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문화 현장] 조선의 갑옷·투구가 ‘합스부르크 600년’ 전시 마지막을 장식한 이유

“왕가 600년 역사를 이끈 원동력은 예술”…국립중앙박물관·빈미술사박물관, 수교 130주년 기념 ‘매혹의 걸작들’전 선보여

  •  

cnbnews 제735호 김금영⁄ 2022.11.01 14:54:27

루돌프 2세의 '리본 장식' 갑옷을 비롯한 다양한 갑옷이 전시돼 있다. 중세 유럽의 갑옷은 권력과 사회 지위를 나타냈다. 사진=김금영 기자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유럽의 광활한 영토를 다스렸던 합스부르크 왕가. 이 왕가는 루돌프 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등극한 1273년부터 왕정이 몰락한 카를 1세의 1918년까지 약 600년 동안 유럽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이 합스부르크 왕가를 들여다보는 전시가 마련됐다. 특히 종교 전쟁인 30년 전쟁, 스페인과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등 역사 속에서 주로 접했던 내용보다, ‘예술품 수집가’라는 측면에서 접근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1부 '황제의 취향을 담다, 프라하의 예술의 방'은 프라하에 수도를 두고 활발한 수집 활동을 벌인 16세기 루돌프 2세 황제를 다룬다. 이곳에서 다양한 공예품을 볼 수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국립중앙박물관과 이번 전시를 함께 기획한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 자비네 하크 관장은 “한국과 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전시에서 합스부르크 왕가의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 기쁘다”며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황제였던 프란츠 요제프 1세는 황실 예술품 컬렉션을 전시하기 위해 빈미술사박물관을 세웠다. 이번 전시에선 회화뿐 아니라 갑옷, 오브제 등 빈미술사박물관의 소장품 100여점을 다양한 장르로 선보인다”고 말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루벤스, 벨라스케스, 반 다이크와 같은 서양미술사에서 이름을 날린 화가들의 믿음직한 후원자이자 높은 안목을 바탕으로 한 수집가였다는 설명이다. 전시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기의 예술품을 포함해 합스부르크 왕가가 15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수집한 걸작들을 소개한다.

2부 ‘최초의 박물관을 꾸미다, 티롤의 암브라스 성’은 오스트리아 서쪽 지역인 티롤을 다스린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을 소개한다.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는 총 5부로 구성됐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유럽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됐던 15세기의 막시밀리안 1세를 시작으로, 시대에 따른 황제나 대공 등 주요 수집가들의 역할을 20세기 초까지 살펴본다.

양승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합스부르크 왕가는 프라하, 스페인, 브뤼셀 등 유럽 각지에서 예술품을 수집했고, 이를 적절히 수도 빈으로 이전했다”며 “600년에 걸쳐 수집된 예술품이 빈미술사박물관으로 집대성되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고 말했다.

‘예술 수집가’이자 ‘후원자’였던 합스부르크 왕가에 주목

3부 '매혹의 명화를 모으다, 예술의 도시 빈'은 명화에 집중한다. 사진은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그림이 전시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 시작을 알리는 ‘더 멀리, 합스부르크가의 비상’은 1508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에 오른 막시밀리안 1세를 중심으로, 합스부르크 왕가가 유럽의 강대국 반열에 오른 과정을 소개한다.

1부 ‘황제의 취향을 담다, 프라하의 예술의 방’은 프라하에 수도를 두고 활발한 수집 활동을 벌인 16세기 루돌프 2세 황제를 다룬다.

 

양승미 학예연구사는 “루돌프 2세 황제는 탁월한 안목을 바탕으로 ‘예술의 방’에 진기한 예술품을 전시했고, 이는 현재 빈미술사박물관 공예관의 기초가 됐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십자가 모양 해시계’, ‘누금 장식 바구니’ 등 다양한 공예품을 볼 수 있다.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그림이 설치돼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2부 ‘최초의 박물관을 꾸미다, 티롤의 암브라스 성’은 오스트리아 서쪽 지역인 티롤을 다스린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을 소개한다.

 

그는 암브라스 성에 전용 건물을 지어 진열장 설계와 전시품 배치까지 직접 결정한 만큼 예술에 관심이 높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전시는 16세기 유럽에 전해진 희귀한 소재, 야자열매로 제작한 공예품 2점을 선보인다.

4부 ‘대중에게 선보이다, 궁전을 박물관으로’는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18세기 마리아 테레지아의 시대를 살펴본다. 사진=김금영 기자

3부 ‘매혹의 명화를 모으다, 예술의 도시 빈’은 명화에 집중한다. 양승미 학예연구사는 “카를 5세로부터 약 200년 동안 이어진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수집한 예술품, 그리고 스페인령 네덜란드 총독으로 브뤼셀에 부임했던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이 수집했던 이탈리아와 플랑드르 지역의 회화는 수도 빈으로 모여 빈미술사박물관의 소장품으로 남았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으로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와 피터르 파울 루벤스의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안토니 반 다이크가 그린 초상화 ‘야코모 데 카시오핀’ 등 명품을 전시한다.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에서는 인간으로 변장한 주피터와 머큐리가 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경외심을 드러내고, 오리를 잡아 대접하려는 부부, 그리고 이를 부드럽게 만류하는 신들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양승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가 마리아 테레지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4부 ‘대중에게 선보이다, 궁전을 박물관으로’는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18세기 마리아 테레지아의 시대를 살펴본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집품을 벨베데레 궁전으로 옮겨 전시하고자 했고, 아들 요제프 2세 때 대중에게 무료로 개방했다.

대표적으로 18세기 궁정 행사의 장대함을 볼 수 있는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과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볼 수 있다.

 

특히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는 가로 1.9m, 높이 2.7m의 크기가 압도적이다. 당시 유럽 최고의 패셔니스타로 평가받았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양승미 학예연구사는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이 소장한 많은 앙투아네트 초상화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을 빌렸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그림이 전시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이 그림을 그린 작가는 왕비와 동갑내기였던 여성화가 엘리자베스 루이즈 비제 르 브룅(1755~1842)으로, 당시엔 여성이 직업을 갖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편견을 깰 정도로 탁월한 그림 실력 덕분에 궁정 화가로 발탁된 것으로 전해진다.

5부 ‘걸작을 집대성하다, 빈미술사박물관’은 19세기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시대를 조명한다.

 

그는 1857년에 시작한 수도 빈의 도시 확장 프로젝트 일환으로, 빈미술사박물관을 건축했다. 이번 전시는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엘리자베트 황후의 초상화를 선보이며, 이들의 슬프고도 비극적인 19세기 말 황실 분위기를 전한다.

5부 '걸작을 집대성하다, 빈미술사박물관'은 19세기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시대를 조명한다.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엘리자베트 황후의 초상화를 선보이며, 이들의 슬프고도 비극적인 19세기 말 황실 분위기를 전한다. 사진=김금영 기자

양승미 학예연구사는 “본래 엘리자베트는 황후가 될 운명이 아니었지만, 프란츠 요제프 1세가 그에게 첫눈에 반하면서 운명이 바뀌었다”며 “본래 자유로움을 추구했던 엘리자베트는 유럽 왕실의 보수적인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고, 시어머니이자 이모인 조피 대공비와 갈등까지 생겼다. 그렇게 비탄한 삶을 살다 무정부주의자 청년의 칼에 찔려 숨을 거뒀다”며 그림에 얽힌 스토리를 전했다.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한국-오스트리아 관계도 조명

이번 전시의 대미는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선물한 조선의 갑옷과 투구가 장식한다.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의 대미는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선물한 조선의 갑옷과 투구가 장식한다. 빈미술사박물관은 이를 1894년 소장품으로 등록하고, 현재까지 보관해 왔다.

알렉산더 샬렌베르크 오스트리아 외무부장관은 “한국과 오스트리아는 130년 동안 서로 협력하고, 무역을 증진시키며 인적 교류를 활발히 이어왔다”며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과 오스트리아가 외교 관계 수립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선물한 조선 갑옷이 돋보인다.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관계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알렉산더 샬렌베르크 오스트리아 외무부장관. 사진=연합뉴스

또, 전시는 예술이 곧 힘이자 지식이고 권력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합스부크르 왕가에도 주목한다. 순탄하지 않은 역사 속에서도 예술품 수집을 이어온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산은, 물리적 힘보다 문화와 예술 역량이 더 높게 평가되는 오늘날 새롭게 조명된다.

자비네 하크 관장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는 일반 대중이 바로 이해하기엔 복잡하다. 그래서 역사에 너무 치중하기보다 예술 수집품을 통해 합스부르크 왕가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려 했다”며 “합스부르크 왕가가 600년이나 되는 긴 역사를 지닌 것은 예술이 자산이자 힘이라는 걸 일찌감치 깨달은 덕분이다. 이번 전시를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예술에 대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애정이 상호 연결된다는 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사진=연합뉴스

알렉산더 샬렌베르크 외무부장관은 “문화예술은 오스트리아가 지닌 소프트 파워의 핵심이자 우리 DNA의 일부”라며 “이번 전시가 오스트리아엔 발견할 거리가 더욱 많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 굳게 믿는다. 예술은 용기이자, 자유를 향한 외침이며, 정신적인 자양분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예술을 필요로 한다”고 강조했다.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은 다양한 해외 박물관의 주요 소장품을 국내에 선보여 대중의 문화 향유권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이번 전시로 유럽 역사 속 합스부르크 왕가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내년 3월 1일까지 열린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관련태그
합스부르크  빈미술사박물관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  오스트리아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