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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지원 제이앤브랜드 대표 “그레이는 핑크도, 옐로우도 될 수 있다”

고령화 시대, 시니어 시프트에 주목해야…베이비붐 세대·X세대의 특성과 욕망 읽는 것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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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42호 김금영⁄ 2023.02.15 16:46:09

정지원 제이앤브랜드 대표. 사진=김금영 기자

“그레이 이즈 더 뉴 핑크(Grey is the New Pink).”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세계문화 박물관에서 2019년 열렸던 전시 주제다. 부제는 ‘나이 듦의 순간들’로, 세계 각국의 작가들이 사람들의 나이 드는 순간들을 포착해 사진, 텍스트, 콜라주, 스케치, 설치미술 등 다양한 형태로 구현했다. 전시는 희끗한 머리색, 즉 나이 듦을 거부감 없이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바라보고, 더 나아가 ‘과연 우리는 몇 살부터 늘었다고 규정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은 정지원 제이앤브랜드 대표가 공동 집필한 저서 ‘뉴그레이: 마케터들을 위한 시니어 탐구 리포트’(이하 ‘뉴그레이’)에서도 이어진다. 정교한 브랜드 플랫폼을 만들고, 맥락과 매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표현을 탐구하는 제이앤브랜드를 이끌어온 정 대표는, 아이덴티티 기획·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등을 두루 경험한 브랜드 기획자다. 대표적으로 ‘올레KT’, ‘순하리’, ‘CU’ 등 누구나 쉽게 기억하는 브랜드 네이밍을 작업했다.

'뉴그레이: 마케터들을 위한 시니어 탐구 리포트'(미래의창) 표지. 사진=미래의창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만나 브랜딩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발생한 유익한 리소스들을 정리하는 출판도 꾸준히 했다. ‘맥락을 팔아라’, ‘어바웃 브랜딩’, ‘브랜딩 트렌드 30’을 비롯한 책 7건을 공저로 썼고, 이번엔 ‘뉴그레이’에서 시니어를 브랜드로 읽는다.

특히 정 대표는 사람들이 지닌 시니어에 대한 고정관념을 꼬집었다. ‘시니어는 병들고 약해서 건강에만 관심이 있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있다’는 편견 아래 시니어 시장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세계문화 박물관에서 2019년 열렸던 전시 '그레이 이즈 더 뉴 핑크' 전시 포스터. 사진=독일 프랑크푸르트 세계문화 박물관

책 시작에 자리한 “44세 이상이 되면 사람들이 사라지기라도 하는 걸까?”라는 문장 또한 이를 함축한다. P&G, 로레알 등에서 오래 근무했던 마케터 손솔레즈 곤잘레즈가 던진 질문이다. 뷰티업계가 10대 후반에서 44세까지 만을 주요 고객으로 삼고, 시니어의 욕망은 외면하는 세태를 꼬집었다.

이는 뷰티업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 미국, 독일 등은 이미 시니어 비즈니스가 소비시장을 이끌고 있지만, 한국은 고령화율이 지난해 기준 무려 17.49%로, 세계 고령화율(9.8%)의 2배를 넘었음에도 시니어 시장의 성장은 매우 더디다.

시니어 또한 스스로를 시장 중심에서 한참 벗어난, 늙고 힘없는 존재라 생각하지 않는다. 네덜란드의 한 남성은 공식문서 상의 1949년생인 출생기록을 1969년생으로 바꿔달라고 2018년 소송을 제기해 화제가 됐다. 자신이 느끼는 실제 나이는 49세 정도인데, 법률상 연령이 69세라 구직, 연애 등 삶을 살아가는 데 지장이 많다는 주장이었다.

정지원 제이앤브랜드 대표는 '시니어는 병들고 약해서 건강에만 관심이 있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있다'는 편견 아래 시니어 시장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짚었다. 사진은 지하철 종로5가역에서 한 노인이 계단을 오르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국내에서도 비슷한 조사 결과가 있다. 국민연금연구원이 2021년 12월 시니어 인구 6329명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50대는 68.8세, 60대는 69.1세, 70대는 70.1세 등으로 점차 노후시작 연령을 높게 잡으며, 스스로 노인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 대표는 “앞으로의 시니어는 지금까지 마케팅 타깃에서 제외된 요지부동의 노인네가 아니라, 미래 소비시장을 주도하는 ‘시니어 시프트’(고령화의 영향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이 고령층으로 이동하는 현상)를 이끌 것”이라 강조한다. 그러면서 이 시장의 중심축으로 베이비붐 세대(1950~1960년대 출생)와 X세대(1960년대 후반~1970년대 출생)에 주목한다. 특히 X세대가 은퇴하고 시니어 세대에 본격 진입할 때부터가 시니어 시프트의 진정한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MZ세대 사이에서는 '할매니얼' 트렌드가 인기다. 홈플러스는 할매니얼 열풍으로 지난달 떡, 약과 등 전통 간식의 온라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73% 증가했다. 사진=홈플러스

-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에 발맞춰 세계 각국은 다양한 시니어 마케팅을 전개하는데, 유독 한국은 아직 소극적이거나 마케팅이 진행되더라도 제한적인 모습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 이유는?

“과거엔 시니어 시장에 대한 접근이 지금보다 더 단편적이었습니다. 시니어 시장이 다른 분야보다 민감한 특성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노인이라는 단어, 나이 듦 자체에 힘과 의욕이 없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질 때가 많아 기획 시작부터 다가가기 매우 조심스러웠죠. 또, 디지털 시대에 온라인으로 소비자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시니어는 아예 대상에서 제외돼 그들의 니즈는 무엇인지, 데이터도 전혀 쌓이지 않았어요.

그 결과 방향이 빗나간 마케팅이 이뤄졌죠. 한 예로 1997년 일본 화장품 브랜드 ‘시세이도’는 50대 이상 시니어를 위한 신제품을 출시하며 ‘아름다운 50대가 늘어나면 일본은 변한다’는 광고 카피를 선보였다가, 50대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느낀 고객의 외면을 받았어요. 하지만 이후 2015년 시니어 전용 화장품 브랜드 ‘프라이어’를 론칭할 땐 달랐습니다.

프라이어 출시에 앞서 시세이도가 50대 시니어 여성 6672명을 조사한 결과, 이들이 이전 시니어와 달리 ‘어리게 보이고 싶다’는 생각보다 ‘나이와 관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빛나고 싶다’는 의식이 강하다는 걸 발견했죠. 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프라이어는 ‘아름다움은 젊음의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자기 자신을 아끼고 스스로 빛나는 여성’으로 시니어에 접근해 성공을 거뒀습니다. 시세이도와 프라이어 모두 마케팅 대상은 50대 여성 시니어로 같았지만, 그들의 진정한 니즈에 대한 이해가 성공과 실패를 갈랐죠.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건 시니어의 의견이에요. 좀 더 그들의 욕망에 귀 기울이고, 데이터를 쌓아 연구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마케팅을 시작할 수 있죠.”

X세대를 주역으로 내세운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는 특히 MZ세대에게 인기를 끌었다. 사진=tvN

- 현재의 시니어는 ‘욜드’, ‘액티브 시니어’, ‘오팔(OPAL·Old People with Active Lives)’로 불리며 주목받고 있습니다. 책에서 이들은 베이비붐 세대, 특히 X세대를 중심으로 이뤄져 있으며, 과거 ‘노인’으로 일컬어졌던 세대와는 다른 특성을 지녔다고 짚었습니다. 그 특성은?

“일반적으로 우리의 인식 속 깊게 뿌리박은 노인 세대는 전쟁을 겪으며 경제적으로 가장 피폐했던 세대를 일컫습니다. 이들은 먹고사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에, 돈을 모아도 잘 쓰지 않는 특성이 있었죠.

전후의 베이비붐 세대도 가난을 겪었지만, 힘들었던 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과정에서 성취감도 느꼈습니다. 경제적 성장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민주화를 거치며 보다 성숙해졌고, 교육 수준도 높아져 다양한 방법으로 부도 축적했죠. ‘평생 직장’ 개념을 겪은 마지막 세대로, 이들은 2000년대부터 은퇴시기에 접어들었는데, 인구 비중도 굉장히 큽니다. 베이비붐 세대는 노년이 돼도 부를 유지하는 세대로, 이들 세대부터 불우하고 병약한 노년의 이미지가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뒤이어 ‘신세대’라 불린 X세대는 등장 때부터 유행을 선도하는 ‘트렌드 세터’로 살아왔어요. 이전의 베이비붐 세대가 조직, 집단의 성장에서 성취감을 느꼈다면, X세대는 개인의 욕구가 보다 강해졌고, 개성을 중시하며, 자유분방한 특성을 지녔죠. 이들은 한계나 고정관념의 틀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활력 넘치며, 여전히 배움에 대한 열정이 넘칩니다. X세대가 누리고 즐겼던 트렌드는 윗세대, 아랫세대 모두에 영향을 줘 왔어요. 이에 X세대가 궁극적으로 시니어의 주역이 될 것이라 보는 마케터들도 많습니다.”

정지원 제이앤브랜드 대표는 X세대가 은퇴하고 시니어 세대에 본격 진입할 때부터가 시니어 시프트의 진정한 출발점이라고 이야기했다. 사진=김금영 기자

- 현재 국내 기업들은 주요 소비층으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에 주목하며, 관련 마케팅을 집중적으로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 현상은 어떻게 바라보나요?

“이토록 모든 기업과 브랜드가 한 세대에 집중했던 때가 있었나 싶어요. 모든 분야에서 ‘MZ’를 외치고, 관련 연구와 리포트, 마케팅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죠. 일단 MZ세대는 20대부터 40대까지 매우 폭넓어요.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주요 타깃이 됐죠.

또, MZ세대가 지닌 파급력을 인식한 결과라 봅니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MZ세대는 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여러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유합니다. 소비할 때 윤리적 가치도 높게 보는데, 좋은 제품과 마케팅은 적극 칭찬하는 반면, 아쉬운 부분이 있으면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정보는 SNS 등을 통해 아주 짧은 시간에 널리 확산되기 때문에 기업들은 MZ세대의 반응에 주목하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귀 기울일 수밖에 없어요.”

시니어 여성을 주요 타깃으로 한 일본의 생활 잡지 '하루메쿠'. 사진=하루메쿠 홈페이지

- 이런 MZ와 시니어가 서로의 문화를 동경하는 현상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최근 만화 ‘슬램덩크’의 선풍적 인기와 더불어 ‘할매니얼(할머니+밀레니얼 세대의 줄임말)’, ‘뉴트로(New+Retro 합성어)’ 열풍도 뜨겁죠.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 가장 열광한 것도 MZ였고요. 반대로 스타벅스는 시니어가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 중 하나고, 애플 아이패드2 사용자의 절반가량도 55세 이상입니다. 윌라 오디오북도 2030세대를 주요 타깃으로 설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의 3분의 1이 45세 이상이고요.

“서로 같지 않은 부분에 끌리고 있다고 봅니다. MZ세대가 선호하는 여러 키워드가 있는데, 특히 흔하지 않은, 새로운 경험을 추구합니다. 시니어는 많은 세월을 거쳐 온, 그야말로 경험의 총체죠. 그렇기에 시니어가 했던 경험들이 MZ세대에게는 낯설면서도 새롭게 느껴질 수 있어요. 70세가 넘는 나이에도 멋지게 활동하는 배우 윤여정의 다양한 경험을 존중하며, 그를 롤모델로 꼽는 MZ세대가 많은 것처럼요.

반대로 시니어가 MZ세대를 바라보는 시선엔 손주를 보는 듯한 따뜻함이 담겼습니다. 자신이 젊었을 때 할 수 없었던 것들에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시도하는 MZ세대의 열정도 높이 사고요. 세대 간 서로 잘 모르는 부분을 물어보고 배워가며 교감하는 포인트는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MZ세대는 시니어 세대가 가진 풍부한 경험을 동경한다. 70세가 넘는 나이에도 멋지게 활동하는 배우 윤여정의 다양한 경험을 존중하며, 그를 롤모델로 꼽는 MZ세대도 많다. 사진=연합뉴스

- 시니어를 움직이는 4가지 욕망으로 개성, 관계, 취향, 성장을 들었는데 각각의 키워드를 짚어보자면?

“우리가 시니어 마케팅에 접근할 때 가장 많이 실수하는 게 막연히 ‘건강식품을 좋아할 것이다’, ‘디지털 기기 사용 시 활자가 큰 것을 개발하면 된다’, ‘여행할 때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등 고정관념에 묶여 시니어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뭉뚱그리는 거예요. 하지만 시니어의 욕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오히려 다양하죠.

시니어는 나이가 들어갊에 따라 건강에 대한 욕구가 가장 커지긴 하지만, 이 안에서도 각각이 지닌 개성에 포커스를 맞춰 해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예로 독일의 푸드테크 기업은 시니어가 씹고 삼키기 쉬운 스무스 음식을 개발할 때 형태가 최대한 본래 음식에 가깝도록 하는 방법을 개발했어요. 많은 기업들이 영양소에만 신경 쓸 때, 시니어에게 실감 나는 한 끼를 제공하며 케어식품을 먹을 때 느낄 좌절감 대신 먹는 즐거움을 되돌려준 거죠.

시니어의 관계에 주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대표적으로 1인 시니어가 있어요.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수는 약 850만 명에 달하고, 이들 중 1인 가구 비율은 20%로 약 167만 명에 이르며, 2047년엔 1인 시니어가 48.7%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죠. 이에 대비해 영국엔 ‘고독부’ 장관이 있어요. 1인 시니어에게 가족, 이웃과의 유대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국가가 나서서 하는 거죠. 앞으로의 인간관계는 전통적 가족 형태에서 벗어나 각각의 1인 시니어가 모여 함께 살거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서비스를 받는 등 새로운 형태로 변화할 텐데 이 흐름을 잘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니어는 ‘죽기 전에 한 번쯤’이라는 생각을 늘 지니고 있어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기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취향을 찾아가는 시점인 거죠. 이 취향에 더 빠지게 해주는 브랜드가 사랑받습니다. 한 예로 시니어의 버킷 리스트엔 직접 운항하는 요트투어, 밤하늘이 보이는 캠핑카, 보디빌더 대회 참가하기 등 모든 세대가 공감하는 로망이 꼽힙니다. 즉, 시니어가 욕망하는 건 더 안전한 캠핑카가 아니라 누워서 밤하늘을 볼 수 있는 캠핑카죠. 건강, 안전, 편리는 욕망의 주요 대상이 아닌, 전제 조건이에요.

또, 우리 생각보다 시니어는 훨씬 도전적이고, 배움과 성장에 목말라 있습니다. 젊은 시절 밥벌이 때문에 제쳐뒀던 학문적 호기심과 지적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시간도 드디어 생겼고요. 어제보다 오늘 조금씩 더 성장하고 싶은 시니어의 욕망을 포용하는 것 또한 마케팅 성공의 관건 중 하나입니다.”

롯데호텔은 2024년 부산 오시리아 관광단지에 문을 여는 600가구 규모의 시니어 타운 운영 컨설팅을 맡았다. 사진=롯데호텔

- 시니어의 욕망을 잘 읽은 마케팅 사례를 들자면?

“일본에서는 시니어 여성을 위한 생활 잡지이자 쇼핑몰인 ‘하루메쿠’가 유명합니다. 잡지 대국 일본도 잡지 불황에 시달린 지 오래 됐는데, 하루메쿠는 2020년 1월 판매 부수가 30만 부를 돌파해 일본 여성지 부분 1위, 잡지 전체로는 누적 판매 부수 2위를 차지하며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하루메쿠가 유명해진 계기는 2018년 2월호 특집 기사 ‘시니어 눈높이에 맞춘 스마트폰 사용법’이에요. 자식이나 손주에게 일일이 물어보기 애매한 문제들을 세세히 짚어 이 특집을 기점으로 신규 독자가 3만 5000여 명이나 늘었습니다. 또, 평균 독자 나이 65세에 맞춰 ‘배우자 사망 후 유족연금 산출 방법’,‘시니어 미용’ 등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인 노년의 고민을 다룬 점이 호응을 받았습니다.

하루메쿠의 독자 모니터단은 스마트폰과 앱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시니어를 위해 엽서와 우편 창구를 통해서도 독자의 평과 사연을 받고 있어요. 시니어는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을 활용해 적극 의견을 냈고, 하루메쿠는 실질적인 데이터를 쌓아 기사화했죠. 여기에 잡지 카탈로그엔 시니어 맞춤형 제품들을 선보였고, 자사몰과 오프라인 쇼핑몰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해 매출 상승으로도 연결 지었습니다.

국내에서는 롯데가 부산에 준비 중인 시니어 타운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2024년 부산 오시리아 관광단지에 문을 여는 600가구 규모의 시니어 타운 운영 컨설팅을 맡았죠. 롯데호텔은 이 시니어 타운의 입주자를 관리하고 문화·여가·식음료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는 계획인데, 막연히 ‘여유가 있는, 전원생활을 원하는 시니어’를 타깃으로 둔 것이 아니라, 부산이라는 지역성에 맞춰 실현할 수 있는 시니어의 구체적인 버킷리스트 조건들을 잘 고려한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트렌드가 빨리 바뀌어 가장 접근이 어려울 것이라고 여겨졌던 패션 부문에서의 성과도 놀라워요. 라포랩스가 2020년 론칭한 ‘퀸잇’은 특히 4050 여성 소비자에게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최적화된 사이즈와 디자인 등 시니어가 원하는 정보를 잘 큐레이션 했고요. 여기에 앱 사용에 어려움을 느끼는 시니어를 위해 복잡한 인증 과정 없이 전화번호만 입력하면 회원 가입이 완료되고, 앱 화면도 심플하면서도 강조할 건 강조한 구성이 효과적이었습니다.”

시니어 모델로 구성된 '아저씨즈'는 MZ세대의 기획과 시니어의 열정이 잘 조합된 대표 사례다. 아저씨즈는 2021년 현대백화점과 협업해 이색 마케팅을 전개하기도 했다. 사진=현대백화점

- 한국과 비슷한 환경으로 일본이 많이 언급됩니다. 책에서도 성공한 시니어 마케팅의 사례로 일본이 여럿 언급됐죠. 그런데 일본은 10년 넘게 발전이 정체돼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를 받아 왔습니다. 이런 일본이 시니어 시장의 테스트베드(새로운 기술·제품·서비스의 성능을 시험하는 장)로 떠오른 상황은 다소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2005년 회사에서 한 사람이 ‘삼성전자가 소니 시가총액을 넘었대’라고 하자 대부분 사람들이 ‘에이, 말도 안 돼’라고 한 적이 있어요. 당시엔 꿈이라 생각했던 일들이 이젠 현실이 됐죠. 특히 한국은 뭐든지 빨라요. 경제 성장도 초고속으로 이뤄졌고, 고령화조차 빠르죠. 고령화가 진행되는 데 일본이 28년, 프랑스가 120년, 영국이 80년 걸렸던 데 반해 한국은 2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해요. 미래엔 일본보다 한국이 더 빨리 초고령화 사회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고요.

현재는 고령화를 먼저 맞은 일본에 많은 아카이브가 쌓여 시니어 시장의 테스트베드로 떠올랐지만, 앞으로의 속도를 볼 땐 한국이 새로운 테스트베드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그때를 대비해 시니어를 마이크로 타깃의 집합체로 보고, 이들의 욕망을 읽고 통찰하는 준비가 이뤄져야 합니다.”

정지원 제이앤브랜드 대표는 시니어를 움직이는 4가지 욕망으로 개성, 관계, 취향, 성장을 짚었다. 사진=김금영 기자

- 현재의 MZ세대는 ‘처음으로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로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먼 과거의 세대처럼 굶어죽을 걱정은 줄었고, 상대적으로 고생을 덜 했지만, 고물가와 침체된 경제 성장률로 부모 세대만큼 부를 쌓기 어려운 환경이었죠. 이런 MZ세대가 이후 시니어가 되면 현재 시니어 세대만큼의 파급력은 없어 시니어 시장이 침체되진 않을까 우려도 있는데요.

“여태까지 기성세대 욕구의 기반엔 물질주의, 집단주의가 있었어요. 조직, 집단, 성공, 신분, 서열이 중요했죠. MZ세대는 여기서 벗어나 자신이 무엇에 만족을 느끼고,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가치에 중점을 두는 세대예요. 개인을 중요시하면서도 납득이 되면 다른 가치도 충분히 존중하는 태도를 지녔죠. 이런 철학적인 관점은 개성을 중시하는 X세대도 제시하지 못했었죠. 이는 MZ세대가 지닌 강력한 힘이라고 봅니다.

이토록 시장을 크게 움직이면서도 소비 철학을 굽히지 않고, 많은 문화를 확산시킨 세대가 또 있을까요? 전 X세대가 시니어의 중심으로 자리 잡을 시대도 궁금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MZ세대가 꾸려갈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그에 따라 마케팅도 다변화되겠죠. 젊었을 때부터 추구해 왔던 삶이 시니어 세대엔 어떻게 전개되느냐, 즉 시니어 시장의 최종 상품은 라이프스타일이 될 거예요.”

인기 시니어 유튜버로 활동 중인 박막례 할머니(왼쪽). 사진=다이아 티비

- 고령화를 거쳐 초고령화를 바라보는 현 시대에 시니어 시장은 이제 모든 세대가 관심을 가져야 할 영역입니다. 마케팅을 진행하는 기업, 시니어, MZ세대 각각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마케터는 실질적인 틀을 바탕으로 머릿속 시니어가 아닌 현실 시니어의 이야기를 듣고 접근해야 합니다. 시니어 또한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내 데이터가 쌓일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요.

좋은 예로 미국 시니어를 대표하는 플랫폼 ‘AARP’(미국은퇴자협회)가 있어요. 미국의 65세 시니어 인구가 5000만 명인데, AARP 유료 회원 수는 3800만 명입니다. 무시할 수 없는 규모와 영향력을 지녔죠. 기업들은 이 플랫폼에 어필하기 위해 컬래버를 하고, 시니어 회원에게 혜택을 제공합니다. 정부도 이 플랫폼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시니어 관련 제도를 마련할 때 의견을 듣는 곳으로 적극 활용해요. 한국엔 아직 보험사의 몇몇 작은 플랫폼 외에 시니어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대표 플랫폼이 없습니다. 이런 플랫폼이 마련되면 시니어는 적극적으로 조사에 응할 것이고, 이는 마케팅 성공 사례로도 이어질 거예요.

아이디어와 강한 실행력을 갖춘 MZ세대는 시니어와 함께 여러 기회를 만들고, 시너지를 내는 좋은 주체로 화합을 이뤄야 합니다. 시니어 모델로 구성된 ‘아저씨즈’가 좋은 예입니다. 멋있는 중년을 모아 사진을 찍자는 아이디어는 MZ세대 기획자로부터 시작됐죠. 시니어의 자연스럽고 멋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은 모든 세대에게 울림을 줬고요. 인기 시니어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의 채널 탄생 배경에도 여행을 떠나길 제안하고 동영상 촬영, 편집, 매니저를 맡은 손녀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MZ세대와 시니어의 협업은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정지원 제이앤브랜드 대표는 '그레이 이즈 더 뉴 핑크'는 결국 개인이 지닌 다채로움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김금영 기자 

- 책에서 ‘그레이 이즈 더 뉴 핑크’를 시니어 시프트의 중심 키워드로 짚었습니다. 본인이 정의하는 ‘그레이 이즈 더 뉴 핑크’는 무엇인가요?

“그레이 이즈 더 핑크일 수도, 옐로우일 수도 있죠. 결국엔 개인이 지닌 다채로움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시니어 시장을 뭉뚱그려 거시적인 하나의 큰 형태로 봤다면, 이젠 그 안에 굉장히 다양한 컬러와 스타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욕망이 있는 주체로서 시니어를 바라봐야 합니다.

 

이는 시대정신과도 맞물려요. 과거보다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시대의 포용력이 넓어지면서 지금은 나이 듦에 대한 부정적 시각보다 현재를 인정하고, 오히려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되묻기도 하죠.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현재 시니어의 욕망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면 시니어 시장의 미래는 보다 밝아질 것입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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