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UAE에 파견된 아크부대를 찾아 장병들을 격려하면서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 적은 북한입니다”라고 연설했다는 속기록을 보면서 필자에겐 ‘왜 저기까지 가서 북한을 주적이라고 비난했을까’라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필자의 그런 아쉬움은, 한반도 부근만 눈에 들어오는 ‘한반도 안 개구리’의 속좁은 판단에 불과했다. 왜냐면 대통령의 문장에서 정말로 심각히 문제가 되는 것은 북한 부분이 아니라 “적은 이란”이라는 앞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하루가 지난 16일 이란 측은 강력한 언사를 동원하며 윤 대통령을 공격하고 나섰다. 흔히 국가 간의 말 주고받음에는 외교적 치장이 끼어들기 마련이지만, 이란 측의 반격에는 그런 예의가 없었다. 한국 대통령이 외교적 고려 없이 마구 말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자기들도 똑같이 돌려주겠다는 ‘非외교적’ 직설법이었다.
이란 외교부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비외교적(undiplomatic)”이라며 “심각하게 지켜보고 검토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응답을 기다린다”며 치고 나왔다.
나세르 카나니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 대통령의 발언은 이란이 아랍에미리트를 포함한 걸프 국가들과 역사적이고 친밀한 관계에 있다는 것과 빠르게 진행되는 긍정적인 발전에 대해서 완전히 무지하다(totally unaware)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완전히 무지’하단다….
그는 또한 윤 대통령에 대해 “간섭하기 좋아하는(meddlesome)”이란 낮은 평가도 내놨다. meddlesome이란 단어에는 ‘어떻게 할지도 모르면서 어줍잖게 끼어드는’이라는 낮은 평가가 들어있다.
이란 외교부의 이런 항의에 대해 용산 대통령실은 “장병 격려 차원에서 한 발언이고 한국-이란 관계와는 무관하다”며 사태 진화에 나섰지만, 한국 대통령에게 불으의 일격을 당했다고 여기는 이란은 윤 대통령의 발언을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여러 문제에 극히 민감해 피의 충돌 잦은 중동 나라들
그도 그럴 것이, 이란이라는 나라는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미국과 적대적 관계가 된 뒤 40년이 넘도록 세계의 맹주 미국으로부터 천대를 받아 왔다. 2011년부터는 비밀 핵폭탄 개발이 폭로되면서 미국과 서방의 혹독한 경제 제재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과 서방의 강도 높은 압박 탓에 이란은 중국 등에 기대 겨우 숨통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이런 위기의 나라이니 최근 윤석열 정부가 미중 대결 양상에서 친미 쪽으로 급선회하는 양상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지켜봤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옆나라에 온 윤 대통령의 입에서 “적은 이란”이라는 말이 툭 튀어나오니 아무리 한국인끼리의 대화라지만 그냥 넘어갈 수 없었을 법하다.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다. 지구상의 모든 지역 중에서 가장 폭발성이 높은 지역이 바로 중동이라는 점이다. 종교(이슬람과 기독교, 유대교의 1천 년 넘는 갈등), 인종(셈족이냐 아리안족이냐), 정치체제(왕정이냐 공화정이냐)가 갈등이 중첩되는 지역이니만큼 수시로 피의 대결로 발전하는 게 중동 지역이다.
그렇기에 세계 다른 지역에 대한 말 실수는 말로(대화로, 사과로, 해명으로) 해결될 수 있지만, 중동 지역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실수하면 대재앙을 불러오는 땅이 바로 중동인데…
일례로, ‘세계의 경찰’을 자임해온 미국이 세계의 많은 분쟁에 관여하면서 공격도 많이 받와 왔지만, 미국이 세계 패권국으로 등장한 이후 ‘미국 본토는 절대 안전하다’는 명제가 깨진 것은 딱 한 번, 2001년 9.11 테러였음을 기억할 만 하다. 자국의 항공기가 자국의 심장부인 뉴욕의 세계무역센터로 돌진해 무고한 시민 거의 3천 명이 죽고, 펜타곤(국방부)도 여객기 돌진으로 일부 부서지는 대피해를 당한 것이다.
중동에 대해 함부로 발언하면 위험한 것은, 우리가 아직 석유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한국인은 중동 정보에 대해 거의 전적으로 무지하다. 최근 수십 년 맹방인 미국과 사우디가 반목하고, 이집트 같은 아랍 나라들이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맺는 발전에 보통의 한국인들은 “응? 앙숙끼리 왜 친해?”하며 궁금해할 뿐이다.
일본, 중국, 유럽, 미국 등(대부분 선진국)의 사정에 대해서는 몰라도 될 것까지 잘 아는 한국인 일반이지만, 손대면 데기 쉬운 극위험 지역인 중동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다. ‘지식은 위험 정도에 비례해야 한다’는 명제가 있다면, 한국인의 지식 편중은 극히 위험한 상태가 아닐 수 없다.
윤 대통령의 “적은 이란”이라는 발언은 이미 엎지러진 물이다. 이란 측도 ‘한국 측의 설명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으니 잘 말해주면 될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실언이 또 나오면 안 된다. 중동에 대한 주제넘은(meddlesome) 간섭 또는 발언으로 석유 수급에 자그마한 이상이라도 생긴다면 개방 경제로서 에너지를 거의 완전히 중동에 의존하는 한국이라는 나라는 대위기를 마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동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또 다른 말 실수가 전혀 없도록 대통령실 안보 보좌진이 더욱 노력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