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3호 김예은⁄ 2022.10.08 11:42:43
2002년 11월 2일 ‘주식회사 열심히’라는 상호로 설립된 ‘주식회사 러쉬코리아’(2010년 11월 15일 상호 변경)는 2022년 6월 말 기준 연 매출 1,234억, 영업이익 194억을 돌파하며 그야말로 ‘열심히’ 성장했다. 2021년 최초로 연 매출 1,000억을 돌파한지 1년 만인 올해 전년대비 21% 성장하는 저력을 보이고 있다.
회사의 성장 기반을 ‘해피피플(Happy People)’이라는 말로 대신하곤 했던 러쉬코리아 우미령 대표. 그는 창립 20주년을 맞아 앞으로 나아갈 20년의 방향성을 ‘아트(Art)’로 선포하고, 첫 시작으로 ‘러쉬 아트페어’를 개최했다. 러쉬코리아와 20년을 함께 성장해 온 우 대표에게 과거 20년의 선택과, 미래 20년의 방향을 물었다.
러쉬코리아 과거 20년의 선택
-20년 전 청년 창업이 활발하지 않았던 시대적 상황에서 왜 취업이 아닌 창업에 관심을 가졌나요?
“어머니가 사업을 하셨어요. 어린시절부터 어머니를 따라 여러 사업 현장을 누비며 사업에 일찍 눈을 뜨게 됐죠. 집안의 장녀로서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장사를 많이 도와드리면서 ‘장사 마인드’가 머리 속에 각인되었다고 할까요. 어떤 제품을 보면 이 제품은 누구에게 맞을 것 같다, 새 제품은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 라는 생각을 일찍부터 하게 되었죠. 이런 집안 환경 덕에 취직보다는 제품을 내가 직접 팔아봐야지 라는 생각을 했고 자연스럽게 창업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사실 초기에는 기업이나 거대한 비지니스를 상상하지 못했고, 소비재를 판매하는 가게 정도를 생각하며 사업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돌아보니 연 매출 1,000억대의 기업으로 성장해 있네요.”
- 창업을 위해 러쉬라는 브랜드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보석가게를 운영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보석 세미나 코스에 참석 차 뉴욕에 갔는데 9.11테러가 일어났어요. 당장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죠. 그 곳에 머물며 다양한 브랜드를 돌아보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러쉬였습니다. 포장도 되어 있지 않은 독특한 모양과 컬러에 시각적으로 끌려 관심이 생겼고, 제품마다 스토리가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겉으로는 재미있고 화려하지만 내면에는 진지한 콘텐츠가 담긴 브랜드의 양면성에 끌린 거죠.”
-지금은 가치소비, ESG경영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20년 전 창업할 당시 보편화되지 않은 동물실험 금지, 친환경을 넘은 비건 화장품 등 천연 재료만 사용한다는 브랜드 ‘외고집’ 철학이 낯설진 않았나요?
“러쉬를 국내에 들여와야겠다고 마음먹고 접촉하면서 러쉬 본사의 교육을 이수하게 되었습니다. 브랜드의 가치를 말로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창립자의 집에 초대해 2주간 머물도록 해준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과정에서 그들이 하는 행동, 삶의 방식, 생활양식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러쉬의 가치가 스며들도록 한 거죠. 외국 현지인의 집에서 며칠을 사는 것은 당시 제겐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퇴근 후에는 저녁 라이프를 경험했어요. 그들이 중시하는 가치를 일상에서 경험하면서 이래서 러쉬라는 제품이 나올 수 있었구나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공감하고 읽었던 러쉬라는 브랜드 스토리가 실제 창립자의 라이프와 맞아떨어지는 것을 경험하고 이 가치를 조심스럽게 접근하면서, 온전히 내 것으로 소화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러쉬의 브랜드 가치가 생소한 국내 소비자들에게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러쉬의 여러 가치들 가운데 인권이 먼저 들어왔습니다. 저도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긴 했지만 20년 전만 해도 동물의 인권, 환경 보호를 위해 내 생활에 플라스틱을 줄여나가는 것들을 생각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죠. 주변에서 늘 접하는 것이 사람이고, 결국 인권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에 초기에는 이 가치에 치중했습니다. 초기 로컬 캠페인도 인권 위주로 진행했죠. 동물보호, 비건주의, 친환경이 러쉬라는 브랜드가 가진 정체성이자 차별점이지만, 인권과 직원을 먼저 생각한 점은 한국에서 만들어진 러쉬코리아의 문화이자 차별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점차 그 반경을 넓혀 글로벌에서 진행하는 환경, 동물 관련 캠페인에 함께 발맞춰 나가면서도 러쉬코리아만의 방식으로 이를 소화했어요.”
-창업 당시 우리나라에서 입욕제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어느 정도였나요?
“초창기에는 입욕제라는 개념보다는 보다 비누에 대한 관심이 많았죠. 창업 초기 러쉬는 비누를 큰 판으로 디스플레이하고 원하는 중량에 맞춰 잘라서 판매했는데요. 이 독특한 모양의 비누는 어떤 제품인지,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등 많은 분들이 호기심을 가졌죠. 그래서 초반에는 러쉬하면 소비자들이 비누를 떠올렸습니다. 지금은 입욕제가 연상되지만 창업 초기에는 입욕제에 대한 인지도가 그만큼 낮았어요.”
-국내에 러쉬를 브랜딩하며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어떤 것이었나요?
“명동에 첫 러쉬 매장을 열 때, 제가 창립자의 집에서 전수받고 체감한 브랜드에 대한 감각을 판매 전략에 녹이기 위해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었어요.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비누를 만들 수 있죠. 그래서 내가 이것을 만지고 팔면서 느끼는 즐거움과 행복감을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똑같이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창업 초기 저도 매장에서 일하고 제품을 직접 만들었어요. 당시 저를 포함해 5명으로 시작했으니 주말도 없이 일해야 했죠. 그렇게 일하면서도 일하는 순간뿐만 아니라 고객이 없는 빈 매장에서도 즐거움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지금도 하드 워킹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매장에서, 회사에서 어떻게 하면 즐겁게 매일매일 파티처럼 지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건 변함이 없어요.”
-매일 파티처럼 일하려면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만족도도 중요할 텐데요.
“창업 초기 팀원을 모집할 때도 함께 놀 줄 아는 사람, 함께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분들과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채용 과정에서도 동종 업계 경험이 많거나, 조직 생활을 잘 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즐거운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일하는 것에만 포인트를 두었습니다. 그래서 러쉬는 펀(Fun)하고, 자유롭고, 신나는 직장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죠, 그런데 실상 입사해보면 정말 하드워킹(Hard Working) 이거든요. 일을 열심히 하니 그만큼 잘 노는 것 같아요. 우리 임직원들을 ‘해피피플’이라 부르는데, 해피피플이야 말로 러쉬코리아를 성장시킨 주인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역할은 이 해피피플을 서포트하는 거예요. 직원 복지에 늘 각별한 관심을 갖고, 어떻게 하면 함께 재밌는 일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즐겁게 노는 것이 중요하다면 직원 평가는 어떻게 할지 궁금한데요.
“그동안 저희는 별도의 직원 성과평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평가가 전혀 없는 건 아니고 ‘소프트 스킬’이라는 피드백 문화로 직원 스스로 일상적인 자기점검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성과를 항목별로 체크하지 않아도 R&R(role and responsibility)이 노출 되는 이벤트 등을 통해 성과를 증명하도록 해왔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고객 접점이 많이 없어지고 비대면과 유연근무제가 진행되면서 어느 정도의 직원 평가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새로운 세대와 일하면서 공정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해진 연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한만큼 어떤 보수와 대우를 받을 수 있을지 직원들이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글로벌 브랜드로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한국 고객만을 위한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이 있는지요.
“러쉬 판매직원들이 직접 소비자를 위해 매장 내에서 고가의 제품을 사용해 시연을 벌이는 것, 광고나 인플루언서 등 마케팅 비용을 투자하지 않는 대신 의식 있는 캠페인 활동을 통해 러쉬만의 가치 전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모두 러쉬라는 브랜드가 지키고 있는 이념과 가치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전세계 어느 러쉬 매장을 방문해도 동일하죠. 러쉬의 글로벌 캠페인에서는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러쉬 본사가 추구하는 브랜드 이념, 가치를 바탕으로 한 캠페인의 방향과 내용은 수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단, 메시지를 전할 때 한국인에게 더 와 닿을 수 있도록 로컬화하는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위안부 역사 왜곡을 바로잡고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진행한 ‘화(花)를 내다’ 캠페인이나, 탈북 청소년의 재능을 발굴하는 캠페인 ‘두드림(Do Dream)’은 한국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활동이자, 러쉬 글로벌 행사에서도 소개된 대표적인 로컬화 사례입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러쉬코리아가 외향적·내향적 등 고객 성향에 맞춰 각각 다른 직원이 응대한다는 것이 알려져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마케팅 전략인가요?
“러쉬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내 문화를 가지고 있어 직원의 성향을 구분하진 않습니다. 다만, 러쉬에서 ‘매장’은 고객이 브랜드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라, 이 곳에서 고객과의 ‘소통’을 중요시합니다. 고객 한 분 한 분께 올바른 제품을 추천해 주고, 그 고객이 제품 효과를 온전히 볼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것이 러쉬 컨설테이션의 특징이죠. 그래서 직원들이 고객에게 질문을 많이 하고, 고객의 말에 귀 기울입니다. 이렇게 매장에서 고객의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고객 개개인에 맞는 올바른 추천'에 닿을 수 있는 거죠. 고객이 러쉬 직원들의 응대가 특별하다고 느끼는 건 이런 모습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러쉬코리아 미래 20년을 위한 선택
-내부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두고, 예술과 함께하는 20년을 선포하며 아트와 문화 관련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러쉬코리아가 아트를 통한 소통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장사라는 개념을 해석하는 방식이 각자 다르겠지만 단순히 제품을 팔아 돈을 번다는 것 이상의 많은 것들을 생각해야 하는 치열한 일이죠. 프로세스를 계획해야 하고, 그것을 실현하고, 또 실패했을 때 그 다음을 위한 계획을 생각해야 합니다. 행위 예술 작가처럼 비즈니스를 풀어가는 과정 자체가 종합 예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러쉬가 오랫동안 지속해온 캠페인이나 프로모션 이벤트, 행사 자체가 종합 예술이라고 볼 수 있어요. 예술가를 모시지 않더라도 모든 플레이어들이 다 예술가죠.
그러던 차에 예술가들이 그 재능을 사회에 환원하거나 사회에 영향을 주는 등 소통 방식에 많은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20년간 해왔던 작품 같은 제품과 활동들을 러쉬만의 예술 행위로 풀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이제 우리가 앞장서 예술 활동을 이끌어보자는 도전의식을 갖게 되었죠.”
-아트와 연계한 러쉬의 브랜드 전략은 다른 기업의 아트 마케팅과 어떻게 다른가요?
“기업이 아트 시장에 진입하는 이유와 이루고자 하는 바는 각기 다릅니다. 아트 시장에서의 활동 또한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맞닿아 있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유의미한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러쉬코리아 역시 1조 시장이 넘는 아트 시장의 시장성에 대한 비즈니스적인 접근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예술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고, 문제를 제기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점에 있어 예술 활동이 러쉬의 활동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러쉬는 다양한 캠페인을 통해 사회 문제 해결에 노력해왔거든요. 올해 20주년을 맞아 첫 시작으로, 재능은 있지만 소외된 예술가들과 동행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아트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20년을 기약하고 화장품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전반에서 예술을 통해 긍정적인 혁명을 일으키는 브랜드로 도약하길 바랍니다.”
-아트페어를 기획하면서 발달 장애인들과 손을 잡았습니다. 이유가 궁금합니다.
‘환영합니다. 모두를, 언제나(All are welcome, always!)’라는 러쉬의 브랜드 신념에는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해 보다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의미가 녹아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에서는 신경성 및 신체적 어려움을 겪는 작가들의 작품을 천 포장재인 ‘낫랩’으로 출시하고 있어요. 국내에서는 전국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발달장애 예술가들의 작품을 조명하고자 ‘러쉬 아트페어’를 개최했습니다. 재능 있는 장애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한국에서는 발달장애 아티스트와 함께 풀어낸 거죠. 최근 미술시장이 전례 없는 호황기를 맞았지만 정작 발달장애 작가들은 설 기회가 없다는 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아트페어를 통해 재능은 있지만 주목 받지 못하는 예술가들과 동행·상생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선보였습니다.”
-첫 아트페어를 열었는데요. 긴 호흡에서 아트페어를 어떻게 끌고 나갈 계획인가요?
“첫 러쉬 아트페어를 ‘편견은 없다’라는 타이틀로 시작했습니다. ‘편견’이라는 단어를 꺼내 들면서 작품을 보는 시각에 프레임을 씌울 수 있지 않을까 고민이 많았죠. 그런데 그걸 인정할 때 오히려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편견을 인정하고 그걸 통해 다양성을 인지하고 함께 공존하는 넓은 시각을 갖게 되는 거죠. 러쉬 아트페어는 앞으로도 지속성과 확장성을 가지고 러쉬에 필요한 프로젝트로 자리매김해 나갈 계획입니다. 다양성의 대상 역시 특정 범주가 지정된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기획될 러쉬의 아트페어가 얼마나 다양하게 확장될지 저 역시 기대됩니다.”
-20주년을 맞아 사람과 동물, 환경이 조화로운 세상을 위해 다른 각도로 세상을 바라보자고 제안했는데요. 20년 후 러쉬코리아가 어떤 기업이길 바라나요?
“스무 살은 특별한 나이입니다. 인생의 전환점이기도 하고요. 패기 넘치는 스무 살을 맞아 세상을 다른 각도와 굴절로 보려 시도하고 있습니다. 통념을 조금만 비틀어 보면 소수의 목소리가 들리고 몰랐던 차별이 보이고 누군가에게는 자부심이 되는 옳은 길을 찾을 테니까요. 급변하는 세상에서 유연하게 트위스트 한 판 출 줄 아는 성숙한 스무 살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러쉬코리아는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경영을 고집하며, 건강하면서도 러쉬스러운 20년, 100년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도록 나아갈 것입니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