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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현장] 최우람 작가, 국현 'MMCA 현대차 시리즈' 전시에 방주를 띄우다

방향 상실의 시대’에 띄운 ‘작은 방주’... ‘MMCA 현대차 시리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서 선보여…현대차 로보틱스랩 자문 구한 작품 등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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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32호 김금영⁄ 2022.09.15 15:52:44

최우람 작가의 '작은 방주'가 설치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성스러워 보이는 방주의 새하얀 노들. 하얀 날갯짓을 이어가나 싶더니 그 날개가 뒤집히며 가려져 있던 칠흑빛의 날개가 드러났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듯한 등대의 강렬한 눈동자. 이 모든 모습이 강렬해 절로 눈을 뗄 수 없다. 역동적인 움직임을 지닌 이 방주를 만든 주인공은 최우람 작가다. 그는 어떤 연유로 이 방주를 미술관에 띄웠을까.

국립현대미술관이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 작은 방주’를 내년 2월 26일까지 서울관에서 연다. MMCA 현대차 시리즈는 국립현대미술관과 현대차가 손잡고 이어 온 대표적인 예술 지원 활동 중 하나다. 국내 중진 작가 1인을 지원하는 연례전 형태로, 2014년부터 매년 열려 왔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고 현대차가 선정 작가에게 전시를 위한 제작비, 운영비 및 다양한 홍보 활동을 후원한다. 전시를 통해 작업에 새로운 전환과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고, 국내외 미술계에 적극적으로 홍보함으로써 한국 현대미술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취지다.

최우람 작가. 사진=김상태,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MMCA 현대차 시리즈는 문화 예술과 기업이 만나 상생 효과를 창출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그간 이불, 안규철, 김수자, 임흥순, 최정화, 박찬경, 양혜규, 문경원&전준호 작가가 이 시리즈를 거쳐 갔으며, 올해엔 최우람 작가가 선정됐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키아프, 프리즈 기간 동안 해외의 많은 미술 관계자들이 서울관을 방문해 전시를 감상하며 감동적이라는 피드백을 줬다. 최우람 작가도 주목받은 작가 중 한 명”이라며 “기계를 마치 생명체처럼 다룬 작가의 상상력이 보는 이에게 감동을 안기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1970년생인 작가는 ‘시발(始發)자동차’를 만든 국제차량제작주식회사 최무성 창업주의 손자다. 어린 시절부터 자동차와 인연이 깊었던 그와 현대차의 이번 만남이 더욱 흥미로운 이유다. 자동차를 가까이서 접하고 자란 작가는 엔지니어링에도 관심을 가지며 한때는 과학자가 되기를 꿈꾸기도 했다.

'작은 방주'엔 등대가 달려 있고, 방주에 탄 두 인물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만화 ‘마징가Z’ 등을 보며 한때는 ‘미래엔 기계가 인간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공학에도 관심을 가졌다”며 “이후 미대에 진학해 조소에 푹 빠졌지만, 멈춘 상태가 아닌 움직이고 변화하는 이미지에 흥미를 느꼈다. 그 결과 키네틱 아트(움직이는 작품)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작가는 199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정교한 설계를 바탕으로 움직임과 서사를 가진 ‘기계생명체’를 제작해 왔다. 세밀한 표현으로 살아 숨쉬는 듯한 기계생명체를 만들고 이야기를 곁들여 고유의 세계관을 창조하는 점이 특징이다.

'작은 방주'가 설치된 전시장 전경. 사진=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경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작가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의 중심엔 ‘움직임’ 그리고 ‘욕망’이 존재한다는 관점 아래 키네틱 아트를 선보여 왔다”며 “2013년 서울관 개관 때 설치 프로젝트를 선보인 이래 10년 만에 다시 작가와의 만남이 이뤄졌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오늘날 우리가 처한 재난과 위기에 대한 답을 나름대로 찾아가는 과정을 다양한 움직임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 다양한 움직임을 구현한 작가는 자신의 스승을 ‘청계천 사장님들’이라 했다. 그는 “키네틱 아트를 시작한 초창기 시절, 청계천 공구 상가를 매일 제집같이 드나들었다”며 “다양한 분야의 가게 사장들이 모인 청계천에 작품 스케치를 들고 가면 처음엔 귀찮아하다가도 ‘이건 저 옆집 가게 사장한테 물어보면 된다’고 자문해줬다. 그런 식으로 도움을 받고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공학 지식을 쌓았다”고 말했다.

역동적 움직임 지닌 작품들의 향연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작은 방주'의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그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쌓여 이번 전시에서 빛을 발한다. 메인 작품 ‘작은 방주’는 특히 규모와 작품이 주는 압도감이 인상적이다. 현대차와의 협업이 효과적으로 이뤄진 작품이기도 하다.

세로 길이가 장장 12미터에 달하는 ‘작은 방주’는 철제 프레임에 좌우로 35쌍의 노를 장착하고 노의 말미에 흰색을 칠한 폐종이 상자가 도열한 거대한 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음악에 따라 이 노들이 움직일 때 방주는 단순 오브제가 아닌,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와도 같은 힘을 내뿜는다.

작가는 “혼자 ‘작은 방주’를 구현하기엔 기술적으로도, 규모로도 어려운 점이 있었는데, 현대차 로보틱스랩에 기술 자문을 구해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며 “전시가 끝난 뒤 작품의 보관이나 처리 등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음이 가는 대로 큰 규모의 작업을 한껏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코로나19로 인한 펜데믹 시대를 겪으면서 모든 신념이 흔들리는 ‘방향 상실의 시대’를 표현했다.

'작은 방주' 위를 날아다니는 '천사'의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그는 “우리가 어린 시절 알던 기술들은 디지털 세계로 전환되며 첨단기술로 대체됐다”며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은 해법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과거 천연두, 페스트가 퍼질 때 원인도 모른 채 죽어갔던 것처럼 현재 펜데믹, 전쟁을 겪으며 믿어왔던 것들이 계속 흔들리고 있다. 이걸 보고 ‘우리에겐 여전히 구원의 방주가 필요하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치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하는 작품명 앞에 ‘작은’이 붙은 건 모든 욕망을 실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작 방주의 크기는 거대하지만 ‘작은’이 붙은 역설적 상황은, 자유를 원하면서 동시에 평등을 갈구하고, 지배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 동시에 어딘가에 소속되기를 원하는 등 상반된 욕망을 동시에 품은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느낌도 든다.

'원탁'과 '검은 새' 앞에 서 있는 최우람 작가. 사진=김금영 기자

그는 “구원을 위해 방주를 만들었고, 사람들은 방주로 인해 안전하다고 느끼지만, 이 방주에 누가 타고, 무엇을 실을 것인지 정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차별과 선택의 문제들이 생긴다”며 “인간의 욕망은 이처럼 끝이 없는데, 모든 것을 실을 수 없다는 게 자명하기에 ‘작은’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방주와 함께 ‘등대’가 눈에 띈다. 등대는 본래 길잃은 자들의 방향을 짚어주는 존재이지만, 흔들리는 방주 위에 등대가 설치됐다는 점, 그리고 방주 위에 탄 두 인물이 각각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서 방향 상실의 시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이 ‘작은 방주’ 근처를 ‘천사’가 날고 있는데, 이름은 천사이지만 마치 지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새로운 여정은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원탁'을 받치고 있는 지푸라기 몸체들과 원탁 위를 굴러다니는 머리 모양의 형상. 사진=김금영 기자

‘작은 방주’의 거대한 움직임과 더불어 ‘원탁’의 거친 움직임, 이에 대비되는 ‘검은 새’의 평화로운 움직임도 눈에 띈다. AI(인공지능)적 요소를 활용한 ‘원탁’은, 4.5미터 지름의 커다란 원탁 위를 밀짚으로 만든 머리 형상이 굴러다닌다. 이 원탁을 머리가 없는 18개 지푸라기 몸체가 받치고 있다.

 

원탁 위 머리를 갈구하듯 지푸라기 몸체가 움직일 때마다 데굴데굴 머리 밀짚이 굴러다닌다. 마치 욕망의 뫼비우스의 띠가 눈앞에 펼쳐진 느낌이다. 이 작품도 로보틱스랩 자문을 받아 구현했다.

이 ‘원탁’의 움직임은 처절한 데 반해 전시장 허공엔 ‘검은 새’가 우아하게 날아다닌다. 폐종이박스와 기계장치를 활용한 작품으로 ‘원탁’과 수직적 긴장 관계를 자아낸다.

코로나19 검사와 진료 현장에서 의료진이 착용한 방호복 소재로 만들어진 '하나'(왼쪽)와 '빨강' 작품. 사진=김금영 기자

펜데믹의 혼란과 두려운 상황 속 피어난 꽃들은 오히려 아름다워 역설적이다. ‘하나’와 ‘빨강’은 코로나19 검사와 진료 현장에서 의료진이 착용한 방호복 소재 ‘타이벡’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가만히 멈춰 있던 이 꽃들은 관람객이 앞에 다가서면 센서가 반응해 꽃잎 하나하나가 움직이며 빛을 발한다.

기계장치를 연결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이 작품은, 의료진에 보내는 헌화이자, 위기를 겪은 시대를 위한 애도의 의미를 담았다.

이처럼 작가의 작품들은 첨단기술을 활용하면서도 폐종이박스, 지푸라기, 방호복 천 등 일상의 흔한 소재를 사용했는데, 이는 삶의 조화와 균형에 대한 희망을 내포한다.

폐기된 차에서 전조등과 후미등을 모아 둥그렇게 이어 붙인 조각 'URC-1', 'URC-2'이 설치돼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폐기된 차에서 전조등과 후미등을 모아 둥그렇게 이어 붙인 조각 ‘URC-1’, ‘URC-2’ 또한 그렇다. 인간의 욕망을 위해 잠시 쓰였다가 이내 버려진 재료를 소생시켜 빛나는 별로 재탄생시킨 작가는, 방향 상실의 시대에도 여전히 희망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욕망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작업하며 함께 걸어간다.

이 메시지는 작품 ‘사인’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두 팔을 활짝 벌린 인간의 형태가 보이는데, 이는 반갑게 인사를 하는 사람의 모습으로도, 신선한 광배를 두르고 저 위에서 우리를 지키는 신의 모습으로도, 우주 헬멧을 쓰고 저 높은 우주를 탐험하는 우주인으로도 보인다.

최우람 작가는 '사인'을 통해 "새로운 여정은 자신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우리는 스스로의 방향성에 따라 스스로를 구원하는 신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방향 상실의 시대에 새로운 여정은 자신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범모 관장은 “코로나19와 이상기후 등 동시대의 위기 속, 방향 재설정과 같은 시의적절한 질문을 끌어내고 따스한 위로와 응원을 건네는 예술가의 역할을 보여주는 전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 그룹 회장은 후원사 인사말을 통해 “어느덧 MMCA 현대차 시리즈가 아홉 번째 해를 맞았다. 이번 현대차 시리즈는 특히 현대차 로보틱스랩이 기술 자문으로 참여해 ‘인류를 향한 진보’에 기여하고자 하는 현대차의 바람이 전시를 통해 확장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라며 “예술과 기업의 긍정적 협업의 기회를 제안한 작가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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