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은⁄ 2023.04.07 16:41:58
지난 2일 서울을 거쳐 부산까지 6일간 현지 실사 일정을 마친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은 6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부산은 정말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고 호평했다.
한달 전인 지난 달 10일(현지 시간) 2030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유치 경쟁에 나선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대한 실사 이후와 다르지 않다. 당시 BIE 실사단 단장을 맡은 패트릭 스펙트 BIE 행정예산위원장은 “사우디의 (엑스포 개최) 능력을 확인했다. 사우디와 리야드는 우리가 요구한 모든 것을 갖췄다”고 칭찬했다.
최근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을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가 유치한 2023 클럽월드컵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여러 이벤트가 '오일 머니'에 이끌려 산유국으로 넘어가는 추세다. 클럽월드컵에 이어 월드엑스포 유치를 위한 사우디의 공세가 만만찮고, 실사단의 긍정적 평가에 안주할 수 없는 이유다.
2023 클럽월드컵의 사우디 유치는 '오일 머니'를 기반으로 한 국제축구연맹(FIFA·피파)과 중동 사이 밀월 관계가 한층 돈독해진 반증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2030 피파 월드컵 개최를 노리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중동쪽 자금력을 꼭 필요로 하는 피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양자의 밀월 관계는 더욱 돈독해지고 있다.
피파는 클럽월드컵 참가국을 2025년부터 7개에서 32개로 늘리고, 개최 주기도 월드컵처럼 4년으로 바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대항마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큰돈이 필요한데 중동의 자금력이 아니면 후원자 역할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국제박람회기구는 후보지인 4개국(대한민국, 사우디아라비아, 우크라이나, 이탈리아)에 대해 총 14개 분야, 61개 항목에 걸쳐 개최 역량과 준비 상태를 평가 중이다. 후보로 나섰던 러시아 모스크바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탓에 작년 5월 유치를 포기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2015 밀라노 엑스포를 개최한 전력이 있는 이탈리아를 2선이라고 평가한다면 부산의 가장 큰 경쟁상대는 사우디 리야드인 셈이다.
서울와이어 보도에 따르면 BIE는 지난 달 6~10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이어 24일에는 우크라이나 오데사 실사를 마쳤다. 우크라이나는 현지 사정으로 우크라이나 관계자가 BIE 사무국(파리)을 방문하는 약식 실사를 진행했다.
BIE는 부산 일정을 마치고 17일부터 21일까지 이탈리아 로마 실사를 마친 뒤 오는 6월 총회를 열고 4개국 실사 결과를 171개 회원국과 공유한다. 보고서는 회원국들이 투표에 참고하는 핵심 자료로 사용돼 개최지 선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엑스포가 부산에서 열리면 3480만 명의 관람객 방문 효과, 생산 유발 43조 원, 부가가치 18조 원, 고용 50만 명 등의 경제효과가 추정된다. 유치에 성공하면 우리나라는 벨기에, 프랑스, 미국, 아이티, 캐나다, 일본, 스페인, 독일, 중국, 이탈리아, 아랍에미리트에 이어 전 세계 12번째, 아시아에서는 4번째로 등록 엑스포 개최 국가가 된다. 올림픽과 월드컵에 이어 3대 주요 국제 행사를 모두 개최한 7번째 국가로 올라선다.
하지만 사우디는 막대한 오일 달러를 앞세워 유치 경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 3월 부산일보에 따르면 사우디의 후보 도시인 리야드는 네옴시티 등 대규모 미래 도시 개발 계획과 도시철도 건설을 통한 교통망 등의 강점을 BIE 실사단에게 적극 홍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계로 지적된 여성 인권 문제 등 약점을 보완하려는 노력도 펼치고 있다.
네옴시티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비전 2030 정책의 일환으로 발표한 신도시 계획이다. 긴 선형의 건축물인 ‘더 라인’을 비롯해 수상복합 산업단지인 ‘옥사곤’, 복합 휴양 단지인 ‘트로제나’ 등으로 구성되는데, 실사단은 이 가운데 더 라인의 모형 등을 전시한 전시관을 찾아 사우디의 미래도시 구상을 관람했다.
사우디는 11월 BIE 총회에 대비해 본격적으로 ‘지지 표 모으기’에도 나섰다. 사우디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20년 이후 BIE에 신규 가입한 2개 국가인 짐바브웨, 카보베르데는 사우디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부산일보는 '카보베르데의 경우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사우디 관계자를 만나 지지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짐바브웨 역시 지난해 9월 외무부 장관을 통해 사우디 지지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도됐다.
부산을 찾은 실사단은 시민 환대를 가장 인상적인 부산의 강점이라고 수차례 언급하고, 부산의 차별화된 전략인 ‘부산 이니셔티브’를 좋은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인적 강점이 막강한 오일 달러를 앞세운 사우디의 물량 공세를 효과적으로 누를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다.
한편, 알자지라 통신은 사우디 정부가 지분 90% 이상을 소유한 국영 기업 아람코는 지난해 1610억 달러(209조 944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아람코의 배당금이나 세금은 사우디 정부의 재정을 지탱하는 ‘막강한 기둥’이라는 평가다.
피파가 오일머니에 마구 끌려가는 현상을, 국제박람회기구에서 한국이 얼마나 막을 수 있는지가 BIE 실사 이후의 유치 경쟁에서 핵심이 될 전망이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