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9호 이윤수⁄ 2023.01.10 11:42:39
라이엇 게임즈는 ‘세계에서 가장 플레이어 중심적인 게임사’가 되는 것을 목표로 2006년 미국에서 설립됐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 모니카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전 세계 20개가 넘는 오피스에서 3000명 이상의 라이어터(Rioter, 라이엇 게임즈 직원을 부르는 말)가 근무하고 있다.
라이엇 게임즈의 데뷔작인 ‘리그 오브 레전드’는 2009년 출시 이후 MOBA(다중사용자 온라인 전투 아레나) 장르의 대표 격인 게임으로 성장하면서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이후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플레이하는 PC게임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라이엇 게임즈는 세계적 규모의 e스포츠 행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함으로써 글로벌 e스포츠의 폭발적인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에 본사를 둔 이 게임 회사가 한국 문화재 환수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 눈길을 끈다.
라이엇 게임즈에서 사회환원사업을 맡고 있는 구기향 총괄은 11년째 이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게임에서 경험치를 쌓는 것을 두고 레벨을 올린다는 표현을 쓴다. 문화재 반환 사업에 있어 구 총괄에게 만렙(게임 속 캐릭터의 최고 높은 레벨을 일컫는 말)의 아우라(Aura)가 느껴진다.
- 게임 회사가, 더구나 외국계 기업이 문화재 환수 사업을 벌인다니 놀랍습니다. 국내 기업도 하기 어려운 일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2012년 2월 입사해 홍보와 사회 현안 사업에 대한 기획과 진행 업무를 맡았는데요. 입사 초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 첫 대표인 오진호 대표가 자신이 생각하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정리한 파일을 보여주셨어요. 이미 플레이어들에게 초기캐릭터 6개월 판매금을 사회 환원 사업으로 사용하겠다고 약속해놨다며 라이엇 게임즈만의 사회공헌 활동을 찾아보자고 했어요.
처음부터 문화재 환수 사업에 관심을 가졌던 건 아니고, 처음에는 문화유산의 보존 처리와 안내판 개선, 청소년 역사 교육 등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우리만 할 수 있는 사회공헌 사업을 찾아 집중해야겠다 싶었죠.
그러던 중 문화재청의 한 사무관으로부터 조심스러운 제안을 받았어요. 다른 기업에 이야기했지만 나서는 기업이 없는 사회공헌 활동이 있으데 같이 해볼 생각이 없냐고요. 문화재 환수 사업인데 빠른 금액 지원이 필요하다, 가능하겠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사실 이 사업은 기약이 없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를 언제 어디서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될지 전혀 알 수 없거든요. 우연히 2014년 2월 첫 번째 환수 케이스를 빠르게 진행했고,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 문화재 환수 사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성과를 내기 어려운 사업인데 특별히 기억 나는 에피스드가 있나요?
"기부금을 모으는 동안 성과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이어오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현재 라이엇 게임즈가 참여해 환수한 유물은 ‘석가삼존도’,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중화궁인’, ‘백자이동궁명사각호’, ‘척암선생문집 책판’, ‘조선 왕실 유물 보록’ 등 총 6점입니다.
그 중 ‘석가삼존도’는 18세기의 것으로 파격적인 도상을 갖춘 희귀하고 학술 가치가 높은 거대불화입니다.
조선시대 불화(佛畫) ‘석가삼존도’는 미국 버지니아주 노포크 소재의 ‘허미티지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던 문화재입니다. 일제시대에 반출된 뒤 뉴욕에서 진행된 경매를 통해 박물관 측이 인수 보관한 것으로 파악되었고, 유물이 돌돌 말린 채로 박물관 창고에 보관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후 국외소재문화재단과 함께 협상해 국내로 들어오게 된 케이스입니다.
미국 박물관 관계자들이 보존 처리를 잘해주겠다고 했지만 귀중한 문화 유물이 다시 창고에 들어가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관계자들과 함께 협상에 들어갔고, 문화재를 돌려주면 보전 처리를 해 전시하겠다고 설득해 무상으로 국가에 기증했습니다. 저희 라이엇 게임즈도 해당 미국 박물관을 후원하겠다는 제안을 해 반환이 빨라지게 됐습니다.
‘석가삼존도’ 반환은 라이엇 게임즈가 관련 비용 일체를 지원하며 외국계 기업 최초로 문화재 반환 사업에 참여한 사례로 기록되었는데요. 미국에 존재하던 우리 문화재 반환에 미국계 온라인 게임사가 함께했다는 점 역시 유례없는 사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 해외에서 경매에 부쳐질 뻔한 유물을 어렵게 국내로 반환한 사례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은 헌종의 어머니인 신정왕후(1808-1890)가 효명세자의 세자빈으로 책봉된 1819년(순조 19년)에 수여된 것으로, 전형적인 조선왕실의 죽책 형식을 엿볼 수 있으며 공예품으로서 뛰어난 예술성을 지닌 왕실 의례 상징물입니다. 조선왕실의 어책과 어보는 조선시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의 시대상을 드러내는 중요한 유물로,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이 유물은 강화도 외규장각에 소장 중이던 1866년, 병인양요로 인해 불타 없어진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하지만 2017년 프랑스에서 개인이 소장하던 중 경매에 나온 사실이 확인되었고, 경매 중단을 경매사에게 요청했죠.
이후 소장자에게 직접 연락해 협상을 시작했고, 국외소재문화재재단·문화재청 등 관련 기관의 환수 의지와 라이엇 게임즈의 기부금 마련 및 지원 노력 등 민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마침내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유물입니다.”
- 함께 협업하고 있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어떤 기관인가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나라 밖에 흩어진 한국 문화재의 현황과 반출 경위 등에 대한 조사와 연구는 물론, 환수와 활용을 위한 각종 사업을 종합적·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2012년 7월 문화재청 산하단체로 설립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라이엇 게임즈가 문화재 환수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공교롭게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사업을 시작한 첫해였습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있었기에 많은 유물을 찾을 수 있었고 저희도 사업 지원을 할 수 있었는데요. 재단 관계자들이 정말 많은 수고를 해주셨어요. 이 재단은 저희의 가장 큰 파트너로서 문화재 환원 사업에 있어 실질적 동력이 되어 앞장서주고 있습니다.
특히 재단 관계자들은 매일 국외 문화재 현황을 일일이 체크하고 있으며, 해외 경매에 나온 문화재를 전부 조사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해당 유물이 국가 문화재라고 판단되면 바로 저희가 예산 지원을 해 환수 작업을 하게 됩니다."
- 문화재 환수 사업 이외에도 라이엇 게임즈가 벌이고 있는 역사 관련 사회공헌활동이 있나요?
"저희는 문화유산 관련 사회공헌활동을 시작하며 두 가지 마음을 품었습니다.
먼저 라이엇 게임즈는 가장 현대적인 문화인 게임을 만드는 회사이니 그 문화의 뿌리를 보호해야겠다라는 마음이 있었죠. 그래서 게임의 주요 플레이어인 젊은이들에게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라이엇 게임즈와 문화재청은 ‘한국 문화유산 보호 및 지원’을 위한 사회환원사업 전개에 있어, 라이엇 게임즈가 대중, 특히 젊은 층에 전파하는 영향력을 크게 보고 있어요. 이를 긍정적으로 활용해 게임 플레이어와 청소년들이 우리 문화유산, 유적지, 유물에 대해 보다 큰 관심과 이해를 갖도록 역사 교육 및 체험의 기회를 꾸준히 마련해오고 있습니다.
라이엇 게임즈는 2012년부터 자사 게임 플레이어 및 청소년, 장애 청년 등을 대상으로 서울 4대 고궁 및 서울성곽 등을 거점으로 한 1일 역사교실, 전국 서원을 거점으로 진행되는 1박 2일 역사탐방 캠프 등 다양한 형태의 역사교육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지난 11여 년간 진행된 본 교육은 전문 교육진과 함께 누적 129회 진행되었으며 총 5천 378명이 참여했습니다.
또 라이어터들은 2012년부터 수년간 문화유적지 청정활동 및 전통문화 체험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2012년 7월·11월 경복궁 청정작업을 시작으로 선정릉, 서울문묘, 성균관 등 대상지를 확대했으며, 청정활동 후에는 우리 문화유적지를 둘러보고 퀴즈를 통해 그 가치와 상세한 정보를 탐구하는 등 다각적 측면에서 우리 문화유적지를 위한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울러 전통 예절 교육을 비롯해 한국문화재재단과 함께 택견, 매듭 강좌 수강 등 우리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배우는 행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 올해 11년 차를 맞는 문화재 반환 사업이 새해에는 또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합니다.
"다른 기업들이 엄두를 못 냈던 문화재 반환 사업에 저희 라이엇 게임즈가 그동안 좋은 선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새해에는 다른 기업들도 이 의미 있는 사업에 동참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특히 왕실의 유물 중에 복제본이 없어서 전시에 못 내놓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노출이 자주 되면 훼손되는 작품들이죠. 이 경우 전문적인 복제본 제작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올해 라이엇 게임즈가 복제 작품을 선정해 지원하기로 했어요.
마지막으로 2023년에는 꼭 7번째 환수 인연을 만나고 싶습니다. 문화재 환수는 정말 기약이 없어요. 언제 어떤 인연이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거든요. 또한 인연이 되는 문화재를 만나더라도 빠르게 고민하고 실행해 옮겨야 하죠.
지금껏 저희가 보여줬던 선례를 통해 올해는 다른 기업들도 참여해 함께 문화재 보존과 환수 사업에 나섰으면 좋겠습니다."
< 문화경제 이윤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