
‘클린’, ‘프리덤’과 같은 추상적인 단어들은 하나의 기업이 그리고자 하는 모든 가치를 담기에는 다소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하지만 각각의 전시물을 체험해보면 현대자동차가 전하고자 하는 비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상에 머무는 클로렐라, 로봇이 만드는 쉼터
“에콜로직 스튜디오의 알게는 현대자동차가 추구하는 클린 모빌리티 비전과 연결됩니다. 해양 조류인 클로렐라는 CO2를 흡수하고 O2를 발생시키는데 그것이 나무의 효과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알게는 바다에 사는 클로렐라를 바다가 아닌 지상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고유의 기술력과 아이디어를 공학적으로 풀어낸 것입니다. 미래에는 알게를 건물 외곽에 붙이거나 트리원 같은 인공 나무 형태로 사람이 머무르는 공간에 공존케 함으로써 자연의 공기청정 기능을 대체하고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바레의 모듈은 현대자동차의 커넥티드 모빌리티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움직이는 모듈형 로봇 유닛 에어리가 공간을 이동해서 쉘터를 만들고, 미디어 환경에 필요한 에너지를 태양 전지 패널로 직접 생산하여 사람과 외부 환경이 어디서나 연결됩니다. 이러한 상상과 기술력이 현대자동차가 생각하는 커넥티드 모빌리티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혁신은 궁극적으로 많은 제한을 상쇄시키고 없애는 상징성을 담고 있습니다. 알게는 바다 속에 매여 있던 클로렐라를 지상 공간 어디서나 활용이 가능하도록 한 혁신이며, 에어리는 이동의 제한성을 풀어줍니다. 이처럼 물리적으로 얽매어 있던 요소에 자유성을 부여한다는 측면은 현대자동차가 추구하는 프리덤 인 모빌리티라는 가치를 함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일상에서 향유하는 쉘터를 기반으로 현대자동차의 비전을 아티스트의 색다른 시각 및 기술과 융합하여 전시물 하나하나에 흥미롭게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전시 작품들엔 작가들의 기술력과 새로운 차원의 구조물이 담겨있다. 이 같은 창조 활동에 현대자동차는 어떻게 개입했을까?
“저희의 원칙은 전시물에 명확한 메시지를 담되, 자율성을 부여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작가들의 고유한 창의성을 제한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되, 비전과 연계된 소통에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제네레이션 원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은 MZ세대는 우리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들에게 완전한 쉘터는 자연 속에 있지만 외부와도 커넥트(커넥티드 모빌리티)되는 공간이겠죠. 이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디서든 무선 충전이 될 수 있는 요소를 넣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구조물을 모듈형으로 만들 거면 어디든 날아갈 수 있도록 하면 더 좋지 않을까 라는 상상이 프리덤 인 모빌리티의 가치를 담은 에어리를 탄생시켰죠.
또한 저희의 모토가 ‘지속가능성’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전시 자재 자체에서도 재활용할 수 있는 오브제들을 사용했습니다. 저희가 전시를 통한 소통을 하다보니 전시 자체가 지속가능성과 반대되는 행위라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가벽을 설치하고 이것을 다시 파괴하는 행위들이 환경에 반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전시의 과정에서도 지속가능성과 혁신성이 구현될 수 있도록 전시 아이템 소재를 친환경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알게 같은 경우 나중에 자연으로 버려졌을 때 자연과 융화되며, 에어리가 만든 인해비팅 에어는 사용 후 다시 모듈 단위로 해체되어 다양한 목적에 맞게 변형하여 재사용할 수 있도록 기획했습니다.”
지속가능성을 소비자들에게 알리기 위한 현대자동차의 전시마케팅 전략은 지속된다. 현대 모터스튜디오를 통한 많은 체험들의 근간에는 지속가능성이 전제되어 있고, 전시를 넘어 현대자동차가 브랜드 차원에서 진행하는 많은 활동들 역시 지속가능성과 분리될 수 없다. 향후에는 카타르 월드컵 브랜드 캠페인인 Goal of the Century를 통해 축구를 매개로 지속가능성을 전달할 계획이다. 하나의 메시지와 하나의 비전을 서로 다른 플랫폼으로 효율적으로 이야기하며 고객들과 연대를 꿈꾸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행보를 지켜볼 일이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