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모두 대통령이 돼라.”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13일의 첫 대통령실 전직원 조회에서 강조한 말이다.
김 실장은 ”여기 어공(어쩌다 공무원)도 있고 늘공(늘 공무원)도 있는데, 각자 대통령 입장에서 생각해달라. 국정 운영에 사명감을 갖고 임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사람을 바꾸려면, “이렇게 해 달라”는 당부의 말만으로는 부족하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강제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소속원들의 자세를 바꿀 구체적 노하우는 뭐냐는 질문이다.
현재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낮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비서실 관계자들의 어처구니없는 말 바꾸기도 있다. A 수석이 한 말을 한 시간도 안 지나 B 수석이 “그거 아닌데? 그런 소리 처음 들어봐”라고 부정해서야 도대체 신뢰가 붙겠냐는 말이다.
이런 불일치가 없으려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들이 기자들에게 뭔가 말을 하기 전에 서로 횡적 대화를 벌여야 한다. 토론 뒤 최종적으로 외부에 발설하기로 한 만큼만 ‘입을 맞춰’ 내보내야 한다.
대통령실에서 나오는 발언들을 보면서 필자는 “아, 이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하지 않는구나”라고 느낀 적이 많다. 그래서 이번 전체 조회가 반가웠다. 그런데 김 비서실장은 앞으로의 조회 정례화에 대해 묻는 질문에 “정례화는 뭐, 가끔 (할 수도 있다)”이라고 말했다니 정례화될 것 같지도 않다.
문재인 청와대에서는 대통령-기자단 사이의 대화가 윤 정부처럼 잦지 못했다. 수십 년간 쌓여온 청와대의 권위주의가 한 몫 했을 것이다. 이런 권위주의적 청와대에서 벗어나 용산 대통령실로 옮기면서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허접해서 자주 만나는’ 식으로 대통령실과 기자단 사이가 가까워졌다. 새 정권 들어 크게 개선된 점이다.
그러나 자주 만난다고 사이가 좋아지라는 법은 없다. 어떤 사람은 만나면 만날수록 더 멀어지기도 한다. 특히 이랬다 저랬다 말을 자주 바꾸는 사람과는 자주 만나면 손해를 보기 쉽다.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김 실장이 이번 조회에서 “우리 모두 윤석열이 되자”고 한 말은 의미가 깊다. ‘한 사람처럼 통일하자’는 뜻을 담았기 때문이다.
김 실장은 조회에서 밝혔듯 고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다섯 대통령을 대통령실 근무를 해온 사람이다. 그러니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의 청와대 분위기도 잘 알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당시 노하우를 참고해야 한다.
참여정부 홍보수석을 했던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저서 ‘대통령의 협상’(2019년)에서, 당시 비서진들이 어떻게 ‘충성심’을 모두 갖게 됐다며 이렇게 썼다.
참여정부에서는 늘 견제와 균형이 있었다. 부서끼리 싸우는 경우도 많았다. (중략) 대통령과의 논쟁이나 토론은 물론이고 우리끼리의 논쟁이나 토론도 일상이었다. (중략) 노 대통령은 내가 하도 대통령께 쓴소리를 많이 하니 ‘비서는 대통령이 하는 말을 받아 적는 사람’이라고 말씀은 했지만 실제로는 참모들과의 도전적인 논쟁을 즐겼다. (중략) 노 대통령은 사람을 무조건 믿기보다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시스템만이 업무의 오류를 잡아주고 성과를 가져올 것이라 믿었다. 서로 감시하고 견제하니 사심 없이 대통령께 충성 경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중략)
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경제팀을 세 개 정도 운영한 것으로 안다. 경제팀을 하나로 모아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팀의 팀장은 자신보다 우수한 전문가가 들어오는 걸 경계할 것이다. (중략) 세 팀은 후보에게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경쟁할 것이고, 이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좋은 전문가를 영입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노 대통령은 세 팀의 사람들을 별도로 만나 학습하고 토론해본 후에 장관과 참모 명단을 작성했다. 노 대통령은 소통 스타일도 독특해 그 많은 비서관을 다 알고 직접 소통했다.
(중략)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시스템에선 활발한 토론 자체가 쉽지 않다. (중략) 이런 체계에서는 팀원이 대통령이 아니라 팀장에게 충성할 가능성이 커진다. (중략) 이처럼 위계적 소통 구조 하에서는 참모들이 대통령이 아니라 위임 권력이 집중된 비서실장에게 충성하는 기현상을 낳게 된다.
(중략) 참여정부에서는 인사에 대한 최종 의사 결정을 비서실장이나 인사수석이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결정하지 않았다. 대통령과 관련 수석, 인사비서관들이 배석한 가운데 인사수석이 직접 후보자들을 면담한 후 누가 추천했는지, 장단점이 무엇인지를 모두 앞에서 보고한 후 최종 후보를 추천했다. (중략) 이런 투명한 구조에서는 누군가 사심을 가지고 자기 사람을 심으려는 시도가 애초에 불가능하다. 오로지 대통령을 위해 가장 일을 잘할 사람을 백방으로 찾게 되어 있다. (259~264쪽)
긴 인용의 핵심은, ‘노 대통령은 비서관과의 직접 대화-싸움을 즐겼고, 비서실 직원들도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싸웠기에 대통령에게 충성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 용산 대통령실 직원 사이에선 이런 ‘내적 토론-말싸움’이 진행되고 있는가? 이런 싸움을 거쳐 의견통일을 이뤘다면 A 수석의 발언을 곧이어 B 수석이 “그거 아냐. 처음 듣는 소린데?”라고 부정할 수는 없다.
윤 대통령이 존경한다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 운영 요령을 경험자인 김 비서실장이 잘 소개하고 힘들더라도 실행에 옮겨본다면 참 좋을 듯 한데, 과연 가능할까?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