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7호 김금영⁄ 2023.05.02 16:07:22
사람들이 기차역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의 행선지가 어디인지, 과연 열차는 언제 오는 것인지, 정녕 오기는 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계속 기다린다. 또 다른 화면에선 프란시스 베이컨, 장 바스키아, 헤르난 바스 등 미술계에서 이른바 ‘성인’과도 같은 경지에 이른 거장들의 초상을 볼 수 있다.
이 작품들은 서상익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하이 앤 드라이(High and Dry)’ 연작과 ‘화가의 성전(Temples of The Artists)’ 시리즈다. 2012년부터 이어온 ‘화가의 성전’ 시리즈는 작가의 이름을 알린 대표 시리즈 중 하나다.
‘하이 앤 드라이’는 밀물이 해안으로 밀려왔다가 썰물 때 모래톱이나 갯벌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한 채 꼼짝 못하고 말라가는 상황을 나타내는 관용적 표현으로, 영국 락밴드 라디오헤드의 곡명에서 가져왔다. 서상익은 작가로서의 작업 역시 그림에 대한 ‘깨달음’과 ‘좌절’이라는 밀물과 썰물의 교차 위에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갤러리퍼플에서 5월 26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하이 앤 드라이’에서 이 모든 작업들을 볼 수 있다. 작가는 현재 밀물과 썰물 사이에 서서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 이번 전시명이기도 한 ‘하이 앤 드라이’ 연작의 탄생 배경이 궁금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선진국으로 거듭난 한국에 대한 이야기와 자랑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과거 경제대국이었던 일본을 앞지른 건 물론이고, 전 세계가 한국의 음식, 문화에 주목했으며, 미술계 또한 뜨거워져 전반적 호황을 이뤘죠. 하지만 지금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이 놀랍도록 침체된 분위기입니다. 양극단을 짧은 시간 내 모두 경험한 거죠. 마치 한 체제가 끝나기 전 마지막 불꽃을 불태운 것처럼 허무함에 빠진 사람들도 있어요.
쉴 틈 없이 번영과 발전을 빠르게 거듭하던 우리사회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다양한 방면에서 정체, 고립된 모습이 마치 밀물과 썰물이 교차될 때 빠져나가지 못하고 갯벌에 고여 있는 물과 같이 느껴졌어요. ‘우리는 과연 갯벌에 갇힌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갯벌에 갇힌 건 우리의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을까?’ 이런 의문에서 ‘하이 앤 드라이’가 시작됐습니다.”
- 전시 제목에 빗대 그림에 대한 깨달음과 좌절도 느꼈다고 했다고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건가요?
“작가뿐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과정이죠. 하루는 세상의 모든 걸 가진 것처럼 만족스럽다가 바로 다음날 새벽엔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결과를 맞이하며 고개를 숙이는 일이 반복되는 것처럼요.”
- 2008년 첫 개인전 완판이라는 화려한 이력으로 미술계에 등장해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활동을 이어가다 2011년 잠시 전시를 멈췄던 것과도 관련 있나요?
“정말 감사했지만, 고민 또한 많았던 시기였어요. 정해진 약속과 일정에 따라 작품을 계속 발표해야 하는 상황 속 점점 기계처럼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 ‘내가 과연 이 일을 해도 되는 사람인가?’ 근본적인 의문이 생겼어요. ‘전시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딱 정한 건 아니었는데, 예술과 창작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공백기가 생겼어요. 하지만 전시를 열지 않았을 뿐 꾸준히 혼자 그림을 그렸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게 필요한 시간이었어요.”
- ‘하이 앤 드라이’ 배경을 기차역 플랫폼으로 정한 이유는?
“19살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시작한 제게 기차역은 늘 집으로 갈 때 거치는 익숙한 공간이었어요. 기차를 기다리며 플랫폼을 구경하는데 역에 도착해서 내린 사람들, 환승하는 사람들, 아직 오지 않은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차에 탔다 내렸다 하는 모습이 마치 밀려왔다 가는 밀물, 썰물처럼 느껴졌죠. 거기에 숨겨져 있을 수많은 감정들도 느껴졌어요. 누군가에게는 금의환향, 또 다른 이에겐 고독을 안고 가는 시간이었겠죠.
이를 모티브로 기차역을 그릴 때 서 있는 사람들 사이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를 상징하는 광고 이미지도 함께 넣었습니다. 특히 한 시대의 가장 감각적이고 핫한 크리에이터가 만들어내는 패션 화보 이미지를 그려 넣었어요.”
- 광고 이미지 속 모델의 이미지는 선명한데, 기차역 플랫폼에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뭉뚱그려져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없고, 선글라스를 끼고 뒤로 돌아서 있는 등 폐쇄적인 모습입니다. 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비판의 시선이 반영된 건가요?
“그렇진 않아요. 과거엔 사람들을 작게 그리는 대신 디테일을 하나하나 살려 섬세하게 그리는 등 사실적인 묘사에 집중했습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 붓과 물감 등 여러 재료를 실험해봤는데, 대상에 대한 저의 입장이 바뀌지 않는 한 종착지는 늘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현재 저는 관찰자의 입장이에요. 지금 우리는 썰물과 밀물 사이 중간의 시간을 맞았는데, 갯벌에 갇힌 사람들의 모습, 이들을 둘러싼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그저 사회의 일원이자 관찰자로서 바라보고 이를 보여줍니다.
흔히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고들 하잖아요? 우리는 그간 파도에 올라타 앞만 보고 노를 젓느라 수면 아래엔 뭐가 있는지, 우리가 거쳐 온 길엔 무엇이 있었는지 생각해볼 시간이 많이 없었어요. 갯벌에 빠져 옴짝달싹 못하게 되는 상황을 맞고 나서야 개인, 더 나아가서는 사회가 겪은 수많은 일들이 과연 자유의지에서 비롯됐는지, 운명적으로 끌려온 것인지 질문을 자체적으로 던져볼 시기가 온 것이죠.
밀물, 썰물은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예요. 지금 우리도 힘겨운 상황을 맞고 있지만 밀물과 썰물이 오갈 때마다 ‘다음엔 더 깊은 바다로 가 볼까?’, ‘다음 밀물 때는 헤엄쳐볼까?’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 또한 과거 그림을 의무적으로 생산하듯 그려내다 차분히 제자리에 멈춰 서서 다음 밀물을 어떻게 슬기롭게 이용할지 고민하며 스스로를 돌아본 것처럼요. 이런 생각과 고민의 시기를 거쳐야 개인과 사회가 보다 단단해지고 발전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전체적인 이야기를 담은 공간을 더 집중적으로 보여주고자 개개인의 표정을 일부러 뭉뚱그려 놓았습니다.”
- ‘하이 앤 드라이’ 속 공간은 어딘가에 존재할 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상상 속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현실과 비현실적인 공간, 실제와 상상, 구상과 추상이 충돌하는 작업은 작업 초기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첫 개인전 ‘녹아내리는 오후’에 출품됐던 대표작 ‘일요일 PM 4:00’ 또한 좁은 자취방 침대에 사자가 드러누워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이런 화면을 구성하게 된 계기는?
“일상에서 이건 꿈인지, 기억인지 모호한 순간들이 누구나 있잖아요? 영화 ‘매트릭스’에서도 자신은 현실을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건 모두 실제라 믿었던 환상이었던 것처럼요. ‘일요일 PM 4:00’ 또한 제가 침대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순간 본 환영 같은 이미지를 기억하고 그린 결과물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현실은 단단하고, 환상과의 경계가 확고하다고 여기지만, 전 우리가 과연 리얼리티라는 말을 단 1% 의심도 없이 쓸 수 있을지 궁금했어요. 오히려 확고하지 않기에 삶이 존재한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예컨대 돈이 다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이를 쫓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돈은 정말 다가 아니다’는 명제를 확정된 답으로 던져준다면, 과연 사람들은 ‘그렇구나’ 하며 이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각자 환상처럼 여겨지는 자신만의 명제를 좇아 꿈을 꾸고, 이를 통해 현실을 살아가는 원동력을 얻기도 하죠.
‘하이 앤 드라이’에서도 밀물과 썰물 위의 파도를 타고 놀다가 떨어져 갯벌에 갇힌 현실에서 ‘과거의 영광은 환상이었나?’ 여길 수 있지만, 오히려 덕분에 파도 아래 바닥에 발을 내딛고 무엇이 있나 확인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맞았죠. 현실과 환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면 오히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제약이 생겨요. 그래서 경계에 서서 이 모든 이야기들을 보여주려 노력합니다.”
- 그림 속 등장하는 장소나 인물은 현실에서 모티브를 얻은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아는데 특별히 선호하는 장소나 대상이 있나요?
“공간을 바라볼 때 관찰자로서 최대한 중립적이고 건조한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직선이 잘 보이는 곳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것을 선호해요. 공간의 깊이감에 중점을 두면 공간을 바라보는 저의 주관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될 수 있거든요. ‘하이 앤 드라이’에서 기차역 플랫폼을 그릴 때도 한쪽에 서서 비스듬한 시선으로 바라봤으면 더 많은 공간이 보였을 텐데 이를 지양하고, 최대한 수평, 수직 라인이 교차되는 지점을 앞에서 바라보는 형태로 작업했습니다.
인물 또한 어느 한 특징이 너무 도드라지거나 편향되지 않은, 중성적인 이미지를 선호합니다. 중학교 때 마이클 잭슨 음악을 정말 좋아해 많이 들었는데요. 처음엔 흑인이었던 그가 점점 백인처럼 하얗게 변하는 걸 보면서 당시엔 ‘멋있는 흑인으로 이미지 메이킹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왜 그랬을까?’ 싶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마이클 잭슨은 정체성을 명확하게 갖는 걸 원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해요.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정체성이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명확한 정체성이 생기면 그 이외의 이야기들은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른 많은 이야기들의 가능성 또한 사라질 수 있죠. 그래서 명확한 건 재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른이지만 아이 같기도 했던 마이클 잭슨처럼 경계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유독 매력을 느낍니다.”
- 또 다른 대표 시리즈인 ‘화가의 성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12년부터 이어온 이 시리즈는 미술계 거장의 초상과 그의 대표작을 배경으로 한 점이 눈길을 끄는데요.
“이 또한 과거 ‘예술은 과연 뭘까?’ 고민하던 시절 시작된 시리즈인데요. 누구나 갖고 있는 ‘신념’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점이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믿고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세계가 정립됩니다. 종교로 따지자면 유신론자의 세계엔 신이 존재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데, 무신론자에겐 이 전제가 기능하지 않는 것처럼요.
신념에 대한 이야기는 예술 분야에서도 적용됩니다. 미켈란젤로는 종교에 대한 신념으로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워 로마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벽화를 그리고 수많은 걸작을 남겼어요. 미켈란젤로뿐 아니라 예술계에 이름을 남긴 거장들은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가며 독자적인 작업 스타일, 세계를 구축했죠. 이런 그들의 발자취를 종교로 치환하자면 작가들은 성인, 이들의 이야기를 모으면 하나의 성전이 될 수 있겠다 생각했고,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 처음 ‘화가의 성전’을 그릴 당시 70개 목표를 정하고 시작한 걸로 아는데요.
“구체적인 개수를 정하진 않았어요. 당시 그림을 그릴 때 기법적으로도 다양한 시도를 하던 때였는데요. 나무와 천을 주문해서 캔버스를 직접 제작하다보니 남는 부분들이 생겼어요. 이걸 3호 크기의 캔버스로 제작해서 개수 제한 없이 ‘화가의 성전’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웅장한 크기의 그림으로 성전을 장식할 수도 있었겠지만, 작지만 디테일한 그림들이 한데 모이는 모습 또한 좋은 느낌을 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화가의 성전’ 작업들을 처음 선보일 때도 딱 100개 또는 77개 등 딱 떨어지는 숫자로 전시하면 ‘이 숫자엔 이런 상징적인 뜻이 있다’는 식으로 의미 부여가 될 것 같아 전시 전날까지 완성된 약 83개의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 ‘화가의 성전’에 담긴 예술가들의 선정 기준이 따로 있었나요?
“처음엔 제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작가들 위주로 그렸는데, 그러면 너무 주관적인 한계에 갇힐 것 같아 누가 봐도 알 만한 유명 작가들을 그렸습니다. 한국 작가 중에서는 천경자, 이중섭, 박수근 작가를 담았습니다. 국내 작가들 또한 더 폭넓게 다뤄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 ‘화가의 성전’을 그릴 땐 각 대표 화가들의 대표작이 배경이 되는데, 작가로서 그림을 그릴 때 이 부분을 따라가게 되진 않을까 고민은 없었나요?
“특정 작가 한 둘만 집중적으로 그렸으면 많이 영향을 받았겠지만, 최대한 많은 예술가들에 대한 존경을 담아 그렸기에 그들의 예술적 유산을 탐구하고 각 작가들이 가진 구도, 색감, 기법 등 다양한 회화적 요소를 연구하는 시간이 됐습니다. 많은 공부가 됐어요.”
-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경계에 선 시선과 작업 태도를 중요시하는 게 느껴지는데요. 하지만 작가로서는 정체성이 모호해질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초기 작업 때 서상익 하면 대표작으로 ‘일요일 PM 4:00’이 꼭 언급됐어요. 사람들이 초현실적 내러티브를 담은 작업 스타일을 좋아해 관련 의뢰도 많이 쏟아졌는데, 이에 맞추다보니 내러티브가 자연스럽게 솟아나지 않고 작위성이 자꾸 들어가더라고요. 작가로서 회의감이 들었고, 당시 31살의 젊은 패기와 반항심도 있었기에 해당 스타일의 작업을 멈추고, 새로운 스타일의 작업들을 시도했어요. 그래서 주변에서 ‘작가라면 정체성을 가져야지 시장에서 살아남기가 좋다’는 조언도 많이 들었고요.
하지만 전 그림을 그릴 때 스스로에게 가슴 뛰는 쾌감이 있는 것이 가장 중요했어요. 한길을 수행하듯 오롯이 걸어가는 작가가 있다면, 저는 그때그때 관찰하고 즉각 반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만약 어제와 똑같이 그림을 그린다면, 어제와 오늘의 저는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슬플 것 같아요. 하나의 명확한 정체성을 갖기 보다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제가 매일매일 새로운 것, 그 모호함이 제가 추구하는 정체성입니다.”
- ‘하이 앤 드라이’와 ‘화가의 성전’ 외 이번 전시에 선보인 ‘성스러운 의식’, ‘샤넬이 있는 풍경’ 또한 눈길을 끕니다.
“이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관찰자로서의 시선을 표현했는데요. 특히 비판적인 이야기보다는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아이러니가 한 공간에 모인 현장을 그렸습니다. 아트페어 현장을 그린 ‘성스러운 의식’엔 창작자와 컬렉터, 갤러리스트가 모였습니다. 자신의 작품을 평가받는 창작자, 작품을 더 좋은 가격에 팔아야 하는 갤러리스트, 가치 있는 작품을 구매하고 싶은 컬렉터 각각의 입장과 생각이 모두 다른 상황이 아이러니한데, 이를 한 화면에 펼쳐두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펼쳐가길 바랐습니다.
‘샤넬이 있는 풍경’엔 색만 다른 명품 가방을 든 두 아시아계 인물의 모습이 눈에 띕니다. 디올, 프라다 등 명품 브랜드의 매출 상당부분이 아시아권에서 나온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 브랜드들은 과거부터 인종차별 이슈에서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명품 가방을 들고 ‘난 럭셔리한 사람이야’ 하며 또 차별을 소비하죠.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의 단면을 포착해 보여주며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지 묻고 싶었어요.”
- 현재 갤러리퍼플 레지던시에 입주해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데, 변화된 작업환경에 따른 변화는?
“과거 혼자 작업실을 두고 작업할 때는 집중력이 높았지만, 커뮤니케이션이 부재하다 보니 피드백이 확실히 적어 아쉬운 점이 있었어요. 레지던시 입주 전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지금은 저의 감정적 변화나 작업 스타일에 대해 바로 다른 작가들과 소통하면서 보다 시선이 넓어졌어요. 또, 저의 작업이 작업실 크기에 갇혀 있었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층고가 높아져 이전엔 시도하지 못했던 대형 작업들을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어요.”
- 2008년 첫 데뷔 때의 서상익과 2023년 현재의 서상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예전엔 ‘이야기꾼’이라면 지금은 ‘질문자’라고 할 수 있겠네요. 과거엔 내러티브를 중시했어요. 특히 제가 이야기의 주체가 되는 편이었죠. 예컨대 ‘일요일 PM 4:00’는 반지하에 사는 가난한 자취생, 즉 저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준 것이었어요. 그런데 예상치 못한 사람들의 반응을 마주했어요. 침대 속 사자의 모습을 보고 숨겨둔 강인함과 재능, 또는 성공에 대한 욕망을 표현한 것이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처음엔 그 반응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정해진 내러티브를 없앰으로써 새로운 내러티브가 생길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는 이야기의 단초만 제공하고, 사람들 스스로가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형태로요. 그래서 과거 ‘이건 일요일 오후 나른한 잠에 빠져든 제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설명하는 식이었다면, 지금은 ‘여기 누워 있는 사자가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요?’라고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작업 초기엔 저 자신의 입장만 헤아리기에도 벅찼는데 이젠 경험이 쌓이면서 타인의 입장과 제가 속한 이 사회의 전체 구조를 파악하고, 여러 사람의 입장이 모여서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구조에서 너무 한쪽에 매몰되지 않고 경계에 서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과거 인터뷰에서 자신의 그림에 90점 이상을 주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철저한 모습을 보였는데 지금도 그런가요?
“저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만족하지만, 항상 ‘더 큰 만족감은 내일 온다’는 생각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그래야 더 내일이 기대되거든요. 제가 만약 1000억 대 자산가였으면 이런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을까 싶어요. 만약 그랬다면 자산을 지키기 위해 주식, 채권, 부동산 투자 공부에 온 시간을 쏟아야 해서 그림을 그릴 수 없었겠죠. 저를 이곳까지 데려다 준 밀물이 고맙습니다. 새벽 3시에 붓질 하나로 문워크를 추면서 신날 수 있는 이 감정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 그렇다면 내일 그리고 싶은 것은?
“변화가 없는 작업은 죽은 작업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어제, 오늘과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과거 그림을 그리는 건 영화로 치면 총감독의 역할이라 생각했는데요. 요새는 하나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스스로가 무대 세트를 만들고, 배우들을 관리하고, 스태프 역할도 면밀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디테일하면서도 전체를 볼 수 있는 관찰자로서 계속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