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6호 김금영⁄ 2023.04.13 09:15:21
“세계 7위 항공우주기업으로 성장하겠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이하 KAI) 강구영 사장이 2050년 매출 40조 원, 세계 7위 항공우주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글로벌 KAI 2050’ 비전을 1월 선포했다. KAI는 과거 KT-1, T-50, 수리온 등 국산 항공기 개발을 향한 도전과 열정이 깃든 KAI DNA를 이어받고, 제2의 창업 수준의 혁신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퀀텀 점프한다는 전략이다. 이런 의미를 담은 새 슬로건 ‘글로벌 카이 비욘드 에어로스페이스(Global KAI Beyond Aerospace)’도 내세웠다.
KAI는 미래를 준비하고, 향후 30~50년간 지속가능한 먹거리 창출을 위한 선도적 개발 전략으로의 전환 및 미래형 신플랫폼 개발도 선언했다. 3월 열린 간담회에서도 이를 위한 투자를 강조했다. 지난해 KAI는 전년 대비 1.1% 감소한 2067억 원을 연구개발(R&D) 비용으로 투자했는데, 2027년까지 향후 5년간 R&D 투자에 1조 5000억 원, 이후 6~10년간 매출의 5~10%인 3조 원 규모로 투자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강 사장은 “취임 후 ‘KAI는 KF-21 이후 내세울 만한 게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투자가 늦은 만큼 돈을 빌려서라도 투자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R&D에 힘을 주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R&D 중 주요 분야이자,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소프트웨어 시장이 꼽힌다. 강구영 사장이 밝힌 총 R&D 투자에서 3300억 원은 소프트웨어 투자에 쓰인다. 과거 방위산업에서 완제기나 항공기 부품 등 하드웨어 분야 역량이 중요시됐다면, 현대 항공기는 하드웨어 분산 시스템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통합 제어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렇기에 차세대 전투기를 비롯해 뉴스페이스(민간기업 주도로 이뤄지는 우주개발사업)·도심항공모빌리티(UAM)와 같은 미래시장에서는 AI(인공지능), 빅데이터, 메타버스 등을 기반으로 한 소프트웨어 역량이 전장의 승패를 가른다.
관련해 다니엘 에크 스포티파이 CEO(최고경영자)와 톰 엔더스 전 에어버스 CEO는 지난해 폴리티코에 글을 기고하며 “유럽이 더 많은 투자를 해 소프트웨어 주도의 새로운 방위사업체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도래한 유럽 내 안보 위험에 군사용 하드웨어만으로는 미래의 갈등을 예방하거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같이 권위주의적인 사람을 제지할 수 없다”며 “소프트웨어 중심의 방위산업 부문에서 미국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유럽 방위산업은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해 인재를 유치하고,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4차 산업 기술을 활용한 첨단 핵심 기술을 강화함으로써 항공기 하드웨어 중심에서 탈피해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업의 체질 혁신을 도모하는 것은 KAI에게도 주요 핵심 과제 중 하나다. KAI는 AI, 빅데이터, 무인자율 등 사업을 진행하는 신기술업체에 투자하고, 우주·소프트웨어 업체와는 전략적 제휴 및 인수·합병(M&A)을 맺는 방식으로 디지털 역량 자립화에 나선다.
강구영 사장은 “우리는 하드웨어는 강하지만,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다”고 꼬집으며 “위성 데이터를 기반으로 서비스 사업을 확장하고, 우주 분야는 40~50년 뒤에 달로 갈 수 있을 정도의 서비스 능력을 갖추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KAI 훈련용 시뮬레이터에 주목하는 세계 방산시장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를 위한 일환으로, KAI는 3월 에픽게임즈 코리아와 VR(가상현실)형 비행 훈련체계 개발을 위한 기술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훈련용 시뮬레이터는 미래가 기대되는 분야다. KAI는 국내 시뮬레이터 영상 시스템 시장이 향후 5년 동안 300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관련 사업을 확장해 왔다.
앞서 지난해 6월엔 훈련체계 전문업체 한길C&C, 바로텍시너지, 아이엠티에 자체 개발한 영상시스템 표준플랫폼을 공급하고, 안정적인 기술 지원을 제공하는 상생 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KAI는 이들 협력 업체에 운용기술을 지원하고, 협력 업체는 KAI 영상시스템 표준 플랫폼을 활용, 공군용 모션 시뮬레이터와 해군용 조종 절차 훈련 장비를 개발하는 형태다.
훈련체계 사업에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한 미래형 훈련시스템과 소프트웨어 사업은 적은 비용으로 높은 교육훈련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장소와 시간의 구애도 받지 않는 특징이 있다. KAI는 국내·외 16개 기지에 50세트 이상의 훈련 체계를 납품한 바 있다.
이번 협약을 통해서는 에픽게임즈의 ‘언리얼 엔진 5’를 적용한 KF-21 한국형전투기 VR 비행 훈련 시뮬레이터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에픽게임즈의 언리얼 엔진은 개방적이고 진보된 실시간 3D 제작 도구로, 게임뿐만 아니라 건축, 영화, 자동차 등의 가상세계 제작에 사용되고 있다. 높은 해상도와 정확도를 기반으로 현실감 있고 몰입감 높은 고퀄리티의 비행 영상 구현이 가능한 점이 특징이다.
실제와 유사하게 만들어져 기체 성능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시뮬레이터는 해외 구매자와 군 관계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KAI는 2월 28일~3월 5일 열린 오세아니아 지역 최대 규모 에어쇼 ‘아발론 국제에어쇼 2023’ 참가 당시, T-50의 성능을 체험할 수 있는 시뮬레이터를 선보여 호주 국방부와 공군 고위관계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무기 수출 시 함께 수출되는 훈련용 시뮬레이터는 수출 협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현재 KAI는 항공기와 훈련체계 개발 기술을 기반으로 XR(확장현실), VR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한 미래형 메타버스 훈련체계 모델을 구축 중이다. KAI가 개발하는 VR형 비행 시뮬레이터는 기존 대형(Full-Flight급) 비행 시뮬레이터 훈련에 앞서 실습 조종환경을 제공하는 훈련체계로, 대규모 합동훈련이 가능해 조종사 훈련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 소형화되고 운용유지 비용이 저렴해 훈련비용 절감도 기대된다.
KAI는 이를 기반으로 군의 항공 전력증강은 물론 방위산업 수출시장에서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해 수출시장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메타버스 훈련체계는 향후 헬기와 무인기, 잠수함·고속상륙정 등으로 확대 적용이 가능하며 민·관 등 고위험 첨단장비 운영인력이 필요한 산업계로 스핀오프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KAI는 2020년 장보고-3 잠수함 시뮬레이터를 개발해 해군에 납품한 전력이 있다.
KAI 측은 “지난 30년 동안 KAI는 항공기를 개발하면서 획득한 다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훈련체계 기술을 발전시켜왔다”며 “훈련체계 사업을 항공기의 서브 사업이 아닌 4차 산업혁명 기술 기반의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밝혔다.
4차 산업기술 접목으로 우주산업서 신성장동력 확보
첨단기술을 기반에 둔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는 우주산업 분야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KAI에 따르면 2040년 세계 우주산업은 약 1200조 원 규모로 전망되고, 위성서비스 54.8%, 지상 장비 38.2%, 위성 제조 5.1%, 발사 1.9% 규모로 예측된다.
특히 우주산업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위성서비스 부문은 위성에서 정보 수집 및 가공 방식을 다루는데, 이 중심에 소프트웨어가 있다. 위성서비스는 우주산업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미래형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900조 원 규모의 성장성이 기대되는 분야다.
지난해 4월 KAI는 항공영상분석 전문업체 메이사의 합작법인(JV)인 메이사 플래닛을 출범, 위성활용서비스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메이사는 2D(2차원)로 촬영된 위성영상을 3D로 전환하는 ‘3D 리컨스트럭션(Reconstruction) 엔진’을 개발한 영상 활용 전문 강소기업으로, KAI는 2021년 9월 지분 20%를 인수하며 협력 관계를 맺었다.
KAI는 메이사의 신설합작법인 메이사 플래닛을 통해 국내외 다양한 위성의 데이터 공급사업 및 3D 리컨스트럭션, AI, 빅데이터 등 4차 산업기술을 접목, 위성 이미지를 분석해 정보를 제공하는 고부가가치 위성 서비스 사업을 추진한다.
양사는 위성 데이터 분석을 통해 도시계획 수립과 유동인구 예측, 작황 및 유가 예측, 도로 건설, 기상 예측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향후 메이사 플래닛의 위성 활용 서비스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위성뿐 아니라 항공기, 드론 등 각종 이미지 정보를 분석해 국내외 기업과 공공기관에 제공하는 ‘공간정보 토탈 솔루션’ 업체로의 성장도 목표로 둔다.
KAI는 이를 통해 서비스 중심의 시장 선도형 체제로 전환해 위성과 발사체 제조, 운용, 서비스를 통합하는 밸류체인을 구축해 우주분야 토탈 솔루션 기업으로 성장할 계획이다.
이어 같은 해 7월엔 한국과학기술원(KAIST)와도 협력 체제를 구축하며 AI를 활용한 우주기술 고도화와 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했다. KAIST는 세계적 권위의 AI 및 컴퓨터 비전 국제학술대회(CVPR 및 ICCV)에서 ‘위성영상 초해상화 인공지능기술’ 관련 우수논문에 채택돼 높은 기술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양사는 업무협약을 맺고 위성이 전송하는 사진을 저해상도에서 고해상도로 변환하는 초해상화 기술을 비롯해 우주산업 고도화에 필요한 핵심기술 공동 연구개발에 나섰다. KAI 측은 “KAIST와의 협력을 통해 빅데이터 기반의 3D 화면 전환은 물론 AI, 빅데이터 등 4차 산업기술을 접목한 고부가가치 위성서비스 사업을 본격 추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며 “초해상화 기술 고도화 공동연구를 통해 국내 우주산업 생태계의 확장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의의를 밝혔다.
AI,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우주항공분야 기술력 강화를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2월 KAI는 코난테크놀로지와 업무협력을 맺었다. 이를 통해 양사는 미래비행체, 차세대 고장/수명예측시스템, 고객 후속지원과 훈련체계, 무인기와 드론, 위성개발 및 데이터 확보 등에 상호 협력한다.
군수 빅데이터 분야는 기술 정보를 디지털화 함으로써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미국과 유럽 등 우주항공 및 방위산업에서도 핵심 기술로 인식해 미래 먹거리로 주목하며 시장규모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특히 군수 빅데이터 체계구축은 무기체계 총수명 주기비용의 60~70%에 해당하는 운영유지 비용 절감에 기여할 수 있어 다양한 MRO(유지·수리·정비) 사업 확대가 예상된다.
고장/수명예측시스템은 항공기 상태를 진단해 잔여 수명을 예측하는 시스템으로, 정비 효율성의 극대화가 가능한 분야다. 항공기 운용데이터 분석 알고리즘 적용 시 T-50, FA-50, 수리온과 현재 개발 중인 KF-21, LAH의 항공기 안정성을 사전에 예지할 수 있는 기능이 강화돼 군 전력 향상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인기 분야는 컴퓨터가 스스로 외부 데이터를 조합, 분석해 학습하는 딥러닝 기반 영상인식 기술과 소프트웨어 통합으로 KAI 무인기의 자율비행과 정찰 임무 성능 강화를 통해 향후 무인기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KAI는 우주항공 분야에 4차 산업기술을 융·복합해 신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해 항공기 신뢰도 향상은 물론 고객 만족 등 시너지를 제고한다는 계획이다.
미래기술 인력 확충 나서
KAI는 미래사업 전략에 부응하고자 내부 직원 역량 강화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KAI는 KAIST 문지캠퍼스에서 3월 21~23일 강구영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 모두가 참석하는 4차 산업혁명 기술 위주의 ‘첨단 국방 과학 기술 연수’를 진행했다. 3월 28~31일 진행된 2차 연수도 관리자 직급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이번 연수에는 KAIST를 비롯해 국방 과학 연구소(ADD)와 서울대학교 미래 혁신 연구원, 한국지능 정보 사회 진흥원(NIA), 한국 항공 우주 연구원(KARI) 등 주요 연구 기관의 다수 전문가가 참여해 드론·미래 연료 전지·AI 등 KAI 미래 사업과 연계되는 핵심 기술에 초점을 맞춘 교육을 제공했다.
KAI 경영진은 연수 기간 전문가들과 미래 사업 비전을 공유하고, 국내 항공우주산업이 급변하는 시장에서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을 논의하기도 했다. KAI는 연수 프로그램을 계속 구체화하고 향후 전 사원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미래기술 인력 확충에도 나섰다. 3월 ▲SW(소프트웨어)개발(인공지능, 시뮬레이터, 항공전자) ▲위성제어 ▲생산기술 ▲품질 등 총 6개 직무에서 대졸 신입사원 공개채용을 진행했다. 특히 연구개발 직군에 해당하는 4개가 소프트웨어 관련 분야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KAI 측은 “이번 채용은 인공지능 기반의 자율비행 소프트웨어‧유무인 복합 전투임무 자율화 소프트웨어 개발 및 독자적 위성 플랫폼 개발을 위한 위성제어 등 미래 성장사업을 추진할 인력을 확충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소프트웨어 개발 AI 분야는 수도권에 배치할 계획이다. 소프트웨어 인력 확보를 위해 서울 사무소 확장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7위 항공우주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KAI의 포부는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KAI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위기 속에도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매출 2조 7869억 원, 영업이익 1416억 원, 당기순이익 1159억 원의 경영성과를 거뒀다. 해외 신규 시장개척과 수주 물량확보를 비롯해 미래 전장의 중심인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에도 나서 이 기세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강구영 사장은 “지난 40년간 항공우주산업을 이끌었던 KAI DNA에 담긴 통찰과 도전, 열정과 창의 정신이 되살아난다면 KAI는 충분히 세계적인 기업으로 퀀텀점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새로운 비전 글로벌 KAI 2050을 달성한다면, KAI는 보잉, 에어버스에 버금가는 아시아의 대표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