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7호 김금영⁄ 2023.04.20 16:17:47
마르셀 뒤샹의 ‘샘’이 연상되는 변기 안에서 천진난만한 표정을 한 캐릭터가 누워 뒹굴고 있다. 또 다른 화면에선 앤디 워홀의 대표 작품 ‘캠벨수프 캔’을 모방해 통조림 속에 뛰어들고, 바스키아와 데미안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모네 등 서양 미술사의 아이콘이 연상되는 화면들을 자유롭게 여행하듯 누비고 있다. 종잡을 수 없는 이 캐릭터는 일본계 영국 미술가인 사이먼 후지와라의 손에서 탄생한 ‘후(Who)’다.
갤러리현대가 사이먼 후지와라의 개인전 ‘후지엄 오브 후(Whoseum of Who?)’를 연다. 유명 곰 캐릭터 ‘푸’가 떠오르는 외형에 이름도 비슷하지만, 후의 정체는 이름처럼 명확하지 않다. 새하얀 털과 황금빛 심장, 엄청나게 긴 혀를 가진 점은 분명하지만, 성별과 인종은 무엇인지,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작가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모든 것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자유롭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서는 과정, 그것이 후의 정체성이라면 정체성이다.
후는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기 탄생했다. 정체성이 모호한 것도 여기서 기인한다. 작가는 “코로나19로 전 세계의 사람들이 집안에 갇혀 지내면서 어둡고도 복잡한 시기를 보냈다”며 “정론이라 믿었던 여러 가치관이 흔들리고, 점차 자본주의와 기계화가 빨라지며 비인간적 세계가 찾아왔다. 특히 세계는 기후와 경제위기 등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을 맞닥뜨렸는데, 각 분야의 지도자들은 이런 복잡한 문제에 최대한 단순하게 답을 제공하려 하는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 가운데 모순 덩어리인 캐릭터 후가 탄생했다”고 말했다.
후 캐릭터 디자인 시 인간의 형상에 비슷하면서도 최대한 만화 같은 단순함을 보여주도록 했다. 후를 내세운 캐릭터 연작 ‘후 더 베어(Who the Baer)’는 2021년 밀라노에 있는 프라다재단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첫 공개돼 국제적 호평을 받은 뒤, 로테르담의 쿤스트인스티튜트멜리, 베를린의 에스더쉬퍼, 됴코의 프라다 아오야마 등 유럽과 아시아의 주요 기관과 갤러리에 소개됐다. 이번엔 후가 한국을 찾았다. 전시에 소개된 40여 점은 작가의 신작에 집중한다.
전시장 1층에 설치된 영상은 후가 자신의 정체성을 궁금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특히 현대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영상 속 후는 후가 ‘누구(Who)’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는데, 여기에서도 명확한 답은 없다. SNS 등을 통한 이미지 과잉 시대에 개인의 정체성은 스스로가 정의하기보다는, 타인이 바라보는 시선에 의해 좌지우지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의 정체성은 이러하다’고 하나로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시대다.
후 또한 이런 부분에 접근하는데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진 않는다. 그저 질문을 던질 뿐이다. 작가는 “동화 속 피노키오는 인간이 되기를, 인어공주는 다리를 얻기를 꿈꿨다. 두 가지 모두 진짜가 되기를 꿈꿨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하지만 넘쳐나는 이미지 시대의 공황에 후는 진정성을 중심에 두기보다는 모든 것이 되려 한다. 그리고 그 모습은 이미지에 집착하는 동시대인에게 ‘진정한 자아는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고 말했다.
후, ‘어른을 위한 디즈니랜드’를 구축하다
후의 이야기는 전시명에도 등장하는 ‘후지엄(Whoseum)’으로 이어진다. 20세기의 걸작들을 재구성, 재창조한 화면에 후를 등장시켜 이를 후의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으로 설정한 것. 작가는 이 방식을 패스티시(Pastiche, 혼성 모방)라 설명했다. 여기선 정체성의 이야기가 후 개인의 이야기에서 예술로 보다 확대된다.
특히 지하 1층 전시장은 바닥과 벽까지 알록달록한 색상으로 꾸려 소위 요새 말하는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이란 뜻의 신조어)한 감성을 갖췄다. 프랑스 골목의 살롱을 옮겨놓은 듯한 느낌도 든다. 관련해 작가는 “분홍, 노랑, 파랑이 ‘후 더 베어’ 브랜드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전시장 벽면과 카펫을 디자인할 때 이 부분에 맞춰 공간 자체가 하나의 세계라는 느낌이 들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곳엔 피카소, 마티스의 작품을 패스티시한 작품들이 전시됐다. 작가가 말하길 후는 특히 유명한 작가를 좋아한다고. 그는 “피카소와 마티스는 모든 사람이 아는 작가다. 후는 유명작가의 작품을 넘나들며 자신도 더불어 유명해질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며 “하지만 후 자신이 마티스가 되려하자 뜻하지 않은 변화가 화면 안에서 일어난다. 후는 원작 그림이 그려졌던 시기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명확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후는 자신이 존재하는 화면마다 다양한 정체성을 찾아간다. 어떤 화면에선 여성, 또 다른 화면에선 남성처럼 보이는데, 이 순간조차도 명쾌한 답을 주지 않고 ‘후 이즈 히(Who is he)?’, ‘후 이즈 프리티(Who is pretty)?’ 식으로 질문을 던진다.
2층 전시장엔 앤디 워홀, 바스키아, 모네 등의 작품을 재해석한 화면에 후가 능청스럽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 모습은 유쾌하기도, 섬뜩하게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후가 통조림에 다이빙하고 있는 그림에서 마지막엔 장엄하게(?) 익사한다. 마치 이미지 과잉 속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먹혀버린 듯한 느낌이다. 여기서 이야기는 정체성에서 선택의 이야기로 나아간다.
작가는 “대량생산과 복제의 이미지를 예술에 차용한 앤디 워홀은 정체성보다는 선택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앤디 워홀 이후 우리는 정체성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며 “여러 선택사항을 맞닥뜨린 수는 통조림에 뛰어드는 방향을 택했고, 결국 익사했다”고 말했다.
작가는 피카노, 모네, 앤디 워홀 등 하나의 아이콘이 돼버린 작가들의 정체성에서 캐릭터를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가 유명 작가의 전시를 보러 갔을 때 진정 우리가 작품을 보러 가는 것인지, 유명작가를 하나의 브랜드로 여기고 가는 건 아닌지 궁금했다”며 “우리는 그들의 작품을 갤러리, 박물관에서 감상하는 것에서 만족 못하고 폰케이스, 가방 등에까지 작품 이미지를 끼워 넣고 더 캐내려한다. 작가들이 너무 유명해지다보니 마치 만화 같은 존재가 된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후의 세계관은 유명미술관 구겐하임을 본딴 후겐하임(Whogenheim: Who+Gugenheim)로도 이어진다. 여기엔 예술의 미래에 대한 작가의 불안이 반영됐다. 작가는 “오늘날 미술관이 점점 오락을 위한, 마치 테마파크 같은 장소가 되면서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가 흐려졌다. 미래에도 과연 미술이 진지하게 존재할지 현 시점에서 의문이 들었다”며 “후의 모습은 언뜻 보면 장난스러워 보이지만 무거운 고민을 담은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서 작가는 비관론을 내세우진 않았다. 후가 펼쳐놓은 세상을 ‘어른을 위한 디즈니랜드 같은 곳’이라 하며 자유로운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자 한다.
후니버스(Whoniverse)의 일부를 소유하고 참여할 수 있는 후지엄의 새로운 팝업 스토어 후티크(Whotique)도 전시 기간 선보인다. ‘후 더 베어’ 연작의 개념적 확장의 일환으로,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이미지를 품은 티셔츠, 모자, 러그, 머그, 가방, 노트, 스티커, 포스터와 같이 다양한 아트 상품 군을 한정된 수량으로 선보인다.
전시장의 테마파크화를 우려한 작가이지만, 오히려 이 고민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후티크를 선보이며 오늘날 우리의, 그리고 예술의 정체성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전시는 5월 21일까지.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