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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제주, 그리고 용산… 공간의 코드를 탐닉한 야외전시 작가들의 예술적 여정, 아모레퍼시픽 ‘apmap2022 seoul - apmap review’展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지난 10년간 진행해 온 에이피 맵 프로젝트, 자연과 상호작용을 통해 미를 창조한 야외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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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35호 김예은⁄ 2022.10.27 17:32:27

SoA작가의 2016년 작품 '담'. 용산가족공원 제2광장의 담벼락에 은경(銀鏡)으로 설치된 조형구조이다. 거울로 이루어진 벽은 자연과 관람객들을 함께 투영함으로써 확장된 풍경으로 연결하며, 희망찬 용산 공원화사업의 미래를 조망한다. 사진=아모레퍼시픽 제공

‘공간이 창조하는 영감을 작품 속에 담는 일’.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지난 10년간 진행해 온 에이피 맵 프로젝트는 이 한마디로 함축해볼 수 있다.


‘에이피 맵(apmap, amorepacific museum of art project)’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미술을 통해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국내 작가들에게 특정 장소에 어울리는 신작 제작과 전시의 기회를 지원하는 중장기 현대미술 프로젝트이다.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공공미술, 야외 전시 분야에 기여하기 위해 기획돼 2013년부터 매해 개최되어 왔다.


part I(2013-2016)이 오산, 제주, 용인 등 아모레퍼시픽의 여러 사업장을 순회하며 일상 공간을 예술공간으로 전환했다면, part II(2017-2019)는 오설록과 서광다원을 무대로 제주를 현대미술의 섬으로 재해석하는 전시를 선보였다. 총 7번의 전시에 95팀, 100여 명의 작가들이 참여하였고, 100점 이상의 장소 특정적 신작이 제작되었다.

 

야외 전시라는 한정된 경험을 폭넓게 제공하기 위해 미술관은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작가들을 한데 모아, 구상에서 제작· 설치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시도와 경험을 모색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왔다. 2016년에는 아모레퍼시픽 용산 신사옥 공사 현장이 작품을 위한 무대가 되기도 했다.
그 여정에 담긴 작품들을 살펴보면 야외 전시가 어떻게 자연과 상호작용을 통해 미를 창조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apmap의 첫 번째 전시 ‘apmap 2013 osan - reverscape’는 2013년 오산의 화장품 통합생산물류 기지인 아모레퍼시픽 뷰티캠퍼스에서 개최되었다. 반전을 의미하는 ‘reverse’와 풍경을 뜻하는 ‘-scape’를 합친 ‘reverscape’라는 제목으로 총 14팀의 참여 속에 진행되었다. 넓은 녹지와 단정한 건축물로 이루어진 오산 공장의 일상적 풍경은 현장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들을 통해 반전되었고, 예술과 일상이 능동적으로 소통하는 예술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특히 작품이 일상이라는 도화지 위에 놓일 수 있는 가능성을 반전의 미를 통해 제시했다.

정혜련 작가의 2013년 작품 ‘abstract time 2013’. 사진=아모레퍼시픽 제공

정혜련 작가의 ‘abstract time 2013’은 LED와 광확산PC를 활용한 작업으로 붉은 색채와 역동적으로 꿈틀대는 형태를 통해 관람객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직선적인 건물 앞에 놓인 비정형의 곡선은 주변 환경과 대조를 이루며 운동감과 에너지를 강하게 보여주는 공간드로잉의 아름다움을 제시한다.

 

정승운 작가의 2013년 작품 공제선-芝山(지산). 사진=아모레퍼시픽 제공

정승운 작가는 공제선-芝山(지산)이라는 작품을 통해 난간에 걸쳐있는 거대한 목재로 치밀하게 계산된 견고한 구조를 그대로 드러내며 한눈에 포개지는 원경과 근경을 그려낸다. 작가의 상상 속에서 형성된 개념적인 산의 형태는 넓은 꽃잎처럼 펼쳐지며 다양한 시점의 관람을 유도하고 난간이 지닌 새로운 공간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apmap 2017 jeju - mystic birth’ 전시는 제주 일대에서 제주도가 지닌 장소성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mystic birth’의 주제를 생동하는 자연과 교감하며 표현하는 야외미술관으로 기능하고자 했다. ‘mystic birth’는 오랜 기간 섬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염원을 담고 있는 신화와 전설을 주제 삼아 제주의 신비로운 탄생을 표현했다.

 

박여주 작가의 2017년 작품 ‘여신의 다리’. 사진=아모레퍼시픽 제공

이곳에서 박여주 작가는 ‘여신의 다리’라는 작품을 통해 제주 오설록 티뮤지엄 일대의 물가 위에 다리를 놓았다. 조천리를 포함한 제주의 주요 항구 지역은 제주도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여신인 설문대할망이 육지와 연결되는 다리를 놓다 말았다고 알려진 곳이다.

 

작가는 설화 속의 다리를 여러 개의 아크릴로 형상화했으며, 개체들을 이어서 보거나 수면에 비춰 보는 방식을 통해 미지의 영역에 대한 인간의 동경과 염원을 표현했다. 수면에 비추인 작품을 미지의 영역으로 형상화 한 작가의 작품 속에서 작품과 자연의 교감을 읽을 수 있다.


2018년 진행된 ‘apmap 2018 jeju - volcanic island’에서는 화산 활동에 의해 다져진 지대 위에 스스로 피어난 자연으로 이루어진 제주의 기후적, 지형적, 환경적 요소에 착안한 15점의 신작들이 제작됐다.

김가든 작가의 2018년 작품 ‘빛의 순환’. 사진=아모레퍼시픽 제공

김가든 작가는 ‘빛의 순환’ 작품을 통해 오설록 티뮤지엄 안에 설치한 아크릴 설치물을 통해 건물에 비추이는 햇빛이 작품을 형상화하도록 만들었다. 밀물과 썰물의 때에 따라 지형이 변화하는 고성리 광치기 해변의 조간대 풍경을 빛과 설치물의 조화로 재구성한 것이다. 바닷물과 용암 지질대를 상징하는 아크릴 패널은 각각의 창 안에서 크기를 변주하며 평면적 공간 위에 시간의 연속적 흐름을 그려낸다.

아모레퍼시픽 에이피 맵 리뷰 전시 전경. 사진=김예은 기자

2022년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는 지난 10년간의 자연과 예술의 상호작용의 여정을 함께한 작가들의 작품을 야외가 아닌 실내 공간 속에 한데 모았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오산, 용인, 제주 등 아모레퍼시픽 사업장에서 야외 설치미술을 선보였던 22팀의 작가들이 참여한 이번 에이피 맵의 전시 키워드는 ‘리뷰’이다.


그간 야외 공간에서 기획되어 온 작품의 연장선으로 아모레퍼시픽미술관만의 장소적 특징을 살린 신작으로 채워졌다. 범주가 한정되지 않은 리뷰라는 테마 안에서 공간에 대한 작가들의 새로운 차원의 해석을 담았다. '리뷰' 전은 환경, AI 등 최신 이슈부터 자전적인 경험까지 각자의 고민을 담은 신작들이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공간적 특성과 어우러지며 조각, 설치, 미디어, 사운드, 건축, 도예, 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으로 선보인다.

작가들은 오디오 가이드 녹음에도 참여해 직접 본인의 목소리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라는 공간의 특성에 대한 작가의 고찰과 작품의 창작 의도 등에 대해 작품을 감상하며 옆에서 이야기하듯 전달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홍수현 작가의 2022년 작품 '빛의 풍경'. 미술관 공간의 구조적 특성을 이용한 작업으로, 빛과 구조물이 어우러져 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전시장 안에 또 다른 공간을 만드는 작가는, 주변으로 새어 나오는 빛과 바닥의 전선을 통해 작품의 안으로 관람객을 이끈다. 사진=김예은 기자

과거 10년간 야외 현장을 활용해 다양한 작품을 창조해온 작가들이 실내 공간을 활용해 또 다른 작품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동일한 작가의 전후 작품 변화를 장소적 특징과 함께 곁들여보는 재미가 있다.


일상적인 재료로 공간에 개입하는 박기원 작가는 작품을 통해 공간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논한다. 전작에서는 알루미늄 철제로, 이번 작품에는 종이와 금속 조각만으로 인공 건축물과의 조화 속에 자연물을 만들어내며 공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유도한다.

박기원 작가의 2013년 작품 '뼈'. 사진=아모레퍼시픽 제공

박기원 작가는 ‘apmap 2013 osan - reverscape’ 전시에서 언뜻 대나무 숲처럼 보이나, 가까운 거리에서 보았을 때 인체 뼈의 형태로 인식되는 작품 ‘뼈’를 제작하였다. 철제 공산품으로 제작한 대나무들은 자연물의 외형을 지니는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대나무 숲은 주변의 정원들과 어우러지며 시야에 가득한 풍경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박기원 작가의 2022년 작품 '빙하'. 사진=아모레퍼시픽 제공

박기원 작가는 야외 전시로 진행되어온 apmap이 이번 리뷰 展을 통해 실내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하여, 작품 ‘빙하’를 통해 미술관이라는 인공의 공간 안에서 자연의 모습을 구현했다. 빛, 돌, 물, 얼음과 같이 자연의 원초적인 요소들을 미술관 안으로 끌어오고자 한 것이다.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탐구하는 이 작품에서 미술관의 높고 넓은 하얀 벽면은 구겨진 종이와 조명을 통해 빙하기 시기의 얼음벽으로 전환된다. 바닥에 놓인 금속 조각은 얼음벽에서 녹아떨어진 얼음 조각을 상징함과 동시에, 빛을 사방으로 반사시킴으로써 작품과 공간의 경계를 흡수하고 허무는 역할을 수행한다.


공간에 대한 예술적 해석에 초점을 맞춘 apmap의 취지에 맞게 에이피 맵 전시는 건축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중 건축사사무소 OBBA는 공간과 사람, 건축의 관계와 가능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한 작품들을 제시해왔다.

건축사사무소 OBBA의 2015년 작품 '오아시스'. 사진=아모레퍼시픽 제공

OBBA는 ‘apmap 2015 yongin - researcher’s way’ 전시에서 작품 ‘오아시스’를 통해 용인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 야외정원 안에 공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유연한 건축 파빌리온을 선보였다. 실 커튼으로 제작되어 바람에 의해 쉽게 흐트러지는 비-구조적 벽의 경계는 외부와 내부를 동시에 아우르며 공간의 중의적 의미를 탐구하도록 유도한다.

건축사사무소 OBBA의 2016년 작품 ‘Movingscape’. 사진=아모레퍼시픽 제공

다음 해 ‘apmap 2016 yongsan - make link’ 전시에 연이어 참여한 OBBA는 작품 ‘Movingscape’ 을 통해 지형을 시각화했다. 흰색의 의자 위에 사람들이 앉으면 그 움직임이 탄성이 있는 끈을 통해 전달되고, 끈에 매달린 흰색의 깃발들이 흔들리게 된다. 의자에 앉은 관람객들은 지형의 변화를 몸으로 체감하며, 흔들리는 깃발을 통해 움직이는 지형(moving topology)이 시각적으로 전달되는 원리를 담은 작품이다.

건축사사무소 OBBA의 2022년 작품 ‘The Cave’. 사진=아모레퍼시픽 제공 사진=아모레퍼시픽 제공

OBAA는 이번 리뷰 展에서 전시관 속 화이트큐브를 인공적 환경으로 조작한 ‘The Cave’를 선보였다. 이는 공간을 구축하고 인식하는 새로운 방식들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한 설치작업이다. 작품은 바닥으로부터 쌓아 올리는 축조 방식이 아닌, 현수선의 원리를 이용하여 상부 구조물에 의해 당겨지고 늘어뜨려지는 방식으로 구축되었다. 이 공간 안에서 관람객은 작품을 공간 그 자체로 인식하는 경험과 다양한 형태로 중첩된 곡선들이 만들어 내는 그림자의 선이 만들어내는 비일상적 공간을 체험하게 된다. 건축이라는 축조적 관념을 넘어 중력을 거스르는 선만으로 형성되는 공간의 가능성을 아름다운 샹들리에 속 공간으로 표현한 작품 속에서 관람객은 다양한 공간의 가능성을 탐닉할 수 있다.

장민승+정재일 작가의 2014년 작품 'A night'. 서광다원의 밤 풍경을 빛을 제어하는 개별화된 공간에서 재현한 작품으로 일몰 이후의 녹차밭 풍경에 대한 관람객의 상상적 재현을 유도한다. 관람객은 물리적인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감각을 밀도 있게 집중할 수 있다. 사진=아모레퍼시픽 제공

10년 동안 에이피 맵 展에 참가해온 작가들은 야외부터 실내, 강가부터 건물의 외벽까지 다양한 도화지를 배경 삼아 특정 장소에 어울리는 작품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실내 전시를 준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맥락의 고민들을 마주했다.


그렇게 에이피 맵 전시 작가들은 연구원, 조경사, 설치 전문가 등과 다각도로 논의한 고민의 결과를 작품을 통해 관람객과 소통한다. 사람의 아름다움에 대한 솔루션을 연구하는 아모레퍼시픽과 장소가 지닌 아름다움에 대한 솔루션을 탐구하고 제시하는 에이피 맵의 작가들은 이러한 측면에서 맞닿아 있다. 지난 10년간 작가들의 통찰이 담긴 작품과 공간, 작품 속 메시지가 불러일으키는 공감각적 경험을 향유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12월 18일까지 계속된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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