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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현장] ‘2023 호반미술상’ 강운·홍순명이 작업에 풀어놓은 이야기들

용산 전쟁기념관서 5월 14일까지 회고전…호반문화재단, 총 1억 원 상금·비평가 연결·출판 지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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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47호 김금영⁄ 2023.05.04 09:45:20

우현희 호반문화재단 이사장(가운데)이 1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2023 호반미술상' 시상식에서 2023 호반미술상 작가로 선정된 강운 작가(왼쪽), 홍순명 작가와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호반문화재단

“30년 이상 화업(畫業)을 지속해오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해 온 국내 중견·원로 작가를 재조명하고, 국제무대로 나아가도록 돕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

우현희 호반문화재단 이사장이 포부를 밝힌 자리는 4월 1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2023 호반미술상’ 시상식이었다.

호반건설그룹은 미술 분야의 전문 인력 양성, 미술품의 수집 및 보존 전시를 통한 대중의 폭넓은 미술 관람을 목표로 2004년 태성문화재단(현 호반문화재단)을 설립했다. 그동안 호반문화재단은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 공간 ‘아트스페이스 호화’, 국내 유망 청년 작가들을 발굴, 지원하는 미술공모전 ‘H-EAA(HOBAN-Emerging Artist Awards)’, 발달장애인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예술공작소’ 등 다양한 지원사업을 전개해 왔다.

하지만 국내 예술가 지원제도는 주로 신진·청년작가 중심으로 이뤄져 역으로 중견·원로작가가 설 자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이에 호반문화재단은 호반미술상을 지난해 제정하며 지원의 폭을 넓혔다.

호반문화재단 관계자는 “신진작가의 경우 경험을 쌓기 위한 공모전 등 여러 지원 형태가 다양한 반면, 중견·원로작가를 주요 대상으로 한 공모전, 지원제도는 다소 아쉬운 측면이 있었다. 특히 미술시장에서 떨어져 있지만, 묵묵히 그림을 그리는 재능 있는 중견·원로작가가 많다”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신진작가부터 중견·원로작가까지 지원의 폭을 보다 넓히고자 호반미술상을 마련했다”고 의도를 밝혔다.

우현희 호반문화재단 이사장이 1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2023 호반미술상' 시상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사진=호반문화재단

투명하고 공정한 작가 선정을 위해 시각예술 분야의 중진들로 구성된 추천위원단 10명과 심사위원단 3명을 분리해 개별 심사로 운영했다. 지난해 하반기 먼저 추천위원단으로부터 약 30명의 중견·원로작가를 추천받았고, 이를 심사위원단이 다시 검토했다.

호반미술상 첫 선정 작가는 강운, 홍순명이다. 강운 작가는 하늘과 구름이라는 자연의 순수 형태와 내면에 대한 탐구를 이어왔다. 최근 작품엔 자신에 대한 반성과 치유 과정을 표현해 심사위원들로부터 ‘동양적 정신주의와 초월적 숭고 미학을 되살려 호소력이 짙다’는 평을 받았다.

홍순명 작가는 ‘부분과 전체’라는 명제로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전체가 아닌 부분에서 시작하는 작업방식을 통해 그 시대의 사건과 역사를 작품에 담아냈다. 진실과 실체에 다가서는 그만의 예술방식이 심사위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최종 수상자에게는 총 1억 원의 상금(각 5000만원)이 주어진다. 국내외 비평가 매칭, 출판 등도 지원할 예정이다. 호반문화재단 관계자는 “단기적인 일회성 지원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프로젝트로서 호반미술상 수상자들의 작업을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선보이기 위해 지원을 이어갈 계획”이라며 “해외 비평가로부터 비평글을 받아 해외 유수의 미술관에 배포하고, 해외 현지의 여러 출판사와도 접촉해 호반미술상 수상자들의 아카이브가 쌓이면 이를 한데 모아 소개하는 책도 출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운, ‘구름’이 지나간 자리를 ‘마음’이 채우다

초창기 판화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강운 작가. 사진=김금영 기자

수상작가들의 작업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도 마련했다. 호반미술상 수상자 2인의 회고전은 4월 20일~5월 14일 용산 전쟁기념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두 작가의 일대기에 걸친 작품들을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구성했다.

거대한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강운 작가가 펼쳐놓은 하늘과 땅의 풍경들이다. 그가 1993년 해남에 내려가서 스케치했던 땅의 소나무부터, 시선을 올려 마주한 광활한 하늘의 구름들까지, 구상과 추상 사이 오묘한 매력을 드러내는 풍경들을 만날 수 있다.

‘구름 작가’라 불릴 정도로 강운을 널리 알린 구름 풍경들은 전시장 벽을 뚫고 하늘의 구름을 지상으로 끌어온 듯 강렬하다. 사진=김금영 기자

특히 ‘구름 작가’라 불릴 정도로 강운을 널리 알린 구름 풍경들은 전시장 벽을 뚫고 하늘의 구름을 지상으로 끌어온 듯 강렬하다. 강운은 “추운 겨울에 작업실에서 작업하다가 어느 날 문득 하늘의 구름이 지나가는 풍경을 봤는데, 일분일초 매 순간의 풍경이 다르더라. 그 풍경엔 시간, 공간, 원근감 모든 게 담겨 있었다”며 “바람과 찬란한 햇빛을 품고, 광활하고 고요하며, 모양이 있으면서도 없는 구름의 비정형적인 풍경에 감정이입이 됐고, 이를 그림으로 그렸다. 구름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며 현실의 고통을 잊어버리고 수행하듯 사색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파란색과 노란색이 돋보이는 전시실이 등장한다. 자연현상의 비가시적인 에너지를 시각화한 작업으로, 여수의 스튜디오에서 작업할 때 바라본 하늘과 바다를 그만의 시각언어로 표현했다. 벽을 채운 파란색 점들은 여수의 장도 진섬다리를 오가던 작가의 여정과도 같다. 어떤 기교나 계획 없이 단 한 번에 획을 긋는 방식으로 여수의 섬들을 하얀 종이 위에 파란 점으로 띄워놓았다.

강운 작가에게 파랑은 창조의 색이다. 여수의 스튜디오에서 작업할 때 바라본 하늘과 바다를 그만의 시각언어로 표현했다. 사진=김금영 기자

강운에게 파랑은 창조의 색, 노랑은 깨달음의 경지를 상징하는 색이라 한다. 파란색의 시원함이 전시장 한쪽 벽면에서 휘몰아칠 때 또 다른 벽면에선 마치 햇살을 연상케 하는 노란색이 따뜻함으로 파란색을 감싸 안는다. 이 만남이 이질적이지 않고 안정된 조화를 이뤄 보는 이에게도 평온함을 준다.

이어 최근작인 ‘마음산책’ 시리즈가 기다린다. 구름이 지나간 자리를 마음이 채웠다. 9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 내면의 슬픔을 예술적으로 승화하고자 한 의지를 드러낸 작품들이다. 강운은 “우울증을 극복 못하고 고통의 시간을 보낼 때 함께 힘들어하던 딸과 대화하면서 내면 속 깊이 숨겨둔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꺼내보자고 했다. 하고 싶은 말들을 녹음했다가 일주일 시간을 보낸 뒤 딸과 다시 이야기를 나눴는데 마음이 조금씩 정리된다고 하더라”며 “나 또한 화면에 끊임없이 색을 덮고 덮으며 무의식 속 기억, 감정과 대면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강운 작가의 최근작인 ‘마음산책’ 시리즈는 구름이 지나간 자리를 마음이 채운 작업이다. 사진=김금영 기자

그림에 가까이 다가서면 마치 문장을 삐뚤빼뚤 쓴 듯 거친 붓질이 느껴진다. 그림을 그렸다기보다는 작가의 마음을 처절하게 써내려나간 하나의 일기장을 보는 느낌도 든다. 심연 속 짙은 보라색부터 강렬한 빨간색, 환한 색까지 마음에 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도 느껴진다. 강운은 “피카소는 색에 치유 효과가 있다고 했는데, 내 양가감정이 여러 색을 통해 점점 화면에 리얼하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과거 전시장에서 선보이지 못했던 작품들을 에필로그 영상에 담아 선보인다. 강운은 “호반미술상을 통해 과거부터 현재까지 내 작업을 돌아보며 가장 자신다운 게 뭘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고, 생각도 보다 명료해졌다”며 “딸이 내게 그러더라. 전엔 가족을 위해 그림을 그렸는데, 이젠 자기 자신을 위해 그리는 것 같다고. 내 자신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건 이제 시작점이다. 앞으로 작업할 시간이 많이 남았다. 이번 수상이 중견 작가로서 그림을 그리는 데 하나의 기폭제가 됐고 자신감을 찾았다”고 말했다.

‘마음산책’ 시리즈는 작은 크기부터 거대한 크기까지 다양하다. 그림을 그렸다기보다는 작가의 마음을 처절하게 써내려나간 하나의 일기장을 보는 느낌도 든다. 사진=김금영 기자

홍순명, 중앙에서 벗어난 주변에서 오히려 진실을 보다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홍순명 작가. 사진=김금영 기자

강운에 이어 홍순명의 전시 공간이 이어진다. 홍순명은 ‘구석, 환유, 저항’을 주제로 1980년대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그의 일대기에 걸친 작품들을 전반적으로 선보인다. 서울에서 태어난 작가는 부산에서 자라다가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난 뒤 1998년 귀국했다. 전시 첫 섹션에서는 귀국 전 파리에서 전공했던 석판화 작업을 중점적으로 선보인다.

전시장 벽을 빼곡하게 채울 정도로 작품들이 다양하지만, 정작 홍순명은 이 시절의 작업들은 부끄러워 숨겨뒀었다고 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 다시금 작품들을 꺼내 돌아봤는데, 여러 감정이 오갔다고. 그는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젠 덜 부끄럽더라”며 “이번 전시에 대학교 4학년 때 작업했던 작품도 있는데, 판화를 좋아해 독학해 선보인 작업이었다. 지금과 달리 당시엔 판화를 배울 곳이 없어 국제시장에 취직해 곁눈질로 상인들의 판화기술을 배우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미술을 계속 해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초창기 작업 시절은 방황의 연속이었다지만, 작품 하나하나엔 그의 고민과 열정이 오롯이 남겨져 있다. 뿔 달린 자화상, 신문 속 보도사진의 인물을 삭발 형태로 동그란 판 1200개 위에 다시 그린 작업에선 젊은 시절부터 예술적 정체성과 방향을 찾기 위한 과감한 시도와 부단한 노력이 느껴진다.

홍순명 작가의 뿔 달린 자화상 작업에선 젊은 시절부터 예술적 정체성과 방향을 찾기 위한 과감한 시도와 부단한 노력이 느껴진다. 사진=김금영 기자

홍순명의 작업은 판화에 그치지 않았다. 설치, 회화 작업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두 번째 섹션에서 선보이는 ‘A.C.D.R’ 시리즈는 2004년 이후 작가가 꾸준히 이어온 ‘사이드스케이프’와 연결된다. 프랑스의 자동차 레이스 ‘파리 다카르 랠리’를 모티브로 한 A.C.D.R 시리즈는 자동차 등 경기의 주요 내용이 아닌 오토바이가 내는 구름 같은 먼지, 빛이 스쳐지나가는 모습 등을 그렸다.

사이드스케이프는 홍순명이 수집한 여러 보도사진의 이미지들에서 중앙을 제거하고 오히려 주변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독특한 작업이다. 처음엔 단순하게 ‘옆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이 작업은 어느덧 20여 년 가까이 이어져 왔다. “정보전달을 위한 보도사진을 통해 강조되고 사람들이 주목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 아니라, 여러 부수적 요소들까지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전체를 볼 수 있다”는 홍순명의 지론이 담겼다.

예컨대 그의 작품 속 탈레반의 공격 현장을 담은 사진의 귀퉁이에서 발견한 피라미드, 거친 파도의 일부분 등은 우리가 믿고 있는 진실과 실재하는 현실의 간극을 보여준다. 호반문화재단 관계자는 “하나의 사건을 온전히 목도하는 파편들이 말하고 있는 사실이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함께 발견하게 되는 것이 홍순명의 작업을 감상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사건 현장인 팽목항, 자연파괴를 일으킨 4대강 사업 등 어두운 실상을 품은 그림, 오브제가 전시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물과 관련된 이미지와 오브제들이 가득 채워진 전시장 또한 단순히 봤을 땐 찬란하고 행복이 넘쳐흐르는 것 같지만, 실상은 세월호 사건 현장인 팽목항, 자연파괴를 일으킨 4대강 사업 등 어두운 실상을 품고 있다. 홍순명은 “50대가 되면 이 사회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약간의 책임감은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세월호 사건 이후 팽목항과 가까운 해안가에서 마주한 쓰레기들을 주워와 설치 작품을 만든 것도 이 책임감에서 비롯됐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힘든 일이 사회에 계속될 때 허망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더 작업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난, 전쟁’ 섹션은 오늘날 전 세계적 화두인 재난과 전쟁을 사이드스케이프와 연결시킨 작업들을 선보인다. 각각 50x60cm 사이즈의 작은 캔버스 100여 개가 모여 10m가 넘는 대작이 됐다. 이 화면 또한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오묘한 모습을 보여준다. 산불을 표현한 것이란 정보를 듣지 못하면, 아름다운 석양이 지고 있는 풍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재난, 전쟁’ 섹션은 요새 화두인 재난과 전쟁을 사이드스케이프와 연결시킨 작업들을 선보인다. 사진=김금영 기자

홍순명은 “인터넷이나 책, 신문 등에서 재난 이미지를 찾아보면 참혹한 실상과는 달리 오히려 이미지 자체는 멋진 장면이 나올 때가 많다. 여기서 아이러니를 느꼈다”며 “한편으로는 인간은 자신들이 수용할 수 있는 선 안에서는 숭고미를 느끼지만, 이를 넘어서 감당하지 못하는 것엔 두려움을 느끼고 재난이라 표현한다고도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작과 달리 아주 작은 크기의 그림들이 모아진 섹션도 마련됐다. 마흔 중반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 힘들지만 포기하고 싶진 않아 연습차 그렸던 것이 어느덧 캔버스 1000개, 10년 동안엔 3000개를 넘어섰다. 홍순명은 “회화는 항상 새롭다. 3차원의 이야기를 2차원으로 끌어들여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것인데, 그렇기에 더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새 작업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그의 실험정신은 최근작인 ‘가족’에서 엿볼 수 있다. 90세가 넘은 어머니의 앨범과 작가가 소장하고 있는 자료를 결합해 근대화와 현대화의 역사를 한 화면에 포괄적으로 품는다. 이 과정에서 작가 개인의 파편과 사회적인 담론들이 닿고 있는 연결고리도 부각된다.

홍순명 작가의 최근작인 ‘가족’은 90세가 넘은 어머니의 앨범과 홍순명 작가가 소장하고 있는 자료를 결합해 근대화와 현대화의 역사를 한 화면에 포괄적으로 품는다. 사진=김금영 기자

호반문화재단 관계자는 “강운 작가의 작업에서는 오래된 기억, 상처 등을 복기하면서 화면에 공간과 질감을 표현하며 스스로 치유의 여정을 이끌어 나가는 모습을 읽을 수 있다”며 “입체, 설치, 판화,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부분과 전체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계속해 온 홍순명 작가의 지난 40여 년의 열정도 이번 전시에서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우현희 호반문화재단 이사장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 온 두 작가의 열정과 도전 정신을 많은 분이 계속 응원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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