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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현장]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낭만적 아이러니’전으로 원서동 시대 열다

현 아라리오뮤지엄 옆에 재개관…권오상·이동욱·김인배·안지산·노상호 작가 참여 그룹전 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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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42호 김금영⁄ 2023.02.13 09:42:33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이 원서동 시대를 열었다. 1년여의 장소 이전 및 재정비 시간을 끝내고, 이전의 종로구 소격동을 떠나 원서동의 옛 공간사옥 부지이자 현 아라리오뮤지엄 바로 옆으로 장소를 옮겼다. 사진=김금영 기자

전면 유리창으로 된 건물을 고즈넉한 느낌의 벽돌 건물 두 개가 둘러쌌다. 유리건물은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반면, 벽돌건물은 신비롭게 내부가 가려졌는데, 각각의 매력을 드러내면서도 이질적이지 않게 조화를 이루는 풍경이 절로 눈길을 끌었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이 원서동 시대를 열었다. 1년여의 장소 이전 및 재정비 시간을 끝내고, 이전의 종로구 소격동을 떠나 원서동의 옛 공간사옥 부지이자 현 아라리오뮤지엄 바로 옆으로 장소를 옮긴 것. 레스토랑을 끼고 갤러리와 뮤지엄이 맞닿아 있어 이른바 ‘아라리오 타운’이 형성된 셈이다.

건물 계단엔 거친 벽의 질감이 살아있다. 축 디자인은 일본 스키마타 건축의 대표인 조 나가사카 디자이너가 맡았다. 사진=김금영 기자

근처에 국립현대미술관 등이 자리한 기존의 갤러리 명당을 떠나 굳이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긴 건 무슨 연유였을까. 강소정 아라리오갤러리 디렉터는 “장소 이전을 두고 고민을 많이 하다가, 원서동에 아라리오의 색깔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문화공간을 조성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아라리오뮤지엄 건물은 과거 공간 종합건축사무소 사옥(공간사옥)으로 쓰인 등록문화재로, 유명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는데, 특유의 회색벽돌이 특징이다. 기존 사무실로 쓰이던 공간은 이번에 갤러리가 들어서면서 옛 공간사옥과 조화를 이루는 데 중점을 뒀다. 건축 디자인은 일본 스키마타 건축의 대표인 조 나가사카 디자이너가 맡았다.

건물 5층 전면의 큰 유리창이 트인 개방감을 준다. 사진=김금영 기자

강 디렉터는 “조 나가사카는 건물을 설계할 때 과거에 있던 흔적을 모두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들을 보존, 끌어온 뒤 새 정체성을 집어넣는 스타일이다. 이 부분이 조화를 중요시하는 아라리오와의 철학과도 맞닿았다”며 “지하 1층부터 지상 6층까지의 건물을 개조하되, 기존 건물의 구조와 재료, 외벽의 벽돌 외관은 유지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옛 공간사옥과 유리건물인 신사옥이 만들어내는 대비처럼, 갤러리 건물의 검정색 외관과 내부의 밝은 흰색이 만들어내는 극명한 대비가 매력적인 공간이 만들어졌다. 특히 갤러리 지하 1층은 회색벽돌을 바닥에 사용해 공간사옥과의 연결성을 갖췄다. 그러면서도 벽엔 흰색벽돌을 사용해 전형적인 갤러리 공간의 형태인 사각 형태, 즉 화이트 큐브를 구성했다.

이어지는 지상 1층은 2층까지 트면서 층고가 확 높아져 실제 평수보다 공간이 크게 느껴지고, 5~6층엔 큰 창이 설치돼 개방감이 들도록 했다. 기존 메인 전시장 공간에 큰 창이 없었던 소격동 건물과 비교해 달라진 지점이기도 하다. 각 층을 연결하는 계단은 벽의 거친 질감을 그대로 살렸다.

건물 기존 기억에 새 정체성 조화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안지산 작가. 사진=김금영 기자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의 새 출발을 알리는 개관전엔 권오상, 이동욱, 김인배, 안지산, 노상호 작가가 참여했다. 모두 아라리오 전속 작가로, 갤러리와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추며 서로의 성장을 지켜봐왔다. 그만큼 신뢰도가 쌓였고, 작업 스타일도 알기에 개관전 작가로 이들을 택한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는 설명이다.

이 각양각색 작가들이 ‘낭만적 아이러니’라는 주제 아래 모였다. 강 디렉터는 “전시는 독일 낭만주의의 이론적 기수 프리드리히 슐레겔이 정립한 ‘낭만적 아이러니’에서 영감을 얻었다. 낭만적 아이러니는 양극에 위치한 사유들을 오가면서 변화하는 과정 그 자체를 긍정하고 주목하는 사유의 한 방법론”이라며 “작가 5명이 이 주제에 부합했다. 이들은 트릭, 반전을 작업에 사용한다. 그것도 흔해빠진 반전이 아닌, 긍정과 부정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며 질문을 끊임없이 이끌어낸다”고 말했다.

안지산 작가는 눈 폭풍 속 적막감이 감도는 풍경을 포착했다. 자연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이로운 아름다움의 순간을 전해주지만, 그 일면엔 긴장감이 엿보인다. 사진=김금영 기자

단체전이지만 각 층마다 한 작가의 작품을 설치해 마치 작가 5인 각각의 개인전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전시의 시작은 지하 1층의 안지산 작가가 연다. 갤러리 중 가장 어두운 이 공간에서 안지산은 눈 폭풍 속 적막감이 감도는 풍경을 포착했다. 자연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이로운 아름다움의 순간을 전해주지만, 그 일면엔 긴장감이 엿보인다.

예컨대 한 작품에서 눈으로 뒤덮인 산속 서로의 몸을 부둥켜안은 듯한 고라니들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사냥꾼의 위협으로부터 서로를 보호해주는 듯하다. 이처럼 사냥과 채집이라는, 자연 속에서 항상 행해지는 가장 자연스러운 생태계의 순환은, 동시에 최고의 긴장과 공포가 축약된 극적인 순간이 되기도 하다. 숨 막힐 듯한 아름다운 적막감 속에서 동시에 느껴지는 불길함과 불안. 그것이 안지산이 보여주는 낭만적 아이러니다.

강 디렉터는 “안지산의 풍경은 독일의 낭만주의 화가 카스퍼 다비드 프리드리히식 낭만주의적 정신의 숭고함과 충만함이 내재된 풍경을 연상시킨다. 프리드리히의 풍경처럼 언제나 내 눈앞에 존재하는 풍경의 묘사와 인상의 표현에 기초를 두지만. 훨씬 더 나아가 불안과 불길함, 그리고 경외감의 감정을 숨김없이 표출한다”며 “결국 안지산은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의 숭고미와 경외감을 숨김없이 드러내지만, 동시에 삶의 어쩔 수 없는 아이러니한 부분들에도 주목한다”고 말했다.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김인배 작가. 사진=김금영 기자

분위기가 밝게 반전되는 1층엔 김인배 작가의 작품이 설치됐다. 김인배는 전시장 한 벽에 ‘3개의 안개’라는 문구를 적었는데 이것이 그가 보여주는 아이러니다. 김인배는 “눈앞에 있지만 명확히 잡히지 않는 안개처럼, 분명 존재하지만 우리가 보지 않는 것들을 보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접촉’을 이야기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접촉으로 인해 본연의 기능을 상실했다. 합판으로 만든 얇은 파주 지도는 켜켜이 쌓이면서 방대한 양에도 불구하고 읽지 못하게 됐다. 거울은 앞면과 뒷면, 바깥과 안이 마주하는 구조로 뒤바뀌면서 거울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김인배 작가의 작품은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 존재들이 눈에 띈다. 2개의 플로펠러는 하나로 합쳐져 돌아가지 못하고, 분필의 재료로 칠판을, 칠판의 재료로 분필을 만들어 각각의 기능을 상실하게 했다. 사진=김금영 기자

또, 2개의 프로펠러는 하나로 합쳐져 돌아가지 못하고, 분필의 재료로 칠판을, 칠판의 재료로 분필을 만들어 각각의 기능을 상실하게 했다. 김인배는 “형식과 재료를 서로 바꿔 기능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통해 근본을 돌아보게 하는 작업 구조에 흥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경계 넘나들며 질문 던지는 작가 5인의 작업

이동욱 작가가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3층엔 이동욱 작가의 신작 5점이 기다린다. 이동욱은 인간의 연약한 속살을 상징하는 분홍색 소재에 거칠고 단단한 금속광택 소재를 합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존재들을 한데 아울렀다.

 

날카롭고 차가워 보이는 소재에 끈적끈적하게 눌어붙어 있는 듯한 살점의 모습이 오묘한 긴장감을 준다. 조금이라도 균형을 잃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인물상의 모습도 위태위태하다.

이동욱은 인간의 연약한 속살을 상징하는 분홍색에 거칠고 단단한 금속광택 소재를 사용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존재들 사이의 조화를 이뤄냈다. 사진=김금영 기자

이동욱은 “처음 전시장의 하얀 공간을 보고 몇 가지 색을 이용한 조합으로 고립된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자는 영감을 받았다”며 “전시장 중앙에 설치된 미끄럼틀 구조물엔 분홍색 물질들이 끈적끈적하게 붙어 있는데, 인간과 그것을 둘러싼 여러 인공적 구조물 간 분리할 수 없는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고 말했다.

강 디렉터는 “인공적 구조물과 인간의 차갑고 끈적끈적한 공존이 두드러진 설치 작품과, 그 주변부를 둘러싼 여러 인물 군상이 끌어내는 긴장감이 느껴진다”며 “이동욱의 강점인 시각이 주는 일차적인 미적 쾌감과 내밀하게 찾아오는 인간에 대한 통찰을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작품 앞에 선 노상호 작가. 사진=김금영 기자

노상호 작가는 4층 공간에서 디지털과 현실 세계 간 이미지의 생산과 소비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신작 ‘홀리(Holy)’ 시리즈를 소개한다. 그의 작업은 디지털과 아날로그 방식을 왔다 갔다 한다.

 

3D 이미지 중 무료로 사용 가능한 이미지들을 수집한 뒤 AI(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도구를 사용해 재구성, 합성 과정을 거친다. 그 결과 머리가 두 개인 말, 토끼 귀를 가진 강아지, 집보다 큰 눈사람 등 기존 이미지와 비슷한 듯 색다른 결과물이 탄생했다. 이걸 다시 직접 그림으로 그린다.

노상호 작가는 4층 공간에서 디지털과 현실 세계 간 이미지의 생산과 소비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신작 ‘홀리(Holy)’ 시리즈를 소개한다. 사진=김금영 기자

노상호는 “작업 과정에서 AI 첨단 기술을 활용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내 몸, 즉 아날로그 방식을 거쳐 가장 고전적인 방식인 회화로 완성된다”며 “어느 한쪽에만 속하지 않고 경계를 넘나드는 과정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강 디렉터는 “AI 기술로 생성된 가상의 이미지를 작가의 신체를 매개로 현실 세계 회화의 형태로 끌어내는 매체 방법론이 노상호가 전달하려는 주제와도 의도적으로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권오상 작가가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마지막으로 5층에서는 프린트한 사진을 여럿 붙여 조각처럼 만드는 ‘사진 조각’을 선보여 온 권오상 작가가 최근 집중적으로 시도해 온 다양한 형태적 실험들을 소개한다. 특히 과거 구상 조각에 가까웠던 형태들이 근작에서는 사실적 묘사에서 벗어나며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선 모습을 보인다.

만화 ‘원피스’ 문신을 한 일본 야쿠자의 등, 가수 ‘잔나비’의 최정훈 얼굴을 한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이 작품들 모두 대상을 똑같이 만들어내는 접근법이 아닌, 공간과 표현의 중점이 되는 조형 요소에 대한 고민으로 관람객을 이끈다.

만화 ‘원피스’ 문신을 한 일본 야쿠자의 등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사진 조각. 사진=김금영 기자

전형적으로 한쪽만 파지 않고, 다양한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 5명. 재개관전으로 이들을 택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전시를 선보이겠다는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의 방향성을 짐작할 수 있다. 전시는 3월 18일까지.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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