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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93) 함진 개인전 ‘엄마’] “작은 작품 만들수록 자유로워지고 표현 가능성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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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34호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2022.10.27 09:41:35

(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더 갤러리 이번 회는 ‘PERIGEE ARTIST #29 함진: 엄마’를 진행 중인 함진 작가와의 인터뷰를 싣는다.

- 함진의 작품이 작다는 것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돋보기는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씩씩하게 전시장에 들어섰으나 첫 작품 ‘미물’(2022)에서 바로 막혔다. 그래서 전시장 입구에 비치된 돋보기를 가지고 다시 들어갔다. 돋보기로 볼 때와 그냥 볼 때의 느낌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형태의 변화가 흥미로웠다. 초기 작업이 구체적이고 완결된 형태를 보여준다면 ‘도시 이야기(Tale of city)’(2013), ‘Union’(2013) 같은 작품들은 형상이 해체되듯이 흩어졌고, 챕터투(CHAPTER Ⅱ)에서의 개인전 ‘머리(Head)’(2020)에서 발표된 작품들은 유동체처럼 녹아내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번 전시 ‘엄마’(2022)에서도 이와 유사한 특징이 두드러진다.

초기엔 오브제에서, 아니면 콘센트나 벽의 틈새처럼 사물이나 특정 공간의 조건이 갖는 특성에서 오는 상상력을 토대로 작업했다. 예를 들어 티백을 보고 모기장처럼 생겼으니 그 안에는 모기를 무서워하는 사람을, 밖에는 모기를 만들어 연출, 설치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기도 한, 정확한 표정을 보여주는 사람과 같은 형태를 만들었다. 이후 작업에 변화를 주고 싶어 고민할 때 지인들이 드로잉을 해보라고 추천해줬다. 그래서 아크릴 페인팅을 했는데 그게 작업에 반영되어 ‘도시 이야기(Tale of city)’ 같은 ‘검정 작업’이 나오게 되었다. ‘검정 작업’을 보면 어떤 부위는 잘 보이고 어떤 부위는 뭉개져 있다. 추상과 반추상 같은 형상들이 다 뒤섞여 있다. 이후 검정만 쓰는 게 지겨워져 40종류 이상의 색이 나오는 폴리머클레이(합성 점토)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번 개인전에는 점토와 색을 가지고 놀았던 결과물들이 전시되었다. 색 점토를 쓰면 회화와 조각 작업을 동시에 하는 느낌이다. 내가 좋아하는 형상의 표현과 색의 겹침, 뒤섞임을 한 번에 할 수 있어서 계속 사용하는 것 같다.
 

‘PERIGEE ARTIST #29 함진: 엄마’, 2022, 전시 전경, 도판 제공 = 페리지갤러리

- 사이사이 변화가 있었지만 작은 작품은 함진의 작업을 대표하는 특징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아주 작은 작품들을 선보였다.

항상 작은 물체를 만들 때 더 집중이 잘 되고 안정된다. 또 내가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는, 온전히 모든 것을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크기가 좋다. 그게 내 취향인 것 같다. 존재감이 크지 않은 것에 더 애착이 가는 것도 같다. 나는 산에 가면 풍경 전체나 큰 나무보다는 잘린 나무 사이에 고인 빗물, 그 안의 이끼와 버섯을 한참 들여다보곤 한다. 바다에 가도 돌에 붙은 따개비나 기어 다니는 작은 게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개인전 ‘머리’에서 발표한 ‘웃고 있다(Smile)’(2020), ‘안녕(Hello)’(2020), ‘잠이 안 와(I can’t sleep)’(2020)처럼 작품의 크기를 키워보기도 했는데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당시에 나도 큰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매번 힘들게 완성했고 완성한 뒤에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작은 작품을 만들 때 더 편하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작은 작품을 만들수록 자유로워지고 표현의 가능성도 커진다.
 

‘날뛰다’, 2022, polymer clay, aluminium wire, varnish, 6 x 5 x 8cm, 도판 제공 = 페리지갤러리
‘이름없는 10’, 2022, polymer clay, aluminium wire, varnish, 5 x 5 x 11.2cm, 도판 제공 = 페리지갤러리

- 본인이 좋아하는 것인 동시에 작가 함진만 할 수 있는 작은 작품이다. 그런데 작품이 너무 작다 보니 발생하는 어려움은 없는가? 작업 과정을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작업 과정 중에 답답함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는지도 궁금하다.

그렇진 않다. 다만, 원래는 시력이 엄청 좋았는데 최근에 노안이 왔다. 그래서 가끔 눈이 힘들 때 작업용 돋보기를 세워놓고 보기도 한다. 답답하거나 짜증나진 않는다. 나는 모든 것을 느리게, 천천히 하는 편이다. 조급한 것을 너무 싫어해서 항상 여유 있게 진행하려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작업도 항상 느리게 한다. 느리게 하면 웬만한 건 다 만들 수 있다. 바삐 하면 한 시간에 끝낼 수 있는 것을 하루 정도에 하면 편안한 마음으로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미물 01’, 2022, polymer clay, 1.2 x 1.9 x 1.5cm, 도판 제공 = 페리지갤러리
‘엄마’, 2022, polymer clay, alumium wire, varnish, 4 x 3.7 x 9.3cm(측면), 도판 제공 = 페리지갤러리

- ‘땅’(2022) 시리즈는 대지의 부분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물도 아니고 고체도 아닌 애매모호한 무언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이름 없는’이란 작품 제목도 유동적인 형상, 그리고 이번 전시의 주제와 잘 어울린다. 작품을 제작할 때 사전에 어느 정도 계획을 짜는지, 작품 제목은 어떻게 짓는지 궁금하다.

작품 제목은 대부분 완성하고 난 뒤 생각한다. 작품을 마주한 관객들이 재미있어하고 흥미롭다고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장치가 될만한 제목을 선택한다. ‘이름 없는’의 경우 ‘무제’ 같은 제목이면 좋겠는데 마음에 드는 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페리지갤러리의 신승오 디렉터가 ‘이름 없는’이 어떠냐고 제안해주었다.

나는 작업을 하면서 ‘어떤 느낌이 들게 해야지,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지’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무계획적이고 즉흥적이다. 작품에 들어가기 전 드로잉도 하지 않는 편이다. 서 있는 형태, 얼굴, 이런 식으로 커다란 윤곽을 떠올리며 작업을 시작하고, 만들어가면서 순간순간 정해간다. 당시에 떠오르는 영감이나 구상을 바로 반영한다. 여러 색의 점토를 하나하나 만두피처럼 얇게 펴고 쌓은 뒤 밀대로 민 다음 손으로 늘려가면서 형상을 만들 때의 경험은 시각적이기도 하면서 촉각적이다. 점토의 앞부분은 납작한 평면 같은 형상인데 뒷부분은 여러 색이 동시에 보여 평면이 아닌 것 같은, 정체를 정확히 알 수는 없는 작품들도 있고, 동물의 형상 같은 느낌을 강하게 전하는 구상적인 작품도 있다. 다만 계획이 없다고 해서 시각 혹은 감각에만 집중하는 작업은 아니다. 놀 듯이 작업한다고 말하고 그게 사실이지만, 작업하는 동안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간다.
 

‘나’, 2021, polymer clay, stainless steel, 3.5 x 3.5 x 6.3cm, 도판 제공 = 페리지갤러리

- 초기의 작품들은 일상의 공간이나 찾기 힘든 곳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전통적인 조각 작품처럼 좌대 위에 자리하게 되었다.

초기작은 잘 안 보이거나 숨겨져 있는 식이었다. 지금은 온전히 보여주는 방식이 더 마음에 든다. 그래서 좌대에 올려놓고 관객들이 정확히, 열심히 볼 수 있도록 했다. 정직하게 좌대에 올려놓는 게 나도 더 편한 것 같다.
 

‘미물 03’, 2022, polymer clay, 1 x 0.7 x 0.3cm, 도판 제공 = 페리지갤러리

- 초기작의 경우 관객들이 전시장에서 작품을 발견 못하고, 다 보지 못하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감상에서 누락되는 작품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는가?

그건 아닌 것 같다. 만약 그런 생각이라면 이번 전시에서도 관객들을 위한 돋보기를 딱 3개만 놓지 않고 더 많이 놓았을 거다. 돋보기로 보고 싶으면 보고, 아니면 그냥 봐도 좋다. 좌대 위에 올려지긴 하지만 여전히 작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데 그렇게 스쳐 가는 것도 좋다.

- 예전에 했던 인터뷰에서 “내 작품을 보고 ‘함진은 이런 사람이구나’라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 있다. 오늘 인터뷰 중에도 느낀 건데 자기 내면이나 감정 혹은 무엇이든 작품에 담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작품이 자신과 같다고 설명했다. 마치 작품은 작가 자신의 반영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것을 생각하거나 계획하지 않아도 자신이 담긴다고 생각한다는 인상이다. 작품에 자신을 이입하는 편인가? 물론 모든 작품에는 어떤 식으로든 작가가 담긴다.

정말 옛날에 했던 인터뷰를 본 것 같다. 내가 만들었으니 당연히 내 작품에는 나의 성격이나 습관, 취향이 담겨 있을 거다. 자연스럽게 내가 배어있는 거다. 대단한 목적을 위해 만든 게 아니라 점토를 갖고 놀면서 만든 결과물이니 가감 없이 제일 나다운 무언가가 담겼을 수 있다. 그러나 내 작업을 통해 ‘함진은 이런 작가다’라고 단언하라는 뜻은 아니다. 나는 내 작품을 보고 관객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쳤으면 좋겠다. 인터뷰는 특정한 질문을 받아서 답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 생각의 전부를 담기는 어려운 것 같다.
 

‘미물 04’, 2022, polymer clay, varnish, 7 x 6 x 0.4cm, 도판 제공 = 페리지갤러리

- 작품의 형태나 색 등이 매우 감각적이다. 스스로를 시각적으로 예민한 사람이라 생각하는가?

그런 면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민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조각들 01’, 2022, polymer clay, varnish, 7.3x4.8x0.2cm, 도판 제공 = 페리지갤러리

- 작업에서 SF적인 분위기가 풍긴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SF 문학이나 영화를 보면 미래사회를 그려도 환경이나 배경 등에서 고졸하거나 원시적인 분위기를 보여줄 때가 있다.

그런 이야기 들은 적 있다. 또 SF 영화를 좋아하니 영향이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영향을 주는 삶의 일부분 중 하나일 거다.

- 이번 전시와 관련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앞서 말했듯 색 점토로 재미있게 놀아본 결과이다. 관객들도 개념이나 미술사적 의미 같은 것을 생각하기보다 내가 작업한 것처럼 자연스럽고 편하게 관람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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